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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나의 서울숲 사용법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가 유청오 전속 사진 작가와 함께 이틀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취재를 다녀왔다. 순천행 기차에 슬쩍 동승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지난 4월 순천에서 열린 한국조경학회 학술대회 때 박람회장을 잠깐 둘러보긴 했지만, 발 디딜 틈 없는 인파에 치여 정작 기억에 남은 건 총천연색 등산복의 물결뿐이라는 아쉬움 때문. 게다가 박람회장보다 더 호평받고 있다는 오천그린광장과 어싱길, 도심 도로를 잔디밭으로 바꾼 그린아일랜드를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도 취재에 동행하고픈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편집주간의 동행을 기자들이 반길 리 없을 터. 철없는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나는 기자들이 순천에 도착할 무렵 소박하게(?) 서울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봄의 절정, 공원은 여느 때처럼 북적였고 그 활력에 내 마음도 생동했다.
35만 평에 달하는 서울숲은 서울에서 올림픽공원 다음으로 큰 공원이다.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등 크기만큼이나 다채로운 성격의 여러 공간으로 구성된 대형 복합체 공원. 게다가 한강과 바로 직접 맞닿아 있는 점은 서울숲 매력을 배가시킨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만큼 갈 때마다 다른 구역을 경험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단골 식당처럼 자주 가는 자신만의 공원 속 아지트를 정해 두면 더 즐겁다.
나의 서울숲 사용법은 세 가지 정도다. 많은 사람이 서울숲 하면 떠올리는 그 시그니처 풍경에서 도시의 자유를 느끼는 게 아주 평범하지만 소중한, 나의 첫 번째 사용법이다. 지하철 수인분당선을 타고 서울숲역에 내린 뒤 3번 출구로 나와 컨테이너 박스 100여 개로 지은 언더스탠드 에비뉴를 통과하면 서울숲의 정문 격인 공원 2번 출입구가 나온다. 옛 경마장의 장소 기억을 소환하는 역동적인 군마상을 지나면 바닥분수와 거울연못으로 유명한 문화예술공원 구역이다. 넓은 잔디밭 위로 펼쳐진 하늘과 응봉산 원경에 숨통이 확 트인다.시원한 풍광을 즐기며 잠시 해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30분이면 충분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은행나무길 아래 벤치를 차지하고 빽빽한 수직선들의 밀도감에 압도당하기를 자처한다.
더 적극적으로 일상에서 탈주하고 싶은 날엔 생태숲 구역을 선택한다. 생태숲 위를 지나 강변북로를 건너 한강변으로 뻗어나가는 보행교를 걷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슴들이 출몰하는 생태숲은 직접 내려갈 수 없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만 있어서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어느덧 야생에 가까워진 숲의 머리 위를 횡단하는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한 직선의 다리를 걸으며 스치듯 숲을 통과하는 기분, 걸어본 사람만 안다. 조금 더 걸으면 강변북로를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 행렬이 한눈에 잡힌다. 아찔한 속도와 소음이 불쾌하지 않고 두렵지도 않다. 광폭의 한강이 뿜어내는 힘과 아파트 경관의 질량감, 성수대교의 육중한 구조미와 이리저리 휘감기는 강변도로 램프들의 곡선이 한데 뒤섞인 콜라주. 보행교 끝에서 강가로 내려오면 멀리 보이던 한강이 바로 발 앞에서 흐른다.
세 번째는 공원 바깥 카페의 창으로 서울숲의 짙은 계절감을 즐기는 사용법이다. 성수동에서 약속 잡을 일이 있으면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로 무장한 성수이로와 연무장길 쪽의 힙한 카페들보다는 공원 4번 출입구 바로 옆의 한 카페를 택한다. 성수동 특유의 붉은 벽돌 이층집을 검박하게 개조한 카페 2층에 앉으면, 가로로 긴 창을 통해 서울숲의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면 텅 빈 공원의 스산함이, 봄이면 공원을 새로 채워나가는 햇살의 나른함이, 여름이면 짙다 못해 무거운 초록의 냄새가, 가을이면 갖가지 나뭇잎이 조합해내는 단풍의 향연이 카페 창을 넘어 달려든다. 조금 더 부지런하고 싶은 날엔 카페에서 나와 습지생태원까지 간다. 공원 외곽의 습지생태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습지 위에 그물처럼 놓인 목교를 걷거나 투박한 의자에 몸을 기대면 공원 전체를 전세 낸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도시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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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쉬운 단점
“칭찬만 너무 많이 하시는 것 아니에요?” 식물 드로잉 수업을 할 때마다 수강생에게 듣는 말이다. 삐뚤빼뚤한 형태, 어색한 색채, 그리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구도……. 수강생들은 스스로 부족한 점을 나열하지만, 외려 나는 사랑스럽다, 따뜻하고 달콤하다, 혹은 과감하다는 평을 하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인 지도 모른다. 종이를 꺼내고 마음에 드는 화구를 골라 쓱쓱 채워 넣으면 되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끝없이 마주친다. 아무래도 선을 잘못 그은 것 같아. 다른 작가는 색을 참 잘 쓰던데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애초에 구도를 잘못 잡았나 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지……. 이렇게 단점을 메우는 데 집중하면, 어느새 그림은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 된다.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야말로 개성과 장점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길, 기쁨과 기대가 손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이번엔 새로운 색을 써 볼까?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났어! 크게 그려 보면 멋질 거야. 이렇게 되뇌며 자꾸 그리다 보면 손끝에서 좋은 그림이 나오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단점을 고치겠다는 쉬운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좋은 점을 찾아 성실히 칭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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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가원조경설계사무소
우리의 스튜디오
가원조경설계사무소(이하 가원조경)를 24년간 운영하면서 개인과 조직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가 어려웠던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주었던 직원들은 어느새 회사의 기둥이 됐고,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새로운 인재들이 영입됐다. 우리는 현재 4개의 스튜디오(설계실), 연구소(강과 바다), 경영지원실, 영업기획본부로 구성된다. 4개의 스튜디오는 프로젝트 수주부터 시작해 계획, 기본·실시설계에 참여하며, 각 스튜디오는 고유의 설계 철학을 바탕으로 조경의 본질과 가치를 연구하고 있다.
스튜디오 G1
스튜디오 G1의 설계 철학은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우선 경계선 바깥과 안이다. 경계선 밖의 풍경은 경계선 안에서도 바라보는 풍경임을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계선 안쪽의 풍경을 만들며 전체와 부분이 하나의 풍경으로서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두 번째는 간극이다. 도시와 자연, 그리고 사람으로 구분된 공간적 개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간극의 틈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시작 혹은 시도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시도들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시도가 생태적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와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경관을 구현할 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상무 소장)
스튜디오 G2
스튜디오 G2란 이름으로 모인 지 3개월 차에 접어드는데, 괜찮은 팀워크를 발휘하며 점점 발전해 나가는 중이다. 문과적 감성보다는 이과적 이성이 강한 팀원들과 함께 내실 있고 탄탄한 설계를 해나가고 있다. 환경 설계의 아젠다인 탄소 저감, LID, BF 등을 조경 설계에 적용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에서 현실적인 설계 기법과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용주 소장)
스튜디오 G3
Think Harder than Work Harder. 스튜디오 G3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문구다. 해외파 소장을 필두로, 가원조경에 또 다른 색깔을 칠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맡은 프로젝트마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조금은 색다른 아이템과 디자인 디테일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며, 일련의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과 대안을 함께 생각하고 공유하는 것을 추구한다. 업무 이외 서로의 일상과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며 챙겨주는 따뜻한 팀이다. 조만간 인스타그램 계정(@studio_g3_)을 통해 G3만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많관부! (임상현 소장)
스튜디오 G4
스튜디오 G4의 팀원들은 예측하기 힘든 미래 환경에 최상의 공간적 해법을 제시하는 조경설계 작업에서 조경가로서 긍지를 느낀다. 하지만 실무에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벽을 체감한다. 상상의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되 이를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안착시켜 조금씩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일정한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성과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격려와 유머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재미에 들떠, 때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완성한 도면을 볼 때마다 “해냈다!”라는 탄성이 바로 터져 나온다. (김준현 소장)
우리의 프로젝트
충남미술관 건립 국제지명설계공모
충남미술관은 용봉산의 숲과 내포 신도시의 경계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생긴 간극을 문화라는 매개체로서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연속된 흐름을 만들어 주는 숲으로 용봉산의 흐름을 잇고, 다양한 도시의 문화와 미술관 내부의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자 했다. 열린 동선과 최소한의 공간 계획을 통해 열린 경관을 확보하고 문화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빈 공간에 다양한 공간을 계획했다.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원의 외부 공간은 주변 지형을 끌어안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의 곡선과 이를 받아들이는 경작지의 격자선을 엮어 자연 사이의 생산적인 대화를 유도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관은 자연이 서로 전이되는 유동적인 공간이며 다양한 가치와 활동을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농업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경관의 틀은 기존의 전통 농업 방식을 넘어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새로운 형태의 농업 활동을 제안한다.
혁신원자력연구단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재도약을 위한 터전으로 첨단 원자력 기술의 새로운 빛이 될 혁신원자력연구단지는 지역과 함께 숨 쉬고 성장하는 커뮤니티 시설, 경주 감포의 해안 경관과 연대산의 숲 경관이 공존하는 단지로 과학과 사람이 교감하는 정원과 공원으로 거듭 날 예정이다.
화성 동탄2신도시 신주거 문화타운
자연의 숨결이 스며들고 이웃과 유대를 쌓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신주거 문화타운을 제안했다. 자연에서 변화하는 공통된 언어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열린 단지로 계획하고 네 개의 블록을 잇는 네 개의 길을 통해 커뮤니티를 공유하는 마을로 조성 중이다.
평택 삼성전자 사무동 옥상정원
평택 삼성전자 신축 사무동 6층에 위치하는 6,000평 규모의 옥상정원으로, 흐르는 공간과 경계를 넘는 소통을 설계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위한 오피스 외부 공간으로 갯벌이었던 대상지의 형상과 삼성전자의 디자인 모티브인 무경계의 디자인을 조화시켰다.
성남복정 1·2 공공주택지구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 공모
3기 신도시에 시대적 요구인 탄소 중립과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도심에 활력을 더하는 친환경 복합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안했다. 복정 1지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심 커뮤니티의 중심 공간 복우물광장은 복정동 이름의 유래가 된 복우물을 재해석한 잔디광장과 캐노피로 만들고, 단차 극복을 위해 보행 램프를 계획했다.
도시의 환경적 맥락에서 봤을 때 중요한 전이 공간인 복자락공원은 경사지를 활용한 테라스 공간을 조성하고 기존의 저류지를 활용해 문화와 예술을 담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자연 친화적인 무한의 놀이언덕은 기존 영장산의 능선을 활용하여 지형을 다듬고, 아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이 유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세곡천 수변감성도시 조성사업 제안공모
과거 도심 하천 계획이 하천의 치수 기능을 높이거나 자연 생태 하천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서울시 수변감성도시 계획은 하천을 도시의 주요 활동 영역으로 만들어 주변 도시 공간에 재편시키는 것이 주요한 설계 과업이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도시, 자연을 연결하는 참신한 방식을 탐구해왔지만, 하천이라는 난제 속에서 대부분 처음 대면하는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기에 쉽지 않았으나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도시와 하천의 경계를 개방하여 수변을 적극적인 활동의 공간으로 조성하되, 홍수의 위험에 대응하여 범람과 빠른 유속에 적응하는 설계를 도입했다. 무엇보다 하천의 감성을 살리는 동시에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설계 목표로 삼았다.
불광천 수변감성도시 조성사업 제안공모
서울의 하천은 대부분 제내지와 제외지의 성격이 확연히 분리되어 있어 시민의 삶에서 소외됐다. 불광천은 주변에 다양한 근린 가로가 형성됐지만, 둔치의 일방 보행로와 각종 지장물로 인해 수변의 활력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 제방면과 보행로를 통합한 설계를 통해 수변을 시민의 활동 영역으로 넓히고, 구역별로 개성 있는 프로그램 공간을 도입해 불광천 수변을 걷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활기가 넘치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오피스 문화
시대의 흐름에 맞춘 복지
시대와 세대가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기존 설계사무소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노력 중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의 눈에는 아직 부족할 수 있지만,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복지를 주고자 오피스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모니터, 핸드폰으로만 보던 해외 조경 공간 답사가 그중 하나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란 말처럼 디자인에 영감을 주거나 관심 있던 해외사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경험은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각자 추구하는 지향점을 위한 좋은 토대가 될 것이다.
올해 4월에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사내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봄 야유회를 준비하던 중 사내 체육대회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권혁 실장(스튜디오 G1)을 중심으로 빠르게 장소, 경기 종목 등이 결정됐다. 회사에 앉아 업무를 보던 점잖은 직원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아주 치열했고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현재 사무실은 강남구 역삼동 인근의 빌딩 3, 4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21명의 구성원이 각자 넓은 작업 공간을 쓸 수 있도록 배치했다. 2023년은 가원조경이 창립한 지 24년째 되는 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가원조경을 거쳐 갔고, 밖으로 나가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새로운 조경가들이 합류하여 회사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며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볼 때면 감회가 새롭다. 앞으로도 젊은 조경가들의 역량 개발과 조경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안세헌)
가원조경설계사무소는 1999년도에 창립하여 올해로 24년 차를 맞이한 조경설계사무소로도시와 건축의 외부 환경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한다. 우리의 디자인은 자연의 존중과 인간 활동의 관심을 바탕으로 대상지의 도시적, 인문적, 생태적 맥락에 개입해 전통적인 도시, 건축, 조경 영역을 탈피하고 실용적이며 창의적인 다양한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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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공원의 이면, 약물 중독자들의 쉼터
도시의 자연 대체제로서의 공원이, 근대 초기에 도덕과 문화, 윤리가 박탈당한 도시를 구원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공원이 순수하게만 이용된 것은 아니었다. 공원은 분명 회색 도시의 녹색 해독제 역할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근대 도시의 암울하고 야만적인 민낯을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근대 초기, 신문의 공원 관련 기사는 대체로 세 가지 주제로 분류된다. 첫째 도시 개발의 일환으로 조성된 도시 시설로서 공원의 지정, 계획, 조성에 관한 기사나 둘째 연주회, 야유회, 기념회 등 행사 개최지로서의 공원 소식이다. 셋째 비관, 소외, 갈등 등으로부터 비롯된 사건 사고 현장이 되는 이야기다. 당시 공원에서는 상해치사나 자살 같은 사고가 상상 이상으로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는 공원이 일찌감치 도시 문제를 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복궁 서쪽, 조선의 주요 제례처인 사직단을 품고 있는 사직공원(지금의 사직근린공원)은 자살이나 살해 사건 등이 자주 일어났으며, 아편과 모르핀 따위에 중독된 부랑자들이 유독 많이 이용한 곳이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소설 『박명薄明』에서 당시 사직공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깨끗하지 못한 공기와 흐리터분한 티끌과 매연 사이에서 복잡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도회지 사람들은 언제든지 신선한 공기와 맑은 바람을 그리워하는 것이지만, 만일 더운 때를 당하면 더욱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울 사람들은 여름만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나무 밑이나 물가에를 찾아다니며, 땀을 개이고 정신을 맑히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성 안의 작고 큰 공원에는 더위를 피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는 여름을 거기서 나다시피 하는 사람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경성의 공원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설비에 있어서 아직 공원다운 공원이 없지만, 그중에서 그늘도 있고 물도 있고 발세1가 좋아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데는 사직공원이었다. 거기는 피서하기 위하여 임시로 드나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운동이나 유희를 위하여 오는 학생층의 사람들도 많으며, 혹은 셋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라든지 오다가다 머무르게 되는 사람들이 나무 밑에 거적대기로 의지하고 단지 밥을 해 먹어 가며 임시로 살림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다른 데서 보기 드문 특별한 현상이라고 할 것은, 아편쟁이들의 도회청이 되다시피 한 일이었다. 그것은 아편쟁이 중에도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서 그런 데로 모여드는 것이겠지만, 허다한 빈 땅을 두고서 사직공원으로만 모이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형편으로 자기네의 생활에 편리한 점이 있는 까닭이니, 그들의 생활에 편리한 것이라는 것은, 첫째로 마약을 파는 곳이 가까운 것과, 그 주위의 집들이 많이 있어서 밥을 얻어먹기가 편리한 것과, 나무 밑에서 한둔하기가 좋은 중에, 만일 날이 궂을 때에는 사직 문간이 있어서 풍우를 피할 수가 있는 까닭인데…….”
각주 1. 발세: 산줄기의 형세(북한어)
*환경과조경422호(2023년 6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