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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50×15,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2년 가까이 매달렸던 책 한 권의 편집을 마무리하고 조금 전 인쇄소로 최종본 파일을 넘겼다. 이번 달 잡지가 독자 여러분에게 도착할 때쯤 신간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도서출판 한숲, 2022)도 펼쳐볼 수 있다. 1972년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현대 조경은 이제 50년의 역사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은 역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해온 조경 50년사의 주요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여름,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50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책의 방향과 구성을 기획하기 시작했다.1 필자 섭외와 원고 집필, 편집 과정에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의 이름으로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소환해 토론의 장을 펼치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 2022)’ 개막에 맞춰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출간의 목적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는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미래를 전망하고 예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와 한계를 다각도로 되짚고 다시 촘촘히 읽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 한국 조경 50년의 이야기와 성과를 ‘기록’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책의 의도가 자리한다. 열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지난 50년을 탐사하는 이 책은 중성적 아카이브나 백서보다는 해석적 비평서에 가깝다. 책의 1부와 2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남긴 지형과 풍경에 대한 해석이자 비평이다. 이명준(이론과 미학), 최영준(설계공모), 임한솔(전통의 재현), 고정희(식재 디자인), 최정민(시대성과 정체성), 박희성(개발 시대)의 글 여섯 편으로 구성한 1부는 50년을 가로지르는 큰 흐름과 이슈를 조감의 형식으로 해석한다. 2부는 주요 단면에 대한 클로즈업이다. 김아연(생태 공원), 이유직(선형 공원), 서영애(이전적지 공원화), 김영민(아파트 조경), 김정은(사이와 경계), 김연금(맥락), 김한배(사회적 예술), 박승진(시민 사회), 남기준(텍스트)의 글 아홉 편을 엮은 2부는 한국 조경의 궤적 위에 펼쳐진 주요 주제를 포착하고 해석한다. 책의 3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낳은 주요 작품을 기록하는 데 방점을 둔 기획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선정한 ‘한국 현대 조경 50’ 작품의 정보를 정리해 싣는다. 2021년 4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한국조경학회 회원,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원, 조경 설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303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2 지난 50년의 작품 경향과 시대상이 담긴 대표작 50선에서 한국 조경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 조경 50년사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과제는 해석적 비평에 무게중심을 둔 이번 책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도서출판 조경, 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도서출판 조경, 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환경조경발전재단 편, 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등의 형식으로 출간되었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아쉬운 면이 적지 않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가 절실한 시점이다[email protected] 각주 1.편집고문 조경진, 편집위원장 배정한, 편집위원 김아연·남기준·박희성, 편집간사 임한솔 각주 2.50개 선정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보는 『환경과조경』 통권 404호(2021년 12월호)에서 볼 수 있다.
  • [풍경 감각] 때론 잊는 일도 도움이 된다
    2022년 5월 24일, 미국의 롭 초등학교에서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사망한 총기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 이후 미국 정부는 사건이 일어난 학교 건물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건물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비단 롭 초등학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학교를 부수거나,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하는 것이 보통이다.911 메모리얼 파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부수고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치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생각을 하다가 조금 놀랐다. 이런 딱딱한 생각이 돌보지 못하는 귀퉁이들이 떠올라서. 총성이 울리던 교실과 괴한을 피해 달아나던 복도에서, 그리고 빈 책상과 총탄 자국이 남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날들을 보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론 부수고, 지워버리고, 그래서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안팎 재미를 찾고 경계를 허무는 토털 디자인
    맨땅에 헤딩을 해보자 독립하는 많은 디자이너는 “왜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려 하는가?”에대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금전, 업무 환경 및 범위, 나의 디자인 등 다양한 조건을 고민한 끝에 디자인 오피스를 연다. 안팎의 두 소장에게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운이 따라줘서 좋은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중요한 공공프로젝트에서 트렌디한 상업 시설까지 오랜 기간 좋은 공간을 만나왔다. 즉 독립한다는것은 양질의 프로젝트를 당분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안정적으로 나오던 월급,체계적인 업무 환경, 좋은 동료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기로 했다.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토대로 만든 안팎은 기획, 제안, 디자인, 설계, 공사, 프로젝트 운영, 소품 제작 등 디자이너로서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수용한다. 이것은 안팎이 가진 색깔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시공을 통해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설계도 하나요?”라고 묻고, 설계를 통해서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시공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두 소장도 안팎의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디자인만 하다가, 디자인한 공간을 직접 공사하니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다.나무를 자르고, 돌을 놓고, 레미콘을 타설하고, 용접을 하고, 직접 꽃과 나무를 심는다.꽃꽂이와 소품 제작을 통해 조금 더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우리의 디자인은 때로는 모자라고 때로는 과하기도 하다. 하지만설계와 시공의 연속된 프로세스 안에서 발생하는 빠른 피드백은 그 부족함과 넘침을신속하게 채워주고 덜어내 준다. 디자인-보고 자료-도면-내역-납품의 과정에 시공이 들어오니 지루했던 루틴에 활기와 재미가 생겼다. 대상지를 바라보는 방식과 디자인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물론 직장인 시절 시공 경험이 전무했던 두 소장의 삶은 이전보다스펙터클해졌다. 이처럼 넓은 범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팎은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 우리의 설계 철학? 안팎의 두 소장인 반형진과 정주영은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조경설계 서안에서잠시 같이 일하다가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았고, 2019년에 함께 일을 시작했다. 둘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겹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삶, 디자인 등 많은 부분에서 취향이 다르다. 대부분의 디자인 오피스들이 디자인 지향점, 혹은 설계 철학을 가지는것처럼 우리 역시 지향하는 디자인이 있다. 두 소장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안팎이 지향하는 바가 한 지점으로 모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두 소장뿐 아니라안팎의 직원들, 또 모든 디자인 사무실의 취향은 산개되어 있지만 지향점은 한 곳을 향하지 않을까? 아마도 안팎이 바라보고 있는 그 지점을 모든 디자이너가 바라보고 있을것이라는 건방진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물론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형태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든지, 자연을 복제하는 수준의 경관 구성을 선호한다든지, 트렌드를 선도하거나 따르는 힙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든지.안팎은 그 과정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자 한다.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적합한 과정을 따를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시공을 곁들이다보니 현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개인 클라이언트를 대하다 보니 우리는 작가와 디자이너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깨닫게 됐다. 그래서 대상지와 현장 상황과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고 좋은과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지향점으로 향해야 한다. 물론 어떨 때는 떼를 쓰거나 징징대기도 한다. 우리도 다른 모든 디자인 사무실들이 추구하는 그것을 함께 추구하기때문에. 개갑장터 순교성지의 마스터플래너 조경가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조경을 계획하거나 설계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동안의 조경은 공공 프로젝트와 대형 상업 프로젝트, 아파트에 기생하였고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근래 일어난 정원 붐은 조경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 좋은 기회다. 보고 자료를 만들고 모델을 만들고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고창에 세번을 방문해 건축주를 설득해냈다. 조경 설계라는 것을 처음 들어보고, 나무 몇 그루심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축 수도원 주변을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주는조경 설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외부 공간 전체를 안팎에 일임하였다.이미 부지 정지와 건축 공사가 진행된 상황이라 여러 문제점이 많았지만 마스터플래너로서 대상지전체를 다룰 수 있었다. 덕분에 부대 토목 공사까지 떠맡게 됐다. 많은 조경 공사는 건축 공사의 끝 무렵에 시작한다. 조경 공사는 전체 건설 공사의꽃이자 공사장의 문을 닫고 나오는 마지막 공종이다. 조경 공사가 마무리되면 먼지가가득하던 커다란 공사장은 아름다운 외부 공간을 가진 곳으로 변하고 준공 검사 절차를 밟아 공간 활용이 시작된다. 마지막에 있는 공정으로 인해 조경 공사가 시작되기 전만들어진 구조물들은 조경 공사의 큰 난관이 되고, 심할 경우 디자인 의도를 구현하지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건물 역시 외부 공간에 설치되는 큰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조경가는 대상지 전체의 마스터플래너로 적극 활동해야 한다. 개갑장터순교성지 수도원 정원 공사에 뒤늦게 참여해 대상지 레벨이나 건물의 위치, 형태 등에 대한 결정에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부대 토목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함께 논의하면서 맨홀, 트렌치, 정화조, 수전 등 이설하기 힘든 구조물들의 위치를 조정하고 우리의 디자인 의도를 잘 구현할 수 있었다. 만약 조경 공사만 진행하게 되었다면 갑자기 만난 구조물들을 피하기 위한 방책을 세우느라 현장에서 골치 아팠을 것이다. 이는 공사에서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다. 낙선에 그쳐 매우 안타까운 프로젝트였지만 안면도 지방정원 및 가든 센터 현상설계공모에서 우리는 대상지 전체에 대한 계획과 함께 건축물의 위치와 규모, 외형까지 적극적으로 제안‧협력하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안팎은 다양한 공종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마스터플래너로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조경만의 영역에 한정된작업을 수행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준서 안팎의 두 소장도 독립했다 우리는 조경설계사무소에 취업하는 대다수 친구의 최종 목표가 독립이라고 믿는다. 안팎을 거쳐 가는 직원들이 좋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름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독립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성장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 안팎을 성장하게 할 것이다. 한 가지에 집중해서 그 분야의 숙련자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안팎의 욕심과 함께 이것저것 해보면서 여러 경험을 쌓고, 그중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안팎에서는 본인이 설계한 것은 직접 시공하는 것을 권장한다. 설계에서 시작하여 시공 현장을 넘나드는 넓은 업무범위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일 수도, 업무의 질과 양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는 과정은 본인의 디자인에자부심을 갖게 만들고, 일이 아닌 업으로의 조경 전반에 재미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만 말하고 있지만 재미와 활력, 흥미 등 온갖 긍정적인 이야기들은 소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직원들과의 세대 격차가 조금씩생기게 된 소장들이지만 안팎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안팎 구성원을 비롯해 앞으로 거쳐 갈 많은 사람이 업으로서, 또 너무가볍지만은 않은 재미로 조경을 대할 수 있는 밑바탕으로서의 안팎이 되었으면 한다. 어쨌든 안팎에서는 직원들의 최종 목표가 독립인 친구들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다이내믹한 과정을 실천할 친구들도 모두 소중하다.조경가로서 다룰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을 한정하지 말자그동안 봤던 디자인 오피스들은 각자의 특화된 프로젝트 종류들이 있었다. 아파트만디자인하는 친구들, 대형 현상설계 위주인 친구들, 공원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친구들, 작은 정원을 디자인하는 친구 등 각자의 특화된 영역이 있다. 욕심이 많은두 소장이 함께 만든 안팎의 프로젝트는 작은 정원에서 대형 공공 공간, 개인 주택에서상업 시설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실 규모와 공간의 성격을 넘나드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요구 사항, 디자인 접근 방법, 발주처를 설득하는방법 등이 매우 다르므로 스위치를 이리저리 옮겨줘야 한다.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안팎은 더 많은 영역에 진출하고 싶다. 상업 시설의 공간 장식, 실내외를 포함한 토털공간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으며,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이라는 핵심성격 덕분인지 미래 도시 공간의 운영, 유지·관리 등에도 관심이 있다. 아직은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본격적인 발걸음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기획, 디자인, 설계, 운영 관리 등 폭넓은 커리큘럼을통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연습해 왔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안팎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도해 보고 싶다. 안팎의 소장들은 관성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달콤하지만 금세 지루해진다고 굳건히 믿는다. 안팎(ANPARK)은 공간을 다루는 토털 디자인 오피스로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공간의 규모와 성격에 차등을두지 않으며, 디자인에서 시공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416 생명안전공원, 서울대공원동물원 정문 광장 등 규모 있고 공공성이 강한 공간부터 개인 정원, 수도원 정원 등 작고 사적인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들을 다루며,현상설계와 실시설계, 시공 등 디자인 프로세스 곳곳에서 업무를 즐겁게 수행하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동물원의 탄생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덕분에 난데없이 고래가 세간에소환됐다. 센 강에 흘러들어왔다가 고향과 영원히 이별한 벨루가 소식과 인간에게 끝까지 길들지 않고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태산이가 최근 죽음을맞이했다는 얘기까지, 이러저러한 고래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이기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나 고양이처럼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가축으로 진화한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 동물은 야생에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간은 애완이든 식용이든 동물을 끊임없이 곁에 두려 했는데, 이런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정원’이고‘동물원(zoological garden)’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유囿라고 하여 금수를 키우는 곳을 아예 구별했다. 앵무새와 원앙등 진귀한 새를 기르는 것은 물론이고 거위나 사슴, 학 등을 곁에 두기도 했다. 학은고고한 생김새와 긴 수명 때문에 예부터 신선과 함께 사는 동물이라 여겼고 속세를떠난 은자隱者들이 특별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옛 기록에서도 선비들이 학을 애완용으로 정원에서 길렀다는 사실이 종종 확인된다. 유럽으로 가면 그 양상이 좀 더 야만적이고 노골적이다. 우선 동물 수집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기부터 확인되는데, 이집트의 아시리아제국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등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었다고 알려진다. 로마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나 네로 황제는 물론 귀족들까지도 진귀한 동물을 모았으며, 트라야누스 황제는약 1만 1천여 마리의 동물을 수집했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도 거대한 동물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13세기 영국의 헨리 1세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2세로부터 받은 표범 한 마리를 사자와 낙타 등과 함께 우드스톡에 있는 자신의 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관상했다. 우드스톡의 동물원은 이후에 런던탑을 거쳐 19세기 리젠트 공원에 조성된 런던 동물원으로 이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동물을 수집하는 일은 정치와 권력의 힘이 작동되는 인류의 도시 문명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래된 일이다. 과거에는 동물원이 왕권과 부를상징하며 조공이나 전리품으로 획득한 동물을 정원에 모아 두고 보고 즐기는 데 쓰였다면, 제국주의가 팽배해진 19세기에 이르면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 등 식민 국가의동물을 무작위로 포획해 동물원을 채우게 됨에 따라 동물원에는 식민지 정복에 대한상징이 두텁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근대적 시각으로 보면, 동물원은 자연을 정복한 인간의 우월감이 드러나는 공간이며미개한 동물과는 다른 문명화된 인간의 존재를 찬양하는 공간이었다. 또 세상에 대한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빛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편, 동물원은 동물 분류와 서술방식의 발전을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해부학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동물 보존 박물관을 만드는 계기 또한 마련했다. 세계의 유명한 자연사박물관들도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은 방문객에게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진화했고 대중을 위한 공공의 오락 장소로 발전했다. 과거의 계획 공원에는 대부분 동물원이 설계됐고, 동물원은 점차 도시 근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김해경 외, “전통조경요소로써 도입된 학(鶴)과 원림문화”,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3), 2012,pp.57~67. 니겔 로스펠스, 『동물원의 탄생』, 이한중 역, 지호, 2003. 서태정, “대한제국기 일제의 동물원 설립과 그 성격”, 『한국근대사연구』 68, 2015, pp.7~42. 오창영, 『韓國動物園八十年史(昌慶苑編)』, 서울특별시, 1993. 우동선, “창경원과 우에노 공원, 그리고 메이지의 공간 지배”,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효형출판,2009, pp.202~237. 한국전통조경학회 편, 『동양조경문화사』, 문운당, 2011.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