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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큰 발의 미학
만추의 절정, 이번 달에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 조경 무대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는 유쿵졘(Yu Kongjian)과 그의 설계사무소 투런스케이프(Turenscape)의 근작들로 특집을 꾸렸다. 1998년 문을 연 투런스케이프는 설계 인력만 600명에 달하는 초대형 조경설계사무소로 성장했고, 좁은 의미의 조경설계는 물론 옴스테드의 비전을 연상시키는 도시와 지역계획, 맥하그의 맥을 잇는 광역 생태계획을 조경의 범주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전 세계 조경계의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시 공간과 생태계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고유한 설계 문법과 기술을 통해 구현하는 데 주력하면서 조경 이론과 실천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하버드 GSD에서 서구의 첨단 설계와 계획 지식을 익히고 귀국한 유쿵졘은 중국의 국가 지도자, 정치 엘리트, 시장들에게 조경 계획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징 대학교에 조경대학원을 신설한 그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에 걸쳐 중국건설성·시장연석회의에서 조경 강의를 이어갔다. 2008년 중국 국가생태보안계획 프로젝트를수행함으로써 그는 국가 규모의 생태적 어바니즘(ecological urbanism)의제를 세우기에 이른다.
유쿵졘과 투런스케이프의 혁신적 사고와 실천이 성공한 배경에 하향식 정치 구조,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 체계, 급속한 도시화 진행, 서구 과학과 기술의 수용 등 현대 중국의 독특한 상황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그의 성과를 저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쿵젠은 서구에서 수입한 계획 지식과 설계 기법을 전대미문의 속도로 진행된 중국 도시화의 문제 해결에 접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고유의 토지관과 농업적 지혜를 재발굴하여 지속 가능한 회복탄력적인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데 적용했다. 투런스케이프의 작업들은 일찍이 케니스 프램턴(Kenneth Frampton)이 주장한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가 조경을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쿵졘과 투런스케이프의 성과가 생태학 기반의 광역 스케일 계획 작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쿵졘은 10년 전에 발표한 글 “아름다운 큰 발: 새로운 조경미학을 향하여”(Harvard Design Magazine 31, Fall/Winter 2009/10)에서 중국의 전통 원림을 관통하는 장식과 허위와 사치를 비판하고,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존의 예술art of survival로서 조경설계의 미학적 지향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큰 발’은 중국의 전통문화인 전족(작은 발을 만들기 위한 발 묶기)의 상대 개념이며, 전족은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원림 미학을 비유한다. 즉 그가 주장하는 ‘큰 발의 미학’은 도시 최상류층의 장식적 원림 미학을 극복할 수 있는 농부의 경관 미학이다. 동시대의 의제로 표현하자면, 표피적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미학을 대체할 수 있는 생존과 생산의 환경 미학인 셈이다. 전 세계 조경계의 주목을 끌어냈던 초기 작업들, 즉 융닝 강 수상 공원, 중산 조선소 공원, 선양 건축대학 캠퍼스, 탕허 강변 레드 리본 파크 등을 통해 유쿵졘은 ‘큰 발의 미학’을 실험했고, 이번 호에 소개하는 프로젝트들 역시 이러한 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참, ‘유쿵졘’이라는 표기에 의문을 던질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환경과조경』은 신중한 논의와 토론 끝에 이번 특집을 계기로 ‘콩지안 유’로 쓰던 관례를 버리고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기로 했다. 동양의 인명과 지명 표기에 관해 외래어 표기법 4장 2절은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蘇東坡는 소동파이고, 毛澤東은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이다. 한국 조경계에서 그동안 兪孔堅을 콩지안 유라고 부른 것은 Kongjian Yu라는 영어권의 표기를 그대로 음차했기 때문일 텐데, 習近平을 우리말로 습근평이 아니라 시진핑으로 적고 영어권에서도 Jinping Xi가 아니라 Xi Jinping으로 적는 것과 비교한다면 콩지안 유라는 표기는 옳지 않다. 兪孔堅은 동시대 중국인이므로 유공견, 콩지안 유, 유 콩지안, 쿵졘유가 아니라 유쿵졘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환경과조경』 편집부의 판단이다.
특집 지면의 인터뷰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랩디에이치(Lab D+H)의 최영준 소장과 리중웨이 소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면이 넘쳐 ‘이미지 스케이프’와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를 다음 달로 넘기는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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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모형 만들기
모형은 현실 세계 혹은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축소하거나 확대해 만든 하나의 세계다. 스케치처럼 2차원의 종이에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로 구축한다는 점에서 공간을 지각하고 이해하기에 유리한 수단이다. 무엇보다 회화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간단한 모형은 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정확한 스케일로 정교한 모형을 제작하는 것은 그림만큼 어렵지만 말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3ds 맥스 등 여러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모형 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손과 컴퓨터는 모형을 만드는 서로 다른 테크놀로지일 뿐, 중요한 건 모형 만들기가 디자인 과정에서 담당하는 역할이다. 하나, 모형으로 디자인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다.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경관을 그대로 본떠 모형으로 옮기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경관이 아닌 이미 조성된 정원이나 공원을 모형으로 만들 수도 있다. 둘, 디자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다이어그램과 스케치만으로 입체를 설명하기 힘들 땐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 결과 모형과 과정 모형은 다른 누군가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지형 형태 테스트
프린터 인쇄 설정에서 가로로 긴 포맷을 랜드스케이프 모드(landscape mode)라고 하듯, 랜드스케이프는 넓게 펼쳐진 땅을 의미한다. 조경가가 디자인하는 대상이 바로 그러한 땅이다.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과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는 아름다운 지형을 디자인하는 대표적인 조경가다. 이들의 작품―특히 초기 작품―은 독특하고 유려한 모양의 땅이 인상적이다. 구스타프슨의 작업은 “대지를 조각하고 형상화하는 것”으로, 하그리브스 작업은 큰 규모의 “랜드폼(landform)을 만드는 대지 예술 작업(earthwork)”으로 설명되는 이유다.1
인공적 지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조경가는 모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구스타프슨은 점토 모형으로 매끄러운 지형을 스터디하고 석고로 떠냈다(그림 1과 2). 미세하게 조율된 경사 지형은 2차원 드로잉보다 3차원 모형으로 만드는 게 유용했다. 점토 모형은 바로바로 쉽게 모양을 변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형은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에도, 클라이언트나 동료와의 의사소통에도 효과적이었다.2 하그리브스는 모래를 활용하기도 했다(그림 3). 모래 모형의 안식각은 실제 시공 현장의 자연 안식각과 거의 유사해 ‘정직한’ 스터디 도구로 기능했다. 점토는 유연하고 다루기 쉬우며 가소성이 뛰어나 경사와 교차점 스터디에 활용됐다(그림 4).3 두 조경가 모두 모형을 디자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창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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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대한민국 공간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한국 도시화, 차이와 반복의 역사
지난 10개월간 한국 도시화 50년의 거시적·미시적 현황과 메커니즘, 이에 따른 구체적 공간 사례를 살펴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기 시작하는 지금, 연재의 첫 번째 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2019년 새해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 만으로 마흔 살이 된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20년이었고, 대학 입학 후 20년이 지났다. 40여 년의 시간을 살면서 언제부턴가 나의 개인적인 삶이 사회와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이 연재는 우리 사회와 역사가 가졌던 거대한 힘과 이것이 초래한 여러 단절적 전환이 어떻게 오늘날의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이 연재는 시간적으로 지난 50여 년을, 공간적으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한국의 도시화 50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일어난 대한민국 공간의 탄생과 변화를 비평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한국의 도시화는 일견 사회적 현상이자 역사의 기록으로만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내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자 내 세대의 이야기이며 내 자식 세대의 이야기다.”1
연재의 여정이 처음에 제기했던 물음들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탐구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논의를 요약, 정리하며 한국 도시화의 부산물인 대한민국 공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공간은, 아니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이 연재는 공간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한국 도시화 50년이 공간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한국 도시화의 물리적 변화와 사회·생태적 영향을 추적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장한 바와 같이, 정부 주도의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은 대한민국 공간의 탄생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인자로 작용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도시화 50년의 공간 사례를 표1과 같이 시대별로 탐구해 왔다. 한국의 도시화 과정은 전반적으로 너무나 야심 차고 열정적인 시기로 볼 수 있지만, 시대별로 살펴보면 너무나 단절적이며 전환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도시화를 차이와 반복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 시대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도시화 목표를 향해 새로운 대상에 대한 도시화가 이루어졌지만, 50년에 걸쳐 놀랍게도 중앙 정부 주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가 진행됐다. 다시 말해 한국의 도시화는 도시화 내용의 차이와 도시화 메커니즘의 반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도시만들기의 공과를 논의하고 과연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지 비평하고자 한다.
한국 도시화의 차이와 반복을 리질리언스 관점에서 보면, 체제 변환(regime shift)이 끊임없이 일관되게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체제 변환은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의 측면에서 대규모의 갑작스럽고 지속적인 전환”2을 말한다. 다시 말해 체제 변환은 시스템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생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기존의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특징을 보인다. 결국 한국의 도시화는 시스템적 변화의 시기로 불가역적 방향성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도시화가 사회의 요구와 여건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시스템적 변화를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도시화는 과거와의 깊은 단절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향한 불가역적 전환만을 지속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