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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조경가로 산다는 것
    새해 첫 호부터 큰일이다. 복 받자, 꿈꾸자, 힘내자는 새해용 다짐과 계몽을 피해보려 했더니, 그만 글감이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 처하면 은근히 편집자끼리 격려를 빙자한 모종의 눈치 보기를 하곤 한다. 무려 크리스마스가 겹친 마감 전야, 김정은 편집팀장에게 슬쩍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엔 ‘코다CODA’에 뭐 써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특집은 아니지만 이번 호에 작품이 두 개나 나가고 비평도 있으니, HLD와의 인연을 더듬어 볼까 해요.” 바로 돌아온 이 답글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 이번 호 지면에는 젊은 조경가 이호영, 이해인, 최영준 소장이 등장한다. 공모전과 피플 꼭지의 박경탁 소장, 이남진 실장도 젊다. 비평을 보내 준 허대영 소장을 젊다고 말하는 건 무리지만, 칼럼을 쓴 김영민 교수는 대표적인 젊은 교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새해 첫 호, 젊음으로 가득하다. “아, 나도 그럼 인연을 더듬어 볼게요. 나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새로 시작하는 최영준 소장.” 한국, 미국, 중국을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있는 Laboratory D+H의 최영준 소장과 관련해서는 정말 더듬을 인연이 많다. 이걸로 쓰면 아마 역대급 에디토리얼이 될 게 확실하다. 그런데 나도 이제야 눈치라는 걸 보기 시작했나 보다. 최 소장은 내가 가르친 제자다 보니 누군가 뒷말을 할 게 분명하고 제자에 대해 쓰면 꼰대식 추억팔이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걱정을 핑계 삼아, 김정은 팀장이 쓰기로 찜한 HLD의 이호영 소장으로 나도 모르게 앵글을 돌린다. 그렇다. 최 소장 이야기는 앞으로 써먹을 날이 무궁무진하다. 아마 김 팀장은 뒷머리 질끈 묶고 다른 원고들 치며 투쟁하느라 아직 ‘코다’는 한 줄도 못썼을 거다. 이럴 때를 위해 ‘선점’이란 단어가 존재한다. 이호영 소장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설계공모에 한 팀으로 참여했던 때지만, 더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추억의 토론회 ‘조경가로 산다는 것’에서다. 한 7~8년 전일 거라 짐작하며 검색해보니 무려 12년 전이다. 아마 기억하시는 독자가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조경학회 조경설계연구회와 환경과조경이 공동 기획한 100분 토론 ‘조경가로 산다는 것.’ 2005년 12월 6일에 열렸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년 전인 『환경과조경』 2006년 1월호에 실렸다. 기획에 참여한 원죄로 내가 사회를 맡았고, 패널로는 황용득 소장(동인조경 마당), 오형석 소장(LOSYK),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그리고 ‘젊은’ 이호영 ‘대리’(당시 조경설계 서안)가 참여했다. 다시 잡지를 펼쳐보니 플로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 후끈 달아오른 토론 분위기가 바로 어제 일처럼 재생된다. 그랬다. 이런 주제를, 저런 문제를 꼭 다뤄달라는 이메일은 물론 전화까지 많이 받았었다. 어쩌면 한국 조경의 전성기, 조경 설계가 변화의 몸부림을 치며 꿈틀대던 시대의 풍경이다. 풍요로워 보이는 현실과 위태로운 기반 사이에서, 앎―곧 지향―과 삶의 불일치 속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던 한국 조경의 단면이다. 조경을 한다는 것과 조경을 하며 산다는 것,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게 12년 전 ‘조경가로 산다는 것’의 문제의식이었다. ‘조경설계사무소에는 왜 40대가 없을까’를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조경가, 직업으로서의 조경 설계’와 ‘조경가로 성장하기’로 이어진 토론에는 패널뿐 아니라 청중도 함께 참여했다. 잡지에 남은 기록을 보면, 허대영, 김경윤, 김정윤, 문현주, 고정희, 호현기, 안계동, 김성균, 최원만, 성종상, 유병림, 여러 세대에 걸친 청중들이 자발적 토론자로 등장한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젊은 조경가들, 희망을 재확인하러 모인 학생들도 무언의 토론자들이었다. 모두가 지금보다 열두 살 젊다. 지금도 젊은 이호영 소장, 옛 잡지 속 그는 정말 젊다. 그날의 열정적 토론 전부를 이 지면에 옮길 필요는 없겠지만, 12년 전의 이 ‘대리’가 선배들에게 던진 질문만큼은 복원하고 싶다. “조경설계사무소가 신입사원들을 조경가로 키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신입사원의 재능을 어떻게 끌어주고 있는지 말씀을 듣고 싶다.”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우회하며 수련한 그가 이해인 소장과 꾸린 사무소가 이제 3년 차로 접어든다고 한다. 눈은 HLD의 근작 두 편에 가 있는데, 12년 전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토론이 벽에 부딪혀 공전하자 그는 선배들 대신 스스로 답했다. “이곳에서 배우면 설계를 잘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아마 이 질문과 자답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애써 왔을 테고, 그런 노력의 한 단면이 이번 호의 두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이호영 소장은 아마 이 글을 읽으며 속이 편치 않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인 소장,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새 주자 최영준 소장, 이사부 독도 공모전의 박경탁 소장과 이남진 실장, 칼럼 필자 김영민 교수 등 이번 1월호의 젊은 조경가 모두가 같은 이유로 속이 부글거릴 것 같다. “우리 젊지 않은데요?” 똑같은 경험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했던가. 벌써 15년이 넘은 이야기 한 장면. 영광스럽게도, 1년 차 신참 교수에게 한국 조경 서른 살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의 기조 발제자 역할이 맡겨졌다. “양적 비대 성장의 이면에 넓게 퍼진 비만한 고독, 그리고 문제의식과 실험 정신이 부재한 자리에 골 깊게 패인 몰개성과 무비판의 우울한 반복.” 한국 조경의 “고독한 지형과 우울한 풍경”을 따지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치고 나자 한 전임 학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긴 젊다.” 나는 이런 답을 속으로 삼켰다. “저 안 젊은데요?” 이 달의 젊은 조경가들, 젊지 않다. 그들의 훈련과 경험, 작업과 글은 결코 치기, 결기, 패기 같은 단어로 형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오래 젊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어느새 낡아버린 한국 조경을 혁신할 동력은 진부함을 거부하는 참신함, 곧 젊음 아니겠는가. 다음 12년 후엔 ‘조경가로 산다는 것’이 가열찬 토론 거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8년01월 / 357
  • [칼럼] 조경이상
    2017년 12월 8일, 열아홉 명이 다시 논현동에서 모였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뭐하는 모임이에요?” 처음 우리가 모인 것은 2016년 12월 7일이었고, 그때 우리는 열세 명이었다. 여름조경디자인캠프 튜터들의 뒤늦은 뒤풀이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번 이렇게 술자리에서 감정과 생각을 소비하지 말고 제대로 모여 생산적인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모두 상기된 목소리로 꼭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자고 다짐했으나, 그 다짐은 잠시 잊혀졌다. 눈이 왔을 때 우리는 다시 모였다. 우리 대부분은 오롯이 자기 이름을 내세울 순 없어도 분명 자기의 설계를 한다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조경가들이다. 우리는 기성세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를 비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만난 우리는 무척 달랐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다음번에는 꼭 모두의 공통된 지향을 찾아내자고 격려를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모였을 때도 우리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상적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생각보다 더 피상적이었고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냉소했다.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모이지는 않았다. 남은 이들은 공통의 목표가 없어도 최소한 일 년만 매달 모여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고 했다. 모임의 존속이 모임의 새 목표가 되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각자 그동안 혼자 마음에 담아 두었던 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 다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각자 소개했다. 조경의 정체성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통의동에서 의미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한번은 도시재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 밖에서 그냥 맥주를 함께 마셨다. 서울시에서 공공조경가를 뽑기에 우리가 지원해서 활동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중 꽤 많은 사람이 공공조경가에 선정되었다. 푸른도시국의 정책이 궁금해서 어느 사무관을 초청해 설명을 들었다. 각자의 작품과 설계에 대한 생각을 돌아가면서 심도 있게 말하고 들어보았다. 우리는 여덟 번째 모임에서야 모임의 이름을 ‘조경이상’이라 지어 주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사무실 개소 2주년 파티에 초대했다. 할로윈 파티를 겸한다고 해서 다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기로 했을 때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일 년 동안 이룬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날을 세우며 비판했던 현실의 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모이는 인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주변 지인들을 초대하다보니 설계의 경계를 넘어 활동가도, 팟캐스트 운영자도 모였다. 자연히 여기서 만난 사람들끼리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무실 구조를 만들었다. 함께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전시했고 함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서로를 비평했고 서로를 상찬했다.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서로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처음에 우리가 찾고자 한 공통의 지향은 일종의 ‘운동’과 같은 성격의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조경에는 운동이 있었던 적이 없다. 68혁명의 열기에 동참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었고, 1987년에 찾아온 민주화의 폭풍 속에서도 조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최소한 건축이라는 옆 동네에 나타났던 청건협의 뜨거운 사회적 외침이나 4.3그룹의 세련된 문화적 담론과 비슷한 것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작 목소리를 높일 때라고는 기득권이 침해될 때나 더 많은 몫을 달라고 요구할 때뿐이었던 비루한 조경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거를 비판할 권리가 있다면 그 정당성은 과거의 성공과 과오에 있어 우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데 있을 뿐이다. 그런 자각 때문에 우리는 일종의 강박처럼 일 년간 모였던 것일 수도 있다. 방황에 가까웠던 지난 일 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던 지향이 희미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것은 극렬한 문제의식도, 변화를 위한 공동의 전선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각도 아니었다. 조경을 하고 있지만 조경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난 일 년 동안 모이며 깨달은 우리의 지향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다음에 함께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찾았다. 첫째, 조경하는 사람들의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2022년 광주에서 세계조경가협회 컨퍼런스가 열릴 때 베니스 비엔날레만큼 멋진 콘텐츠를 미리 준비해 놓자고 다짐했다. 둘째, 곧 만들어질 용산공원을 시민이 제대로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가꿀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고 활동해나가기로 했다. 셋째, 우리 다음의 세대를 위해 지방의 조경학과를 돌며 특강을 개최하는 계획을 세웠다. 모두가 이 일의 주체일 필요는 없다. 주체가 될 권리만큼 주체가 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래야 나의 꿈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펠릭스 가타리가 말했다. “연대할수록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그말 그대로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서로 달라지고 그 다름이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자 힘이다. 나는 기대와 의심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후배에게 대답했다. “만일 조경을 하다가 네가 무엇인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 일을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도, 마땅히 이야기할 데도 없으면, 여기서 같이 하면 돼.”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했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용산공원』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최근에는 설계 방법론을 다룬 저서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펴냈다.
    • 김영민[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8년01월 / 357
  • [이미지 스케이프] 해가 지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이 되었다고 사진을 올린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다음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진으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얼마 전에 찍은 일몰 사진을 골랐습니다. 작년에 이어 다시 해넘이 사진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사진을 찍은 날도 바쁜 하루였습니다. 오전에 세 시간 강의하고 오후에는 자리를 옮겨 동영상 강의 촬영 일정이 꽉 잡혀 있었거든요. 학생들 반응을 보면서 강의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그런지 강의 녹화는 굉장히 어색합니다. 그래서 출발할 때부터 부담을 갖고 촬영 장소로 향했습니다. 어색한 두어 시간의 녹화. 다행히도 촬영하는 일이 생각보다 조금 일찍 끝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꼭 학교에서 조퇴하는 기분이랄까요.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지! 살짝 가벼운 기분으로 동호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붉게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정말 좋았고, 서쪽 하늘에 아주 멋진 노을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갔다 차를 놓고 다시 나올까 고민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해가 막 넘어가려는 찰나였습니다. 집에 들렀다 나오면 이미 해가 다 넘어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순간 잠깐 망설였지요. 차를 세워? 아님, 그냥 슬쩍 보기만 할까?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주신하 [email protected]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2018년01월 / 357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집적경관
    습관 의뢰인 측 디벨로퍼가 건축이 이만큼 했다며 몇 메가바이트 남짓의 PPT 파일을 보낸다. 경직된 포맷에 담긴 이미지 속 선들 사이에서 도로와 건축 매스를 제외한 땅을 찾는다. 대칭을 이루는 나무들과 조명 효과로 조경의 가능성을 가리고 있는 투시도들을 스킵하고 땅의 관상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땅의 과거와 현재의 모양새, 주변 개발지의 생김새, 건축이 올려놓은 매스의 조형을 살피며 각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본다. 보통은 저마다 다른 방언을 늘어놓기 마련인 혼잡한 틈바구니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고, 이것이 나의 가장 일상적인 조경 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설계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프로젝트마다 특수성과 상대성이 있어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중립적인 답을 내고 싶지도, 그렇다고 이런 방법이 법이고 나의 방식이라 굵은 밑줄을 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설계의 시작점에서 대상지를 대하는 나의 경향 또는 본능적인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런데 이 습관도 아마 다른 여러 습관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1 하지만, 이런 노랫말이 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중략)... 1. “설계를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상지와 조건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한다. 온전히 논리로 완성되는 경우도, 온전히 직감에 의존하는 설계도 없다. 영감은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니 ‘누군가가 설계하는 법’이란 정말 형용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서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질문의 포인트가 비단 설계의 시작과 과정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설계의 시작과 전개에는 백방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의 요는 설계를 어떻게 완성하냐, 어느 지점에서 만족을 하느냐는 질문일 수 있다. 그 완성도에 대한 정의야말로 모든 설계가에게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설계가의 개성과 경향으로 회귀한다고 본다. 본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의 어려움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적경관’은 10년 남짓 길지 않은 개인적인 프로젝트 경험을 수평적으로 횡단하며 읽어낼 수 있는 희미한 경향 중 하나다.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최영준 / Laboratory D+H 소장 / 2018년01월 / 357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콘크리트의 가능성 3 - 자유 형태
    사진의 벽면은 자유 형태freeform 모듈로 구성되어있다. 비정형 모듈은 꽃잎이 벌어지는 듯한 형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굴곡져 움푹 들어간 평면의 한가운데 나 있는 둥근 구멍을 통해 식물이 자라고 있다. 구멍의 모서리는 둥글게 안으로 말려 들어갔으며, 위아래로 굴곡진 모듈의 리듬에 따라 구멍도 번갈아가며 위아래로 자리하고 있다. 아래쪽으로 난 구멍의 중심을 따라 모듈의 이음매를 배치하여, 모듈끼리 서로 만나면서 물결치는 패턴이 반복되도록 계획했다. 벽면을 구성하는 모듈은 아이보리 색의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로 성형된 매끈한 형태다. 별도의 골재를 섞지 않은 밝은 색상으로 벽면의 조형이 최대한 두드러지도록 의도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안동혁[email protected]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 / 2018년01월 / 357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동균 양림동 펭귄마을 촌장 즐거운 남극
    광주천변 서쪽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충장로, 금남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인시장, 양동시장 등 시내가 지척인 동네가 광주 양림동이다. 일찍이 서양 선교사들이 정착해서 세운 교회가 많아 기독교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마을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펭귄마을. 폐품이 작품이 되는 정크 아트 골목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재미와 편안함을 키워드 삼아 연간 2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펭귄들의 대표, 얼굴에 장난기가 그득한 양림동 스타, 김동균 촌장을 만났다. 한때 사업가로 살았던 예술가의 어쩔 수 없는 창작 본능으로 수많은 작품을 직접 만들어 설치한 아티스트이자, 벽면이라는 캔버스를 이용해 마을을 미술관으로 만들어가는 큐레이터이기도 하고, 매일 아침 길을 쓰는 청소부에, 길에서 자라는 온갖 화초를 돌보는 거리 정원사이기도 하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두고 떠난 물건 중 필요 없는 물건은 없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면 그럴듯한 예술품으로 바꿨다. 펭귄마을은 “내 멋이 기준!”임을 말하는 아마추어리즘의 승리이자 김동균 촌장의 인생 샷이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최이규[email protected]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 2018년01월 / 357
  • [정원 탐독] 풍경을 발견하고 지키다
    풍경화의 반란 영국 내셔널 갤러리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의 그림 ‘암굴의 성모’와 ‘모나리자’가 있다. 천재 화가 다빈치는 15세기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대표적 예술가다. 비평가들은 그가 남긴 회화 중에서도 이 두 작품을 가장 빼어난 수작으로 꼽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두 작품 모두 초상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배경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과 계곡을 연상시키는 대지의 풍경과 기괴하지만 역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인 동굴이 배경이다. 이 배경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후 엄청난 혁명을 몰고 올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520년, 벨기에 화가 요하임 파티니르Joachim Patinir(1480~1524)는 다빈치의 그림에서 좀 더 나아가 배경의 풍경을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삼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우뚝 솟은 산의 전경, 그 밑을 흐르는 강, 울창한 나무숲이 마치 주인공처럼 화폭에 꽉 차 있다. 그저 사람은 그 안의 작은 이야깃거리로만 표현된다. 비평가들은 파티니르의 이 과감한 시도를 서양 미술을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벗어나게 한 풍경의 반란이라고 봤다.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7호(2018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오경아[email protected] /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 대표 / 2018년01월 / 357
  • [시네마 스케이프] 내 사랑 당신이 본 세상을 나에게 보여줘요
    “I see you.” 우리는 이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기억한다. ‘아바타’에서 주인공이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여자와 나눈 대사다. 영화의 세세한 줄거리는 잊었어도 서로를 바라보며 당신을 본다고 말하는 장면만은 기억난다. 영화 ‘내 사랑’에서 평생 무뚝뚝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고백도 똑같다. 본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며 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흔한 표현보다 어쩌면 더 근사하다. 다른 사람이 못 보는 특별함을 나만 본다는 것, 그 대상은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풍경일 수도 있고,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영화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 모디(샐리 호킨스 분)가 어떻게 행복을 찾아가는지 잔잔하게 펼쳐 보인다. ...(중략)... *환경과조경357호(2018년 1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밀양에 갈 일이 생겨 영화 ‘밀양’을 다시 봤다. 오래전엔 전도연만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녀 곁을 묵묵히 지키는 송강호가 눈에 들어왔다. ‘내 사랑’도 처음엔 모디의 연기에 감탄했는데, 몇 번 다시 보니 시종일관 미간을 찌푸린 에버렛의 표정이 보인다. 우리가 알던그 세련된 에단 호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시골 농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