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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 스케이프] 다가오는 것들 사라지는 것에 대처하는 어떤 태도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사라지는 것들’로 제목을 기억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극장 옆 서점에 들러 제목이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채정호, 생각속의집, 2014)라는 책까지 샀다. 우리는 시련에 대처하는 여자 주인공의 패턴에 익숙하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거나, 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은 젊고 능력 있고 게다가 잘생긴 실땅님(발음에 주의)을 만나 성공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포스터만 본다면 아침 드라마의 익숙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중년 여자가 여행 가방을 든 채 잘생긴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기차란 일상에서 떠남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기표가 아닌가. 아! 젊은 남자와 새 출발하는 이야기구나. 그러나 영화의 해법은 예상을 벗어난다. 영화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나 의미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을 그린다. 어머니는 죽고 남편은 떠나며 명예와 열정은 옅어진다.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 다니는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면 사라져가는 것들만 보인다. 영화의 반어적 제목은 결국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관객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나탈리는 어딘가 떠나긴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며, 옛 제자 파비앵(로만 코린카 분)을 만나긴 하지만 관객이 상상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나탈리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과 두 자녀를 두었다. 우울증을 앓는 그녀의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한다. 수업하던 중에도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뛰어가야 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한 후 그녀를 떠난다. 출판사로부터는 오랫동안 참여해 온 철학 교과서 공동 필자에서 배제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그녀의 방식은 책임감과 솔직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며, 남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정리한다. 출판사의 통보를 듣고도 제자의 책이 누락되었는지부터 챙긴다. 해마다 휴가를 보낸 남편의 여름 별장 정원을 손질하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그 와중에도 꽃 몇 송이를 챙기며 추억이 쌓인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물짓는다. 인간이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나 존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아한 장면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홍상수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등장인물보다 연남동과 경의선숲길에 더 눈길이 갔다.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공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들의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멀티 코딩
    #99 라 빌레트 설계공모 2015년 1월 14일 파리의 필하모니가 화려하게 오픈했다. 스타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것으로 마치 은빛 비늘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환상적인 건물이다. 그런데 필하모니답게 샹젤리제 거리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도시 북서쪽 외곽의 라 빌레트 공원 가장자리에 건설되었다. 공원 남동쪽에는 ‘음악 도시Cité de la musique’가 한 구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1995년에 콘서트홀, 야외 음악당, 악기 박물관, 전시관, 아틀리에, 문서 보관소 등이 포함된 복합 건축을 세운 후 그 옆에 필하모니를 덧붙임으로써 음악 도시가 완성되었고 이와 더불어 라 빌레트 공원도 완성을 보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30년이 넘어 일단락 지어진 것이다. 무슨 뜻일까. 어째서 음악 도시의 완성이 공원의 완성일까. 그건 라 빌레트 공원이 처음부터 ‘공원 도시urban park’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urban park’를 ‘도시 공원’이 아니라 ‘공원 도시’라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 공원이라고 하면 도시 속에 조성된 시민 공원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21세기를 위한 도시 공원’임을 표방하는 라 빌레트의 콘셉트와 그간의 발전 양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존의 도시 공원이라는 개념을 라 빌레트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보다는 공원 도시가 어울린다. 공원이자 동시에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공원인지 도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라 빌레트 공원이 들어선 부지는 19세기 말부터 오랫동안 도축 산업지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1974년 폐쇄된 뒤 파리 시는 50헥타르가 넘는 넓은 땅에 대형 가축 경매장, 도축 시설, 가축병원, 관리 건물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부지를 공원으로 전환시킬 것을 결정했다. 녹색으로만 이루어진 공원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러 문화 시설을 공존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1982년 5월 국제 설계공모가 시작되어 1983년 3월 스위스 출신의 뉴욕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의 출품작이 최종 선발되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당선작이 발표되자 조경계가 공황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40여 개국에서 800여 점의 작품이 제출되었으며 그중에는 내로라하는 조경가들도 대거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건축가의 작품이 선발되었다는 사실에 조경가들이 받은 충격이 작지 않았다. 물론 이 충격이 약이 되기는 했다. 그동안 잔디밭 양지쪽에 앉아서 끄덕끄덕 졸고 있던 조경계가 화들짝 깨어난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식물,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6년12월 / 344
  • [조경의 경제학] 경관 시장의 오픈을 위한 조건
    우리에게 경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가? 경관을 향유하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등산을 하다 산 아래를 굽어보는 것과 같은 일회적인 향유다. 둘째는 주택의 거실이나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경치를 즐기는 것과 같은 지속적인 향유다. 전자의 경우 사실상 향유 행위를 방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굳이 권리를 따질 실익이 크지 않다. 그에 비해 후자의 경우는 우리가 소유하거나 점유한 조망점과 관계되고, 타인에 의해 방해받기 쉽고, 그 대부분이 비가역적이라는 점에서 권리의 문제가 첨예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자신이 소유하거나 점유한 조망점에서 경관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것은 법적 권리로서 보호받고 있는가? 멀리 아름다운 산이 내다보이는 당신의 집 앞에 고층 아파트가 건설 중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 집은 당신의 직장에서 가깝지도 않고, 주변에 극장이나 할인점도 없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전철역도 없다. 당신은 그 모든 불편을 산이라는 경관으로 보상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행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 당신의 ‘내다봄’은 ‘권리’로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개발 밀도가 높은 도시의 경우, 새 건물이 옛 건물을 가려서 발생하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 일부는 새 건물의 권리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또 일부는 옛 건물의 권리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결말이 나고 있다. 새 건물의 건축주가 갖는 권리는 개발권이다. 도시계획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신의 땅을 원하는 대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는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 옛 건물의 소유자가 갖는 권리는 다소 애매하다. 무엇이 보호되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것을 다루는 법이 무엇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건물의 건축주가 원하는 높이만큼 건축하지 못하게 하거나 옛 건물의 소유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게 하는 판결이 간혹 내려지는 것을 보면, ‘내다봄’에 대해서도 권리가 인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법원의 판례를 보면 ‘조망권’이라는 말이 분명히 등장한다. ‘조망’이라는 행위 또는 상태 뒤에 ‘권權’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 단어는 마치 우리에게 ‘원하는 경관을 내다볼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조망권이 인정되어 옛 건물의 소유자가 조망을 지키거나 그것을 잃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한 판결의 대부분은 조망권이 아닌 ‘일조권’을 인정한 결과다. 조망권과 일조권은 모두 헌법에서 보장한 ‘환경권’에 근거한 권리다. 조망권은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권리고, 일조권은 (태양 광선을) 밖에서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리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일조권은 인정하는 반면 조망권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아마도 일조권이 침해당했는지 여부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조망권의 침해 여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조망권은 아직 법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개념적인 단어에 가깝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민성훈은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금융,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민성훈[email protected] /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 / 2016년12월 / 34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행복한 설계가
    첫 회의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뜨거운 한여름의 끄트머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집 앞의 숲도 이미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마당엔 낙엽이 쌓여 간다. 해 뜰 무렵 창밖에 드리운 옅은 붉은 빛으로 변한 나뭇잎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계속 반복되는 풍경, 당연한 듯 스치는 풍경들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작은 마당은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한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풍경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하고 이는 내가 살아있음을, 살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첫 번째 글을 쓸 때 골랐던 풍경화가 생각난다. 풍경에 감탄하며 그 모습을 스케치북에 옮기던 때에는 그 풍경이 왜 나를 끌어당겼는지 잘 몰랐다. 그저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결국 그런 풍경이 우리가 늘 가까이하고 싶고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이해됐다. 이어진 두 번째 글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조금씩 설계가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멋진 공간을 만들기 바라는 설계가에서 조금씩 공간에 투영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직은 설익은 애송이 조경가로 성장한 나의 모습.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설계 작업의 일차적 환경인 디자인엘과 나와 함께 작업하는 설계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 색깔 찾기 작년 새해에 2015년이 사무소를 시작한 지 십 년째 되는 해임을 깨닫고 무척 놀랐다. 벌써 십 년이라니. 급히 뭔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사무소의 설계가들과 함께 무엇을 할지를 의논해봤다. 다양하지는 않지만 연말에 십 주년 기념행사를 하자, 해외 답사를 하자, 책을 하나 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책은 다음 기회로 미뤘고, 조촐하게 직원들과 지난 십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희망에 따라 두 팀으로 나눠 싱가포르와 뉴욕을 답사했다. 연말에 워크숍을 하며 나눈 마지막 다짐은 우리의 색깔을 찾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말하는 자기만의 색깔 찾기. 어쩌면 지금까지는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는 시간이라기보다 제자리를 찾고 사무소의 틀을 세우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이 생각 안에는 우리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는 반성 또한 숨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십 년은 우리의 색깔을 찾고 드러내는 시간으로 삼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색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설계에 임했다면 우리 나름의 색깔이 옅게라도 있었을 텐데, 왜 없다고 생각했을까. 혹 다른 것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설계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독특하지 않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설계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중략)...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 [재료와 디테일] 실천이다
    상징 방배역을 조금 지나 서쪽으로 걸으면 작은 건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별 특징이 없는 건물이 하나 있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몹시 평범한 건물이다. 어느 날 무심코 그 곁을 지나다 생경한 경험을 했다. 튜브형 알약처럼 생긴 볼라드형 조명 때문이었다.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건물 안을 들여다봤다. 제약 회사 건물이다.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공간의 정수가 잘 표현된 곳을 보면 가끔 질투와 무력감에 작은 충격을 받곤 한다. 알약처럼 생긴 작은 조명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이고 기능적인 부분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합목적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합목적적,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 단어인가. 실천하기 전에 먼저 고안되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말이다. 최근 아파트 설계 의뢰를 받았다. 아주 재수 좋게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일은 답사를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정도 질의 공간을 원하니 비슷한 곳에 가서 보고 그처럼 해달라는 것이다. 강남 요충지의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몇 곳을 다녀왔다. 대단히 놀라고 또 놀랐다. 아파트라곤 동네 뒤편에 있는 단지 몇 곳밖에 가보지 않은 내게 그곳은 가히 천국의 모습 같았다.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숲처럼 보이는 녹지, 고급스러운 시설물, 놀랍도록 정리되어 배치된 공간 등 하나같이 멋진 모습에 두 눈이 너무 바삐 움직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석가산처럼 생긴 폭포였다.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 언덕을 만든 다음 사이사이에 작은 나무와 초화를 심어 놓았다. 꼭대기에서는 물이 떨어져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미술관에서 본 산수화를 연출한 것 같았다. 불편했다. 이렇게 멋진 시설물이 왜 굳이 이곳에 놓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재현의 방식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언급할 수 없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답사지에서 이런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퍼걸러나 벤치 같은 시설물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답사지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유행처럼 번진 것일 거다. 특화라는 방식이 만들어낸 공식 중 하나에 속하는 듯했고, 과하게 느껴졌다. 단출한 상징으로 해결할 순 없었을까. 진정 산수를 옮겨오고 싶었다면 말이다. 나는 장소에는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www.studio89.co.kr
    • 이대영[email protected] /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 소장 / 2016년12월 / 344
  • [공간 공감] 두 가지 물음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총 36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미 작년 겨울에 ‘좋은 공간감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한 차례 좌담회를 개최(본지 2015년 12월호 수록)했기에, 이번 좌담회는 의도적으로 묵직한 주제에서 좀 벗어나 보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은 두 가지 질문 던지기. 지난 11월 11일, 본지 사무실에 모인 필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금까지의 연재물을 살펴보며 편집진이 준비한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지난 답사를 반추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필자들이 함께 둘러 본 ‘이태원(상업 시설 건축물 외부 공간),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 알뜨르비행장, 제주 주택, 제주도립미술관, 부르델 정원, 국회의사당 사랑재, 커먼그라운드, 아파트 외부 공간, 정독도서관, 서석지, 연남동 골목길, 화담숲’ 등 서른 세 곳의 답사지가 때로는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등장했다. 프롤로그와 작년 겨울의 좌담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총 서른 세 곳을 둘러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마무리하는 소회를 들려준다면? 정욱주:서른 세 곳을 답사하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모임은 ‘작은 공간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도시를 빛내주는 보석 같은 공간을 답사하고 다섯 명의 조경가가 토론을 벌여 발전의 기회로 삼자는 구상이었다. 절묘한 시점에 『환경과조경』에 꼭지가 만들어져서 ‘공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매번 답사 장소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도시에 보석 같은 공간이 넘칠 정도로 많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고, 무엇이 좋은 장소인가에 대한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합의를 통해 선정한 장소들은 소위 대중이 ‘조경이 잘 되었다’라고 인식하는 공간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연남교 교차로나 양재동 꽃시장은 조경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기 힘든, 다른 룰에 의해 발생한 곳이었고,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창덕궁은 시간의 힘을 빌려 자연이 연출을 맡은 공간이었다. 때로는 커먼그라운드나 합천영상테마파크처럼 비일상적인 장소도 선정되었다.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중 다양한 생각을 일으키는 차원에서는 제주의 알뜨르비행장을 꼽을 수 있다. 경관의 독특함, 거칠지만 매력 있는 질감, 다음 세대가 다듬어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 등 장소와 설계자가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공간이라 생각됐다. 박승진:무엇인가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다. 시간도 흐르고 나도 흐르고. 그래서인지 세월의 속도를 체감하는 것은 정작 어떤 시점이 한참 지나서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론의 질문이 무엇이었던가. 개인 사정으로 답사를 함께 하지 못한 몇몇 곳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략 서른 곳쯤? 그중에서 어느 한둘을 골라 무언가를 반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개별 장소에 대한 공동 필자들의 리뷰는 그간의 글에서 충분히 피력되었을 터. 다만 연재를 종료하면서 아쉬운 점을 들자면, 독자들의 리뷰를 답사 현장에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먼 곳에 있거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방문이 가능한 소수의 장소는 빼더라도 홍익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대학교 같은 대학 캠퍼스를 비롯해 명동성당, 연남동 골목길 같은 곳들 말이다. 나중에라도 특별 이벤트로 기획을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디자인 스튜디오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김아연·김용택·박승진·이홍선·정욱주[email protected] / 2016년12월 / 344
  • [칼럼] 데자뷰
    30년 전, 내가 대학 2학년이 된 1987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치안본부의 차디찬 대공분실에서 갖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 정권의 말기로 캠퍼스에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며 학생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지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해가며 ‘독재 타도’를 소리 높이 외치며 싸웠다. 6월에는 민주화의 열망과 군부 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민중의 함성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태우의 6.29 항복 선언으로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후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가을 낙엽 구르는 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 오면서 시계는 3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급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을 차가운 겨울 광장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살길을 찾아 제각각 생업의 전선에서 열심히 일해오던 친구들도 다시 광장의 동지가 되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다. 일종의 채무감이랄까. 우리세대에서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 해소하지 못한 불평등한 세상과 권위주의적 사회를 내 자식, 내 손자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광장에서 외치는 함성 소리에서 3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대학 3학년, 학생회장이 된 나는 당시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을 하나로 모아 구심체를 만들고자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를 조직했다. 그해 겨울, 국회에 입법 예고된 ‘산림조합법 개정안’ 철회 투쟁을 위해 전국의 조경학도들과 함께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산림조합법 개정안은 ‘건설업법’에 명시된 조경공사업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산림조합이 동등한 자격으로 독점적 특혜를 받으며 조경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으로, 기존 조경 업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학생과 교수 그리고 조경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개정안 철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연일 국회와 관련 국회의원의 지구당사에서 시위를 하며 우리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개정안은 보류되었다. 조경인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로부터 30년, 광화문광장에는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얄궂게도 우리 조경업은 여전히 산림청을 비롯한 여러 인근 분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산림청이 추진하고 있는 ‘정원전문가 교육기관 지정기준 및 지정표시안’은 조경전문가와 시민정원사 등을 배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산림 현장에 산림기술자 1명 이상을 배치하도록 해 산림기술자의 영역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산림기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조경계와 상생을약속하며 우호적으로 개선되어가던 산림청과의 밀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차례 발의했다가 회기 만료로 폐기됐던 ‘도시숲법안’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래도 친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토교통부는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건설기술진흥법’상 조경의 직무 범위를 조경기술자를 포함해 산림기술자, 원예 및 종자기술자 등으로 확대했다. 산림기술자도 조경 공사에서 조경기술사와 똑같이 기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아예 포기하고 산림기사나 식물보호 기사시험을 보게 만든 것이다. 통계청의 한국표준교육분류 영역 부문 제정 조정안은 조경을 원예의 한 직업군으로 종속되도록 했다.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평가분야에서도 조경학이 산림과 통폐합되면서 조경이 산림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과연 조경이라는 학문과 전문 분야가 독자성을 가지고 지속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조경인들이 승리를 쟁취했던 30년 전, 조경학과 교수, 학생, 조경회사 임직원 모두가 일치단결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 나가 우리의 주장을 목 놓아 외치며 싸웠다. 지금은 훨씬 많은 수의 조경학과 교수와 학생, 조경 관련 단체와 학회가 있지만, 제각기 흩어져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해에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매어 사분오열 갈라지지 말고 조경의 앞날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경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함께 목청 높여 외치는 함성은 한겨울 광장의 차디찬 삭풍을 녹인다.
  • [에디토리얼] 한결같이
    낭만의 가을을 앗아간 청와대 발 황당 뉴스가 겨울의 평화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덕분에 올 한해의 소중한 기억이 다 날아갔다. 명색이 편집주간인데 바로 지난 호의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는 지경이다. 애써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꺼내 읽으며 금년의 흔적 몇 곳에 ‘오방색’ 포스트잇을 붙여 본다. 2016년 1월호,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용산공원 설계의 쟁점을 다룬 ‘용산공원의 현재를 묻다’를 특집으로 올렸다. 비생산적인 정치적 논쟁을 넘어 설계 자체에 대한 토론을 이끌고자 한 기획이었다. 여름을 거치며 용산공원이 모처럼 사회적 이슈로 일간지 지면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놓인 것은 엉뚱하게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간의 철 지난 기 싸움이었다. 다섯 개의 다리를 모아 특집으로 꾸린 2월호의 ‘다리, 연결 그 이상’에는 기대 이상의 피드백이 있었다. 특히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 코펜하겐에 새로 들어선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에 여러 독자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마침 이 다리를 디자인한 아이슬란드 태생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지금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사회학자, 지리학자, 건축가, 아티스트 등이 참여한 3월호의 기획물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에는 표피적 도시재생의 이면을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같은 호에 실은 최근작 굿즈 라인Goods Line은 19세기에 들어선 철로를 재사용해 시드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프로젝트인데, 올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여러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기도 했다. 4월호에는 오방색 포스트잇을 아티스트 문경원 인터뷰와 그의 ‘프라미스 파크’ 작업에 붙이고 싶다. 그의 미래 공원에 대한 실험은 공원이라는 소우주의 향(냄새) 탐구로 이어지기도 했다(7월호 ‘뷰’). 개인적으로는 4월호 에디토리얼 지면을 빌려‘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6월호에는 ‘조경이라는 이름’에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이 돌아와 내심 놀랐는데, 조금 더 공식적인 방향으로 이 주제를 이어나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올해 독자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특집은 아마 5월호의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이 아닐까. 편집부는 이 기획을 창업 특집이라 부르며 꽤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 경기 탓, 제도 탓에 지친 독자들은 이 지면에서 다룬 신생 사무소들, 젊은 조경가들의 도전기에 큰 호응을 보내주셨다. 계약, 공모, 자격, 설계비 등 설계 현장의 쟁점을 다룬 6월호의 ‘설계환경을 진단하다’에도 적지 않은 반향이 돌아왔다. 6월호의 근작 바랑가루Barangaroo Reserve는 아마 올해 선택한 작품 중 아이디어, 규모, 작업 방식 모든 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7월호에는 2016년 세계 조경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 설계공모를 담았다. 1866년 이후 150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옷을갈아입은 기구한 광장, 아장스 테르Agence Ter의 당선작이 이곳의 운명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주목된다. 마침 이 즈음에 11월호의 아장스 테르 특집 기획을 시작했던 터라, 편집부는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당선에 환호를 터뜨리기도 했다. 8월호에는 경의선숲길 3단계 구간을 실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선형 공원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경의선숲길에서 우리는 도시와 공원의 역동적 만남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유례없는 무더위를 견디며 만들었던 9월호에는 모처럼 국내 조경가의 작품만을 담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특유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들에 독자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으리라. 10월호는 지자체가 주도한 신도시이자 공원과 호수로 도시의 골격을 짠 녹색 도시인 광교에 주목했다. 특집 ‘광교신도시의 교훈’을 통해 광교의 조성 과정을 되짚어보고 신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의의를 살펴보고자 했다. 10월호를 편집하던 기간은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2회 서울정원박람회 준비와 겹쳐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다. 11월호는 조경가 특집에 할애됐는데, 올해의주인공은 파리 기반의 조경설계사무소 아장스 테르였다. 이번 12월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린다. 3년 전의 리뉴얼 이후 36회를 완주한 ‘공간 공감’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이 연재를 위해 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 다섯 명의 조경가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답사와 토론을 진행했다.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도 3년의 긴 항해를 마친다. 동시대의 생생한 장면에서 시작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 긴 여정, 말 그대로 조경사의 재구성이었다. 2015년 3월호부터 많은 실무 조경가들의 공감을 얻으며 연재된 이대영 소장의 ‘재료와 디테일’도 아쉬운 끝맺음을 한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읽기’는 지난 11월호로 6개월간의 연재를 맺었다. 오랜만에 ‘고향 조경 땅’을 여행한 민성훈 교수, 그의 ‘조경의 경제학’도 이번 원고가 12회의 마지막 순서다. 많은 수의 독자를 지녔던 심소미 선생의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는 내년 첫 호에 문을 닫는다. 리뉴얼 이후 세 달 마다 바통을 넘겨온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올해의 서예례 교수, 안세헌 소장, 진양교 교수, 박준서 소장 편에 이어 2017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며, 서영애 소장의 ‘시네마 스케이프’ 역시 내년에도 독자들을 만난다. 길고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 못지않은 고통을 감내하며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 연재 필자들의 인내와 노고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짐작하시겠지만, 많은 꼭지의 문을 닫는 만큼 2017년의 『환경과조경』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신년호에서 자세히 소개해 드리기로 한다. 『환경과조경』의 자매지로 2003년 3월에 창간된 『에코스케이프』(『조경시공』, 『조경생태시공』이란 이름을 거쳐 왔다)가 통권 100호인 이번 12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아쉬운 소식을 무거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자 지난 10월 문을 연 ‘e-환경과조경www.lak.co.kr’에 보다 힘을 기울이기 위한 선택임을 깊이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린다. 한결같이 반겨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환경과조경』은 2017년에도 한결같은 ‘조경문화 발전소’로 독자 여러분 곁에 다가갈 것을 약속 드린다. 이렇게 2016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6년12월 / 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