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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마이크로시티랩 2016. 10. 7 ~ 10. 30 인디아트홀 공 서울시 외부 공간
    ‘마이크로시티랩Micro City Lab’은 거대 도시화 된 서울의 장소성을 ‘마이크로한 개입micro intervention’으로 탐색하는 도시 개입 프로젝트다. 전시에 참여하는 11개국 출신 17팀의 참여 작가는 미술,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제작 기술, 액티비즘이 매개된 장소로의 개입을 시도한다. 전시 기간 중 서울의 여러 외부 공간에서 직접 진행된 작가들의 개입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공간의 형식과 규정, 권력으로부터 어떻게 예술이 주체적으로 장소를 발언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마이크로시티랩'의 작가별 개입 프로젝트와 진행 사항은 전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microcitylab.com). 메가 시티, 서울 이 지면에서 타이페이, 선전(심천), 홍콩의 도시 공간과 예술을 소개한 적이 있다. ‘동북아시아 메가 시티’라는 연구 주제로 위 도시에 접근한 배경에는 우리의 도시 서울이 있다. 당시 리서치 내용을 검토하며 오늘날 도시와 장소성에 대한 전시 기획을 준비 중이었는데, 우선은 서울이라는 메가 시티, 그 규정된 형식이 마음에 걸렸다. 세계 5위의 메가 시티 서울. 도대체 우리는 어떠한 메가 시티에 살고 있는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거대한 도시 볼륨을 생각하고 있자니 다소 추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 도시를 좀 더 알기 위해 생활 습관을 조금 바꿔 보았다. 지하철 타는 시간을 줄이고, 작은 마을버스를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며 잘 알지 못하던 동네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도시를 경험할수록 골목마다 빼곡한 삶의 장소들이 뇌리에 쌓여 갔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거나 사용이 차단된 영역, 관심 밖으로 방치된 도시의 공간들도 함께 쌓여 갔다. 도시로 파고들수록 메가 시티라는 거대한 볼륨은 잊혀 간다. 하나의 도시 안에는 규정할 수 없는 장소, 명명할 수 없는 장소가 수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작은 장소들에는 수많은 개인과 커뮤니티의 다양한 삶의 활동이 벌어진다. 메가 시티의 형식이 흐릿해질 때쯤 오히려 선명해진 장면이 있다. “메가시티 안에는 수많은 ‘마이크로 시티’가 존재한다.” 우리 안의 수많은 ‘마이크로 시티’를 찾아서 오늘날의 도시에 다가가고자 한 여정은 10월 한 달간 선보인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을 기획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등포 양평동의 한 공장 건물에 위치한 인디아트홀 공에서 10월 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전시 ‘마이크로시티랩’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를 ‘마이크로한 개입’을 통해 다양한 층위로 논의하고자 한 프로젝트다. 서울을 비롯한 거대 도시의 형태와 볼륨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한 장소와 삶의 이야기가 도시의 지층으로 쌓인다. 도시의 이면에는 소소한 시공간의 켜가 빼곡하지만, 이는 도시가 확장될수록 가장 쉽게 허물어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도시의 표면과 권력, 그리고 거대 메커니즘에 가려진 ‘마이크로 장소’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는 도시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시선으로부터 한 발짝 거리로 나온 개입의 과정을 제안한다. 이때 장소로의 개입 방식은 예술에서 다소 과도하게 남용되는 개념, 형식, 미적 실천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잘 드러나지 않는 장소에 대한 개입은 역시나 무용할 수 있는 예술의 최소한의 개입, 즉 ‘마이크로 개입’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전시에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한국 작가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 베이징, 헬싱키, 런던, 베를린 등 대도시에 살고 있는 11개국 출신의 17팀의 작가들을 초대했다. 개중 14팀의 참여 작가는 전시 기간 중 서울의 여러 외부 공간(공공 공간, 거리, 공원, 유휴 공간, 재개발 지역, 문화 공간, 상업 공간 등)에서 각각 개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술, 건축, 디자인, 퍼포먼스, 제작 기술, 액티비즘이 매개된 장소로의 개입 방식은 서울에 쌓여 온 중층의 시간과 장소만큼이나 무수한 사건들과 관계가 된다. 참여 작가들의 ‘마이크로 개입’은 신체, 텍스트, 소리, 냄새 등 최소한의 물성으로 각 장소가 지닌 상황, 사물, 이면의 관계에 최대한 주목하고자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도시 관련 비평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 현대 미술과 도시 연구를 매개한 전시 기획을 해왔으며,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을 선보였다.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최악의 하루 남산은 길이다
    우디 앨런은 뉴욕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뉴욕을 찬양하며 도시의 일상을 탁월하게 묘사해 왔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우디 앨런은 뉴욕이 서부의 도시들과 달리 어디나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시인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걸어서 식당에 가고 걸어서 센트럴 파크를 지나면 박물관이 나오고 학교가 나온다. 그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거리와 공원을 걸으며 시시한 농담부터 진지한 철학까지 나눈다. 센트럴 파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우디 앨런은 뉴욕의 상징일 뿐 아니라 시대극을 촬영할 때도 별다른 장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변함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은 어떨까. 우선 서울은 걸어서 다니기에 물리적으로 너무 넓다. 사대문 안으로 좁혀보아도 아직은 보행자에게 친절한 도시는 아니다. 서울의 거리는 빠르게, 자주 변한다. 그래도 센트럴 파크 이상으로 긴 시간 동안 서울을 상징해온 남산이 있다. 1950~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남산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당시 영화 속 남산은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영화 도입부는 남산에서 조망되는 서울의 변화를 스케치하거나, 등장인물들이 남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다. 남산은 산이자 공원이다. 한국인은 산을 신성시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남산에 올라 임금이 사는 궁궐을 내려다보거나 나무를 꺾어 땔감으로 사용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서울을 한눈에 조망하는 일은 근대적 체험인 셈이다. 사대산 중 하나였던 남산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서울의 경계에서 중심이 되었다. 산이면서 공원이기 때문에 보존과 이용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계속 충돌해 왔다.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곤돌라를 설치하는 것이 생태 보존에 도움이 될지 더 많은 이용으로 훼손이 가중될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남산은 북한산처럼 본격적으로 등산복을 입고 오르는 산도 아니고 센트럴 파크처럼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공원도 아니다. 한양도성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시점이어서 남산의 특성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더 복잡해졌다. 몇 달 전 『씨네21』 김혜리 기자와의 대담에서 실제로는 체감하기 어려운 한강이 가진 깊이의 속성을 영화를 통해 발견한 적이 있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관념 속 남산에서 ‘길’의 가능성을 환기해 준다. 남산은 하이힐을 신고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자, 도시를 내려다보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며, 조선 시대에 쌓은 도성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시 유산이다. 번잡한 도심을 피해 ‘서울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최악의 하루’는 서촌과 남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 동안 펼쳐지는 가벼운 소동극이다. 제한된 시공간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 은희(한예리 분)는 서촌에서 배우 수업을 마치고 걷던 중에 길을 찾는 일본 작가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차를 마시고 헤어진다. 오늘 처음 본 일본 남자 A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 B와 잠시 사귀다 헤어진 남자 C를 남산의 길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은희는 드라마 촬영 중인 B를 만나기 위해 서촌에서 남산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한참 기다리다 만나지만 말다툼을 벌이다 헤어진다. 은희가 전망 데크에서 찍은 사진을 SNS를 통해서 보고 C가 갑자기 찾아온다. 그와는 B의 눈을 피해 잠시 사귀다 한 달 전에 헤어졌다. 유부남인 C는 은희에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매달린다. 은희는 B와 C에게 거짓말을 하며(말하는 순간은 진실로 보이지만) 각각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며 B와 C가 동시에 무대에서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엉켜버린 최악의 하루가 지날 때쯤, 서촌에서 헤어졌던 A가 거짓말처럼 등장한다. 김종관 감독은 걸을 때 생기는 건강한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B에게 남산은 삶의 현장이자 아줌마들로 붐비는 곳이고, C에게는 은희와 사랑을 속삭이던 추억의 장소다. A는 관광객 모드로 서울의 상징인 남산에 올랐다. 우연과 의도, 진실과 거짓, 설렘과 권태, 추억과 현실, 이 복잡한 감정들이 남산의 길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다 마법같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모던 타임즈
    #96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 아르누보 먼 길을 헤매다가 다시 20세기로 돌아왔다. 익숙한 세상에 오니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비행기, 고층 건물, 기계와 자동차 등 온갖 기술 문명으로 복잡하기도 하다. 이 가운데 정원의 흔적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정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선 우선 걷어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를 위해서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1863~1957)의 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벨기에 출신의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였던 반 데 벨데는 혹시 에르퀼 푸아로의 오리지널이 아닐까 싶게 작은 체구에 에너지 넘치는 심미주의자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아르누보’와 ‘바우하우스’의 중간 지점에서 맹활약하며 이 둘을 서로 연결한 인물이었다. 아르누보art nouveau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1880년경부터 25년 정도 유럽을 휩쓸었던 디자인 경향이다. 매우 심미적이고 우아했다. 직선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썼으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꽃, 식물 줄기 등을 그래픽처럼 다룬 것이 특징이었다. 전반적으로 여성적인 디자인이어서 긴 머리의 키 크고 날씬한 여인이 물결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새로운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혁신은 아니었다. 외모에만 손을 댔다. 산업화의 결과로 도시에 부와 제품이 넘쳐났으나 이들을 제대로 포장할 디자인이 없었다. 그래서 지나간 시절의 양식들을 두서없이 모방했던 데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했다. 고딕 양식부터 루이 14세 스타일, 르네상스, 고전까지 난무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던 시절이었다. 이를 역사주의historicism라고 하는데 이에 대응하여 새로운 것을 찾던 끝에 나타난 것이다. 가장 먼저 영국에서 반응하여 미술공예운동이 시작되었다.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가 주동 세력이었다. 이들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량 상품이 문제라고 여겼다. 전통적인 수공업과 공예를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해법을 찾고자 했다. 이로써 미술공예운동은 아르누보 스타일이 탄생하는 데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존 러스킨은 예술 평론가, 작가, 화가, 사회 개혁가로서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많은 글을 써서 산업 사회를 비판하고 수공업과 공예의 가치를 칭송했다. 윌리엄 모리스 역시 화가였으나 그림보다는 글을 잘 썼고 손재주가 좋았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수공예 회사를 차려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바로 이런 움직임이 멀리 브뤼셀의 미술학도 앙리 반 데 벨데에게도 전해졌다. 1888년 모친상을 당한 앙리는 슬픔에 잠겨 칩거하며 철학 서적을 읽었다. 그러다가 러스킨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미술공예운동에 주목했다. 그렇지 않아도 순수 미술이 자신의 세계를 충분히 표현해 주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결국 회화를 포기하고 응용 예술의 길을 걷기로 한다. 일단 런던으로 갔다. 미술공예 움직임에 동참하여 작업했다. 디자인 감각을 타고났으므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다. 그는 선線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특히 식물 줄기의 자연적인 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었다. 선에서 시작하여 디자인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선에 역동적 에너지가 내재해 있어 스스로 변화하며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고 했다. 건축 설계에도 도전했다. 그리고 건축이 가진 무한대의 디자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건축의 외피며 실내 구조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 촛대, 식기, 전등까지, 무엇을 보나 디자인할 대상이었다. 그는 건축이야말로 모든 디자인 분야를 흡수하는 종합예술로 보았다. 브뤼셀로 돌아가 결혼하고 신혼집을 지을 때 건축과 인테리어는 물론 가재도구에서 티스푼까지 백 퍼센트 직접 디자인했다. 의상도 디자인했다. 그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겠다는 여성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결국 그의 아내가 입어야 했다. 1900년, 반 데 벨데가 베를린에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폴크방 박물관을 설계하고 베를린의 스타 헤어 디자이너 펠릭스 하비의 의뢰를 받아 미용실 인테리어를 해주었다. 건축부터 문고리까지 다 설계한다는 반 데 벨데에게 설계를 의뢰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그는 좀 더 높이 도약하고 싶었다. 베를린 장안의 멋쟁이 케슬러 백작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가 전환점을 제시해 주었다. 외교관, 미술 수집가, 작가였던 케슬러 백작은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는 반 데 벨데의 내면에 훨씬 큰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보고 함께 바이마르에 가자고 제안했다. 바이마르를 제2의 피렌체로 만들자고 했다. 당시 바이마르와 작센을 통치하고 있던 빌헬름 대공에게 반 데 벨데를 추천하여 예술 자문으로 부름을 받게 했다. 반 데 벨데는 1902년, 만 32세의 나이로 아내와 자녀들을 동반하고 세계도시 베를린을 떠나 바이마르로 향했다. 여기서 1917년까지 지낸 십오 년이 그의 최전성기로 꼽힌다. 대공으로부터 공예 학교를 설립하여 제품 디자인에 힘쓰라는 명이 내려졌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공예 세미나를 통해 그는 예술, 산업과 수공업을 결합하고 실무와 이론을 일체화시켜나갔다. 완벽한 디자인은 용도에 정확하게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제2의 피렌체’를 위해 부지런히 마스터플랜을 꾸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6년11월 / 343
  • [리질리언스 읽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 해안 리질리언스
    태풍 차바의 습격, 물에 잠긴 취약한 해안 도시 해안은 생물 자원이 풍부해 인간에게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풍족한 식량과 아름다운 경관, 수질 정화와 해안 재해 저감과 같은 혜택을 인간에게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혜택을 대가 없이 획득할 수 있는 재화, 즉 ‘자유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갯벌을 파괴하고 연안을 매립해 산업 단지나 농토, 초고층 빌딩을 건설했으며, 해안 사구를 개발해 해수욕장으로 탈바꿈시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그리고 재산과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해안 생태계를 훼손해가며 인공 구조물까지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거침없는 해안 지역의 난개발로 인간 사회는 사회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대규모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안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취약한 해안 도시’를 자초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해안 지역의 면적은 4,022km2으로 국토의 4%에 지나지 않지만, 인구의 27.1%에 해당하는 약 1,380만 명이 해안 지역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다. 이러한 해안 지역의 인구 증가는 해안 도시 확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해안 도시는 해안 공간의 보전 계획보다는 개발 계획에 더 치중하여 성장했다. 다시 말하면 무분별한 해안 개발로 인해 태풍, 해일, 폭풍, 해안 저지대 침수, 해수면 상승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국토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해안 도시의 취약성은 지난 10월 5일, 부산시와 울산시를 중심으로 상륙한 태풍 차바에 의해 여실 없이 드러났다. 과거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2만여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태풍 카트리나를 연상시키듯, 거대한 파도는 보란 듯이 방파제를 넘었고 도심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0명의 사상자와 25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500여 채의 건물이 수해를 입었다. 태풍 차바에 의한 피해 원인으로 많은 기사는 방파제의 높이를 언급했지만, 과연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 그리고 지진 발생과 같은 대규모 자연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인간의 힘으로 완벽히 막을 수 있는 재해가 있는지 반문해보고 싶다. 또한 이미 폭염과 지진으로 사회 커뮤니티와 경제력이 훼손된 해안 도시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재해를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재해를 완벽하게 막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며, 인간 사회가 얻은 사회 경제적 이득이 자연 생태계에서 비롯됐다는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해안 도시를 건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미국, 유럽 등 해안 방재 선진국들은 태풍 카트리나와 샌디 같은 재해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적응’하고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 즉 ‘해안 리질리언스’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안 리질리언스란 지속가능한 해안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자연재해와 같은 교란을 흡수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해안 지역의 사회생태시스템을 구성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는 해안 도시의 능력을 의미한다. 해안 리질리언스는 주로 자연적 혹은 자연 기반의 구조물을 통해 향상되며, 이는 해안 생태계 서비스와 해안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해안 리질리언스 등장과 발전 유엔재난경감국제전략기구UNISDR는 ‘2005-2015 효고행동계획Hyogo Framework for Action(HFA)’을 통해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커뮤니티 및 국가 리질리언스’를 구축하는 것을 첫 번째 계획으로 수립했다. 이후 효고행동계획은 재난 위험을 줄이려는 정부, 국제기구, 재난 전문가와 함께 발전했고, 관민의 강한 네트워크, 환경 리질리언스, 재해 대비를 위한 투자, 사회 커뮤니티의 리질리언스 강화, 사회 커뮤니티의 정보 교류 등의 다섯 가지 비전을 규정해 재난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실전적인 방법과 원리를 제공했다. 효고행동계획의 목적은 재난에 대한 국가와 커뮤니티의 리질리언스를 구축해 2015년까지 점차 재해를 저감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급작스러운 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 사회 붕괴, 경제 침체, 그리고 생태계 훼손을 줄이고자 했다. 또한 유엔인간정주계획UN-HABITAT은 법과 제도, 교통, 거주 및 재생, 안전, 기후 변화, 성별, 계획 및 설계, 경제, 재건축, 리질리언스, 인권, 물과 위생 등 14가지의 테마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리질리언스 테마는 지진, 폭풍, 해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도시의 거주민을 위해 리질리언스를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대규모 도시의 80%는 지진에 매우 취약하고, 60%는 쓰나미와 태풍, 해일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새로운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도시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액은 2011년에만 3,800백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이에 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접근 방식과 새로운 도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그 수단으로 리질리언스가 활용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2005년 사상 최고의 사상자를 낸 태풍 카트리나를 맞는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재해 대응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게 됐는데, 특히 UNISDR과 UN-HABITAT에서 정의한 리질리언스를 기반으로 프레임워크를 구축해 폭풍, 해일, 해수면 상승, 해안 침식 등의 해안 재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해안 지역의 재해 경감에 앞장선 록펠러재단이 오바마 정권과 손을 잡으면서 3대 목표 중 하나로 리질리언스를 선정했고, 이후 리질리언스의 핵심 키워드를 ‘해안’, ‘재해’, 그리고 ‘도시 혹은 커뮤니티’로 압축했다. 또한 그들은 리질리언스의 개념이 실천적인 조경 및 도시 계획안으로 도출되길 원했고, 지난 10년간 도시계획과 조경 설계 차원에서 리질리언스 개념을 도입한 사업과 프로젝트 등을 많이 실시했다. ‘100 리질리언트 시티100 Resilient Cities’,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그리고 ‘해안 리질리언스의 구조Structure of Coastal Resilience’ 등을 핵심 프로젝트로 들 수 있는데, 모든 프로젝트는 해안 리질리언스 평가를 기반으로 해안 에코 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해 수행됐다. 해안 리질리언스의 구조: 해안 리질리언스의 구조 프로젝트의 목적은 재해에 취약한 나라간세트 만Narragansett Bay,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의 자메이카 만Jamaica Bay, 뉴욕의 애틀랜틱시티Atlantic City, 뉴저지의 노퍽 및 햄프턴 로드Norfolk and Hampton Roads와 버지니아 등 해안 지역 네 곳의 폭풍과 해일의 위험을 평가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도출해 생태 복원 설계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기후 변화에 의한 폭풍과 해일의 위험 평가를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구축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조경가, 공학자, 과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최신 과학을 이용한 실험 설계를 통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도록 했다. 또한 회복력 있는 해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예상 가능한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적응을 통해 폭풍과 해일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전진형[email protected] /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 2016년11월 / 343
  • [조경의 경제학] 경관의 수요: 자본에 의한 발생과 소멸의 메커니즘
    경관 수요와 경관 효용 경관의 수요는 경관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 이상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 또는 욕구의 차원을 넘어, 대가를 지급하고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의사를 경제학에서는 ‘수요demand’라고 한다. 경관의 수요자는 대가를 지급하고 경관을 소비한다. 이때 그 대가가 조망점의 공급자에게만 귀속되고 조망 대상의 공급자에게는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경관의 적정한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호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경관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가 경관을 체험할 때 무엇을 얻는가? 경제학자는 이러한 질문을 ‘경관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무엇인가?’로 정리할 것이다. 경제학에서 효용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우리의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하는 능력’ 또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만족’을 말한다. 효용은 수요의 원천이다. 사람들은 효용을 얻기 위해 소비하고, 기업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골몰한다. 이 글에서 경관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대기를 정화하고 종 다양성을 높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경관이라는 단어는 인지된 심상뿐만 아니라 (인식 밖에 존재하는) 인지의 대상을 칭하기도 하므로, 위와 같은 효과가 경관의 효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 자연, 생태계 등의 단어와 차별화된 ‘경관’이 가지는 고유의 효용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오관을 통해 인지되는 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관을 체험한다’고 할 때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발산하는 긍정적 외부효과 정도로 생각하자. 경관의 효용을 인식의 영역에서 찾는다면 경관 체험의 중심에는 미적 체험이 자리하게 된다. 우리가 경관의 체험을 통해 얻는 쾌pleasure에 미적인 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 미학에서 다루는 미적인 것the aesthetic의 범주가 매우 넓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학적 방법으로 경관의 효용을 다루는 것이 그리 편협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는 경관을 체험하는 과정을 파헤치거나, 미적 체험을 유발하는 경관을 선별하거나, 보다 근본적으로 경관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등의 미학적 설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경제학적 관심으로 경관에 대한 수요의 발생과 소멸에 자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몇 가지 참고한다. 자본에 의한 경관 체험의 조작 자본은 능동적이고 지능적이다. 자본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토대와 상부 구조를 능동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 변화의 대상에 경관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본이 강압적이지는 않다. 자본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를 조작함으로써 목적 달성의 효율성을 지능적으로 추구한다. 경관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특정한 경관에 대한 우리의 미적 체험을 바꾸는 기제는 18세기 영국의 미학 이론인 취미론에서 단서를 찾을수 있다. 취미론은 독일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1714~1762)에 의해 자리 잡은 ‘미학’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 널리 쓰이기 전에 벌어졌던 철학 논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기독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상가들 사이에는 ‘미beauty’라는 것이 객관적인 대상에 내재한 성질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비례와 같은 특징이건, 이데아와 같은 추상적 실재건, 신으로부터 기인한 무엇이건, 시대에 따라 설명은 달랐으나 미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세의 몰락과 함께 낭만주의가 등장했고 미적 체험에 대해서도 주관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취미론은 이러한 과정에서 미의 존재론에 대한 객관론과 주관론의 거리를 세련되게 탐구한 이론이다. 샤프츠베리Third Earl of Shaftesbury(1671~1713)는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에 대한 이론으로 취미론의 문을 열었다. 무관심성이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진정한 미적 체험을 ‘무관심의 상태에서만 도달 가능한 어떤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미의 철학을 성립시켰다. 경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허치슨Francis Hutcheson(1694~1746)은 내적 감관internal sense이라는 개념을 통해 취미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오관과 별도로 미를 감지하는 내적 감관으로서 미의 감관sense of beauty이 존재하며, 이 감관을 통해 느끼는 쾌가 바로 미의 관념idea of beauty이라고 보았다. 취미taste란 이러한 감관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에게 미적 감관은 오관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 대해 미적 감관은 동일한 반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는 그 이유가 미적 감관에 있지 않고, 관념 연합association of ideas에 있다고 보았다. 관념 연합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과 같은 것이며, 그것이 형성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습관이다. 관념 연합이 미적 체험의 과정에 작용해서 동일한 대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민성훈[email protected] /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 / 2016년11월 / 343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성장이야기
    지난달에는 감히 우리에겐 정원이라는 문화가 없었으며 그래서 조경이 참 힘든 일이 되었음을, 그러나 이제 필요성이 절실하니 조경가가 이를 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경을 업으로 삼고 있는 동료 조경가 중 어느 누구도 이 일이 중요함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이 일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단순히 돈을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큰 회사에 다니다가, 그리고 어느 설계사무소에 다니다 그만두고 스스로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설계란 그림만 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어지지 않고 그림으로만 남는 설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시작할 때도 돈이 되는 일 앞에 지어지는 일을 놓고자 했다. 이 같은 실천을 통해서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워보리라는 작은 소망을 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힘들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설계가로서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려한다. 보잘것없지만 오로지 순수하게 설계를 잘하고 싶은 조경가 박준서의 성장 이야기. 부디 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기를 바란다. 왜? 부끄러우니까. 습관에 대한 도전 건설사의 현장 사무소. 나는 현장의 공사 담당 소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며칠 동안 우리가 설계한 플랜터의 상세도를 자꾸만 문제 삼기에 오늘은 기필코 결판을 보리라 다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며칠 전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한참 시공 중인 현장에 느닷없이 시공사의 임원이 순시를 나왔는데 플랜터의 상세도를 두고 혹평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을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시공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건 안 된다는 거였다. ‘어쩌라고요?’ 나의 외침은 목구멍을 넘어오진 못했다. 대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네…. 하지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만큼 이대로 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박 소장, 이거 이렇게 진행했다간 당장 내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몰라.” “예? 아니 왜요?” “그 임원이 자기 말대로 안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큰소리치고 갔다고.”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람. 하지만 이곳은 한국,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왜 그런 디테일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생각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이삼일이 지나고 현장에서 미팅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만약 내가 디자인한 디테일로 시공하기로 결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왜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나 참 힘들어서 못 해먹겠네. 아무리 회의를 해도 내가 고집을 꺾지 않으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물어왔다. “박 소장, 만일 현장에서 저 디테일을 바꾸면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순간 머릿속에 이걸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나 이 땅에는 설계자의 손을 들어줄 수단도 시스템도 없었다. 건축에는 감리가 있으니 그를 통해서라도 설계에 힘을 실을 수 있겠지만, 조경은 그런 것도 없고 감독은 뭘 하든 문제만 만들지 말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었다. “뭐제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겠네요. 그냥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겠죠?” 정말 내 심정은 그랬다. 다음날 다행히 시공사에서 본래 디테일대로 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시공사에서 걱정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디테일을 그 후로도 자주 써먹었고, 그럴 때마다 시공자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발주자나 의뢰인을 설득하는 일보다 현장의 작업반장을 설득하기가 더 힘든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다. 지어지는 설계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난감한 상황. 설계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마주하는 상황이다. 상황의 경중을 떠나서 시공자가 설계자에게 설계의 의지를 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의 시공 경험에 반한다는 이유로. 설계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역할이 이 땅에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이 땅에서는 설계의 역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내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습관의 벽이었다. 그런 습관을 시공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 그룹도, 설계가인 나 자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버릇처럼 해왔기 때문에 이미 굳어진 믿음을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파란 설계가 놈 하나가 바꾸려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본 것이다. 습관이 곧 고정관념이 되고, 그 고정관념을 너무 신봉하다 보니 신념이 되었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은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설계는 역설적으로 그런 습관을 깨는 작업이어야 한다. 힘들지만 습관을 이해하고 분명히 그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와 당위성도 함께 제시하면서 말이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작업반장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설계. 그것이 하고 싶었다. 형태 말고 공간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 설계공모. 나는 건축가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만든 공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생활하고 일하고 노는 곳이고, 그런 공간은 조경 작업이나 건축 작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와 설계공모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커다란 대상지의 도면을 앞에다 두고 건축가와 마스터플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박 소장님, 저희가 원하는 건 이런 그림이 아닌데요.” “네? 그럼 어떤 걸 원하시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뭔가 좀 더 그로테스크하고 힘차면서도 기능적인 그런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건물과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네…. 그게 어떤 건데요?” “아니, 왜 그러세요. 그동안 잘 해주시더니. 왜 있잖아요. … 그래야 이 평면이 살죠. 건물도 살고. 밑바탕이 근사해야 건물이 더 도드라 지지요. 조경은 그런 거잖아요.”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금기어는 뱉지 말았어야지. 내가 삽화가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만화가를 섭외하지. 얼마 전 우리가 설계한 지방 모 기업의 사옥을 다녀왔다. 설계는 벌써 몇 년 전에 했고, 제법 많이 참견할 수 있어서 설계안에 꽤 근접하게 시공이 되었다. 의뢰인 측도 매우 만족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좋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곳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설계는 평면 중심의 설계가 진행된 대표적인 예였다. 기업의 독보적인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드라진 형태와 디테일로 설계된 곳인데. 막상 가보니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퍼걸러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숲은 얕았으며 그늘 밑에는 앉을 곳이 없고 벤치가 놓인 곳엔 볼 게 없었다. 운동 삼아 산책로를 걸을 수는 있겠지만, 머물고 싶은 곳이 없어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 된 것이다. 내심 충격이었다. 입으로는 열심히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고는 정작 기회가 왔을 때 그러지 못하다니. 보여주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나? 내가 그린 그림이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누구에게?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히 사용자는 아닌 듯하다. 나는 내가 대단한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형태를 과하게 조작하고, 입체적 조형을 도입하고, 강렬한 대비 효과를 쓰고, 이를 사람들이 못 알아먹을 이상한 말로 포장하려 했다. 어쩌면 우리가 공모나 설계 설명서에 써넣던 강렬한 기능, 즉 축제니 문화 행사니 캠핑따위의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만든 공간은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런저런 용도나 잠시 앉아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더 많이 쓰일 텐데, 정작 그런 용도로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니. 피터 워커의 테너 파운틴(Tanner Fountain)이라는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가 평소 이야기하듯이 테너 파운틴은 하나의 디자인적 제스처가 매우 다양한 역할을 일궈내는, 그리고 분명하게 보이는 설계의 표본이라 생각했다. 2000년에 그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설계는 반드시 눈에 띄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군중 속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예로 들며 그처럼 눈을 사로잡는 대상을 설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지당하며 공감 가는 이야기다. 단, 우리가 다루는 이 공간들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 그게 문제지. 테너 파운틴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그의 설계 태도와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설계가로서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은 무덤과도 같은 일이다. 독특하고 유일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설계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적 틀을 갖추는 노력이 더 우선 되어야 한다. 테너 파운틴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당시 그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조경 설계가 너무 튀려고만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적 세팅을 하는 데 게으르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잊고 있었다. 아니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그 너머의 사람을 보다 몇 해 전, 어느 마을의 작은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설계와 시공을 하게 됐다. 몇 차례 대상지를 답사하면서 설계 아이디어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시공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린 그곳에 자그마한 쉼터를 만들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내심 기뻤다. 이 공간을이용하며 즐거워할 주민의 웃음 띤 얼굴을 벌써 마주하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기대됐다. 어느 날 답사를 간 우리는 한 가지 해프닝을 목격했다. 우리가 휴게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 버려진 녹지를 둘러싸고 주민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녹지 바로 옆에 거주하는 할머니 한 분이 평소 이 녹지에 꽃을 심어 가꾸고 있었는데, 이웃 주민이 그걸 보고 야단을 친 것이었다. 왜 공공의 땅에 개인적으로 뭔가를 심고 가꾸는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의아했다. 왜 그게문제가 되지? 그 땅을 그 할머니가 소유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땅을 일궈 밭으로 쓰려 한 것도 아닌데. 그 할머니도 우리처럼 그냥 그곳에 꽃이 피고 낙엽이 지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 사람이 공공의 땅에 꽃을 심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기보다 설계가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명분이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 그려진 벽화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예술가의 순수한 마음이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다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예상한 것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이런 예뿐만 아니라, 우리가 설계하면서 만나는 공간들은 대상물로서의 물리적 구성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에는 어마어마하게 깊고 복잡한 인간관계가 투영되어 있고, 그 안에는 온갖 욕망과 사욕이 얽혀있다. 어쩌면 설계란 그런 욕망의 교통정리 행위거나 욕망의 분출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년 뒤 다시 찾은 작은 녹지엔 그때 만들어 놓은 벤치들이 있었다. 길을 오르내리던 주민들이 그곳에 잠시 앉아 가쁜 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주변에는 그 당시 심긴 초화들이 사라졌다. 꽃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쉼터에서 그냥 평범한 쉼터로 변해 있었다. 아마 그 할머니는 더 이상 이곳의 꽃을 돌볼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 작은 쉼터가 주민의 마음에 따듯한 마음을 깃들게 하는 자리이기를 바랐지만 상처만 남긴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애송이 설계가 어느덧 설계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매 순간 이제야 설계를 좀 알게 됐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땐 뭘 몰랐지 싶다. 지금까지 참 많은 프로젝트를 다루며 늘 좋은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당시에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완성해 내려 했지만, 돌이켜 보니 허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그 프로젝트들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이 사무실을 시작하며 수행한 프로젝트에는 결기 넘치는 젊은 열정이 보이지만, 또 다른 10년을 바라보는 지금은결기보다는 무난한 안정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야 도면에 쓰여 있는 산책이, 휴식이, 삶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몇 해 전 나이 50을 바라보는 설계 선배가 자신은 아직도 애송이라고 하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 난 아직도 많은 성장을 해야 하는, 아직은 덜 익은 설계가일 수도 있겠다. 이제야 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조금 깨달은, 이제야 설계 대상지에서 그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읽어 낼 수 있는, 그래서 이제야 그곳에 맞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다.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 [공간 공감] 숲을 디자인하다
    내가 좋아하는 조경가 한 명은 이렇게 얘기했다. 숲에서 놀아보지 않은 자는 설계하지 말라고. 그만큼 숲은 자연을 다루는 우리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고, 사전 같은 참고 문헌이 되기도 하며,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숲에 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는 근본적인 무기를 하나 더 구비한 셈인지도 모른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구본무 회장의 아호를 따 만든 비영리 수목원이다. 부담스러운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기꺼이 또 하루를 내어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산자락의 남쪽 사면 760,330m2(약 23만 평)에 걸쳐 4,300여 종의 식물이 공존하는 화담숲은 여느 산림에 비해 종 다양성이 높다. 자연 상태로 두었다면 분명히 경쟁과 도태 때문에 유지하기 힘든 숫자일 테다. 그렇다면 이곳은 보전된 자연 산림이라기보다 정성스럽고 치밀하게 디자인되고 꾸준히 관리되는 정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겹게 얘기하는 숲’이라는 의미의 화담숲. 그러나 화담숲에서는 ‘말하기’보다는 ‘걷기’에 몰입하게 된다. ‘걷다’라는 행위는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가 찬양해왔듯, 생각과 감성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신체 행위를 통해 깨워내고 세상과 나를 감각적으로 또 사유적으로 연결시키는 사람만의 고유한 특권이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하늘을 보게 되고, 땅과 하늘을 잇는 존재로서의 독자성을 갖게 된 것은 인류사의 발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공원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을 떠올려본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하나의 이상적인 자연을 만들고자 했던 인류사적 욕구인 픽처레스크 정원은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서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걷는다는 행위, 그로 인해 풍경 속의 내가 그림을 주체적으로 편집하여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비로소 화폭에 담긴 풍경화를 우리를 둘러싼 공간으로, 현실로, 일상으로, 문화 영역으로 바꿔주었다. 화담숲은 참으로 걷기 좋은 곳이다. 편안한 경사를 유지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계획된 일련의 산책로와 데크구조물은 움직임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주제원으로 몰입시키거나, 근경과 원경을 교차로 바라보게 만들어 숲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릉이 많은 한국적 픽처레스크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많은 날에 가면 등 떠밀려 올라가야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풍경 속으로 점멸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의 무희적인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사람이 많을 때에만 나타나는 순례의 경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산 체험 방식인 등산은 일정한 경사를 앞으로, 직선적으로 걷는 것이다. 한편 화담숲에서 걷는 행위는 계속적인 시선의 굴절과 그에 따른 경관 체험의 반전을 동반한다. 숲을 디자인하는 것은 숲 자체의 디자인과 더불어 숲을 걷는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김아연[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6년11월 / 343
  • [칼럼] 꿈꾸는 자들을 위한 변명
    이십대 학창 시절, 운동권 선배들의 주변부를 기웃거리며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꿈꾸고 싸우는가를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변혁하고자 했던 그들의 열정과 치열함을 존경했지만 나약한 나는 결국 그들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 패배자의 죄책감을 가지고 도망쳤다. 한참의 방황기를 끝내고 복학하면서, 그래, 조경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제로 만드는 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 학문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비로소 조경이라는 본연의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삼십대에 나는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중에는 일종의 경고성 당부도 끼어 있었는데, 학생들의 눈높이가 너무 올라가지 않게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헛된 꿈이 커지면 겉멋이 들어 졸업 후 현실에 부딪치자마자 쉽게 포기하고 이직한다는 이유였다. 사십대인 나는 여전히 이십대와 삼십대의 에피소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경의 최대 위기라는 지금, 이상향을 고민하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망각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발주처의 대책 없는 갑질, 터무니없는 설계비에 회사 운영을 위해서 짊어지는 박리다매형 운영 방식, 권위주의적 심의와 트집잡기 문화, 타 분야의 영역 침범, 사람을 뽑지 못해 안달하는 중소규모 회사들과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학생들,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징글징글한 조경의 현실은 매순간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를 옥죈다. 교수라서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꿈 타령이나 하고 있다는 비판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꿈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그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조경의 본질이 새로운 세상, 변화된 세상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 일의 보람은 이러한 꿈과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과 과정에 있다.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 이 가슴 설레는 단어를 조경의 본질과 연관 짓기에 부담을 느낀다면 조금 더 소박하게 표현해 보자.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조경 행위를 발생시키는 첫 단계다. 꿈은 비루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다. 유토피아는 땅 혹은 세계를 의미하는 ‘topos’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좋은’ 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접두사 ‘eu’를 붙인 합성어다. 16세기,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목격한 사회의 극단적인 탐욕과 부조리와 폭력성과 불평등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정의하고 세부적인 작동 방식을 제시해 왔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루이스 멈퍼드는 유토피아를 도피적 유토피아와 재건적 유토피아로 분류했는데, 두 유토피아의 차이는 지옥 같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두는 것과 그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실행력의 차이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현실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그 방식이 달라질 뿐, 유토피아의 본질은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엄중한 성찰과 비판에 있다. 도시 공원의 양식적 진화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픽처레스크 정원은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다. 근대의 도시 공원은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도피적인 유토피아를 실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건적 유토피아로 변형시켰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초의 시민 공원인 영국의 버컨헤드 공원, 여기에서 큰 영감을 받아 만든 미국의 센트럴 파크는 모두 열악한 도시 상황과 피폐한 현실을 벗어나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건설하고자 한 집단적 욕망이 실제 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바꿔 말하면 근대 조경의 시작은 유토피아를 시민의 일상 영역에 만들어 그들에게 현실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순기능의 도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공원의 질적 변화를 유도했던 라빌레트 공원, 다운스뷰 공원, 하이라인 공원 등 우리가 부지런히 ‘벤치마킹’해 왔던 공원들은 모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인식과 더불어 그 공간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 사례들이다. 급하게 베껴 비슷한 모양새로 만들어 봐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원작 공원에 배어 있는 그들의 꿈과 비전까지는 벤치마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까지의 구구절절한 과정을 벤치마킹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그렇게 가벼이 여기는 꿈은 현실의 다른 모습이며 서로를 떼어놓을 수 없는 암수한몸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나는 곧잘 학생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이나 유토피아를 그려보라고 한다. 어떠한 형태를 갖추든, 그들의 유토피아에서 현실은 악으로, 문제로, 고난으로, 디스토피아로 규정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날카롭게 해석하듯이, 근대의 유토피아가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전제로 세계의 진보를 낙관적으로 표상하는 것이라면, 현대의 유토피아는 지금 세상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한다. 또한 현대의 유토피아적 상상은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건설적이라기보다는 도피적이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생존과 도태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과 공포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혐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도피처,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무기력함, 이 모두가 학생들이 그린 유토피아 하나하나에 슬픈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최근 헤더윅 스튜디오의 전시와 이번 호의 특집인 아장스 테르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현대 유토피아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을 발견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의 멋진 화보 이미지를 관통하는 강렬한 에너지는 더 나은 세계, 더 좋은 삶에 대한 집단적 상상과 실천 의지다. 아장스 테르의 작업을 들여다보면서, 치열한 현장에 대한 탐구, 더 좋은 삶에 대한 꿈과 비전,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확신, 세 명의 소장과 직원들의 집단 창작 과정에 대한 믿음이 이러한 작품들을 가능하게 만든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꿈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적 창작 방식은 우리에게 과연 사치일까? 해외의 멋진 작품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선진적인 발주 시스템, 전문가를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 현실적인 설계비, 고용 안정성등을 부러워하며 한숨짓는 무기력 대신, 오늘은 당당하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자. 꿈과 현실의 변증법, 그것이 조경의 본질이므로. 김아연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느슨한 설계 집단 스튜디오 테라의 대표로서,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과 커뮤니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작업을 하고 있다.
    • 김아연[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 / 2016년11월 / 343
  • [에디토리얼] 이름 짓기
    이번 11월호의 특집은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매년 한두 호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국내외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만으로 지면을 구성한다는 편집 구상. 작년에는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이끄는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을 실었고(2015년 2월호), 올해는 이 달에 아장스 테르를 다룬다. 온천수의 생태적 프로세스를 시각적으로 강하게 전달해 큰 화제를 모았던 ‘아크바 마기카’ 이후, 아장스 테르는 유럽을 넘어 남미와 중국에 이르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펼쳐 왔다. 특히 도시 스케일의 조경 계획과 물을 기반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만일 찰스 왈드하임의 신간 제목처럼 ‘어바니즘으로서의 조경(landscape as urbanism)’이 우리 시대 조경의 과제라면, 아장스 테르는 아마도 그것에 가장 근접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취재를 하며 모든 에디터들은 아장스 테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 똑같은 짐작을 했다. 아장스는 영어 에이전시(agency)와 마찬가지이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고, 테르는 흙이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수년 전에 출판된 그들의 작품집 제목도 ‘Territories’이고 이 중에 앞의 Ter만 다른 색으로 인쇄한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확신에 찬 진지한 목소리로 에디터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장스 테르나 김아연 교수의 스튜디오 테라(Terra)나 결국 같은 뜻이지.” 그런데 본지 파리 리포터 박연미 선생이 공들여 진행한 인터뷰 원고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첫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급하게 사무실 이름을 짓다가 대표가 세 명이라서 숫자 3에 해당하는 라틴어 ter를 썼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는 깊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논문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이 에디토리얼처럼 짧은 글쓰기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제목 달기다. 회사 이름 짓기, 사정은 더 하다. 이름이란 자고로 크고 좋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도 무시할 수 없다. 어감도 중요하다. 겉멋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망설이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멋은 있어야 한다. 유행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거나 금년 『환경과조경』 지면에 등장했던 조경설계사무소 몇 곳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나 사연이 있을까. 거칠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정확하게 조사를 하거나 직접 문의를 한 건 아니다. 대부분은 짐작이고 떠도는 말을 주워 담은 이야기다). 첫 번째 유형은 작심하고 작명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전통적인(?) 2음절의 한자어 이름이다. 가원, 서안, 서인, 신화, 유림, 한림처럼 설립된 지 비교적 오래된 한국 조경의 대표적인 사무실들에 이런 이름이 많다. 이런 유형의 이름에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계림원, 동심원, 이화원처럼 3음절인 경우도 있는데, 이때의 ‘원’은 아마 정원이라는 조경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번째 유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설계의 대상 자체를 이름의 중심에 놓는 경우가 두 번째 유형이다. 아장스 테르의 테르가 3이 아니라 땅이었다면 바로 이 경우다. 테라, 로사이(loci), 사이트, 플레이스랩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생 사무실인 경우가 많다. 이 유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엘’이 아닐까. 스튜디오 엘도 있고 디자인 엘도 있다. 참, 팩토리 엘도 있다. 소장의 성인 이(Lee)에서 따온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L은 동시에 랜드스케이프의 L이다. 땅이든 장소든 경관이든, 영어—심지어 라틴어— 표현이나 그 약자를 쓰는 게 대세다. 세 번째 그룹은 대표 조경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다. 전통적으로 변호사, 의사, 건축가와 같은 전문가들은 사무실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의 여러 조경설계사무소 역시 마찬가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례를 많이 볼 수 없었다. 오래 전의 『환경과조경』 광고란에서 매달 볼 수 있었던 ‘김종해조경설계사무소’가 내 기억으로는 이 유형의 대표 사례다. 이원은 이교원에서 교를 뺀 이름 아닐까. 흥미롭게도 지난 십여 년간 새로 문을 연 사무실인 경우, 린, 오피스박김, D스퀘어, JWL, KnL처럼 소장(들)의 이름을 쓰거나 조합하거나 응용하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 로직은 논리가 아니라 초기 창립자들의 영문 성 첫 글자의 조합인 LOSYK이다. HLD의 뜻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 문의했더니 ‘호영리디자인’이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신생 사무실만의 경향은 아니다. CA도 ‘진’과 어소시에이츠이니 이 유형에 속할 테고, C’Topos는 ‘최’의 땅이니 이름과 대상이 결합된 예다. 네 번째 그룹은 사무실 이름에 설계의 지향점이나 설계 태도를 담는 경우다. 마당, 라이브스케이프, 비욘드, 빅바이스몰, 사이, 어리연, 우리엔, 채움, D+H(디자인 플러스 호프(Hope)), salmworkshop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유형에는 기타 또는 우연 정도의 카테고리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 이작은 ‘이번 작품’의 줄임말이라는데, 확인한 팩트는 아니다. 스튜디오 101은 수년 전의 『환경과조경』 연재물 제목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수는 소장의 딸 이름 ‘이수◯’에서 앞의 두 글자를 가져온 경우.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이 이수역 근처에 있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룹한의 작명 사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조경에 ‘한’ 맺힌 사람들이 모여 한을 풀어보자는 뜻이라는 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무실로 성장한 걸 보면 크다(大)라는 뜻의 우리말 ‘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한 것 같다. 아장스 테르 특집 덕분에 우리나라 조경설계사무소들의 이름과 그 사연을 새삼 즐겁게 생각해 보았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6개월간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를 마감하는 다음 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릴 예정이다. 편집실의 가을 풍경은 또 다른 시작을 새롭게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하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6년11월 / 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