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서울의 야경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1987년09월 / 19
  • 하천식물의 생태
    근래에 와서 환경 및 조경분야에서는 생태에 관한 관심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고 이러한 관심이 이제 개념적이거나 원칙적인 수준에서 점차 실천적이고 각론적인 수준으로 이행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생태적 지식에 바탕은 둔 합리적인 접근, 단기적인 개발위주보다는 장기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에 근거를 둔 거시적인 접근, 개별적 학문의 추구보다는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 바탕을 둔 종합적 접근과 같은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접차 그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한편 이러한 생태에의 관심과 그 지식의 활용을 요사이 造形芸術분야에서 설계원리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포스트 모더니즘」이 그 가치로서 인간화의 추구와 자연성의 회복을 들고 있는바,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극도의 실용성, 거대성, 단순성과 인위성이 비 인간화의 성격을 환경속에 부여하였으며 따라서 다소 무질서하고 장식적이고 비실용적이라 할지라도 自然그대로의 다양성과 역사적인 경관의 복고성 등을 도입함으로써 공간속에 진실로 인간됨을 구현하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가 조경분아에서는 「아이안 맥하그」교수의 생태적 접근방법에 의한 환경계획기법에서 처음 도입 되었고 이 개념이 발달됨에 따라 이에 대해 「란돌프 해스터」는 생태보존적 양식이라고 했드며, 이러한 양식은 야생경관의 연출이라는 주제로 실제 생태공원조성과 같은 특별한 목적의 설계가 이루어 지기도 하며 자연공원 지역 내에서는 자연 생태적 천이극상 경관이라는 「이슈」로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 키워드 : 하천식물, 조경, 생태보존, 생태적접근. 식물, 생태 ※ 페이지 : 65 ~ 72
    • / 1987년09월 / 19
  • 독일의 분구원운동
    분구원은 독일의 산업화 초기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로써 정부나 공공단체가 도시 내의 유휴지나 공한지를 정원을 갖지 못하는 소시민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줌으로써 영농을 통한 건강과 정서함양을 도모하도록 한 실용적인 도시녹지 제도이다. 이것은 정원과 공원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독일 특유의 實用的인 都市綠地 制度로서,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都市林과 더불어 都市綠地의 骨格을 구성하는 Open space이다. 이러한 분구원의 根本이 되는 槪念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住宅과 떨어져 있어 住宅과 한 울타리에 있는 住宅庭園과는 다르다는 점이며, 둘째로, 一地를 整地하고 劃하여서 수많은 筆地로 分割하고 이것이 집합하여 하나의 分園 地를 이루고 있으며, 셋째로, 대부분의 筆地는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되어 소시민이라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賃借庭園이라는 점과, 넷째로는, 時代的으로 약간의 변화를 가져 오기도 하였으나, 정원구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채류와 과수의 식재이며, 自給하려는 實用主義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온 가족의 自力勞動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別莊이나 週末農場과는 구별된다. ※ 키워드 : 분구원, 도시녹지, 도시림, 주택, 임차정원 ※ 페이지 : 52 ~ 58
    • / 1987년09월 / 19
  • 청평사 사원
    청평사는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천평리 청평산에 있다. 춘천 소양호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청평사 계곡 입구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800m쯤 계류를 따라 계곡을 오르면 산사의 山門같은 거북바위가 길손을 맞이한다. 여기서 300m쯤 오르면 시원한 장관을 이루는 九松폭포(높이 9m)가 있고 400m쯤 오르면 동쪽 산록 큰 암반위에 통일신라의 기법인 삼층석탐(일명 公主탑)이 서 있다. 이 석탐을 받치고 있는 바위의 암벽에는 「碧雲堂」,「度明」,「梵」,「錦溟堂」,「愚見」,「佛」,「南無觀世音菩薩」이라고 각자(刻字)가 새겨있다. 여기서 300m쯤 오르면 1984년에 건립한 누각과 숙소같은 건물이 있고 이를 지나 200m쯤 오르면 조선시대 부도가 있고 그 동쪽에 고려때 조성되었다는 影池라는 사다리꼴 못이 있다. 이 못에서 자연 암석 사잇길로 200m쯤 오르면 요즘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가 있고 개울 위에 콘크리트로 만든 仙洞橋라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 청평사의 절문에 이른다. 청평사는 근세에 佛殿이 모두 불타버리고 건물 기단들과 1577년 晋雨禪師가 건립한 남문인 廻?門(보물 제164호)과 석굴이 남아 있다. ※ 페이지 : 45 ~ 51 ※ 키워드 : 청평사, 청평산, 소양호
    • / 1987년09월 / 19
  • Stephen Tyng Mather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1987년09월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