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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활자산책
    1999년부터니까, 15년째 종이책을 만들고 있다. 9년은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만들었고, 6년은 단행본에만 집중했다. 그 기간 동안 만든 단행본이 대략 80권 남짓이니, 한 해에 5권쯤 편집한 셈이다. 단행본 에디터로서는 적은 양이지만,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잡지에 투자했으니 게으름을 피운 수준은 아니다. 에디터로 참여한 첫 번째 단행본은 1999년 8월에 출간된 『현대 한국 조경 우수 작품집』이다. 선배들이 주로 편집했고, 나는 거드는 수준이었다. 양장 제본된 406쪽 분량의 제법 두꺼운 작품집이었는데, 『환경과조경』에 1985년 9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실린 근작, 수상작 중에서 대표작을 골라 내용을 꾸렸다. 특이했던 점은 책에 실린 주요 이미지와 『환경과조경』 총 목차, 조경 관련 분야 명부, 조경 제품 사양 등이 실려 있는 CD를 부록으로 제작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환경과조경』에 15년동안 실렸던 주요 작품들을, 이 책을 편집하면서 압축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공부가 되었다. 아, 그리고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원래 이 책은 양장(하드커버)이 아니라 무선 제본(소프트커버)을 하려고 했었는데, 인쇄소의 실수로 표지에 문제가 생겨, 인쇄 및 제본이 모두 끝난 후 원래 책 크기에서 1cm 정도를 잘라내고 양장으로 다시 제작했다. 추가 비용을 인쇄소에서 부담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손해가 없었지만,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은 지금도 후반 작업에 신중을 기하게 하는 좋은 약이 되었다. 그 책을 기점으로 어쩌다가 단행본 담당자가 되어 적지 않은 조경 책을 편집했다. 출판 의뢰가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연차가 쌓인 후에는 자체 기획도 조금씩 시도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조경 관련 도서를 뒤적이게 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 글은 그렇게 만들고 접한 몇 권의 책 이야기다. 초기에는 『한국 조경 설계경기 작품집』(한국조경사회 편), 『골프코스 설계 및 시공』(마이클 허잔 저, 황원 역) 등 주로 출판 의뢰가 들어온 책들을 편집했다. 차례부터 제목까지 전적으로 필자의 의견에 의지했다. 출판기획서도, 에디터의 역할도 머릿속에 없을 때였다. 출력소에서 필름 교정을 볼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제발 큰 잘못은 없기를’ 따위의 주문을 몇 번이나 되뇌고, 불안한 마음에 교정 오케이를 쉽게 내지 못했다. 이때 펴낸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신 실내조경학』(이종석·방광자·김순자 저)이다. 올해 초에 여섯 번째 인쇄를 할 정도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전문 서적은 역시 교재가 갑이다’라는 깨달음(?)을 준 책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책은 『건강을 부르는 웰빙 가든』이다. 다른 기자가 기획하고 필자도 섭외했는데, 당시 막 뜨기 시작한 ‘웰빙’을 ‘정원’과 접목시켜 개정판까지 펴냈다. 『주택 정원』을 제외하고 처음 펴낸 정원 책으로, 정원 책의 가능성을 어렴풋이나마 맛보게 해주었다. 필자인 이성현 대표는 이후 『정원사용설명서』를 함께 펴냈고, 지금도 올 하반기 출간을 목표로 『건축가의 정원, 정원사의 건축』이란 타이틀의 책을 함께 작업 중이다. 또 한 권을 꼽자면, 『재료의 미학』이 떠오른다. 필자인 황용득 대표가 소장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슬라이드 필름도 인상적이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들었던 재료의 물성, 단행본을 통한 자료공유의 필요성, 답사 뒷이야기에 대한 잔상이 꽤 오래남았다(이 책은 후에 『돌, 철 그리고 나무』란 타이틀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에디터로서 각성을 하게 된 책 중의 하나는 『현대 조경 설계의 이론과 쟁점』(배정한 저)이다. 입사 이후 맡았던 연재 원고 중에서 피드백이 가장 많았던 ‘동시대 조경 이론과 설계의 지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어서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담당자였던 내가 단행본을 출간하자는 필자의 제의에 난색을 표했다. 연재가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행본으로 묶어내면 아무래도 판매가 저조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로 출간 10주년을 맞이한 이 책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다(현재는 절판 상태인데, 개정판을 낼 계획이다). 대학 시절 읽었던 수 많은 소설집이 문학 계간지에 수록되었던 작품을 묶어서 펴낸 것이었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당시에 『현대 조경 설계의 이론과 쟁점』에는 왜 그리 박한 평가를 했는지, 지금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기점으로, 잡지 연재 후에 단행본을 묶어내는 방식의 기획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면서 본문 표기 원칙, 주석 표기 원칙 등 몇 가지 기준을 뚜렷하게 세울 수 있었고, 디자인과 판형에 대한 감도 조금씩 잡을 수 있었다(그렇다고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활자산책
    디자이너, 저자가 되다 편집부 앞으로 온 이메일 한 통. 조경가 L이 평소에 써두었던 원고를 보내며 출판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조경 답사를 다니며 기록해둔 메모 성격의 원고로, 조경설계에 관한 전문가적 의견이 담겨 있었다. 메일을 읽고 있자니, 불황의 한복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출판 시장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아니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독자층이 옅은 전문 도서는 더더욱 출간에 이르기 어렵다. L에게 바로 답장을 하지 못하고 고민이 이어졌다. 학자나 작가, 혹은 기자가 아니라면 대개 글쓰기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조경 동네를 둘러보아도 책을 쓰는 디자이너를 찾기 어렵다. 디자이너가 작품집이 아닌 책을 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디자이너에게 책을 쓰는 일이 필요하긴 한 걸까. 디자이너는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디자이너의 책을 읽어줄 독자는 어떤 사람들 일까. 예비 저자들은 대개 그들의 첫 책의 독자로 실무자, 인접 분야 전문가, 학생 그리고 관심 있는 일반인들까지를 막연하게 함께 꼽곤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를 향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문체나 내용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건축 관련 글과 땅콩집으로 유명한 구본준 기자(한겨레)는 그의 저서 『한국의 글쟁이들』(2008)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부상한, 글쓰기가 삶의 중심인 ‘글쟁이’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글쟁이들이 “전문성과 대중성의 중간, 지식을 생산하는 학문의 최전선과 독서 대중 사이에 존재하며 양쪽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가 아니더라도 준전문가로서 해당 분야의 최신 지식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 이런 글쟁이들은 분야의 대중화를 선도한다. 극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소수의 전문가들과만 공유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귀 기울여볼 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글쟁이들은 “‘전달력’을 중시하며 독자지향적인 기획 마인드를 추구한다.” 도시나 건축 동네로 고개를 돌려보면 책을 펴내는 디자이너들이 좀 더 많다. 지난 10~20년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책들 그리고 전문가의 울타리를 넘어 대중의 관심을 받은 책들이 있다. 그들은 왜, 누구를 향해 책을 쓰고, 그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도시·건축 분야의 책들을 되짚어 보면서 김진애를 빼놓을 수 없다.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한 그녀는 서울포럼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꾸준히 글을 쓰기도 하고, 동료 건축가들의 책을 기획하면서 책 쓰기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런 김진애가 1999~2001년 ‘자라기 시리즈’(『매일매일 자라기』, 『프로로 자라기』, 『사람으로 자라기』)를 냈다. 그녀가 서문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듯이 이 시리즈는 건축 입문을 고민하는 사람, 관련 대학생, 젊은 실무자들, 건축팬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학교에서 잘 다루지 않는, 실무세계에서도 서로 알겠거니 하고 말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일종의 도시건축 분야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다. (『환경과조경』 315호 특집의 제목인 ‘조경가로 자라기’는 이 시리즈에서 빌려온 것이다.) ‘탐험하기’, ‘만들기’, ‘커뮤니케이션 기’, ‘쌓아가기’, ‘감지하기’ 등과 같이프로가 되기 위한 구체적 안내가 담겨있다. 김진애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문체와 그 시시콜콜함이 매력이다. 이 시리즈가 출간된 지 이미 15년이 지나 사회적 상황과 전문 분야의 지형도 여러모로 변했고 책의 편집도 요즘 취향과는 다르지만, “배우는 재주도 배워야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직능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의 존재가 부럽게 느껴진다. 대중을 위한 건축 입문서로는 단연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1998)를 꼽을 수 있다. 서현은 “건축가가 건물을 만드는 과정을 짚어”보며 건축가들은 어떤 관점에서 건물을 바라보는지, 여기에는 어떤고려 요소가 있는지 등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고있다. 이 책의 후기에서 서현은 “대상의 감상과 판단은 스스로 하여야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받침이 지루하게 이 책에서 서술된 것이다”라고 썼다. 이러한 생각은 전문가를 위해 쓴 책에서도 이어진다. 『건축을 묻다』(2009)에서 그는 ‘건축은 무엇인가’ 그리고 ‘건축은 예술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예술, 기술, 기능, 공간, 사회, 역사, 도시와 같은 연관 개념과의 관계성을 파악한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확인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건축은 직접 찾아가서 보고 책은 원본을 찾아보고자 노력했다고 밝혀두고 있다. 책을 쓰는 과정이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여정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건축가에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필요한,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활자산책
    “독서도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깊이 공감한다. 독서가 종종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이만큼 흥미로운 행위가 또 있을까 싶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로 글은 계속해서 쓰여졌고, 책 또한 만들어졌다. 현재 전 세계에 출판된 책의 수는 헤아릴 수 없으며, 그 한 권 한 권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역시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하드커버를 두른 네모난 모양의 종이뭉치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생각해보자. 독서보다 건전하고 유익하며 안전한(?) 행위가 또 있을까? 물론 찾아보면 몇 개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독서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책 읽기는 점점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감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족시키는 뉴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어느새 책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대답은 ‘예스’다. 사실 이러한 질문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니, 참 억지스럽지 않은가. 이 짤막한 글은 앞의 질문을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로 바꿔 읽으려는 나의 노력이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주 이상하다 -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어릴 적 나의 꿈은 화가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간, 동네의 작은 미술학원 선생님이 예뻐서는 아니었다(절대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하얀 종이 위에 점을 찍고, 선을 그려나가는 과정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나의 꿈은 교사에서 과학자로, 다시 산업디자이너로 의사로 작가로 교수로 기자로 수십 번도 더 바뀌었다. 하지만 이렇게 장래 희망이 바뀌는 동안에도 늘 함께한 것은 책이었다. 하지만 위인전과 같은 책에는 쉽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책장에 꽂혀있던 위인전 전집은 그 위에 덕지덕지 쌓인 먼지만큼이나 싫었다. 미래에 대한 나의 꿈이 많이 바뀐 이유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을 뿐더러 궁금증이 많았기 때문인데, 그 나이에 본받을 위인들에 대한 딱딱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나의 지식에 대한 갈증에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작가’라는 평을 받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단비와 같은 책이었다. 많은 것을 알고는 싶어했지만, 그 수고를 생각하고 포기하곤 했던 내게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라니, 거기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강렬한 제목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기자 출신의 여행 작가인 빌브라이슨은 스스로 궁금하게 생각했던 과학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3년에 걸쳐 파헤쳤다. 우주, 지구, 입자, 생물과 미생물, 인류, 생명, 화학, 기후 등등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으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물의 역사를 쉬운 말로 써놓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저자가 깔끔한 문장으로 풀어쓴 자연과학의 원리와 비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된다. 중학교 시절에 이 책을 접하고,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나의 독서는 작가의 필력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에드워드 윌슨, 『통섭』 여기저기서 ‘통섭’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공모전에서도 이 단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통섭은 과연 무슨 뜻일까.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컨실리어스Consilience’의 번역어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으며, 통상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융합, 퓨전과 같은 개념이 유행하고 있는 요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용어다. 지금까지 인간은 세상을 인식함에 있어서 거대한 세상을 여러 분과로 나누는 환원주의還元主義 방식을 채택했다. 환원주의 방식의 폐단은 각 분과 간의 우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효과적인 방법이 환원주의로 쪼개진 세상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것, 즉 통섭이다. 통섭은 지식의 경계를 무조건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들이 서로의 이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 통섭의 매력이 있다. 저자는 서구 학문의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분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지식통합의 가능성을 찾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합된 지혜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 인턴 기자,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email protected] / 2014년09월 / 317
  • 한국의 나무 특강 활자산책
    식물을 공부하려고 책을 찾는 사람은 대개 도감을 먼저 고른다. 그리고는 각기 다른 특징으로 무장한 색다른 형식의 도감을 추가로 구매한다. 조경학과에 입학한 순간부터 식물 공부에는 정도가 없고, 직접 보는 것이 최선이며, 도감은 필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한국 조경 수목 핸드북』(김용식 저) 같은 책을 들고 수목원과 식물원, 대학 교정을 거닐었지만 암만 봐도 그놈이 그놈 같았다. 도감과 관찰은 기본이고, 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식물과 먼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건 불과 얼마 전이다. 간단하게 유래만 살펴보는 것보다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식물을 이해하는 것이 도감을 몇 번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일까? 식물에 해박한 전문가 중에는 이야기꾼이 많다. 수목원에서 일하는 가드너, 임학과나 원예학과 교수, 나무병원장, 나무 칼럼니스트 등을 만나보았는데, 하나 같이 글을 잘 쓰고 맛깔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내가 만났던 이들이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대개 신화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 “이야기 속에서 식물의 흔적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약속한 듯 입을 모으기도 했다.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고규홍 저)은 바로 그런 식물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는 책이다. 먼저 이 책에 소개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를 좀 들여다보자. 안동 용계리에는 약 700살쯤 먹은 은행나무가 있다. 한국에 살아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슴높이 둘레가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많은 전설이 얽혀 있는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모셔지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천연기념물 175호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그런데 1987년 댐 건설로 마을이 물속에 잠길 처지에 처하면서 위기를 겪게 되었다. 당시 공사를 주관한 한국수자원공사의 이상희 사장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이 나무를 보고는 공사 이후에도 나무가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여러 전문가를 통해 예산만 충분하다면 이식을 통해 나무를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은 그는 청와대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해 8월 은행나무 보존을 위한 조례가 제정 공포되었고 보존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때, 나무 이식 공사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고 이철호 회장(대지개발)이 나섰다. 이 회장은 나무를 들어올리기 위해 H빔 공법을 이용했다. 나무가 워낙 크고 무게가 680톤이나 돼 나무를 조금씩 들어 올리면서 빈틈에 흙을 메우는 방식으로 천천히 공사를 진행했다. 원래 있던 자리보다 15m 높이 올라가게 되었는데, 임하댐이 완공된 뒤의 만수위보다 높아졌다. 공사는 총 4년이 걸렸다. 다시 1년을 관찰하며 점검한 결과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공사에는 2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나무 하나를 살리기 위해 시행된 공사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형 공사였다. 책에는 나무에 얽힌 전설과 이후 이야기가 더 담겨있지만, 여기서는 일부만 요약했다. 이처럼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은 나무에 얽힌 우리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의 생리와 이용, 재배 및 관리법에 대한 팁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한 페이지에 걸쳐 은행나무가 침엽수인 이유를설명하는 대목이다. 침엽수와 활엽수를 구분하는 방법은 잎이 가늘고 뾰족한지, 잎이 넓고 둥근 면이 있는지를 보면 된다. 은행나무는 후자에 해당하는데 침엽수로 구분된다. 구분법을 배운 직후에는 도감이 잘못되었는지 의심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론상 침엽수가 맞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알기 쉽게 묘사해 놓았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나무를 둘러싼 이야기지만 나무 자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 생각의 탄생 활자산책
    괜히 찔린다. 나는 이런 글을 쓸 만큼의 독서량을 갖고 있지 않다. 대학교 2~3학년 때였나, 한창 ‘인문학 읽기’가 유행한 적이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디자인, 상상력, 기능과 형태, 예쁘거나 좋아 보이는 것에 대한 탐구욕이 강했기에 시류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히 편식된 독서 리스트를 갖고 있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도 ‘책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과연 재미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태국에서 조경학과를 다닌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린 1학년 때는 조경에 대해 배우지 않고 디자인 원론을 공부했어.” 거기에 착안해서 나의 책 읽기 경험의 공유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나만의 ‘디자인 상상 수업’을 짧은 픽션fiction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2014년 9월 서울 어느 대학교 조경학과에 디자인 일반론 수업이 새로 개설되었는데, 여기서 행정상 오류가 발생한다. 교수가 잘못 배정된 것이다. 디자인과 전혀 관련 없는 철학과 교수다. 하지만 공립학교다 보니 그대로 한 학기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 수강 취소를 고려하던 중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수업 교재로 쓸 만한 좋은 책을 추천하면 추가점수를 준단다. 과목의 제목은 ’상상력과 디자인’이다. 수업 형태는 이론과 실습으로 3학점이다. 물론 책으로 하는 상상 속의 수업이다. 1. 생각의 탄생 개강 2주차. 교수님도 아직까지 적잖이 당황하신 듯하다. 하지만, 첫 수업의 책은 직접 정해오셨다. 제목은 『생각의 탄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라는데. 막상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그저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한 수많은 천재들의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13가지의 방법론적 접근들은 ‘그들이 실제로 했던 방법을 따라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하기 위해 생각의 구조를 재편하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왜 그 책을 들고 오셨냐는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대부분이, 10여 년간 받아먹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니까 그렇지, 너희가 생각하는 법을 안다고 보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창조적인 활동과는 지극히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온 신입생들에게 하는 말이려니 싶었지만, 나 역시 뜨끔하긴 하다. 어쨌거나 책을 훑어본다. 생각 도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관찰’, ‘형상화’, ‘추상화’,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등의 딸림 제목들을 보니 ‘상상력’과 ‘디자인’ 두 단어 모두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이번 가을은 다르게 사고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을 익힌다. 2.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이젠 긴 바지가 덥지 않다. 과목명에 상상력이 들어가서 일까? 아니면, 그래도 들어본 ‘진중권’의 책이라서 일까? 어쨌거나, 누군가가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추천한 듯하다. 다행히 읽어본 책이다. 수업의 일반적인 개요를 논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라는생각이 든다. 내가 적은 추천 리스트에도 들어있었는데, 미리 말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나는 이 책을 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우선 상상력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제목과 서론에서는 언급했지만, 이 말랑말랑 한 책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점이 좋았다. 한때 유행했던, ‘~미쳐라’ 시리즈를 보면, 자꾸 미치라는 소리 때문에 미칠 뻔했다. 다시 책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주로 미학에 관련된 내용만으로 끌고 가며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가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패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저자의 취향도 묻어나는 책이다. 이 책은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보통의 책과는 다르게 돌려보고 눕혀보고 숨어있는 그림을 찾아내야 하는 등, 은근 노동 아닌 노동을 시킨다. 고정되어 있는 출판물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어쩌면 그 자체가 상상력인 것 같다. ‘새로운 시각의 경험’, 그것만으로 본전은 뽑은 책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이번 수업의 끝을 알리는 듯한 단어가 교수님 입에서 나온다. ‘디자인.’ 내가 이걸 알아챈 이유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권의 책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미학·예술 분야에서 상상력 넘치는 예시들을 통해, 과목에 대한 간은 보았다.
    • 양다빈 / 2014년09월 / 317
  • 1969년 이후의 조경 이론 활자산책
    “형, 읽을 만한 전공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내일 한 십만 원 준비해서 나올 수 있니”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다. 똑똑해 보이는 한 선배의 손에 이끌려 조경 관련 원서를 불법 복제해 파는 작은 출판사에 갔다. 충무로의 한 허름한 건물 2층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스무 권 남짓한 책을 집으로 가져와 아주 자랑스럽게 책꽂이에 꽂았다. 존 옴스비 사이몬즈John Omsbee Simonds의 『조경학Landscape Architecture』과 마이클 로리Michael Laurie의 『조 경 학 개론Introduction to Landscape Architecture』이 끼어있던 걸로 기억된다. 나머지는 투시도나 수목 심벌 그리기 연습용 책이거나 (엄밀히 말하자면) 조경의 범위를 벗어나는 도시계획, 토지이용계획, 환경 정책 관련 책들이었던 것 같다. 하늘같은 선배의 권장 도서이므로 나는 그 책들 속에 조경의 모든 게 있는 줄 알았고 그게 조경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조경(학)이 만족감을 주지 못함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소위 ‘사회과학’서적을 열심히 기웃거렸다. 하지만 딜레탕트 고유의 열등감을 키우는 촉매로 작용할 뿐이었다. 책과 담을 쌓았다. “넌 ‘비평’을 해라, 조경 비평.” 3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은 환경 관련 시민운동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선배, K교수가 던진 말이다. 전후 맥락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비평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 두 글자에 이유 없이 가슴이 뛰었다. 허전함과 공허함을 동반한 조경 공부의 갈증, 어쩌면 비평을 통해 그 목마름을 해소할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겨났다. 갈증의 원인은 계획이나 설계, 즉 노하우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이론과 비평, 즉 노와이know-why의 공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미술이나 문학 비평의 참고서들은 많았지만 조경을 중심에 두고 읽을 비평 개론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건축 비평으로 눈을 돌리자 책 한 권을 건질 수 있었다. 웨인 애토우Wayne Attoe의 『건축과 비평적 상상력Architecture and Critical Imagination』(1978). 그냥, 무조건 번역하기로 했다. 고백하건데 내 석사 논문의 절반 이상을 애토우의 책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와 채웠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플러스 펜 두세 다스를 소진시키며 쓴 이 책의 번역 노트 세 권을 최근에 발견했다. 누렇게 변한 종이와 시퍼렇게 번진 잉크로 남은 옛 시간의 그림자를 보고 있자니 그 시간 속의 사건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나오는 것 같아 얼른 공책을 덮었다. 이후 몇 년간, 이 책 저 책, 정말 많은 양의 목적 없는 ‘나홀로’ 번역을 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나는 번역이라는 종교의 충실한 신도였다. 그건 공부를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번역은 한없이 외로운 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기, 끊임없이 침범하는 학문적 열등감에 맞서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 였다. 로스메리 월드롭의 말이 떠오른다. “번역은 몸에서 혼을 짜내서 다른 몸으로 꼬여내는 것과 같다.”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나 번역을 통해 나는 책과 화해했고 비로소 조경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럼, 이 책을 보게.” 환경, 그리고 미학. 매력적인 이 두 단어를 동시에 품은 박사 과정 과목 ‘환경미학’, 수강생은 나 혼자였다. 막막하던 학기 초의 탐색기가 끝나갈 무렵 C교수님은 아놀드 벌리언트Arnold Berlenat의 『환경미학The Aesthetics of Envi ronment』(1992)을 잠시 보여주셨다. 유학 중 잠시 귀국했던 Z선배로부터 구한 복사본을 다시 복사한,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이번 학기엔 그냥 이거 번역해 보겠습니다.” 과목명과 책 제목이 일치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된 독서였지만, 이 책은 이른바 ‘독서를 통한 개안’의 차원을 처음 경험하게 해주었다. 벌리언트의 『환경미학』과 그의 전작 『예술과 참여Art and Engagement』(1991)를 통해 산만하던 나의 미학적 지식을 체계화할 수 있었고, 이원론에 입각한 서구 근대 미학의 한계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적 논의로서 환경미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껏 기댈 수 있는 벽을, 새로운 시각을 허락하는 창을 책에서 만났던 당시의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4년09월 / 317
  • 활자산책
    활자 산책을 떠나며 책 권하지 않는 사회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스마트폰이 점령한 우리의 일상에서 ‘책’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출간 종수도 눈에 띄게 줄었고, 주요 독서층은 고령화되었다. 20대가 독서 시장을 견인하던 호시절은 풍문으로만 남았다. 텍스트는 SNS의 위력 앞에서 파편화되었고, 140자 단위의 짧은 호흡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좀처럼 책을 펼쳐들지 않는다. ‘그래도 종이책은 살아남는다’던 희망 섞인 전망이 ‘그래도 종이책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경 동네로 범위를 축소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조경을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조경 담론과 조경 문화의 근간? 공허하다. 화려한 이미지로 중무장한 화보집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소비되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풍성한 담론은커녕, 조명해볼만한 책이 몇 종이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책장을 넘겼다. 도서관을 뒤지고, 필자를 만나고, 서점을 순례하고,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독서 경험을 떠올리고, 몇 권의 책을 추렸다. 이번 호 특집은 그 책 읽기 경험의 공유다. 그래도 책을 권하다 활자 산책을 준비한 까닭은 소박하다. 몇 권의 책이 조경의 허약한 문화적 기반을 살찌울 수 있으리란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추천 도서’ 목록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지극히 주관적이더라도 말이다. 흔히들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젊은 시절의 폭넓은 경험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답사와 독서를 포함한) 문화 체험을 강조하곤 하지만, 막상 뚜렷한 안내판이 없다는 점도 떠올렸다. 많이 경험하고,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것을 강조하지만,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읽을 만한 책을 찾아 다른 이들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던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무 딱딱하지 않게 두런두런 책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다. 올해 진행했던 특집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도 자극이 되었다. 2월호 특집 ‘우리시대 아파트 담론의 지형도’와 5월호 특집 ‘서울의 오늘을 읽다’에 필진으로 참여한 전문가들은 『아파트와 바꾼 집』, 『아파트 한국사회』,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못된 건축』 등의 책을 펴낸 필자였다. 그것도 굉장히 알찬 내용의 책을. 그뿐이 아니다. 6월호 특집 ‘부산시민공원’의 필자는 모두 『부산의 꿈 - 캠프 하야리아의 시민공원 만들기』의 저자였다. 몇 권의 책이 특집의 토대가 되어준 것이다. 당시 ‘아파트’를 주제로, 또 ‘서울’을 주제로 쓰인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나누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아예 한 호쯤은 책을 특집으로 해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온 것도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주관적인 너무나 주관적인 과문한 탓이겠지만, 국내에서 조경 관련 추천 도서 목록을 찾는 일에는 실패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경학과 홈페이지 (www.design.upenn.edu / landscape-architecture / recommended-reading)에서 찾은 63권의 권장 도서recommended reading와 올해 7월에 출간된 『Landscape Architecture: A Very Short Introduction』의 뒷부분에 실린 몇 권의 추천 도서 목록만을 얻을 수 있었다. 세분화된 추천 도서가 필요하다면, 관련 박사 논문의 참고문헌을 뒤적이면 되겠지만 우리의 의도는 그와는 좀 달랐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조경 동네에서 독서량이 많은 이들이 누구일까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잡지 연재필자와 단행본을 펴냈던 필자, 그리고 편집위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떤 이에게는 ‘내 인생의 책’ 5권을, 또 다른 이에게는 ‘조경학과 학생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 5권을 부탁했다. 편집부 기자들도 각자 10권부터 20권 가까이를 추천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모으다보니, 순식간에 200여 권의 목록이 쌓였다. 10권 이상을 보내온 고마운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장르도 다양했다. 누구는 『오만과 편견』에서 영국인들의 정원 문화를 끄집어냈고, 왠지 추천 도서 목록에서 빠질 것 같지 않은 『월든』이나 『조화로운 삶』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Design with Nature』 같은 전공 서적은 중복되어 거론되었고, 『동아학생대백과사전』 같은 다소 엉뚱한 책도 호명되었다. 어느 정도 리스트가 쌓여가자, 처음 생각했던 추천 도서 목록을 제시하는 방안이 최선일까 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부담도 컸다. 결국,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책을 중심으로 하되 몇 개의 가지를 나누어서 ‘주관적인’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쪽으로 큰 방향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특집의 제목에 ‘권장 도서’ 혹은 ‘추천 도서’라는 수식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일곱 가지 갈래의 독서 경험 다섯 명의 편집부 기자와 편집주간, 마침 여름방학을 이용해 실습을 나온 우성백 학생까지, 총 일곱 명이 각기 한 편씩 총 일곱 편의 원고를 완성했다. 그렇다고 일곱 가지 갈래를 조경, 건축, 예술, 문학처럼 도식적으로 나누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경 전문 잡지이니까 조경 도서에는 두 꼭지를 할애했다. 한 명은 그동안 조경 책을 편집하고 만든 경험을 되돌아보았고, 또 다른 한 명은 조경 책을 중심으로 한 독서 경험을 반추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조금씩 결이 다른 분야의 책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정리된 일곱 편의 원고 제목은 모두 실제 책 제목이다. 해당 부류의 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책이라서 제목으로 뽑은 것은 아니다. 각 원고의 내용을 단적으로 함축하는 책 제목을 원고 제목으로 빌어 왔을 뿐이다. 한때, 그러니까 책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던 시절,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나 『장정일의 독서 일기』 같은 책이 꽤 인기 있었던 적이 있다. 물론 최근에도 이현우의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 된다』처럼 ‘책을 읽는 책’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읽어본 책에 대해서는 색다른 시선을,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 누군가의 내밀한 지식 창고를 엿볼 수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특집이 그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는 없겠지만, 타인의 책꽂이를 엿보는 소소한 즐거움은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가을, 종이책을 펼쳐드는 당신에게! 덧붙이는 글 특집의 구체적인 짜임새를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내 인생의 책’과 ‘조경학과 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전해주어, 이번 특집에 풍성함을 더해준 편집위원과 잡지 연재 필자, 단행본 필자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 1969년 이후의 조경 이론 _ 배정한 2. 조화로운 삶 _ 조한결 3. 생각의 탄생 _ 양다빈 4. 한국의 나무 특강 _ 이형주 5. 거의 모든 것의 역사 _ 우성백 6.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_ 김정은 7.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_ 남기준
    • 남기준 / 2014년09월 /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