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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의선숲길을 거닐다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20대 초중반을 대흥동에서, 후반을 동교동에서 보내고 있다. 동아리 선후배 및 동기들과 어울려 이 주변 술집과 골목을 누비며 밤을 새고 무수한 레포트와 이력서를 동네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쓰곤 했던 내게 (현재의)경의선숲길과 그 일대는, 말하자면 나의 ‘주 무대’ 같은곳이다. 지금이야 이곳에 공원이 들어서고 주변에 번듯한 상가도 세워져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철길 일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이 었다. 철길로 인해 오랫동안 단절되어온 탓에 철길을 사이에 두고 도시의 풍경은 낯선 느낌이 들만큼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서강대 학생들에게 철길 너머의 인근 하숙촌은 옆 건물 하숙생 알람 소리에 맞춰 기상한다는 농담―실제로 경험해 본 바, 단순한 우스개만은 아니다―이 있을 만큼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소금 단지만큼 짠내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의 바가지로 악명 높은 동네였다. 철길 일대는 가로등이 별로 없고 으슥해 늦은 밤이면 근처를 지나가기가 망설여지는 위험 지역이기도 했다. 철길을 따라서 억센 잡초가 뒤덮고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지만 아무도 이곳을 치우거나 가꾸지 않았다. 한때 중요한 물자와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는 경의선 철길은 도시 조직에 파묻히고 결국 지중화되어 폐쇄되면서 지역의 슬럼으로 변해갔다. ‘별 것 없는’ 공간이 사랑받는 법 5~6년 전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이 으슥한 ‘뒷골목’이 공원으로 바뀐 것을 처음 보고 느꼈던 놀라움을 말하기 위해서다. 2012년,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찾아가 봤던 경의선숲길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은 규모도 크지 않고(17,450m2) 디자인이 특별히 세련된 것도 아니지만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주민들이 활발히 이용하는 ‘생기 있는 공원’이었다. 올해 개장한 경의선숲길 2단계 구간(연남동, 염리동, 새창고개 구간), 특히 연남동 구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뜨거울 정도다. SNS나 블로그 등에 공원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고 공원을 중심으로 한 상권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인근 스트리트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에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찾는 생활형 공원이 되고 있다는 점은 이 공원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다 금방 시들해질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느 공원처럼 탁 트인 광장이나 테마 놀이터도 없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도 힘든 좁고 긴 선형 공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경의선숲길권역의 문화 재생과 늘장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누구를 위한 숲길 공원인가 지난 6월 말 메르스 여파 속에서 서울시의 경의선숲길 2단계 공사(연남동, 염리동, 새창고개 구간)가 완료되었다. 6.3km에 걸친 선형 공원의 상당 부분이 개통되어 앞으로 경의선숲길은 주변 지역에 여러 가지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경의선숲길은 그 규모와 특성과 함께 의미 또한 중요하다. 우선 폐선부지 전 구간에 걸쳐 유휴 공간을 체계적으로 활용해 공원 녹지가 추가적으로 확보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의 서북 생활권을 관통하는 녹지축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 이미 공원 조성과 운영 관리 과정에서도 지역 여건을 반영한 ‘문화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연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 공원의 조경 요소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적 삶의 문화를 생태적 요소와 함께 어우러지게 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특히 서교동, 연남동, 신촌등 홍대 문화권과 크게 맞물려 있는 문화 지형적 특성을 감안하면 경의선숲길은 서북권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주민 협의와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시민 참여에 바탕을 두고 공원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공원이 도시 차원에 미칠 영향을 고려 하면서 향후 운영과 관리를 위한 거버넌스를 준비했는 가’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주변의 도시적 맥락보다는 경의선숲길 자체에만 의미를 국한시킨 점, 그리고 제한적인 주민 참여라는 한계는 이미 서울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상호 협약에서부터 예견되었다. 협약의 내용은 공단이 서울시에 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사용권을 제공하는 대신 서울시는 역세권 개발과 관련한 인·허가에 협조한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서울시가 지역 생활에 기반한 장소성과 도시적 전략의 차원에서 경의선 권역을 다루기 어렵게 하는 한계선을 이미 설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역세권 개발 방식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거의 2km에 이르는 구간에서 실행될 대기업의 대형 역세권 개발이 주변 지역에 야기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정한은 1996년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를 설립하여 7년간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199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마을만들기’라는 개념을 이론화하고 인사동 유지 보전을 위한 작은 가게 살리기 활동을 펼쳐 인사동 지구단위계획과 문화지구 지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인사동과 북촌한옥마을을 기반으로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를 운영한 바 있다. 2001년 이후 홍대 앞 클럽데이를 10년간 주관했고, 2003년 지역 재생과 공간 재활용을 아젠다로 내걸고 문화·예술, 도시, 건축, 조경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지역 활동가 100여 명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공간문화센터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경의선 폐선부지의 개발 유보지에 세워진 사회적 경제 장터 ‘늘장’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 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거실 같은 골목길 예전에 필자가 살던 동네의 골목은 자동차 한 대는 쉽게 지나가도 동시에 두 대가 지나가기에는 어려운 좁은 폭의 길이었다. 그 골목길 어귀의 전봇대 불빛 아래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도매 식품’이라는 간판을 단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과자는 200원짜리 ‘가나초콜렛’이었다. 포장은 밤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였는데 왜 다른 포장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낮 시간에는 할머니와 ‘일하는 언니’들이 골목길에 나와 수다를 떨곤 했고, 그 옆에서는 유치원을 다니기엔 아직도 많이 어린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런 골목길이 하교 시간부터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는 축구나 야구를 하는 동네 운동장이 된다. 주말 낮이나 평일 저녁에는 어른들이 배드민턴을 치러나오기도 했다. 배드민턴공은 대문 위에 떨어지기 일쑤여서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가끔씩 벽을 타고 올라가서 몇 개씩 주워오곤 했다. 장황하게 골목길의 풍경을 묘사한 이유는 우리의 골목길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해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1970년대까지 골목길은 우리의 거실이었고 운동장이었다. 그러다가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골목길=주차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어 멀리 있는 시골도 편히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대문 앞의 공원 같고 마당 같고 운동장 같던 골목길은 없어졌다. 운동장 같던 골목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자동차를 얻었으니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놀이터가 필요 없다. 방과 후에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가끔씩 서는 장터를 위해 수십 년간 사용되어 오던 놀이터의 놀이기구와 모래를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공터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가 집을 나서 갈 수 있는 곳은 돈을 내야 들어 갈 수 있는 카페와 정신없는 길밖에 없다. 새로 짓는 계획 도시의 중앙에는 좋은 공원이 자리 잡고 있지만, 왠지 그 공원은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작정하고 차려입고 가기 전에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질 않는다. 서울숲이 그렇고, 분당중앙공원이나 광교호수공원도 그렇다. 참 좋은데 자주 가기는 힘들다. 공원과 접근성 얼마 전 경의선숲길을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이 공원은 다르다. 근처 홍익대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처음 개장한 다음에는 가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잡지사에서 건축가의 시선으로 경의선숲길을 평해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게 되었고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마음을 잡고 가보았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곳을 찾지 못해 헤매었다. 경의선 홍대입구역 7번 출구로 들어가서 3번 출구로 나온 다음에야 겨우 경의선숲길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하게 뚫린 선형 공원의 개방적인 모습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공원 주변으로 있는 각양각색의 맛집과 소위 ‘힙’해 보이도록 리모델링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블루스’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항정살 철판구이’를 맛있게 먹고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이 공원의 특징은 주변의 도심 조직과 밀접하게 붙어있다는 점이다. 서울숲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대규모로 조성되었음에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센트럴파크에 비해 현격히 적은 이유는 서울숲의 주변부 대부분을 단절하는 강변북로와 순환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겨우 도시와 접한 성수동쪽 면이 부분적으로 공원과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갈 일 자체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센트럴 파크는 직사각형의 공원 부지 사방으로 수많은 거리가 접하고있어서 다양한 도심 속 프로그램과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하다. 한 예로 센트럴 파크 중심에서 5번가로 나오면 바로 앞에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 보이고, 심지어 5번가와 접한 공원 내에는 록펠러가 기증한 엄청난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도 있다. 미술관 하나는 공원 바깥쪽에 다른 하나는 공원 안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마치 공원과 도시가 ‘장군 멍군’하는 형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센트럴 파크는 도시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공원이 된 것이다. 반면에 서울숲은 도로로 막혀 있다. 분당중앙공원 주변으로는 아파트 숲밖에 찾아 볼 수 없으며, 누군가 공원에 가려 해도 구름다리를 타고 7차선의 도로를 건너야 한다.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이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하버드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리처드 마이어 뉴욕 사무소와 MIT건축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0년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09년 젊은 건축가상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Modernism : A Hybrid between Eastern and Western Culture』, 『52 9 12』, 『현대건축의 흐름, 모더니즘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 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손 잡는 숲이 될 때까지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멈추기 어렵다는2 설계 공모전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짓는 사람에게는 다시 반복되는 일이라도 그 때마다 기쁨을 기대하는 ‘완성’이라는 순간이 있다. 흥분감이나 초조함이라는 자극적인 상태는 이미 잉태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차분해졌고, 희열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보다 그 때만큼은 ‘엄숙함’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 까?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공간을 (바쁘다보니?) 완성된 이후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설계자도 있지만, 시공 현장까지 면밀하게 체크해가면서 설계를 피드백하고 해결해가는 책임 있고 부지런한 설계자에게도 그 완성의 순간 이전과 이후에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그저단 하루의 차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라면 그 순간은 언제일까? 사사키 요우지는 이 순간을 “준공식이 있던 날 초대된 어린이들이 느티나무 숲 속을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아이들의 신선한 옷 색깔이 모노톤으로 통일된 바닥과 대비되어 약동하였다. 그 풍경이야말로, 우리들이 목표로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도시 광장’ 탄생의 순간이었다”3라고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기대했던 모습을 확인하는 희열과 함께 그 순간부터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움도 뒤섞여 있다. ‘설계 의도를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불편해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안을 떠올리지 않을까’ 등등의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비유한다면 집이 완성되어가면서 전기와 상하수도, 가스, 인터넷 등 설비 장치들이 외부와 연결되어 마치 생명체와도 같이 박동하기 시작하는 부팅 모멘트에서 초조해하는 감정의 교차와도 같다. 출산의 순간, 무엇보다 아이의 손발가락부터 세어볼 때의 설렘…. 자기 새끼 아니면 누가 알까? 경사진 산책로를 내려가며, 저 아래에서 다소 불편한 관절을 내색 않으려는 걸음걸이로 올라오고 있는 주민에게 말을 붙인 것도 혹시라도 그런 어색함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동네에 사세요? 철길이 공원으로 바뀌니까 좋으신가요” 옷차림이 정갈해서 왠지 말붙여도 긴 답을 기대 못할 것 같은 어르신. 정답과도 같은 간단한 답만 되돌아오고, 다시 제 갈길 걸으며 사진 찍느라 아무래도 지체하고 있던 사이 마지막 지점을 되돌아와 반갑게도 다시 말을 붙여 오신다. 그래서 시작된 동행은 느릿느릿 연남동 구간의 끝인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졌다. 이 부근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거주했다고 하시니 누구보다 지역의 변화에 대해 훤하시다. 당시 집에 유선 전화를 신청하고 설치하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하는 힘든 시대였지만 특별히 신촌로터리에서부터 전봇대 5개 설치할 비용을 들여 쉽게 했다는, 그래도 동네 사람들에게 공용으로 쓰게 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까지. 그 정도로 힘쓸 만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주’가 미덕인 서울에서 5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정주하신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실은 필자도 1970년대 중반(엊그제 같은데 딱 40년 전이다!)이 지금 같았더라면 이 공원 길을 따라 서강대가 있는 노고산 아래의 고등학교를 통학했을 것이다. 이미 은퇴하고 공원 산책을 유일한 운동으로 하시는 어르신은 필자에게는 아버지 정도의 나이셨지만 적어도 이 부근의 경관 변화를 공유한다는 접점이 있었던 탓인지 말씀도 즐겁게 하시고 듣는 사람도 흥미 있는 동행이 되었다. “주민들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나가보기도 했고 오래된 나무를 훼손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어떤 것은 잘 보전하고 옮겨 심은 것도 잘 되었어. 지하에서 나오는 물을 활용한 연못도 마음에 들어. 저절로 물고기가 살기 시작했다니까.”, “에엣, 정말이요?” 조동범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원예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전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로컬에서공원 녹지 거버넌스 활동과 마을 만들기, 시민 가드너 양성의 현장 활동도 하고 있다. 2000년경부터 광주 도심 철도 폐선 부지 공원화 운동과 그 이후15여 년에 걸쳐 공원 조성, 주변 지역의 마을 만들기, 주민 참여 운영 관리 방안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조경학회 기획·설계분과 부회장을 맡아 환경조경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경의선숲길은 총연장 6.3km의 경의선 철길 폐선 부지에 조성된 선형 공원으로, 경의선(용산선)과 공항철도가 기존 철길의 지하에 건설되면서 공원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경의선숲길의 지하 약 10~20m 아래에는 경의선 철로(복선)가, 그보다 더 아래인 지하 약 30~40m에는 공항철도가 지나간다. 서울시가 철도 부지의 소유권자인 한국철도공사와 앞으로 30년간 무상으로 공원 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동안 지역 간 단절 요소로 남아 있던 철길이 새로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이어지는 6.3km의 길 중 약 4.3km는 공원 조성 구간이고 2km는 복합 역사 구간이다. 공원 구간의 면적은 약 101,700m2, 폭원은 10~60m이며, 총 3단계에 걸쳐 조성되고 있다. 2012년 2월에 1단계 구간(대흥동 구간, 길이 760m, 설계 선진엔지니어링)이 준공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구간은 2단계 구간으로 올해 6월에 준공되었다. 3단계 구간은 와우교·신수동·원효로 구간으로 2016년 5월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다. 경의선의 어제와 오늘 마포와 용산 일대를 횡단하는 이 길은 열차가 다니기 훨씬 이전부터 많은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던 활발한 교통로였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을 오가는 경강 상인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었고, 길 주변으로 창고와 마을이 번성하기도 했다. 새창고개, 염리동, 광흥창, 신수철리(신수동) 등 경의선숲길이 통과하는 곳의 지명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철길이 놓인 이후에도 물류 수송의 중심 지역으로 기능하면서 점차 도시가 확장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점차 그 중요성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 도심 속 철길은 생활 환경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낙인 찍혔고 주변 지역은 자연스럽게 슬럼화되었다. 안계동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서인환경, 두산개발을 거쳐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를 설립했다. 평화의공원, 서울숲, 난지한강공원처럼 굵직한 작품부터 사도감어린이공원, 율수원처럼 소규모 작품까지 다양한 층위의 프로젝트를맡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동심원조경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여름부터 경의선숲길 프로젝트를 담당하여 지금까지도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중이다. 경의선숲길지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 폐선부지의 변신, 경의선숲길 Gyeongui Line Forest Park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개통된 경의선은 이후 산업철도로 한동안 사용되었고, 1951년부터 2009년까지는 통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철길로 인해 지역 단절과 생활 환경 낙후 등의 문제점이대두되어 2005년부터 철길의 지중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6월 27일, 연남동·염리동·새창고개 2단계 구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 경의선숲길을 그리다 _ 안계동·이남진 • 사람들 순하게 말 붙여 올 때까지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서로 손잡는 숲이 될 때까지 _ 조동범 • 되살아난 옛 골목길의 정취 _ 유현준 • 경의선숲길권역의 문화 재생과 늘장 _ 최정한 • 경의선숲길을 거닐다 _ 조한
    • 조한결, 양다빈 / 2015년09월 /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