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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용산기지 공원화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
    Trying to find the course for the U.S. army base in Yongsan as a park ·일시_ 2007년 1월 11일|목|13:30·장소_ 한국과학기술회관 대강당·주최_ 환경과조경|(재)희망제작소 부설 세계공원연구소·주관_ 월간 환경과조경·사진_ 김태우 실장·정리_ 백정희 기자 ·좌장_ 임승빈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토론_ 배정한 단국대 환경조경학과 교수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수학 아뜰리에 나무 소장 이일훈 건축가, 후리건축 정욱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전공 교수 최원만 신화컨설팅 부사장 임승빈 : 상당히 의미있는 토론회인 것 같다. 앞서 정욱주 교수가 만원짜리 돈 몇장을 책 속에 묻어두었다가 나중에 발견해도 기쁜데 백년동안 잊고 지냈던 땅을 돌려받았는데 얼마나 기쁜일인가라고 했는데 그 말에 참 동감하면서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백여년 만에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는데 사실상 이렇게 남게된 것은 어떻게 보면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겠는가. 이미 난개발이 되었을 수도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는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에게는 커다란 사명감과 함께 좋은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본다. 만약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오히려 지금이 아닌 앞으로 백년이상 군사기지로 유지되었다가 백년 후의 세대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평가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따라서 용산공원의 미래의 모습, 용산공원이 담아야하는 내용들을 논하는 이러한 자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중지를 모아 세계에 내어놔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공원, 국토의 튼튼한 심장역할을 할 용산공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실질적인 토론이 될 수 있도록 토론자들의 깊이있는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3단계로 나누어 토론하도록 하겠다. 우선 토론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용산공원의 모습, 발제자들의 코멘트등을 말씀해주시고, 이어서 발제자들이 토론자들의 토론에 대한 답변 내지는 추가제안 등을, 다음으로 토론과 추가답변 이후에 모아지는 의견들에서 용산공원의 방향에 대해 제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방향에 대한 토론자들의 의견(장단점, 실현가능성), 그리고 플로어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첨언하자면 사실 방향도 중요하지만 이슈가 되고 있는 용산공원의 지하부 복합개발이나 주변부 개발, 비용문제, 시기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포함하여 여러 의견들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용산공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짚어보았으면 한다. … 중략… 임승빈 : 지금까지 2시간 넘게 토론과 재토론이 이어졌다. 정리를 하자면 용산공원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오늘 기억에 남는 공원은, 이름을 짓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삼겹살공원, 고어텍스공원, 필로티공원 등이 기억에 남는데, 역시 이름을 갖든 갖지 않든 용산의 문제는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 의견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하개발과 비용조달 문제에 대하여는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으나 공원이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도입, 그리고 개발을 통한 비용조달보다는 국가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방향이 타당하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본다.용산기지가 반환되면 어떻게 만들자보다는 그동안 금단의 땅이었으니 우선 담장부터 허물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몇 년동안 거닐어보고 방향을 정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지 않았나 싶다.여러 가지 좋은 의견들이 나왔는데, 용산공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하는 오늘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5, 10년의 긴 시간에 걸쳐 계속될 과정이기에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장기적인 안목으로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말고 선유도공원, 하늘공원, 서울숲에서 있었던 공원의 진화처럼 용산공원의 어떠한 진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앞으로 긴 시간동안 찾아나가는 과정으로써 오늘의 토론회는 상당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발제자, 토론자분들께서 오랜 시간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 주신데에 감사드리고, 특히 긴 시간동안 자리를 함께 해주신 청중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 2007년02월 / 226
  • 용산을 이야기하다 ; 공원의 진화, 도시의 재생_용산에 가능성을 허하라!
    부활하는 공원공원이 부활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공원에 새로운 조명이 집중되고 있다. 공원 문화가 일천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 세기 앞서서 공원이라는 공간 장치를 발명했던 서구에서도 공원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공원의 역사는 길지 않다. 본격적인 공원 문화의 서막을 열었던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이제 150살 남짓한 정도다. 전 세계 공원의 유니폼 같은 전형으로 자리 잡은 이 공원은 19세기 대도시의 사회 문제와 환경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해열제이자 진통제였다. 병든 도시로부터 벗어나 평온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녹색의 섬, 곧 피난처 공원(park as refuge)이 센트럴파크의 이념적 지향이었다. 이 공원이 겉옷으로 선택한 것은 녹색 낭만이 그림처럼 가득한 영국 풍경화식 정원(landscape garden)의 픽춰레스크(picturesque) 스타일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도시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은 이 공원의 출발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시라는 사실이다. 공원은 도시를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도시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20세기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센트럴파크표 공원은 지구상의 대부분의 도시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의 중반을 넘어서며 적지 않은 공원들이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해갔다. 공원은 도시의 개발 압력에 늘 시달렸다. 조금만 관리가 소홀해지면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마약의 천국이 되었으며 홈리스의 안식처가 되었다. 도시에서 큰 면적만 차지하고 있지 누구도 가기를 꺼려하는 모순의 장소가 되어갔다. 공원이 퇴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 역시 도시의 변화 때문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도시라는 조건과 그 속의 문화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숨 가쁘게 바뀌어갔는데 비해, 공원은 여전히 19세기적 낭만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가 가져온 속도와 이동 개념의 변화, 관광 산업의 눈부신 발전, 공원 같은 교외 전원 지역의 주택 개발, 공원보다 훨씬 재미있는 복합 쇼핑몰의 유행은 공원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했다. 도시로 인해 생겨났던 공원이 도시 때문에 쇠락해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계속 공원을 도시와 떼어놓고 생각했다. 그래도 공원은 녹색의 섬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공원이라고.20세기 후반을 넘어서며 상황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다. 다시 공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원이 최고의 정치적·경제적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서울의 경우가 최근의 상황 변화를 쉽게 입증해 준다. 이를 친환경적 삶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 정도로만 평가한다면 지나친 단견이다. 한 사이클을 지나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모한 대도시에 대수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술에 공원이라는 장치를 다시 투입하고자 하는 전략을 세계의 여러 대도시들이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메트로폴리스에 접속하고 있는 공원은 고립된 피난처가 아니다. 도시를 흐르는 혈관 같은, 도시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도시의 변신과 진화를 이끄는 도시의 주연이다. 재개발지, 공장 이적지(post-industrial site), 쓰레기매립지(landfill), 군부대 이전지 등 예전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유형의 부지와 공원이 관계를 맺고 있다. 굳이 공장지대로부터 도시 재생의 공원으로 탈바꿈한 뒤스부르그-노드 파크(Duisburg-Nord Landscape Park), 광활한 쓰레기더미에서 공원으로 변신하고 있는 프레쉬킬스 파크(Fresh Kills Park), 그리고 군사기지 공원화의 선례인 포츠담 시민공원(Volks Park Potsdam)이나 다운스뷰 파크(Downsview Park)를 떠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숭고미를 뽐내는 공원이 된 물 공장 선유도를, 하늘이 가까운 감각적인 공원이 된 쓰레기 산 난지도를, 곧 미래의 넉넉한 공원이 될 부산 하얄리아 미군 기지를 목격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동시대가 요청하고 있는 공원은 더 이상 초록의 물감으로 포장된 낭만의 섬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공원의 부활 역시 도시의 변화 때문이라는 점이다. 공원의 부활은 도시의 변화에 대한 공원의 대응이다. 공원의 진화를 통해 도시를 재생시키고자 하는 실험이다.공원, 다양한 가치들의 불안한 동거누구나 공원을 사랑하는 시대다.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집값이 오르고, 아파트 분양 광고도 “공원 같은 아파트”를 내세운다. 시민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서 공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공원의 관리와 운영을 위한 기부에도 참여한다. 공원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단체도 적지 않다. 공원과 가장 극적인 함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아마 정치가들일 것이다. 선거 공약의 꽃은 공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우리 시대의 풍경이다.그러나 그런 만큼 공원은 어깨가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의 하루를 여는 조깅 코스이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등교시킨 주부가 원 마일 웨어(1-mile wear)를 걸치고 모처럼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점심을 즐길 수 있는 간이식당이다. 물론 평범한 주말의 휴식을 공원의 역할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병아리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 설레는 야외 웨딩 촬영의 무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자연 관찰은 물론 꽤 전문적인 수준의 환경교육도 공원에서 진행된다. 공원은 직장의 단합대회나 체육대회도 환영해야 한다. 때로는 미술전시도, 음악공연도 열린다. 공원이 홈리스의 안식처이자 갈 곳 없는 노인의 의자이자 가난한 연인의 밀실이라는 점 또한 너무 진부하겠지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원은 정말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다. 현대 도시의 여러 공간 중 공원만큼 유연하게 복합적인 기능을 담고 있는 곳이 있을까.공원 앞에는 여러 층위의 단어들이 공원의 성격을 형용하거나 규정하기 위해 동원된다. 공원이라는 두 자만으로는 공원에 투여되는 다양한 가치들을 모두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공원, 생태공원, 문화공원, 예술공원, 조각공원, 복합공원, 전통공원은 물론이고, 공원이 들어선 땅의 출신 성분에 따라 매립지 공원, 공장 이적지 공원, 폐선부지 공원, 군기지 공원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이처럼 공원에는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매우 불안한 상태로 동거하고 있다. 그 이유로 여러 가지 측면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공원은 태생적으로 공공성을 지향해 왔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공원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격적 성립기에 생겨난 가장 비자본주의적 공간인 것이다. 자본주의적 공간 이용에 적절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활동들이 공원이라는 이질적이면서도 유연한 공간으로 유입되어 왔다. 그래서 공원은 위태로운 동거의 장소다. 좋은 공원은 이러한 동거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낸 공원일 것이다.소문만 무성할 뿐인 용산공원에 정치가의 말을 통해, 전문가의 생각을 통해, 시민단체의 행동을 통해 수없이 많은 가치들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공원의 숙명이다. 용산공원은 벌써부터 어깨가 너무 무겁다. 배정한 Pae, Jeong Hann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스케이프_시나리오
    용산부지의 귀환용산미군기지 약 80만평이 공원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비상금 숨겨놓는다고 책 사이에 껴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서 몇 년 뒤에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찾게된 몇 만원!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내 돈 내가 찾았는데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하물며 우리가 오랜 시간 우리의 사고가 닿지 않던 매우 큰 땅을 돌려받는 것, 그것도 공원의 형태로 돌려받는 상황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기분좋아야할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 자체도 기쁘고 축제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함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축제적인 공원조성의 과정이 너무 경직되거나 공원의 성격을 너무 과하게 규정해서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논의나 가능성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용산미군기지의 공원화 관련 주제를 살펴보면 역사, 문화, 생태, 시민 등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네 단어들이 용산공원에 용해되어야 할 것임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할만한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용산공원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더 두고 볼 여지가 있다. 용산부지의 현황과 가치필자는 용산미군기지에 방문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서울시민들 중 용산미군기지의 현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반포로나 이태원로에서 보이는 투박한 담장과 철조망이 아니면 아마 용산미군기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사진들을 통해서 본 용산미군기지 내부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군부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국의 그저 그런 중소도시의 교외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필자 스스로 용산미군기지를 비무장지대 비슷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굉장한 자연환경을 가졌을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지냈었다. 이전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남산과 한강이 녹색으로 연결되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기지 현재의 모습은 말 그대로 군부대이지 동남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환경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용산미군기지의 공원으로서 땅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3가지 키워드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대규모, bigness’이다(그림1). 80만평이 넘는 대규모 유용지가 서울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를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다. 개발론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돈덩이 터전으로 보일 것이고, 환경론자의 입장에서는 서울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허파로 볼 것이다. 정치적 도구로도 이용될 가능성도 십분 있으며, 올해 있을 대선 공약의 대상으로 거론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땅이 이러한 큰 이슈들을 담을만한 넉넉한 규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땅이 넓기 때문에 포용할 수 있는 담론의 크기도 드넓을 것으로 기대한다.두 번째 키워드는 ‘입지, location’이다(그림2). 이 거대한 땅이 서울의 중심인 사대문과 바로 근접하고 있다. 남산과 한강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의 입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같은 규모의 땅이 서울외곽에 입지하는 것과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규모와 입지 두가지 면모를 가지고도 용산미군기지는 서울의 도시구조와 이미지를 변화시킬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이 두가지 키워드 외에 미군기지 자체의 가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상지가 인접하고 있는 다양한 ‘컨텍스트, context’가 세 번째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3). 남산과 한강등 의 자연 환경을 비롯해서, 서울역, 용산역을 포함한 경부선 등의 교통인프라, 용산전자상가, 얼마 전에 신문에 개발소식이 들려온 국제업무단지 예정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태원특구 등 다양한 상업, 문화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용산공원의 등장으로 이러한 컨텍스트가 미군기지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는 개념에서 용산공원을 중심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개념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현대 도시공원의 이해 용산공원의 가능성을 논하기 앞서 현대 도시공원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필요를 느낀다. 도시공원은 비교적 근대적인 도시현상이다. 그 모양새가 자연을 닮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공원의 고향은 도시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조성된 대규모 도시공원은 크게 세 가지의 조성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개인과 공공에게 삶의 질에 대한 만족감 및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상적인 도시구조에 일조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적인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공원조성 당시 패러다임이 공원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100년 전과 지금은 너무나도 다른 상황과 조건(자동차, 대량운송, 일일생활권, 관광의 광역화, 쇼핑몰, 고속도로, 텔레비전, 핸드폰, 인터넷 등등)에서 우리는 생활하고 있으며, 100년 전의 공원조성 개념과 현재의 것이 동일한 공원의 스테레오타입을 도출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점점 다양하게 진화된 공원의 형태, 기능과 프로그램은 도시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상상의 대상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공원의 새로운 개념이나 형태는 라빌렛공원이 조성된 시점인 1980년대 이후 약 20여년의 기간동안 몇몇 실험적 설계경기 및 작품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을 묻는 질문에 90%이상의 대답을 점유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맨하탄에 위치한 센트럴파크이다. 조경가라는 직업의 시조 격 되는 옴스테드의 역작이며 공원의 대명사인 센트럴파크는 공원의 범주 그 자체이며, 타 공원평가의 판단기준이 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용산공원도 센트럴파크처럼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센트럴파크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당시 상황의 요구가 있었다. 혹시 ‘갱오브뉴욕’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18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적 픽션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센트럴파크가 조성되기 시작한 1850년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이야 고급주택가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맨하탄은 그렇게 정돈된 이미지는 아니었다. 옴스테드 역시 센트럴파크의 당위성을 도시와의 대조에서 찾고 있었다. 도시는 악이고, 그 반대되는 선의 이미지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공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센트럴파크는 주중에 험란한 도시생활에 지친 노동자 계층들이 주말의 충전을 기약하는 교회당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조성 당시의 설계안이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센트럴파크의 위상 앞에서 공원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무의미해보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공원설계의 매뉴얼이 되어버린 신화와 같은 공원. 센트럴파크는 지금도 뉴요커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공원이지만 센트럴파크의 성공이 그 조성방식과 외형적인 면에서도 모든 공원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지원해 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비슷하게 따라 한다고 해서 모든 공원이 센트럴파크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센트럴파크의 성공은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내었던 옴스테드라는 조경가의 탁월한 안목과 공원을 품고 있는 도시와의 상승작용이 그 배경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옴스테드식의 공원철학(도시와 공원의 이분법)이 우리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공원은 어떠한 의미와 형태를 가질 수 있을까? 시민의 욕구와 공원개념의 확장필자는 어떠한 공간이 공원으로 불리기 위한 조건으로 1. 열린 접근성 (불특정 다수의 접근이 허용되는 오픈스페이스) 2. 프로그램적 공공성 (내재된 프로그램이 공익을 위한 것일 것) 3. 비영리성 (혹시 이 공간을 통해서 발생하는 수익이 있다면 비영리적으로만 사용될 것) 4. 생태적 건강성 등을 생각한다. 여가시간을 할애하는 장소로 이마트, 백화점, 코엑스몰, 대형서점 등의 쇼핑몰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이 상업기능 본래의 역할에 첨부하여 많은 어메니티 시설을 도입하여 과거 공원이 했던 역할을 대신 해내는 듯한 인상을 갖게끔 한다. 아무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고, 구매행위 외에도 많은 공공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만, 오픈스페이스와 비영리성이라는 항목에서 공원의 범주에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과거에 공원에서 해소되었던 휴게와 레크리에이션의 기능이 많은 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과장되게 표현하면 굳이 공원을 찾지 않아도 공원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공원기능의 독점을 민간상업기능에게 나눠주고 있는 현대 도시공원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는 무엇인가? 이러한 점에서 용산미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공원의 개념의 확장, 특히 프로그램적 확장에 대해서 논의해볼만하다. 정욱주 Jeong, Wook Ju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용산을 이야기하다 ; 세상에서 가장 거친 숲으로 들어가는 길고 긴 여정
    ‘그 용이 「증보 문헌 비고」에 따르면 백제 기루왕 때에 오늘의 용산구의 앞 한강에 나타나 하늘로 올랐고, 「동국 여지 승람」에는 양화 나루 동쪽 언덕 곧 오늘에는 행정 구역으로 마포구에 속하는 절두산이 용두봉 곧 용머리 산으로 나와 있다. 인왕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으면서 만리동의 만리 고개를 거쳐 원효로까지 내려와 서쪽으로 고개를 홱 비튼 것이 용처럼 생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용산구는 우리 조상들의 민간 신안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용을 데려다 그의 허리와 목덜미에 마을을 일군 셈이다.’ 한국의 발견 서울, ‘군사시설을 가슴에 안은 땅 - 용산구’, 뿌리깊은 나무, 여덟째판 둘째쇄 1992, 194쪽. 신화의 땅을 꿈꾸다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의 기운으로 순환하던 그 때, 용은 하늘에서 인왕산 자락으로 내려와 만초천을 따라 한강으로 들어갔다가 멀리 서해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그 때 용산의 낮은 구릉과 넓고 황량한 벌판은 용을 품어 안은 대지의 형상이었으리라. 그러나 지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용산에는 총과 칼과 대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 용은 없다. 식민 의식이 만들어 낸 백여 년의 점령지를 둘러싼 철조망이 그러했고, 자본의 논리에 따른 개발의 광풍 어디에도 용의 거처를 마련해 줄 신화가 숨 쉬는 땅은 없었다. 그 땅이 다시 돌아온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지형과 적의敵意를 숨긴 막사 건물로 뒤덮인 얼룩진 땅으로 돌아온다. 하늘을 수직으로 자르는 빗돌에 둘러싸여, 초지와 모래벌, 숲으로 가득했던 기억도 없이, 고립무원의 섬처럼 돌아온다. 그리고 기억의 잔해를 지우려는 반 고고학자들과 강성한 공화국주의자들, 개발론자를 등에 엎은 식민주의자들과 만나고 있다. 권력이 그들의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서울에 대한 꿈의 전부인가. 서울시 전체를 놓고 용산을 보다80만평의 크기와 그 범위 안의 것이 아니라 서울시 전체에 대한 ‘입장’과 ‘미래’ 속에 용산을 놓는다.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개발의 망령은 미사여구 속에 녹아 ‘뉴타운’과 ‘섬처럼 고립된 공원’ 그리고 그 면적에 상응하는 높이의 상승 속에서 흔적과 기억을 말소한 채 누군가의 전시회 제목처럼 ‘카달로그’ 도시를 꿈꾼다. 하여 용산 미군기지의 진정한 문제는 부지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 외부의 조건에 대한 이해와 해결 그리고 우리의 의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푸른 심장이란 아메바605.4㎢의 서울에 2.6㎢의 푸른 심장의 아메바_거친 숲을 놓기로 한다.남북을 가로지르는 푸른 숲을 잇다이 아메바는 북으로 남산을 타고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과 북한산까지 닿고, 남으로는 동작대교를 건너 국립묘지의 뒷산을 지나 관악산으로 이어진다. 나무가 자라는 긴 시간, 나무만큼의 높이가 주는 스카이라인, 관악산에서 북한산까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어지는 푸른 숲 길. 그것은 끝없는 개발 욕망뿐 아니라 지금의 서울이 지향하는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는 반명제(anti-thesis)이면서 새로운 서울의 전범이 된다. 거기에는 숲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동작대교를 인도교로 바꾸다서울시 전체 지도를 놓고 산과 강을 그리고 다리를 잇는다. 녹지축의 상징적 연결을 넘어 푸른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와 만나고 자연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된 개발의 속도와 차량 중심의 개발에 대한 전복적인 대안으로 동작대교를 인도교로 바꾼다. 북한산에서 관악산까지 푸른 길을 걸어서 가는 이 느리고 긴 산책 속에서 드러나는 서울의 모습을 보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선을 바꾸리라. 하늘과 땅이 비로소 만나다기존의 건물과 지형을 그대로 놓아둔 채 모든 포장을 걷어낸다. 모든 구조물을 그대로 둔다. 전쟁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점령지의 오랜 생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땅의 모든 것이 회복되는 일정한 시간, 하늘과 땅이 바로 만나 씨앗이 날아들고, 물이 고이고, 바람이 휩쓸도록 내버려 둔다. 모든 길을 띄우다부지를 가로지르는 모든 길을 지상에서 띄운다. 사람길과 찻길은 높이를 달리한다. 인간의 체취는 담지 않기로 한다. 옛길의 자취는 조금씩 풀숲에 가려지고 허물어진 벽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막아선다. 이 지상에서 떨어진 거리만큼 객관적인 시선으로 용산을 바라본다. 길은 외부로 뻗어 나간다. 나무를 심다그리고 조금씩 지워나간다. 나무를 심는다. 나무가 자라듯, 안쪽부터 바깥으로 아주 천천히 제거한다. 제거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는다. 공간의 느린 흐름 속에 기억은 천천히 순화된다. 더불어 오염된 땅과 그 속도 조금씩 정화되고, 어느 시점에서 그 기억은 각인되리라. 지워지지 않으리라. 그 지점과 시점에 구조체를 그대로 놓아둔다. 환기(喚起)한다. 무장된 땅에 대한 정신적 무장해제의 긴 시간, 그것은 평화와 통일을 상징한다. 모든 전쟁에 대한 반대와 우리 안의 호전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동시에 담는다. 새로운 도시를 시작하다거친 숲으로 들어가는 이 길고 긴 여정, 차와 구조물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과 나무를 위한 도시, 하늘을 가린 욕망이 아니라 땅으로 스며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자연과 인간의 축적을 가진 도시, 무기체를 뒤덮은 스모그의 뿌연 대기가 아니라 푸른 빛을 머금은 신화를 다시 꿈꿀 수 있는 도시를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혹시 모른다. 천둥이 심한 어느 날 빗 속을 유영하는 푸른 비늘의 그를 보게 될지도. 이수학 Lee, Soo Hag아뜰리에 나무 소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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