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WORK

사가람 열린 정원
Sagaram Open Garden

ⒸRohspace 사가람과 사천여자고등학교 ‘사가람’은 사천시의 옛 이름으로, ‘물가에 가까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남해안 가까이 위치한 사천시는 작지만 강한 소도시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항공 우주 산업 등 미래 비즈니스가 집중적으로 벌어질 곳이다. 사천여자고등학교(이하 사천여고)는 사천시 구도심 한가운데 있는 미래 여성 실무자를 위한 실업계 특성화 고등학교다. 1966년 설립되어 60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남 지역의 대표적 여성 교육 기관이다. 깊은 세월의 두께만큼 노후화된 운동장은 학생들의 꿈을 키우기엔 한계가 있는 공간이었다. 체육관과 급식소 건물을 증축하면서 버려지게 된 외부 공간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기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 절실했다. 이러한 열망을 담아 사천시의 옛 명칭을 딴 ‘사가람 열린 정원’으로 프로젝트 이름을 짓고 지역성을 지닌 새로운 공간의 재탄생을 목표로 추진했다. 첫 디자인 접근은 학생들이 마치 물줄기처럼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문정현 이사장(사천여고)은 “학교는 공장이나 감옥이 아니다. 모든 학생들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자유로운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꿈을 드높일 수 있도록 한계가 없는 공간과 여러 영감을 주는 열린 공간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육 철학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유롭고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운동장 개선 공사(1단계), 정문 및 주차장 개선 공사(2단계), 운동장 생태정원 조성 공사(3단계)의 세 단계로 나뉘어 기획, 설계, 시공이 5년에 걸쳐 진행되어 2024년 봄에 완공됐다. 사업 전 대상지는 여고의 낭만을 충족시켜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부 공간이 운동장과 맞닿은 흙바닥이었다. 진입부는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혼란했고, 녹지는 활용도가 거의 없을 뿐아니라 관리가 안 된 수목으로 인해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사천여고는 학교 철문을 항시 개방해 운동장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며 사용하고 있었는데, 시설이 노후해 학생과 주민 모두 이곳을 사용하는 데 많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특성화 고등학교인 사천여고는 전문교과와 보통교과 융합 수업이 많다. 수업의 폭이 넓고 활동 중심의 수업이 많아 이러한 수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외부 공간 조성이 시급했다. 특히 사천여고의 자랑인 사회적 협동조합, 영화 스쿨, 특색 있는 여러 동아리 활동과 연계하고 지역 주민과의 공유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장기 목표로 삼아 단계별로 외부 공간을 바꾸어 나가는 계획을 세웠다. ⒸRohspace 황량한 운동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담는 광장으로 진입로, 불규칙과 규칙: 정문에서 본관 입구 사이에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있을 뿐 제대로 된 보행로가 없어서 학생들이 택배 차량 등 차량과의 충돌 위험에 노출되었다. 학생들을 보호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포장도로를 마련하기로 했다. 도로는 4m마다 반복되는 줄무늬 구획을 기본으로 하며, 이 프레임 내에서 밝은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연결되는 불규칙한 그라데이션 픽셀 패턴을 통해 보행자와 차량 통행로를 구분했다. 보행로와 차도 사이에 단차를 두지 않아 차량이 없을 때는 보행 공간으로 사용하게 하고, 반드시 보차분리가 필요한 부분에는 간격을 두고 볼라드를 설치했다. 포장 재료로는 일반적으로 쓰는 투수성 인조 화강석을선택했다. 이벤트 광장, 사각으로 만든 사각 광장: 신축된 체육관과 급식소의 전면 공간을 쓸모 있는 이벤트 광장으로 정의했다. 광장의 규모는 약 14.5m×62m로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각형으로 구성된 다양한 정사각 패턴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정사각 패턴이 다양한 차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연한 액체와 같은 공간에 사각형들이 재미있는 방식으로 무작위하게 떠있는 듯한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이벤트 광장 다양한 정사각 패턴이 바닥을 떠다니는 것처럼 구성해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Rohspace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학교 문이 아닌 길을 인도하는 친구, 철문 없는 학교: 기존의 정문은 무거운 철문이었다. 녹슨 철문은 사람이 직접 열고 닫는 수동식이라 항상 열린 채로 두었기에 주민들은 자유롭게 학교를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주변 환경 때문에 사람들을 환영하는 밝은 분위기를 내지 못했고, 불법 주차 차량을 막을 수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거운 철문을 철거하고 자동 유압식 볼라드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는 항상 열려 있고 차량은 선택적으로 출입을 허가할 수 있게 됐다. 학교의 역사를 간직한 모던한 입구: 주어진 조건을 백지화하지 않고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철거해야 할지 평가해 존치 여부를 정했다. 현대적인 분위기로 변신을 꾀했지만 내재된 역사를 지우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이에 따라 학교 정문을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기존 문주 하나와 간판을 남겨 재활용했다. 기존 경비실 역시 입면을 골강판으로 감싸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주차장, 보행에 친절한 진입부: 보행자와의 간섭이 심했던 차량 동선을 정비하고 주차장을 한쪽으로 조성했다. 비상시나 이벤트가 열려 주차 공간 확장이 필요한 경우에만 기존 주차장을 활용하도록 해, 포장 공간은 온전히 학생들의 안전한 등하교 공간이 되도록 했다. 입구 공간을 나타내는 픽셀화된 패턴 ⒸRohspace 현대적인 분위기로 탈바꿈한 정문 기존 문주, 간판, 경비실을 재활용하고 큐블록을 이용해 투시형 담장을 만들었다. ⒸRohspace 생태 친화형 학교와 열린 공간을 위한 프로세스 빈 운동장에 생명을: 기존 흙바닥을 투수 기능이 있는 인조 화강석 포장도로로 바꾸어 보행의 편의를 꾀하면서도 친환경적 해법을 더하고자 했다. 이용이 적었던 운동장 모서리 공간에는 생태정원을 조성해 빗물을 흡수하도록 했다. 버려진 것과 다름없던 교정 남측 공간에는 교목인 월계수와 교화인 동백꽃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수목 주변에 어울리는 식재를 하고 텃밭을 조성해 휴게 공간이자 야외 학습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운동장을 침투하듯 조성한 다양한 생태정원 ⒸRohspace 열린 프로세스: 주입식 교육과 강박적 교육 공간에서 열린 학습의 터로 거듭나도록 다양한 행동 방식이 유발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조성하는 데 있어 그 과정 또한 참여형이 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 단계인 생태정원 조성 사업을 진행하며, 문정석 소장(로컬프로젝트)이 세 차례에 걸쳐 학생과 교직원 참여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1, 2단계로 진행된 외부 공간 개선 사업에 대한 사용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들의 제안을 반영해 풍부한 공간 조성의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모든 공간이 완성된 뒤, 입구에서 교실까지 이어지는 보행로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교화인 동백꽃을 새겼다. 이 도색과 강조 패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을 보행 동선으로 인도하고 보행로와 차량 동선을 좀 더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게 했다. 사천 시내에 위치한 사천여고는 오래전부터 방과 후 지역 주민에게 공원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잠시 쉬고자 이곳을 찾는 주민들을 위해 그늘과 휴게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사천여고의 교정이 지역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심지이자 열린 정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앞으로도 이곳에 학생과 지역 주민 모두의 풍부한 추억과 이야기가 쌓이기를 바란다. 교화와 교목을 보존한 교정 남측 녹지 반달 모양의 텃밭은 생태학습장으로 활용된다. ⒸRohspace 입구에서 교실까지 이어지는 보행로 새긴 동백꽃 패턴 ⒸRohspace 박혜리·문정석·연혜진 인터뷰 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성을 담는 운동장 글 김모아 기자 ⓒ유청오 개선 사업은 노후 시설 보수에 그치기 쉽다. 학교 외부 공간 전반을 새롭게 바꿀 수 있던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박혜리(이하 리) 시작은 사천여자고등학교(이하 사천여고) 외부 공간 개선 사업이 아니었다. 어느 날, 평소 존경하던 어른인 문정현 대표(사천여고 이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문 이사장은 경남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 공헌 및 문화예술 활동 지원 사업을 펼쳐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교육 공간에 대한 남다른 비전이 있는 분이라, 사천여고의 외부 공간이 학생들의 꿈을 키워나가기엔 너무 열악해 체육관과 급식소 증축을 시작으로 점차 개선하기로 했다며 자문을 요청해왔다. 당시 여건상 멀리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문만 해드렸다. 이후 증축된 체육관 앞에 광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냥 포장 시공 업체 시안으로 공사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된다며 다시 도움을 구해왔다. 도면을 보니 일반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보도블록 패턴이었다. 순간 오지랖이 발동했다. 나름 학창 시절의 낭만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학교 배경이 이래서는 안 되지 하는 마음에 제한된 공사 금액 안에서 시공할 수 있는 광장 패턴 디자인을 살짝 도와준 일이, 이후 연속된 외부 공간 개선 사업으로 이어져 사가람 열린 정원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됐다. 세 단계로 구분된 프로젝트가 꽤 복잡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리 운동장 개선 공사(1단계), 정문 및 주차장 개선 공사(2단계), 운동장 생태정원 조성 공사(3단계)는 사실 편의상 내가 구분한 체계다. 실제로는 연계성 없이 개별로 발주됐다. 만약 통합 프로젝트로 발주됐다면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서 더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1단계와 2단계 사업은 어댑티브스를 주축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3단계 사업의 경우 식물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와 함께하면 더욱 질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최근 ‘시흥시 오이도 어촌뉴딜사업’을 함께 진행한 연혜진 소장(민앤그린 조경설계사무소)에게 곧장 연락했다. 또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할 경우, 사용자 참여 디자인이 필수이기 때문에 촉진자가 필요했는데, 이 분야에서는 빅바이스몰을 통해 연을 맺었던 문정석 소장(로컬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두 분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사실 적절한 설계비를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었고, 그 돈조차 서울과 사천을 오가는 교통비로 다 소요되는 상황이라 두 분이 참여를 수락해주어서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문정석(이하 석) 덕분에 프로펠러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 사천여고가 사천공항에서 가깝다보니 비행기를 주로 이용했는데, 김포와 사천을 오가는 새벽 비행기가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쓰인 줄 알았던 비행기를 코앞에서 보고 직접 타보니 신기했다. 리 처음엔 기체가 너무 작고 흔들림도 심해서 너무 무서웠다(웃음). 건물과 건물 사이 지름길 역할을 하는 그라스 정원 ⒸRohspace 학교 공간 설계 시 참여 디자인이 필수 요소가 된 모양이다. 석 2022년 개정된 ‘교육시설법’에 의해 교육 시설의 설계 전에 지역 사회 연계 가능성, 교육 과정 운영 및 교수 학습 방법에 따른 공간 구성, 사용자 참여를 통한 디자인 계획 등에 관한 사전 전략 수립 등이 사전기획의 방식으로 의무화됐다. 사전기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사용자 참여를 통한 디자인 계획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이다. 이제 전문가나 학교 운영자 몇몇의 의견만으로 학교 공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용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학교 재량에 따라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 주민 등을 설계 워크숍에 참여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사가람 열린 정원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나. 석 담당한 업무가 참여 워크숍이다 보니, 디자인 결과물보다 함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데 의의를 뒀다. 보통의 학생은 학교를 다니며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요구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졸업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의 부재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쳐서, 훗날 자신이 거주 영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게 만든다. 자신이 낸 목소리를 전문가들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해 주는 과정을 통해, 권리를 행사하는 법을 깨닫게 하고 일종의 민주주의를 체험하게 해주고자 했다. 교감과 교장을 비롯해 부장급 교사와 실무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행정실장이 교직원으로 참여했다. 학생의 경우, 다양한 학년에서 희망하는 학생을 모집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학업으로 바쁜 이들을 참여시키는 게 쉽지 않다. 임원 학생과 희망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교에서 독려를 많이 해서 참여율이 높았고 지역 주민과 졸업생까지 30명 정도가 함께 했다. 참여 워크숍을 통해 분석한 대상지 용도 함께 학교 지도를 그리고 모형도 만들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연혜진(이하 진) 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주민과 졸업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워크숍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워크숍 과정을 보며 이 현장은 설계가 주도하기보다 참여자들이 의견을 마음껏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가이드의 역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들의 의견이 꼭 공간으로 나타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안전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곳이다. 사가람 열린 정원은 그 이름처럼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 학교를 두르는 담이 있고 출입은 정문으로만 이루어지기에 완전히 열린 공간은 아니다. 사방에 꽤 넓은 차도가 있기에 안전 측면에서도 담장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사천여고가 열어둔 건 정문이다. 특성화고인 사천여고는 오후 네 시경이면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빈 공간이 된다. 그럼 이 운동장을 지역 주민들이 공원처럼 사용한다. 주변에 공원은 물론 쉴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가 일종의 공공 공간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존의 정문도 늘 열려 있었지만 불법 주차를 막을 수 없었기에, 자동 볼라드를 설치해 사람은 통과시키고 차량은 통제하는 형태로 바꿨다. 예산의 여유가 있었다면 담장도 손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특히 대로변 버스정류장을 담장과 연계해 하이브리드한 스트리트 퍼니처로 만들면, 주민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다기능적 담장이 되지 않을까 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많은 주민을 이곳에 오게 해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효과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다. 석 사천여고가 특성화 학교라 운영 방식이 특이하다. 인문계 고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의사가 없는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나흘 정도 수업을 받기도 한다. 개방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그런 점에서 사천여고의 열린 운동장은 학교의 운영 방식과 퍽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새롭게 탈바꿈된 담장과 경비실 ⒸRohspace 운동장을 파고드는 형태의 녹지 공간이 독특하다. 흔히 비정형은 정형보다 비효율적인 도형으로 여겨지는 데 어떤 의도로 설계한 공간인가. 리 연역적인 결과로 완성된 공간이다. 워크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의견이 안전한 지름길의 필요성이었다. 체육관과 본관 사이를 오가는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짧은 경로를 찾고 반드시 운동장을 밟게 된다. 이때 신발에 묻은 모래 때문에 건물 진입부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운동장을 밟지 않고도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지름길이 필요했고, 이 지름길을 감싸는 모퉁이 공간을 작은 정원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운동장 모퉁이에는 벤치가 하나 있는데, 하교를 함께할 친구를 기다리는 장소로 주로 쓰인다. 많은 학생이 이용하기엔 너무 좁기에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기능을 생각하며 그리다보니 운동장을 땅따먹기 하듯 정원이 파고들어가는 모양 자체가 디자인 언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바로 쉴 수 있는 공간, 운동장을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공간 등을 설정했고 원과 삼각형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대부분의 체육 활동은 체육관에서 이루어지기에 운동장을 크게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운동장은 원할 때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쓰게 하고, 각 모서리는 면하고 있는 건물의 성격 혹은 그 장소에 필요한 기능을 첨가한 정원으로 만들었다. 디자인을 실현했다기보다 필요가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밀양의 밀주초등학교처럼 운동장의 더 많은 부분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벤트 광장 패턴의 완성도가 인상적이다. 리 나 또한 놀랐다. 광장 패턴을 그렸을 당시 네덜란드에 있었기에 시공 현장을 한참 뒤에나 보게 되었는데, 비교적 완성도 높게 시공되어 있었다. 광장 도면을 그릴 때 패턴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블록을 한 땀 한 땀 실사이즈로 그렸는데, 그리면서도 시공하면 당연히 오차가 생길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도 도면과 거의 똑같은 광장이 완성된 건 담당 주무관과 시공자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전달한 디자인을 소중히 실현시켜 준 그 노력과 마음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때의 감동이 사가람 열린 정원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 현장의 흔적을 남기고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는 일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노고가 드는 일이다. 때로는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리 대상지가 황폐했지만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지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다 마주한 게 경비실과 문주, 간판이었다. 경비실은 나라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였고 상태가 좋았다. 학생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고 기능성을 높일 수 있는 곳으로 위치를 바꾸고 골강판을 둘러 외부 마감만 새로 했다. 문주와 간판도 재활용해 학교에 내재된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어댑티브스(Adaptives)’는 내가 추구하는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이라는 가치를 담은 사명이다. 우리는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걸 백지화해 새로 만드는 게 효율적이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건 지극히 행정적 편의의 관점에 치우쳐 상황을 오독한 것이다. 대상지 분석 과정에서 무엇을 재활용할 수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알아보면 실제로 과다한 폐기물을 줄일 수 있고,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적응적 재사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고 훌륭한 설계법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실현할 수 있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 가치라 믿는다. 기존 대상지에 꽤 넉넉한 규모의 녹지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진 일반적인 학교와 달리 스탠드 대신 넓은 녹지가 있어서 놀랐다. 녹지 안에 있는 수목도 독특했다. 보통은 관리가 편한 눈주목, 향나무를 심기 마련인데 이곳의 녹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배롱나무, 이팝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녹지로 들어갈 수 있는 길만 열어주어도 활용도와 그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가장 반가운 요소는 녹지 뒤 등나무 쉼터였다. 한때는 등나무 쉼터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구조물이 낡고 지저분해져서 사라지는 추세다. 사천여고의 등나무 쉼터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조적 기둥도 튼튼했고 등나무의 생육 상태도 좋았다. 다만 관리되지 않은 녹지에서 마구잡이로 자란 가이즈카 향나무와 은행나무, 실화백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등나무 쉼터로 이어지는 보행로의 폭이 너무 좁아 활용도도 낮았다. 녹지에 빽빽하게 심긴 나무를 걷어내서 등 나무 쉼터의 존재를 되살렸다. 정돈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까지 더해 경관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실용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운동장 남측에 조성된 소공원의 경우, 수목들이 조각처럼 서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진 본래 목서와 가이즈카 향나무, 교화인 동백나무, 교목인 월계수가 있던 공간이다. 식재 설계를 하기보다는 기존의 나무들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하고자 했다. 크게 자라난 목서가 강조되도록 근처에 있던 동백나무를 옮겨 심어주고, 등나무 쉼터를 가리는 몇몇 수목은 제거했다. 교화인 동백꽃과 교목인 월계수를 보존한 수목 지대 뒤편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휴식할 수 있는 흔들그네와 텃밭, 등나무 쉼터가 보인다. ⒸRohspace 학생과 교직원이 느끼는 학교 외부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다를 것 같다. 석 학교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지배받는 독특한 사회다. 5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 1시간 점심시간 등 시간에 맞추어 모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학생들은 이곳에서 시간관념을 배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인지 교사는 시간 운용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불편사항으로 여기게 된다. 사천여고 운동장의 지름길 역시, 제시간에 가야 하는 공간에 도달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어떤 공간이 생긴다고 하면 교사는 정해진 시간 내에 학생들이 이동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지 생각하게 된다. 학생은 무의식중 내가 저 공간에 쉬는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게 된다. 지름길이 정형보다는 비정형적 형태를 띠게 된 이유도 다듬어진 모양보다 비정형이 이동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생각보다 외부 공간에 대한 요구가 크진 않다.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외부 공간을 즐기기보단 그 시간에 업무를 하려는 의지가 더 커보였다. 관심이 있는 부분은 주차장의 주차 대수와 주차장에서 본관 건물로 이어지는 동선 정도였다. 리 녹지 내 산책로도 일종의 지름길이다. 처음에 녹지를 보존하려고 했었는데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안에 길을 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덕분에 이 산책로가 전체 공간을 엮어주는 동선이 되었고 등나무 쉼터의 활용도까지 높아졌다. 외부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꽤 구체적이었던 모양이다. 진 외부 공간에 대한 이해도와 원하는 바가 명확했다. 꽃 터널이 있었으면 좋겠다, 흔들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랑 단둘이 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등 구체적인 의견이 제시됐다. 이 내용을 잘 반영하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운동장을 운동하는 학생만 쓸 게 아니라 내향적이고 조용히 즐기고 싶은 학생도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등나무 쉼터가 있지만 단둘이 소곤소곤 대화 나눌 수 있는 퍼걸러를 놓고, 운동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휴식할 수 있는 흔들그네도 놨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요소를 많이 넣어주려고 했다. 학생들이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리 재학생 중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학생도 있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만 있지 않기에 토론을 하거나 영상을 찍고 영화 상영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무대가 필요한 활동이 많아서 동백꽃 모양의 무대와 잔디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실현하지 못한 게 아쉽다. 석 요즘 세대의 학생은 외부에서 창작 활동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활동을 지지해 줄 수 있는 환경이 학교에 마련되어야 한다. 공부라는 게 책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학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교육 방식이 변화하고 학생 수는 감소하고 있는데, 교육 공간은 그에 발맞춰 달라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석 우선 소프트웨어가 바뀌는 속도를 하드웨어가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공 공간의 질이 민간이 만드는 공간의 질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도 엄밀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교 담장 허물기, 학교 숲,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학교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져 왔다. 그 흐름 속에서 어떤 공간이 살아남았는지 살펴보니 결국 가변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같다. 아지트 같은 포켓 공간, 생태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이 교내에 만들어졌지만 학교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여지를 공간에 남겨두는 게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기존 학교 공간 대부분이 하나의 기능에 주목해 만들어졌는데 이제 그 기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불어 이러한 실험이 가능한 이유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공간적 잉여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리 학교 운동장이 꼭 군대 연병장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여고를 다닌 나는 운동장은 거의 쓰지 않았고 대신 학교 옥상에 있던 정원에 자주 갔다. 그래서 사천여고에도 되도록 작더라도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워크숍을 통해 학생 대부분 산책이나 쉼에 집중된 활동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과 후 이곳을 찾는 주민 역시 간단한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거나 정적인 휴식을 즐겼다. 그래서 사유할 수 있고 아기자기한 활동을 담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 것 같다. 현재는 교육 시설 대부분이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 사천여고처럼 점차 지역 사회에 열리는 형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 열린 학교운동장 사업을 진행했을 때 발생했던 문제들이 생각난다. 쓰레기, 소음, 치안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 문제점을 해결해나갈 방법을 모색해 학교 운동장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2018년 ‘디자인프레스’가 진행한 건축 시리즈에서 유현준 건축가 편(각주 1)을 굉장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학교라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저층 형태의 건물을 분산해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건물과 건물을 오가며 잠깐이라도 자연스럽게 외부 공간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특히 건물 앞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의 그늘을 자주 이용했다. 그곳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친구와 담소를 나눴다. 학교의 외부 공간이 이처럼 운동을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성향의 학생을 포용하는 다양성 높은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석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교 운동장을 지금보다 더 열린 형태로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학생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학교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면, 학교 공간의 사회적 담론화로 이어진다. 관여된 사람이 늘어날수록 자연히 정치인들도 지금보다 학교 공간 환경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교가 더욱 공공 공간화되어야 학교 공간을 바꿀 수 있는 예산을 끌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 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교실이 밀집되어 있는 학교 건물이 한쪽에 몰려 있고 남은 땅은 운동장으로만 쓰는 현재의 학교 공간 구성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리 한 대학에 출강했을 때, 한강변 아파트 단지를 대상지로 삼아 마스터플랜을 그리는 도시설계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중 한 팀이 학교 시설을 한강 쪽으로 옮겨 한강을 향해 열린 문화 시설로 만들고 휴일에 학교 공간을 시민과 공유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현실적으로는 학교는 교육청 관할이기에 그 위치를 바꾸기 쉽지 않겠지만, 일종의 열린 공공시설로서 학교 외부 공간의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석 교육 기관의 설계 인허가 권한을 교육청이 갖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 좋은 학교 공간을 만드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소수의 성공 사례를 일반화해 모든 공간에 적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한국의 학교 공간이 점점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각주 정리 1. 유제이, “유현준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 나쁜 학교’”, 디자인프레스 2018년 7월 4일. 글 박혜리 어댑티브스 소장 디자인 책임 어댑티브스(Adaptives Design & Research) 건축 및 도시설계 박혜리 조경 설계 민앤그린(3단계), 우진엘에스디(1단계) 참여 디자인 로컬프로젝트(3단계) 토목 설계 동영이앤지(2단계) 발주 사천여자고등학교 위치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옥산로 47 면적 2,876㎡ 준공 2024년(3단계), 2023년(2단계), 2022년(1단계) 사진 노경, 어댑티브스 어댑티브스(Adaptives Design & Research)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공간과 환경에 대한 이슈를 디자인과 리서치로 풀어내는 회사다. 도시 공간이 지나온 시간을 담으면서도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쓸 만한 적응적 (재)사용이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 박혜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소재 KCAP의 어소시에이트 파트너로서 2021년부터 서울에 상주하며 한국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어댑티브스를 설립해 색다른 설계 방식과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네덜란드 공인 건축사이자 도시계획가이며 대한민국 건축사다. 문정석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다수의 도심 복합 상업 시설을, 시민단체에서 작은 도시 공간 만들기를 통한 지역 변화를 주민과 기획하고 실천하는 상반된 일을 진행했다. 디자인을 통한 사회 참여, 참여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현재 로컬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의 소장이다. 연혜진은 가천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현재 민앤그린 조경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 및 주택 외부 공간, 도시공원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목재친화형 목재도시 조성사업, 선로변 지장수목 관리 가이드라인 수립, 대전 도심구간 경부, 호남선 지하화 개발 방안 연구 용역, 기상관측 환경 개선 사업, 양동구역 제11, 12지구 개방형 녹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2025년 7월호

WORK

선양 재료과학 국가연구센터
Shenyang National Research Center for Materials Science

융합의 정원 융합의 정원은 선양 재료과학 국가연구센터(이하 선양 연구센터)에 조성된 공공 오픈스페이스다. 선양 연구센터의 남북 축을 이루는 이 정원은 주요 건축물과 센터의 동서 방향을 물이 흐르는 수경 요소로 연결한다. 융합의 정원이 센터 남측 주출입구의 배경을 이루는 만큼, 국가연구센터의 위엄과 상징성을 드러내면서도 일상적 활용을 고려한 경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남쪽 광장 남쪽 주출입구에 위치한 광장은 모든 방향에서 주목할 수 있는 시각적 배경으로 만들었다. 약 3천㎡ 규모의 광장에 몽골참나무 열두 그루를 자연스럽게 배치해 모임과 흩어짐, 지나침과 머묾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몽골참나무 군락은 멀리서 보면 건축물의 규모와 어우러지는 개방적이면서도 녹음이 풍성한 경관이며, 가까이 다가가면 독특한 세부 요소를 살피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배치한 흰 벤치는 구름 형태이며, 수목 보호대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사용해 주변 경관과 나무 그림자가 독특한 형태로 맺히게 했다. 구름 형태의 흰 벤치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수목 보호대 수경 시설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수경 시설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만들기 위해 노랑꽃창포를 띠 형태로 식재했다. 이는 건축물 입면이 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부드럽고 한층 더 자연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녹지가 부족한 공간의 단점을 시각적으로 보완한다. 중앙의 넓은 수면에는 원형 수상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 중심부에 높낮이가 다른 금속 패널을 여러 겹 겹쳐 만든 원형 회랑(파빌리온)과 우주를 은유하는 알루미늄 조각을 설치해 주요 경관 요소로 삼았다.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해 장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친수 공간 친수 공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조성했다. 동쪽은 포장 면적을 넓히고 점진적으로 수면에 접근할 수 있는 친수 플랫폼을 설치하고, 곳곳에 긴 벤치를 배치했다. 반면 서쪽은 수변에 맞닿은 정박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포장면의 수목 보호대를 안쪽으로 기울인 형태로 디자인하고, 콘크리트 단 위에 등받이를 설치해 공간을 더욱 가볍고 개방감 있게 연출했다. 수면에 점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테라스 형태의 친수 플랫폼 띠 형태로 심긴 노랑꽃창포가 단조로움을 완화한다. 경직성 완화 건축물과 포장 공간이 만나는 경계 부분에는 두께 8cm 이상의 석재를 사용하고, 리아트리스를 심어 경계의 경직성을 완화했다. 이곳에서는 지피 식물의 색 상과 형태보다는 식물의 존재 여부 자체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 속 비일상 융합의 정원은 과도한 장식, 기이한 형태, 형식적 포장 패턴, 다양한 재료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표면 처리, 마감, 조합 방식, 단차 등 모든 세부적 요소에 서 비일상적인 정교함을 지향하며 국가연구센터라는 장소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절제 속 자유로 움, 간결함 속 풍요로움이 융합의 정원이 추구하는 일상 속 비일상의 디자인이다. 국가연구센터의 위엄과 상징성을 드러내면서도 일상적 활용을 고려한 경관을 만들었다. 글·사진 R-land Design R-land Concept Design Zhang Junhua, Zhao Changjiang, Zhang Peng, Li Ruijing, Zhao Yanying, Shi Wanrong Construction Documents Design Zhang Junhua, Zhao Changjiang, Yan Yili, Yu Feng, Jiang Chongjian, Liu Lixing, Ji Qian, Dai Jing, Zhang Wenxu, Zheng Yunfeng, Bai Zuhua, Hu Haibo Architect Song Dongmi Electrical Installation Xu Feifei, Zhang Yali Structure Ma Aiwu, Shen Shiru Construction China Railway 19th Construction Bureau Client Shenyang Wanbo Development and Construction Location Chuang Xin Lu, Liao Ning Sheng, China Area 1.71㏊ Design 2019. 11. ~ 2021. 12. Completion 2024. 5. Photograph R-land 베이징 웬수경관계획설계사무소(源樹景觀規劃設計事務所, R-land)는 2004년 설립된 중국의 환경 전문 설계사무소다. 경관 계획, 공공 공간, 관광·휴양지, 테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지 경관 설계와 자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경과조경 2025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