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회생활 대부분(약 36년)을 국내 산·학·관을 막론하고 최초로 조경과를 조직한 한국도로공사와 마찬가지로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최초로 조경부서를 창설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에 근무함으로써 큰 보람을 느낀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필자 자신은 당시 정식 조경학을 전공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하였지만 그때는 대학에 조경학과가 개설되지 않아 대부분 유사분야 전공자가 조경에 종사하였다.
임학을 전공한 관계로 필자도 1971년 6월 군에서 예편하여 홍릉에 있는 임업시험장에 근무를 하였다. 1년 후 1972년 12월에 한국도로공사 조경직 공채 1기(현재 활동하고 있는 유의열 신화컨설팅사장, 박선홍 남해조경 부사장 등)로 입사하여 1982년까지 10년간 정상적인 건설업으로서 초기 조경사업을 수행한 셈이다. 그 당시 생각나는 중요한 몇 가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 고속도로 조경공사와 비탈면 녹화 Seed Spray
1973년 봄 신입사원으로 11개 도로관리사무소(도관)에 배치된 조경직에 처음 부딪힌 것이 조경 직영공사 사업이었다. 설계라는 것도 잘 모르고, 어떻게 공사현장을 운영하고 작업인부를 관리하는지도 전혀 모를 때였다. 본사에서 지시된 사업공종(비탈면 쪽제비싸리 식재공사, 칡·담쟁이 식재공사, 비탈면 시종점 식재공사 등)에 맞추어 설계서를 꾸미는데 설계용지(인찰지)와 먹지, 계산기계를 둘러메고 여관에서, 사무실에서 밤을 여러번 세워가며 십여건의 직영 공사내역서를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승인나면 주어진 예산내에서 작업인부를 동원하여 공사를 하는데 거취하는곳(회사 독신자 숙소)에서 아침식사후 고속도로 현장(도관 관리구간 약 70~80km)에 전투화를 신고 걸어다니며 작업지시를 하고, 저녁때 녹초가 되어 숙소로 오는 일을 여름이 될 때까지 반복하여 계속하였다.
2∼3달간 집에 못간 것은 보통이고, 처음으로 조경사업이라는 공사를 감독하니까 재미도 있고 흥이 났으나 모든 것이 서툴렀다.
<본 원고는 요약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