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나는 집을 나와 마음 닿는 대로 가보았다. 주머니엔 책 한권과 빵 한 조각을 넣어 두었다. 나는 어릴 적에 그랬듯이 먼저 뒤뜰로 달려갔다. 정원엔 아직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가 심은 어리고 가는 전나무는 어느새 키도 자라고 둥치도 굵어져 있었다. 전나무 아래로는 연갈색의 침엽수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 나무들은 몇 년 전부터는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서 늘 푸른 자태를 뽐내었다. 그 곁은 좁고 긴 꽃밭에는 어머니가 심은 꽃나무가 늘어선 채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 「정원일의 기쁨」
헤르만 헤세의 글에서 우리는 그가 느끼는 정원과 나무와 자연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머릿속으로 그려나갈 수 있다. 신록이 올라오는 가지에서 봄을 맞이하고 형형색색 꽃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향에 취하며, 햇살이 따가운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으로 청량감을 더하며, 그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 버렸던 추억을 기억을 가족을 떠올리며 인생의 봄날을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들 일상의 삶에서 기억과 추억을 아름다움으로 각색하는 주체가 된다.
TV속 영상으로 보여지는 격동의 세월 속에는 벌거숭이가 된 야산, 다닥다닥 들어붙은 판자촌 화면 다음으로 고만고만한 이층집들이 언뜻언뜻하게 보이고 그 다음으로 눈에 익은 아파트와 고층 건물의 영상이 파노라믹하게 전개된다. 그사이 주변의 민둥산들이 보기에 좋을 만큼 푸르름을 보여 주며 정원, 공원, 녹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리어 온다. 무언가 풍족해 진 것 같다. 나무나 심는 직업이미지에서 도시미학의 확고한 전문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조경가로서 살아가도 좋을 듯 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 강의실 풍경
수업-1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날 이었던가. 특별한 기념일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잘 다듬어진 둥근 소나무, 물레방아, 연못, 맷돌, 디딤석, 국적을 알 수 없는 석등 그리고 아름들이 기암괘석, 그리고 잔디밭이 어우러진 근사한 갈비집에 관한 이미지는 청요리집 자장면으로 기억되던 학창시절의 기념일 공간을 퇴색시키기에 충분 하였다. 나만의 기억이 아니었던지 학부 2학년 식재설계 수업 과제물에는 다양한 갈비집 그리고 가든이 만들어져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