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센간엔
센간엔仙巖園은 사쓰마薩摩번의 2대 번주 시마즈가島津家 19대 손인 미쓰히사光久가 만지万治 원년(1658)에 조영한 별저이다. 이 별저는 번에 소속된 기봉행磯奉行(이소부교) 같은 관리役職들이 집중적으로 관리를 했으며, 역대 번주들에 의해서 개수와 정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나름대로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마즈가 21대 요시다카吉貴는 겐로쿠元祿 15년(1702)에 다실数寄屋(스키야)을 건립했고 가고시마성鹿兒島城으로부터 연결되는 도로를 정비했다. 겐분元文 원년(1736)에 류큐琉球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죽순대를 들여와 정비를 진행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한편 쇼와昭和 34년(1959)에 정원의 동부에서 발견된 ‘곡수曲水의 정庭’은 요시다카가 열었던 곡수연曲水宴을 위해 조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당시에 유행했던 곡수연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구가 되고 있다. 또한 27대 나리오키斉興는 카에이嘉永 원년(1848)에 부지를 확장해 정원의 범위를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후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센간엔은 킨코완錦江灣(금강만)에 면해 있어 기어전磯御殿이라는 별칭을 가진다. 정원의 중심이 되는 못은 이 킨코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축산은 킨코완 건너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사쿠라지마桜島의 활화산을 묘사한 것으로, 이러한 구상은 다른 정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웅장한 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배후의 산에는 세로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암벽에 ‘천심암千尋巌(센진간)이라는 대문자大文字를 각자했는데, 이것은 나리오키가 분카文化 11년(1814)에 만든 것으로, 3문자의 전장은 무려 11m에 이른다. 이러한 규모의 각자는 일본 정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하나의 이색적인 경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미쓰히사 시대에 류큐국왕으로부터 봉납받은 중국풍의 정자 망악루望岳樓(보가쿠로)는 번주가 류큐국의 사자를 응접하는 장소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다이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흔적의 일단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경관을 보면 센간엔은 다분히 중국과 류큐국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으로 남쪽 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학등롱鶴燈籠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안세이安政 4년(1857), 28대 나리아키라斉彬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가스를 사용해 불을 켠 등롱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본저本邸는 메이지明治 시대에 개수된 것이고, 센간엔의 동방 약 500m에는 텐포天保 연간(1830~1844) 초두에 시마즈가의 이관으로 조영됐으나, 얼마 사용되지 않았던 작은 집 ‘화창어가옥花倉御仮屋’이라는 작은 집이 있는데, 이 건물까지 포함해 일곽을 국가지정명승으로 지정하고 있다(小野健吉, 2004).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