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경아 ([email protected])
숲에서 배우는 식물 디자인 노하우
정원은 인간에 의해 연출되는 ‘인위적 예술의 공간’ 이다. 때문에 우리의 눈에 어떻게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연구하고 그에 따라 식물의 구성이나 배치가 이뤄진다. 그런데 이 ‘우리 눈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디자이너와 학자들이 이 기준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이에 대한 연구와 시도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중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것은, 우리의 미적 기준은 결국 늘 지구의 자연환경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그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원에서의 미적 기준은 더할 나위 없이 산 혹은 숲속에서 그 기준을 가져온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식물 디자인을 공부하는 데 있어 자연이 연출한 디자인을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산 혹은 숲에서 배울 수 있는 식물 디자인의 노하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복합성’을 들 수 있다.
1) 식물 종의 다양성(다양한 종의 식물들)
2) 키에 따른 식물군의 다양성(다양한 식물들의 수직 높이변화)
3) 계절에 따른 식물의 다양성(사계절에 따른 식물의 뚜렷한변화)
우리의 숲과 자연 속의 식물은 절대 한 종류가 무한 반복되는 경우가 없다. 다양한 수종이 서로 이웃하며 혼합돼 있고, 이런 다양한 수종의 식물들은 그 높이, 크기,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어우러짐의 질서가 있다.
로버트 하트의 “7개의 층으로 구성된 식물군”
1990년대 로버트 하트Robert Hart(영국 원예가)는 이른바 자연 스스로 식물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다. 그의 연구는 사람의 지나친 관리와 간섭 없이도 이 지구상의 식물들이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데부터 출발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이른바 숲의 생태 체계를 정원으로 활용하는 ‘포레스트 가든Forest garden’의 개념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의 연구는 우선 숲속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됐다. 그는 숲속의 식물들이 수직으로 층을 이루며 조화롭게 살아가고, 이런 층이 식물 각자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예를 들면 가장 키가 큰 그룹의 식물(낙엽수)은 빛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로 구성된다. 키 큰 나무 밑에는 키가 작은 나무가 살고 있는데 이 나무들은 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 아래로 관목의 키가 좀 더 작은 식물군이 사는데 이 식물들은 촘촘한 잎으로 부족한 일조량을 잘 이겨낸다. 또 가장 작은 키의 그룹인 초본식물군은 숲속이 연출하고 있는 그늘졌지만 촉촉하고 풍부한 영양 속에서 살아간다.
로버트 하트가 분류한 식물의 층은 총 7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1) 키가 큰 캐노피 나무 그룹(10m 이상의 키): 참나무류Querqus sp, 느티나무Zelkova serrata, 회화나무 Sophora japonica, 은행나무Ginkgo biloba, 자작나무Betula pendula
2) 키가 작은 캐노피 나무 그룹(5~10m 사 이의 키 ): 과실수, 벚나무류Pruns sp, 물푸레나무Fraxinusrhynchophyllus , 주목Taxus cuspidata,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
3) 관목 식물 그룹(2~3m 사이의 키, 촘촘한 잎을 지닌 키가 작은 나무군): 조팝나무 Spiraea prunifolia, 회양목Buxuskorean, 쥐똥나무Ligustrum obtusifolium, 진달래과 Rhododendron sp. 개나리Forsythia koreana,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4) 초본식물 그룹(1m 미만의 딱딱한 줄기가 없는 풀과의 식물): 다년생 일년생 초화류 모두 포함
5) 지면에서 자라는 식물(30cm 미만, 지면을 덮으며 옆으로 번져 자라는 식물): 아이비, 빈카, 잔디, 고사리과 식물
6) 덩굴식물 그룹(다른 식물을 지지대로 삼아 위로 올라타며 자라는 식물): 으아리Clematis terniflora, 인동덩굴Lonicera japonica, 더덕Codonopsis lanceolata, 능소화Campsis grandiflora
7) 뿌리 식물 그룹(땅속으로 줄기나 혹은 뿌리가 자라는 식물군): 칡Pueraria thunbergiana, 각종 뿌리채소
층의 개념으로 식물 디자인 이해하기
최근에는 로버트 하트의 분류법을 좀 더 진화시켜 여기에 두 개의 식물 그룹을 추가하는 사례도 많다. 이때 추가되는 그룹의 식물은 여덟 번째 수생식물군, 아홉 번째 버섯을 포함한 균이다. 7개의 분류법이든, 9개의 분류법이든 중요한 점은 숲이나 산이라는 생태계는 식물들의 복합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여기에는 식물의 키 즉 높이에 따른 질서의 디자인이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로버트 하트에 의한 식물이 이루고 있는 층의 개념은 ‘숲 정원Forest garden’ 혹은 자연 농업의 개념인 ‘퍼머컬처Permaculture’로 영국을 비롯한 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농업의 차원을 넘어 정원 내의 식물을 디자인하는 기법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특히 원래는 숲이었지만 인간의 도시 개발로 숲이 사라져버린 도시 속에 인위적이지만 다시 숲의 생태계를 모방한 ‘우드랜드 가든Woodland garden’이 등장하면서 단절되고 깨져버린 숲의 생태계를 이어가려는 노력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최근 식물 디자인의 세계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21세기 전까지만 해도 식물을 매우 인위적인 예술성과 구조적 조화에 초점을 맞춰식물 디자인이 이뤄졌다면 오늘날은 자연의 숲속을 재현하는 층의 개념으로 본 식물 디자인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층의 개념으로 식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가든 디자이너들은 평면도라는 수평의 개념에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는데, 층의 개념은 평면이 아니라 입면 즉 수직의 디자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정원은 인간이 서고, 앉고, 누웠을 때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의 크기가 우리의 인체 혹은 건물과 비교했을 때 어떤 높이인지가 수평의 공간을 나누고 가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위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