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흙에 대한 생각을 독자와 함께 나누면서 이 소고(小考)를 시작하고자 한다.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아마 개구쟁이였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밖으로 나가 친구와 함께 저녁 늦게까지 놀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늦도록 뭐하고 놀았기에 옷이 그렇게 더럽니?”라고 타이르시곤 하셨다. 눈치챈바와 같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지금 흙에서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때 맡 았던 흙냄새는 내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나로 하여금 감히(?) 흙에 대해 도전하게 하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흙이 나를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흙에 대한 첫사랑이 나로 하여금 토양을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지 않았나 하고 솔직히 고백한다. 지금부터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내 친구 토양을 소개하고자한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서둔(西屯)벌 교정의 잔디밭은 그시절 내가 스스로 여러 가지 선문답을 했던 곳이다. 그때 나는 “왜 흙은 항상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우리가 잘아는 바와 같이 흙에서는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질 뿐 아니라 흙을 통해 물질이 순환하고 있다. 따라서 흙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문명과 자연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흙이 항상 같은 곳에 머물러 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흙에 대한 존재의 가치와 고마움을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흙에는 사실 그 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다양한 종류의 균형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분주히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마치 수면위에서 우아하고 정적(靜的)으로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떠 있으려고 분주히 놀리는 백조의 물갈퀴질과 같다. 이렇듯이 토양은 문명과 자연의 가치가 충돌 없이 조화의 균형을 중재해온 동적(動的)인 자연체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토양을 소개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