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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 일본의 명원12 에도 시대 초기의 정원(2)
  • 에코스케이프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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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시카와 고라쿠엔의 내정 전경

 

고이시카와 고라쿠엔

미토가水戶家 초대 번주藩主인 도쿠가와 요리후사德川頼房(1603~1661)는 칸에이寬永8년(1629) 도쿠가와 막부 3대 쇼군인 도쿠가와이에미 쓰德川家光(1604~1651)로부터 고이시카와의 땅을 하사받아 거관인 상옥부上屋敷(가미야시키를 짓고 정원을 만들게 된다. 요리후사는 이에야스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으며, 쇼군 이에미쓰와는 백부와 조카지간이었다. 이에미쓰는 에도성에서 열리는 다회에 요리후사를 번번이 초청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고, 차茶를 좋아하는 취미를 공유하고 있었다. 요리후사는 정원을 조영하면서 가장 먼저 다옥茶邸을 건립하여 쇼군을 모실 채비를 한다.1 이것은 이에미쓰를 생각하는 요리후사의 마음이 지극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당시 다이묘들의 차를 즐기는 취미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작정은 도쿠다이지德大寺 좌병위左兵衛였던 작정가에게 맡겨 칸에이 11년(1634) 경에 완성하였는데, 요리후사는 완성된 정원의 모습을 보고 매우 만족하였다고 전해진다(永井 博, 2013).

 

정원이 만들어진 지 100여 년이 지난 겐분元文 원년(1736)에 간행된 『후락기사後樂紀事』에 따르면 정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땅은 지형의 변화가 풍부하였고, 큰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을 만들면서 땅을 고르고 원래 있었던 나무들을 벌목하여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후락기사』에 초기의 정원은 쇼군 이에미쓰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음을 볼때(小野健吉, 2004), 이러한 환경 조성은 이에미쓰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미쓰가 이즈伊豆 등지에서 채집한 거석巨石이나 기석奇石들을 이 정원에 사용한 것이나(永井 博, 2013), 정원이 완성된 후에 자주 이곳을 찾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라 할 수 있다.

 

2대 번주 미쓰구니光圀(1628~1701)도 번주로 취임한 후 아버지가 채 완성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작정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미쓰구니가 번주로 재직한 칸분寬文 원년(1661)부터 겐로쿠元祿 3년(1690)까지의 30년 세월이 지난 후에는 초기의 정원과 많이 다른 또 다른 정원의 모습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 미쓰구니는 칸분 5년(1665)에 명나라에서 망명한 유학자 주쑨수이朱舜水(1600~1682) 2를 빈객으로 맞이하여 예우하였는데, 그때 주쑨수이는 미쓰구니에게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미쳐 미쓰구니를 중국지향적인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미쓰구니 대에 만들어진 정원에서 중국풍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정원의 명칭을 고라쿠엔後樂園이라고 한 장본인도 주쑨수이로, 이 명칭은 중국 송대의 판종양范仲淹(989~1052)3의 ‘악양루기岳陽樓記’ 1절에 나오는 유명한 명귀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주쑨수이의 지도하에 만들어진 정원 내의 시설로는 원월교円月橋와 서호제西湖堤(사이코테이)가 있으며, 득인당得仁堂과 팔괘당八卦堂 역시 주쑨수이의 사상이 건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라쿠엔은 겐로쿠 15년(1702)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綱吉(1646~1709)의 어머니 게이쇼인桂昌院이 내원할 때, 안전 확보를 문제 삼아 원내의 거석과 기석을 모두 치워버렸으며, 4대 번주 무네다카宗堯(1705~1730) 대에는 친아버지인 다카마쓰高松 번주 마스다이라 요리토요松平頼豊의 지시로 700여 주의 고목들이벌채되고 심지어는 큰 못 부근의 기석도 철거되어 창건 당시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버렸다. 더구나 메이지유신 후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서 원내의 건물들이 다수 없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변화되었다(永井 博, 2013).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 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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