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창 ([email protected])
아주 어렸을 때, 무언가 정의감에 타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인도에 함부로 주차된 차들을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사진 찍고 다녔었다. 자동차에 대한 반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까. 거칠게 운전하는 기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들이 불만스러웠다.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1997년에 1천만 대가 넘었고, 2014년에는 2천만 대가 넘었다고 한다. 교통 체증은 일상화되었고, 주차난은 더 심각해졌다.
도시의 골격이 자동차 통행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 재편되는 와중에도 보행권에 대한 목소리 또한 커져갔다. 고가도로가 걷히고 청계천이 복원되었고, 덕수궁 돌담길과 홍대 앞처럼 차도를 좁혀 ‘걷고 싶은 거리’, 보차 공존 도로를 조성하였으며, 수원 행궁동은 한 달간 차 없는 거리를 실험해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한강변에만 놓였던 자전거 도로가 도심에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통학 및 출퇴근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사용했던 터라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는 것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좀처럼 길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지더라도 시설물에 가로막히거나 주차된 차로 인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해 답답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알게 되어 자전거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많은 짐을 자전거에 싣고 여러 나라를 누비는 모습은 당시 군인이었던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자전거 교통 분담률이 30%에 달하는 도시에서 도시민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그들의 자전거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조경, 건축 작품 답사와 식도락 여행을 겸하면 일석삼조라 생각되었다. 건축 공학을 전공한 같은 부대 친한 동기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
자전거 여행을 위해선 텐트, 침낭, 옷 등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어야 했다. 흔히 ‘짐받이’라고 부르는 리어 랙rear rack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리어 랙에 부착하는 전용 가방인 패니어pannier를 구입해서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런 가방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디자인이 다양해서 패션 아이템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린 아이를 태우거나, 짐을 실을 수 있도록한 카고 바이크cargo bike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가 자동차의 운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전거 도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여행용 자전거를 만드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스마트폰 거치대, 휴대용 스피커, 풍력 발전기, 태양광 발전기, 전조등, 후미등, 사이드 미러 등 다양한 부품들을 자전거에 부착하면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여행 시작 6일만에 파리에서 자전거를 도둑맞고야 말았다.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마음을 추스르고 대형 마트에서 적당한 자전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자전거 도난은 유럽에서도 빈번한 일이다. 파리의 대여 자전거인 벨리브velib는 2012년 한 해에만 전체 자전거 1만4천 대 중에서 무려 9천 대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구매한 자전거도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또 한 차례 도둑 맞았다. 웬만큼 좋은 자전거는 밖에 묶어두고 하룻밤을 보내기 어려운 듯 싶다.
자전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실내에 자전거를 보관하거나 CCTV가 달린 자전거 보관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잠시 밖에 세워둘 경우에는 끊기 힘든 종류의 자물쇠를 이용하여 프레임을 거치대에 고정하는데, 퀵릴리즈로 쉽게 바퀴를 분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바퀴 살 안쪽으로도 통과시켜야 안전하다. 자전거를 통째로 가져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바퀴와 안장 등 다양한 부품을 뜯어가서 프레임만 남기도 한다.
이수창은 1984년생으로 생태 도시를 꿈꾸며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으며 동 대학원 도시조경설계연구실에서 공정 여행과 도보 여행 관련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부대 동기와 함께 91박 92일 동안 유럽 곳곳을 자전거로 누볐고, ‘달려라 꿈벅지(꿈꾸는 허벅지)’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자전거 답사 여행은 ‘시즌2 - 호주’와 ‘시즌3 -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현재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에서 야외 식물 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온몸으로 자연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