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수 ([email protected])
기억을 찾아서
어렸을 적부터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탓에 동네 공원은 내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다. 이름도 ‘고척근린공원’, 지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 참 평범한 공원이다. 익숙하다는 말과 평범하다는 말은 의미도 쓰임도 제법 다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인상만큼은 비슷하다. 평범하니 익숙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평범하다고 느낀다. 고척근린공원은 그렇게 내게 무척 평범하고도 익숙한 공간이다. 이리 익숙한 공간이라도 막상 공원에서 보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하고 정리해 보려니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너무 많아서인가보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이라면 도리어 쉬울 텐데. 그래서 이 산발적인 기억을 정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 공원 내의 다섯 개의 장소를 뽑아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나가는 거다. 물론 이 방법이 산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공간을 통해 추억을 더듬는 것이 시간을 되짚는 것보다 기억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참,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다섯 개의 장소가 고척근린공원에 있는 공간의 전부가 아니란 점은 밝혀두어야겠다. 이 장소들을 선정한 기준은 ‘나의 기억이 많이 깃든 곳’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 만남이 꽃피는 정문
공원 진입부인 정문은 초중고생 때 친구들을 만나던 약속의 장소였다. 크고 기다란 모양의 탑이 기준처럼 서있고 그 옆으로 의자 대용으로 쓸 만한 조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친구들을 기다릴 때면 그 조형물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 이 조형물이 생겼을 때, ‘이건 뭔가 이상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공원의 도입부를 알리기 위한 기념물로 세워 놓았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실 정문의 명물은 이기이한 조형물보다 조그만 트럭에서 늘 뻥튀기를 튀기고 있는 아저씨다. 매번 보는 광경이어서 그런지 뻥튀기 아저씨가 없으면 공원에 온 거 같지가 않을 정도다. 공원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탁탁 거리는 기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내게 고척근린공원의 최고 이정표는 동떨어진 섬처럼 자리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 앞을 지키고 선 뻥튀기 아저씨다.
둘, 두 얼굴의 놀이터
놀이터에는 꽤 재밌는 추억이 남아 있다. 네 살 즈음이었나. 미끄럼틀을 무서워해서 매번 동네 친구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친언니의 엄청난 놀림을 받고나서야 미끄럼틀을 타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끄럼틀이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였던 건지, 어린 아이의 눈에 미끄럼틀이 너무 높고 커 보였기 때문인 건지. 무튼 나는 아주 큰맘을 먹고서야 미끄럼틀을 타는 데 성공했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아직도 내 앨범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밤 9시 즈음부터 11시 정도까지, 학원을 땡땡이치고 놀이터에 가면 반 친구들을 참 많이도 만날 수 있었다. 낮 동안 땀이 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주무대였던 놀이터는 저녁이 되면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비행장소가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도 곧잘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면 종종 눈이 맞아 연애를 하는 애들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에 마지막으로 가 본 게 언제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