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정한 ([email protected])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사용하는
모순의 장소이기도 하다.
…
개인적 욕망보다는
늘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다.
우리는 가득하지만
나는 없는 곳,
공원의 리얼리티다.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
그동안 쓴 글과 지은 책의 소재 대부분이 공원이고 이런저런 공원의 계획과 설계에도 참여해 왔지만 막상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니 숨이 턱 막힌다. 시간의 물성이 켜켜이 쌓인 선유도공원, 하늘을 향해 열린 자유와 해방의 하늘공원, 시적 공감각이 신체를 감싸는 빅스비 파크, 황폐한 숭고미가 새로운 희망과 동거하는 뒤스부르크-노르트 파크 정도가 언뜻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장소들의 매력이 나의 삶과 한데 뒤섞이는 것은 아니다. 답사의 대상이거나 연구의 주제이거나 강의의 소재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숱하게 찍은 내로라하는 유명 공원들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전형적인 구경꾼의 시선만 느껴진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그저 조경 잡지에서 본 프레임을 복습하는 모범생의 무표정한 시각, 아니면 스타 조경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연예인 보듯 들뜬 마음이다.
‘나의’ 공원은 어디인가. 연중행사로 큰맘 먹고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적지 않은 추억도 녹아 있다. 아이들의 성장사가 영상처럼 재생된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큰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갈고 닦은 인라인 스케이트 실력을 뽐내는 작은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획일적인 녹색의 풍경, 다른 어떤 곳으로 탈출하지 못한 무력감, 공원에서도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피로와 불안, 명절 세일 중인 백화점보다 더 많은 운동 인파, 이런 것들이다. 나의 공원은 과연 어디인가. ‘어디인가’를 ‘무엇인가’로 바꿔 보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라는 답은 나만의 공원을 발견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
‘조경비평 봄’의 세 번째 책 『공원을 읽다』(나무도시, 2010)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공원의 여러 숨겨진 단면을 노출시켜 독해함으로써 그 기능과 역할을, 그 이념과 가치를 되묻고자 한 기획이었다. 책의 서문격인 글 ‘그래서 공원이다’의 일부를 옮긴다. “… 공원의 어깨는 무겁다. 우리는 공원이라는 단순한 장치가 아주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공원은 아침형 인간이 하루를 여는 조깅코스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킨 주부가 모처럼 여유를 느끼며 걷는 산책의 장소다. 모니터 앞에서 오전을 시달린 직장인이 햇볕을 쬐며 커피와 독서를 즐기는 카페테리아다. 물론 평범한 가족의 주말 휴식을 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공원은 또한 유치원 꼬마들의 소풍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