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민 ([email protected])
“홀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수상 소감을 묻자 가장 먼저 돌아온 답변이다. 조경진 교수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2021년 1월부터 한국조경학회를 이끌고 있는 조경진 교수는 한국 조경 50주년을 맞이하여 미래 50년을 위한 비전플랜을 수립했다. 또한 기후변화, 환경 위기등 다양한 주제의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하여 기후변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앞장서 노력했다. 2013년 ‘한국조경헌장’ 제정과 선포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주요 공원, 정원 등 녹지환경 개선에 앞장섰으며, 2013년 ‘푸른도시 선언 전략계획’ 수립 등 관련 정책을 제안해 조경 분야의 방향성 제시와 정체성 확립,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
한국조경50 비전플랜 선언,
새로운 한국 조경 50년을 준비해야 할 때
1972년 12월 29일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조경은 2022년 50주년을 맞이한다. 한국조경학회는 10월 28일 한국 조경 50주년을 맞아 조경의 역할과 기능을 되돌아보고 한국 조경의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선언했다. 2021년 한국조경학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조경진 교수는 한국 조경의 미래를 위해 실효성 있는 계획을 마련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은 미국의 자연과 공원을 관리·보존하기 위해 10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며, 싱가포르, 중국, 미국 디트로이트의 여러 기관과 지자체는 50년 계획을 설정하기도 한다. 한국도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비전플랜위원회를 조직해 조경의 개념과 정체성, 조경의 영역과 전문성, 미래 환경의 변화와 조경의 대응 세 가지 분야로 나눠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조경 안팎의 의견을 모으는 활동을 진행했다. “비전플랜 선언문은 지난 50년의 조경을성찰하면서 미래 50년을 내다보는 통찰을 담고 있다. 또한 미래 조경의 주요 아젠다, 조경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공적 책무, 실천 역량이 있는 인재 양성 등의 포괄적 내용과 구체적 실천 과제가 담겼다. 비전플랜을 관련 학회, 협회, 기관, 업체가 공유해 한국 조경을 위한 후속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육성이다. 해외는 체계적인 교육으로 조경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한국은 부족한 실정이다. 비전플랜을 발판 삼아 전문적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경진 교수는 기후위기, 탄소 중립, 도시공원 등 다양한 키워드로 포럼과 세미나를 주최하기도 했다. “21세기 조경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기후위기, 탄소 중립이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설계와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2022)에서 진보의 시대에서 벗어나 적응과 어우러짐, 생명애 의식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회복력 시대로 변화해야 하고, 자연에서 생활하고 이에 대한 시민의식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개념은 공공 공원이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탄소 중립, 도시공원은 다 연결되어 있는 주제다. 공원은 공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독자적 영역이므로 끊임없이 토론하고 연구해야 한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한국 조경 위상을 알리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이하 IFLA 2022) 한국 유치는 2016년부터 추진된 일이다. 광주컨벤션뷰로(현 광주관광재단)가 적극적 유치에 나섰고, 고 김성균 회장(한국조경학회)이 그 기반을 다졌다. 제54차 세계조경가대회(몬트리올, 2017) 각국 대표자 회의에서 조경진 조직위원장은 유치 설명회를 진행했다. 조경진 조직위원장은 두 가지 측면을 각국 대표자들에게 강조했다. “첫째, 2022년은 한국 조경이 태동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며,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가 한국에서 개최한 지 30년이 흐른 해다. 둘째, IFLA 2022가 열리는 광주와 그 일대는 예향의 도시이자 아시아 문화 대표 도시로서 정원 및 경관문화가 풍부하고 과거 민주화 운동의 거점으로 탄탄한 층위를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각국 대표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유치가 확정됐다. 이후 2021년 조직위원회를 결성했고, 2022년 8월 31일부터 9월 2일 광주에서 IFLA 2022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IFLA 2022를 준비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가 언제 잦아들지, 몇 명이 참석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였다. 3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봉쇄 정책은 8월까지 이어져 중국 조경가들이 IFLA 2022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완화된 시점이여서 많은 조경가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전무했다. 조경 학회, 협회, 업체 등의 지원과 모금으로만 진행해야 했기에 많은 부분이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많은 기관과 업체, 참가자, 서포터즈 등의 도움으로 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IFLA 2022는 한국 조경의 가능성과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조경가들의 기조 강연과 조경가 정영선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 상영으로 한국 현대조경의 다양한 면모를 알릴 수 있었다. 각국 대표단 환영 만찬을 오가헌에서 진행했다. 고택에서 펼쳐진 공연과 한식의 향연으로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선보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 마을과 사찰, 정원에서 현대 조경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조경과 문화의 폭과 깊이를 알렸다. “광주에서 열린 IFLA 2022는 한국 조경에 큰 유산을 남겨주었다. 한국 조경이 세계로 진출하여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였다. 이제 K-조경의 정체성을 잘 정리하고 구축할 때다. 현대 조경을 한국의 고유 문화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잘 접목시키고 세계인이 공유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K-조경, 이제 자신감을 가지고 글로벌로 나갈 때다.”
한국조경헌장 제정과 푸른도시 선언 전략계획 수립,
조경의 기본적 틀을 마련하다
조경이란 무엇인가. 인터넷 검색창에 ‘조경’을 검색하면 가지각색의 설명이 나온다. 이처럼 조경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다. 불분명한 조경의 정체성을 천명하고, 조경의 범위와 지향점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3년 조경진 교수는 당시 한국조경학회 회장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를 필두로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하고자 조경헌장제정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특별위원회는 8번의 회의를 열고 ‘한국조경헌장 제정을 위한 포럼’을 개최해 2013년 10월 28일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했다. 한국조경헌장은 조경의 가치, 조경의 대상, 조경의 영역, 조경의 과제 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조경헌장으로 조경의 기본과 정설을 정리하고 기본적 준거를 마련했다. 한국조경헌장은 다른 이에게 조경을 설명할 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기틀이 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경진 교수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동안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을 맡아 도시공원 관련 정책에 대한 자문을 담당했다. 실질적으로는 서울식물원 총괄계획가(2013~2019)로 서울식물원 기획에서 마무리까지 진행을 맡았다. 2013년 공원녹지 총감독으로 활동하며 ‘푸른도시 선언 전략계획’(이하 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전략계획은 2013년 4월에 선포한 ‘푸른도시 선언’의 철학과 메시지를 정책화한 것으로, 전 세계 도시공원 정책을 조사해 글로벌한 상황과 발맞춘 정책과 계획을 입안했다. “전략계획을 통해 공원 거버넌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공원 정책과 계획을 만들 때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또한 실질적 효용 가치가 있고 비가시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조경진 교수는 기후위기, 팬데믹 이후 조경의 가치와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조경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미래 세대에게는 조경을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