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영 ([email protected].)
2009년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전부터 용산공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으니 벌써 6년이 넘었다. 국제공모 당선 이후 본격적으로 몸담은 기간만 치더라도 3년. 사랑의 유통기한은 지난 셈이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사랑의 감정은 더 이상 없는데 프로젝트와 헤어질 수 없다니,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빈자리를 정, 우정, 동지애 같은 감정이 열심히 채우고 있음을 안다. 낯설고, 한편으로는 서글프지만, 오히려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따지고 보면 정도 사랑의 일종이 아니던가.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
용산공원 프로젝트는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1990년 6월 한국과 미국이 용산기지 이전에 대해 기본합의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공원화의 서막이 열렸다.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기지 이전 이행에 대한 합의서를 의결했고 이듬해 이를 대한민국 국회가 비준하면서 공원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마침내 2007년,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발표되고 용산미군기지 본체 부지의 공원화가 선포되었는데, 이는 1991년부터 국무조정실, 서울시, LH, 한국조경학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등 다양한 기관과 학계가 수행해 온 연구가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행 연구들은 공원의 기본 구상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와의 상생, 재원 마련, 단계별 개발, 시민 참여 등의 방안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 바 있다.
사실 한국의 사회적 환경과 업무 문화에서 한 프로젝트가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은 특이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성숙한 논의를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위한 전략적 행위였다기보다는 아직 미군기지가 반환되지 않아 공원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는 현실의 부산물로 보인다. 물론 오랫동안 논의하고 연구하여 공원의 구상이나 전략 등 내용적 측면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틀이 구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공원이 실제조성되기까지 여전히 많은 절차와 단계가 남아 있다. 정부는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국토교통부에 ‘용산공원 조성추진기획단’이라는 별도 기구를 신설하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지만 7년이 흐른 지금, 이 프로젝트는 아직도 ‘공원조성계획’ 단계에 머물러있는 상태다. 특히 계획된 일정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West 8 + 이로재 + 동일기술공사는 그 해 10월 국토교통부와 공원조성계획 및 기본설계 계약을 체결해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현재까지 공원조성계획도 완료하지 못한 실정이다. 공원조성계획 및 기본설계는 총 30개월 계약으로 2015년 4월에 끝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그간 예산 미 반영 및 제반 여건 변화로 인해 계약 공정의 70% 정도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다행히 2016년 예산은 요청한 만큼 배정받게 되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 연장이 불가피해졌고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언제 공원조성계획 및 기본설계 단계가 끝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계약이 끝난다 하더라도 실시설계 단계가 기다리고 있고 토양오염 정화라는 변수도 남아 있어 실제 공원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훨씬 더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제약과 한계
물론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느릿느릿 진행됨으로써 생기는 시간적 여유를 잘 활용한다면 프로젝트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20여 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채 본격적 공원화에 착수한 것은 분명 이 프로젝트가 가진 한계다. 물론 어떤 프로젝트도 미래를 완벽히 예상하고 모든 것을 준비한 후 시작할 수는 없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상황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고 결국 문제에 맞닥뜨릴 때 마다 조정하고 해결해 나가면서 순간순간 최선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AECOM(전 EDAW)을 거쳐 West 8 뉴욕 오피스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팀의 당선을 이끌었고 현재 서울과 로테르담을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 및 공원조성계획 수립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이며, 친환경건축물 인증제 공인 전문가(LEED AP)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