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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림은 거들 뿐
  • 환경과조경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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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투박한 골목길을 닮은 정원을 조성하고자 여분의 건설 자재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유청오

 

변방의 설계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 부천에 사무실이 있다. 공동 주택 조경보다 도시공원 및 녹지를 주로 설계한다. 신규 대형 공원 설계보다 중소형 공원을 리모델링하는 일이 많다. 녹지 정비에 관한 설계도 한다. 공원 설계공모에 참여하고 싶은데 참여 조건도 못 맞추고 기회도 별로 없다. 종종 건축 설계공모에 포함되는 조경 공간에 대한 의뢰가 들어온다. 조경에 대한 심사나 배점도 없으니 적당히 하려 한다. 정원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원이 유행하면서 공공 정원 일이 많아졌다. 민간 정원은 가급적이면 클라이언트 본인의 취향대로 직접 가꾸기를 권한다. 정원 설계부터 시공까지 책임지는 디자인 빌드(design-build)를 추구한다. 설계만으론 먹고살기 힘들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운영이나 전시 기획에도 이따금씩 관여한다.

 

그들이 설계해 준다, 우리가 설계하는 법

어떤 발주처 담당자가 핀터레스트에서 찾은 멋진 이미지를 들이민다. 순발력을 발휘해 이 그림 같은 설계를 실현할 수 없는 이유를 풀어 놓지만, 결국 되는 이유나 당위성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몫이다. 어떤 자문위원 혹은 심의위원이 당연한 말을 시작으로 이상한 결론을 내준다. 정면 반박은 일을 복잡하게 만드니 당연한 말을 시작으로 최소한으로 수정하며 부분 반영이라는 결론을 낼 방안이 있는지 머리를 굴린다. 어떤 건축가가 조경 공간에 대한 계획을 그려온다. 공감하고 이해하기 어려워도 선부터 다듬어줘야 한다. 처음엔 식재 수종에 관한 전문성만 요구하지만 건물 밖에 해당하는 부대 토목, 설비, 조명 일체를 다 우리가 해결하길 바라는 눈치다. 외주 설계비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런 건 우리도 잘 몰라요해도 잘 안 믿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아라는 듯한 대화가 오간다.

 

그래도 대부분 일의 시작엔 설렘이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빨리 끝내고 싶다며 내려놓기 시작한다. 의욕적인 디자이너에서 무욕의 엔지니어로 전환하는 기분이다. 우리의 디자인이나 아이디어가 까이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네 글자로 압축하면 실력 부족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자책하는 절대적 기준에서다.

 

그럼에도 좋은 발주처, 좋은 파트너, 좋은 설계비, 가슴 뛰는 대상지는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을 나열하고자 한다. 정해진 법칙 같은 것은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정리하려니 뭔가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아 자신감이 하락하고 있다. 내가 가진 디자인 철학은 쉽고 명쾌하게’. 일단 쉽게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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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바이 업사이클링(Garden by Upcycling)’, 2015 대한민국 한평정원 디자인전 ⓒ최윤석

 

오래, 자주, 샅샅이 보기 

어떤 대상을 마주하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계는 현황 분석과 문제점 도출이다. 대상지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 나 유행도 분석 요소가 된다. 의뢰인의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설계가로서 마주한 상황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간의 정원박람회나 공공 정원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전략은 후자에 가깝다. 정원 만들기에 관한 고민은 예산에서 시작되고 예산 때문에 끝난다. 부족한 예산에 대처할 해결책을 현장에서 찾기도 한다. 나름대로 호평을 받은 서울숲 ‘엄마의 정원’(『환경과조경』 2017년 8월호 참조)은 서울숲에 방치된 자재들을 새롭게 활용한 정원이다. 2015 대한민국 한평정원 디자인전에서는 체재비와 경비로 사용하기에도 빠듯한 조성비가 업사이클링 가든이라는 콘셉트를 도출시켰다. 일련의 디자인빌드 경험을 통해 얻은 쓸모에 관한 관심은 설 계 화두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존재감 없는 무언가가 새로운 공간에서 어떻게 가치를 드러내게 할지 고민한다. 물론 프로젝트의 경제성은 기술 심의나 계약 심사 단계에서 알아서 끌어올려지지만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자재 변경, 물량 축소, 감액보다는 기존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장소 고유의 가치 발견이라는 덤까지 취할 수 있는 설계를 지향한다. 2018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 조성한 ‘길 위의 상상 그리고 작은 발견’ 역시 오래, 자주, 샅샅이 보고 얻은 아이디어의 총합이다. 우리가 흔히 지나다니는 골목길, 정원의 오브제, 대상지의 장점에 주목했다.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낡은 포장재와 버내큘러(vernacular) 디자인이 엿보이는, 투박한 시설이 즐비한 정원을 떠올렸다. 주변 지인들에게 각종 건설 현 장에서 나온 여분 자재를 받아 사용했고, 길을 다양한 재료로 구성해 구간마다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정원 이름에서 표 현했듯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상상과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곳곳에 숨긴 작은 금속 조형물은 당시 여덟 살이던 아들이 그린 낙서 같은 그림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다.

정원의 오브제가 꼭 거대하거나 값비싸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감 가는 그림과 형상이 정원의 맛을 살 렸다. 대상지는 내가 살던 집에서 가까웠는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거의 모든 시간대의 대상지를 경험한 것이 식재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대상지는 바닥에 이 끼가 무성하며 햇볕이 언뜻언뜻 내리쬐는 반음지였다. 해가 넘어감에 따라 음지에서 양지로, 양지에서 음지로 바뀌는 모습이 변화무쌍했다. 기존의 느티나무들은 그대로 두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정원에 드리우는 나무 그늘과 빛의 변화를 빠르게 느끼도록 유도했다.  

 

쓸모에 대한 고민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도시공원은 서울숲이다. 구성과 계획이 훌륭하고 설계 디테일은 아직도 실무에서 참고하고 있다. 민간 위탁 운영(서울숲컨서번시)을 통한 남다른 활성화 방식은 공간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 요인이다. 하지만 조성된 지 약 1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숲에도 훼손되거나 잘 활용되지 못하는 공간이 생겨났다. 이러한 공간을 기업 사회 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재활성화하는 공공 정원 프로젝트에 몇 년 전부터 참여했다. ‘설렘정원’(2019)의 대상지는 방문자 센터에서 진입할 때 바로 만나게 되는 공간이었다. 마사토 포장의 원형 마당은 푸르 른 녹음과 꽃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듯 했다. 서울숲에서는 야외 웨딩 촬영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 는데, 서울숲컨서번시와 함께 이 공간의 활성화를 고민하던 중 스몰웨딩이라는 트렌드에 착안해 웨딩가든을 콘셉트로 잡았다(임대 공간으로 오해할 수 있어 시민 공모를 통해 설렘정원이라는 이 름을 새로 붙였다). 빈 곳이라도 공간을 작동시키는 테마가 개입 하는 상상을 할 때 그곳이 장소가 되는 기대감이 생긴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려면 테마에 따른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 조성되는 중에도 서울숲컨서번시와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고민했고, 매년 리마인드 웨딩이나 기념 명판 설치 등의 이벤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벤 트 참여를 위해 사람들이 보내 온 사연도 인상적이지만 정 원에서의 결혼식은 그들의 기억 속에 깊게 남을 것이라 믿는 다. 풍경적 요소에 더해 장면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 작업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숲 속 쉼터인 ‘겨울정원’(2020~2021) 역시 다른 공간에 비해 이용률이 낮은 곳이었다. 왕성한 관목들로 둘러싸여 하절기엔 어두울 정도였고 동절기엔 마른 가지들이 무성했다. 관목을 이식하고 간벌을 통해 공간을 밝혔으며 서울숲컨서번시와의 워크숍을 통해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풍경을 만들기로 했다. 이 정원에서 봄부터 가을은 겨울을 상상하게 하는 시간이다. 겨울에 보는 정원의 모습을 열 가지로 추리고 올해 두 가지를 더해 완성했다. 숲 속 쉼터라는 기본적 기능에 겨울 정원이라는 아이템이 더해져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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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정원’. 원형 마당에 웨딩가든이라는 콘셉트를 적용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장소로 재탄생시켰다. ⓒ유청오

 

제목 혹은 이름 짓기 

대상지에서 파악한 여러 요소엔 장소를 구상하는 힌트가 들어 있다. 프로젝트의 화두일 수 있고,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일 수도 있으며 정제되지 않은 콘셉트나 희 망하는 장소성을 내포한 명칭일 수 있다. 머릿속을 떠다니 는 단어를 조합하거나 하나를 선택해 공간의 이름을 짓는다. 설계 초반부터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고심 끝에 탄생한 제목 혹은 이름은 디자인의 일관성을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 공간이 풍기는 이미지가 생겨 설계 의 도를 더 쉽게 전달할 수도 있다.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주고 이후 정식 이름을 짓듯 이름엔 스토리나 정체성, 바람이 담긴다. 여담이지만 이런 괴상한(?) 집착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성명학과 이름 짓기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림은 거들 뿐 

제목 다음은 줄거리다. 대개 일의 초반에 제안서를 작업하는 데 딱딱하게 구성하기보다는 서사를 풀어내려 한다. 시놉시스는 설계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본 매체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공간의 형태를 글로 설명한다. 그래픽이 아니라도 이 정원에서 일어날 ‘장면’을 설명하면, 작업 과정에서 즉흥적 아이디어가 더해져 더 풍부한 장면을 가진 정원을 만들 수 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클라이언트나 협업자에게 제안할 땐 스케일이 반영된 계획도보다 사진과 글이 오히려 효과적일 때가 많다. 도면이나 그림만으로 첫 논의를 하면 중요 콘셉트나 맥락을 건너뛰고 이미지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나 의견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설계가라면 노란 트레이싱지와 한몸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름종이를 써본 지 오래됐다. 손에 땀과 기름이 많아서 그런 지 나랑 잘 안 맞는다. 매번 마스킹 테이프로 귀퉁이를 붙이기 귀찮기도 하다. 초안을 스케치할 때면 베이스 맵을 A3 사이즈로 여러 장 출력해 그 위에 사인펜과 볼펜으로 몇 번 그려본다(그다지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가 없는 것도 이유다). 개인적으로 손 스케치가 뛰어나지 않고 오래 앉아 있는 성격도 아니라 시놉시스를 구상하는 시간이 더 많은 듯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보다 이동 중에 생각의 스위치를 켜놓는다. 뭔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 애플리케이션에 수시로 적고 고친다. 그림이 편할 때도 있는데 그마저도 글로 저장한다. 이렇다 보니 부끄럽게도 이 지면에 첨부할 멋스러운 손 스케치가 없다. 이 글도 메모장 앱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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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된 회전형 플랜터의 모습 ⓒ이택수

 

엔지니어링, ‘장그래’처럼 

종종 실무와 관련한 강의를 요청받으면 늘 제목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다. 창의적이고 멋진 디자인이 끝이 아니고 엔지니어적 소양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실시 설계보다는 기본계획에 더 흥미를 느끼고 그런 일만 열망하 던 초년 시절이 있었다. 우연히 읽게 된 『마징가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2005)는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의미 있고 중 요하는 걸 알게 했다. 디자인적 관점 못지않게 엔지니어링적 관점이 설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체감했다. 현재 진행하는 모든 조경 프로젝트는 시공을 전제로 하기에 구조, 공법, 자재 선정, 내역 등을 면밀히 살핀다. 모든 분야에 관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도입하고자 하는 새로운 것에 대 해서는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배운다. ‘버티컬 가드닝 Vertical Gardening’(돈의문박물관마을 수직정원 설계공모 당선작, 2019) 에서도 이러한 견지는 유지되었다. 일단 구상이나 계획안을 그려놓고 당선되면 실시설계를 고민하는 대신, 공모 준비 초기부터 수직정원 관련 업체, 구상하는 구조물 제작이 가능 한 시설물 업체를 만나 제출안을 마련했다. 새로운 디테일은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처럼 뭐가 뭔지 몰라도 일 단 배우며 감을 잡는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실패의 두려 움이 공존하지만 협업하는 엔지니어들을 믿고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시설물 업체에 읍소하고 구슬리고 닦달하며 수직 정원 구조물의 도면과 견적을 뽑았던 기억이 있다. 한편 짧은 기간이나 일방적 시각 때문에 더 좋은 시공 아이디어를 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시설계가 끝나고 시설물 업체에 회전형 플랜터에 대한 샘플 제작을 종용했다. 철 물을 담당하는 업체에서 더 좋은 구조물의 회전 방식을 제 안해 왔다. 수동식 개별 회전 방식이 아닌 체인을 이용한 동 시 회전 방식이기에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었다(시제품을 보고 탄 성을 내뱉었을 정도로 놀라웠다). 설계 변경을 하더라도 이것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계약상 우리의 역할은 이미 끝난 후였다. 이 개선 사항은 반영되지 못했다. ‘그들이 감독하는 법’ 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설계자, ‘정마담’ 혹은 ‘마카오박’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 상황을 지켜보니 내가 하는 일이 조경설계보다 다른 의미의 설계에 가까운 듯하다. 한동안 잠 잠하다가 마치 짠 것처럼 한 순간에 여러 프로젝트가 중구 난방으로 들어온다.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이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영화 ‘타짜’의 정마담이나 ‘도둑들’의 마카오박처럼 작전을 짠다. 여기에 이걸 의뢰하고, 저기에서 견적을 받고, 넌 이걸 맡고, 넌 저걸 맡고 끝나면 저기 붙어서 도와주고……. 시공 현장에서도 스케줄을 짠다. 일 단위뿐만 아니라 시간 단위로 치밀하게 짜려고 한다. 왜 전장의 사령관이 아닌 정 마담이나 마카오박에 비유했냐면, 영화처럼 계획은 다 틀어지니까. 그럼에도 계획은 짠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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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요정들의 숲정원’ ⓒ최윤석

 

순발력과 우연성 

실시설계 도면은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를 표방하지만 직접 시공을 전제로 하는 도면에는 핵심만 표기한다. 반드시 정확하게 구현해야 할 요소나 예산과 직결되는 물량은 예외지만 그 외는 현장에서 설계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변덕이나 변수는 늘 있기에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예상한대로 진행되는 편안함 보다 즉각적으로 변수에 대응하는 설계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공장에서 제작된 제품을 단순 배치하는게 아니라면 설계안대로 될 거란 100%의 확신이 없다.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자연물은 늘 우연성을 내포한다. 현장에서 배치하니 예상한 느낌과 다른 경우도 있고 의외로 기대하지 않은 형태가 딱 들어맞을 때도 있다. 식물의 변화 역시 예상하기 어렵다. 생각보다 생육이 불량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잘 번식 하는 경우도 생긴다(식물의 세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공부가 한참 더 필요하다). 이러한 우연성이 일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좌절에 빠지게도 만든다. ‘도깨비와 요정들의 숲정원’(광릉숲길 어린이정원, 2021)에서 기존의 고사목 통나무와 거대한 사각 방부 목을 배치한 도면은 어디까지나 물량 산출을 위한 계획에 불과했다. 시공 작업자들이 하차 후 잠시 쉬는 동안 이리저리 좋은 각도를 봐가며 즉석에서 배치도를 다시 그렸다. 덕분에 태풍 피해로 부러진 대형 고사목을 하나의 조형물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이리저리 놓다 가장 좋은 각도를 찾은 고사목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경설계가로 임하는 것 

사실 몇 해 전 진지하게 조경설계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설계 용역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나름의 소명 의식을 잠식하는 상황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 해결해주었지만) 설계 규모가 크건 작건, 작업에서 본인의 기여도가 크든 작든, 좋은 공간을 만드는 시작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조경가들이 설계할 때 갖는 마음일 것이다. 그림은 거들 뿐이라는 말 은 드로잉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뭔가를 그리는 행위는 설계 과정에서 극히 짧게 느껴진다. 오히려 다른 과정의 총합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어떤 시간대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묵묵하게 나아가는 모든 조경가를 응원한다.

 

최윤석은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혀 2008년 그람디자인(gramdesign)을 설립했다. 정원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장소 만들기를 추구하는 집단 정원사친구들에서 2011년부터 활동해 오고 있다. 조경설계도 하고 정원 시공도 하며 어떠한 장소나 소재의 가치를 발견해 돋보이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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