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모아 ([email protected])
아직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2월의 초입, 가벼운 옷차림으로 서울숲을 향했다. 힙한 음식점과 빈티지한 풍경이 어우러진 인근 카페거리는 이른 시간부터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열기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대로변, 오피스 빌딩 2층에 동심원조경이 있다. 각양각색인 오피스의 특색을 반듯한 콘크리트 벽으로 재단해 놓은 듯한 복도를 걷다 보니 익숙한 패널들이 우리를 반겼다. ‘경의선숲길’,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까지. 새로운 질문거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미지를 뜯어보는 사이, 맞은편의 문이 열렸다. 며칠 전까지 치열한 설계공모와의 싸움에 임했던 박경탁 소장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전략기획실 대신 서재 앞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했다. 염려와 달리 인터뷰의 물꼬를 트자마자 박 소장의 얼굴에 생기가 차올랐다. 그는 첫번째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먼저 말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 편집부가 포착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이 가득했다.
오기가 빚어낸 열정
-‘제2회 젊은 조경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장님은 유독 공모에 강한 것 같습니다.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2004)과 ‘제1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2007) 대상 수상자이시기도 하죠. 당시 제1회 공모전의 대상을 연달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든 조경학과 학생이 설계에 관심을 갖고 공모에 참여하진 않는데요, 공모전을 열심히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군대 가기 전에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렸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충식 교수님이 당시 저희 학교 조교로 계셨는데, 학과 수업에 관심이 없다고 절 꾸짖기도 했어요.”
-학과 수업을 약간 등한시한 건가요?
“등한시했다기보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모든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다들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죠. 저 역시 기타도 배우고, 문선을 하는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안무를 만들고, 연습하고, 큰 축제에 공연을 올리고, 거리 공연도 하고, 이런 활동에 심취했죠. 동아리 활동에 지쳐 강의실 뒷자리에서 몰래 자기도 했고요.”
-춤을 잘 추겠어요.
“열정이 넘쳤죠. 그런 학생이 돌연 복학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니 아무도 안 믿었어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공모전 소식을 들었어요. 당시 3학년이었는데 포토샵을 전혀 다룰 줄 몰랐어요. 늦게 배우기 시작했죠. 그 결과 ‘제4회 늘푸른 환경조경설계 공모전’(2003)에서 입선을 했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대상작을 보며 부러워할 때, 저는 내년에는 내가 대상을 받아 수상 소감으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할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실제로 일 년 뒤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소감으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을 하니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어떤 자신감이 생겼어요. 포토샵이야 배우면 되는 거지, 감각은 어떻게 못 해! 친구들이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웃음).”
-이후에도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상금이 꽤 큰 공모전도 생기고, 여러 공모전이 열린 시기였죠.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제4회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 공모가 열렸어요. 학교를 대표해서 제가 참여하게 됐는데, 살사 국제대회 단체전 수상 등 독특한 이력이 심사위원에게 흥미롭게 느껴진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셈이죠. 우수인재로 선정되어 대통령 메달과 교육부총리 상장을 받고, 금강산 체험 연수도 다녀왔습니다. ‘우수인재’라는 타이틀을 얻으니 유학이 내가 가야 할 길처럼 느껴졌어요. 원하는 대학원에 합격도 했죠. 그때는 학비를 마련할 길이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없었어요. 결국 입학을 못 했죠. 일주일 정도 짧은 방황을 했어요. 그러다 일단 돈을 벌어보고 그때도 안되면 포기하자고 결심했죠.”
-그때가 O3스코프(O3scope)의 시작점이군요.
“유학을 준비하며 건축을 경험할 겸 건축사무소에 잠시 다녔어요. 그곳에서 휴학 중 일을 하고 있는 실력 있는 학생을 만났는데,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았어요. 학비 문제로 유학의 꿈이 좌절되고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이 친구랑 함께해보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맘 먹고 부탁했어요. 나를 위해 휴학을 계속해줄 수 있겠니? 이대로 유학을 포기하기 전에 직접 학비를 벌어 볼 생각인데 네가 함께해 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터무니없는 부탁이었는데, 정말 절 위해 휴학을 하고 O3스코프에 함께해줬어요. 그 친구가 에이트리의 김상윤 대표에요. 그때 진 빚을 갚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갓 졸업한 학생이 일을 수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선 명함을 예쁘게 팠습니다. 꽃분홍 색지에 엠보싱 가공을 넣어 책갈피처럼 만들었어요. 이름은 작게 넣고요. 소장님들을 찾아가 명함을 나눠드리며 일 있으면 달라고 했죠.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학교를 막 졸업한 풋내기에게 무슨 일을 맡기겠어요. 그런데 운 좋게 당시 한국 조경이 성황이었어요. 다양한 현상공모와 턴키 PF가 쏟아져 나오는데 사람은 부족했죠.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인터뷰이 남기준 편집장
녹취·정리 김모아 기자
사진 유청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