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성호 ([email protected])
창이 없는 집은 무덤이다. 그래서 죽음은 미니멀한 풍경이다. 종묘가 그렇다. 왕의 죽음들이 늘어 서 있는 풍경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집과 달리 극단적이다. 처음 지하철을 설계한 사람들은 지하에 풍경이 있을 리 없으므로 창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지하철이 풍경이 없는 땅 밑을 다니는 교통수단이라는 것만 생각했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걸 놓쳤다. 아무 볼 것도 없는 밖이지만 사람들은 창을 원했다. 지하철에 창이 생기자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창은 바깥을 보기 위한 통로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내면이 가 닿는 깊이가 있다. 그 깊이는 바로 자기의 깊이다. 창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 볼 용기가 없거나, 여유가 없는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시계는 우리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창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가 닿는 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창을 통해서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본다. 창을 보고 있는 시선은 그래서 깊다.
창이 건물의 높이에서 안과 바깥의 드나듦과 넘나듦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과 연결한다면, 정원은 건물의 바깥에서 우리를 자신의 내면에 있게 한다. 자신의 정원에 서 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들어 와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조선 정원이 다른 정원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조선 정원은 조성자의 안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일본 정원처럼 자연을 모사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정원처럼 대상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는다. 조선 정원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그래서 조선 정원은 건축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원 자체로 독립적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땐 건축이 정원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니, 많은 경우 조선 건축은 정원의 한 대상이다. 조선의 건축은 정원에 포함되고, 정원은 원림에 포함되고, 원림은 산수에 포함된다. 그래서 이루어지는 큰 그림이 산수지리山水地理다.1 조선의 건축은 산수지리-원림-정원-집의 순으로 접근해 간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려서 집의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다시 집안에서 바깥으로의 시선을 창을 통해 구현하고, 그 바깥에 내면을 표현한다. 그것이 조선의 정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조성자의 삶의 통찰, 철학적 배경이 없을 수 없다. 또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상징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조선의 정원은 간단하다. 연못,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상징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산수와 만나면 더 큰 이야기가 된다. 그 옛날 한양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산수지리의 원리가 지켜졌기 때문이다. 정원이 없어도 도시 자체가 산수지리의 맥락에 있었고, 그 큰 흐름 속에서 집들이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 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을 썼다. 현재 건축실험집단 EON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