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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올해의 조경인 [학술분야]: 황기원
  • 환경과조경 2012년 12월

Hwang, Kee Won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경관의 해석-그 아름다움의 앎』의 출판기념식에서 황기원 교수를 처음 만났다. 몸이 불편하니 힘들 법도 한데 언제나 유머 섞인 말투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고 웃게 만들기까지 했었다.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 인터뷰차 찾아간 황기원 교수는 지난해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스승으로서, 학자로서, 지난 세월 탁월한 조경가의 능력을 보여준 조경 프로젝트까지 황기원 교수의 업적은 ‘제15회 올해의 조경인’ 학술부문 수상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심사위원회는 평가했다.
“자벌레처럼, 평생 학생들과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뿐입니다. 힘이 되어준 가족과 제자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역경의 순간, 그리고 다시 강단으로
서른셋. 처음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부임할 당시 황기원 교수의 나이이다. 무척이나 젊은 시절 교단에 올라 교직의 길을 걸어와 이제 곧 정년(2013년 2월)을 앞둔 황 교수의 학창시절 별명이 재미있다. 하버드 설계대학원에서 조경과 도시설계를 전공할 당시, 황 교수의 별명은 ‘프로페서(Professor, 교수)’였다. 세계의 인재들이 모인 하버드에서 ‘프로페서’라는 별명으로 석사과정을 지냈으니, 그의 박식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록펠러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2006년 10월, 누구보다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조경가로서 정진해오던 황기원 교수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3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06년 7월)에 참석했을 때 풍토병에 걸린 것이다.
이를 알지 못한 채 제주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바빴던 황 교수였다. 몇 개월간 방치한 게 화근이 되었고 결국 심장수술과 뇌수술을 견뎌내야만 했다.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었지만 휠체어의 도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단에 다시 서겠다는 그의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순 없었다. 2008년 다시 학교로 복직했고 가족과 연구실 제자들의 도움으로,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열정적인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긴 시간동안 강의를 이어가자니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제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또 올해가 마지막 학기라는 사실이 황기원 교수를 ‘일찍 일어나는 새(early bird)’로 만들고 있다.

조경가 황기원, 학자 황기원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파리공원을 꼽았다. 애착도 애착이려니와 한국 조경사에서 파리공원이
차지하는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일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파리공원을 설계하고 받은 설계비가 ‘88올림픽 경기입장권 1장’이었다. 억울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때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과의 친분도 한몫했지만 파리공원 자체가 너무 좋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입장권 1장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제일로 꼽고 싶은 공원은 올림픽공원인데, 재밌는 사실은 황기원 교수가 계획하고, 제자가 올림픽공원의 리메이킹 작업에 참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올림픽공원은 황 교수의 즐거운 방문지이다. 올림픽공원, 파리공원 이외에도 소쇄원 복원설계,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박경리 문학공원 등의 유수한 조경작품들도 손에 꼽히는 작품들이다. 학자 황기원이 만든 저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경관의 해석-그 아름다움의 앎』, 『도시락 맛보기』, 『한국 행락문화의 변천과정』 등의 책을 출간했다. 『도시락 맛보기』의 경우, IMF 시절(1997년 말) 딱 한 달 만에 써내려간 책이지만, 12년 만인 2009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2011년 펴낸 『경관의 해석-그 아름다움의 앎』은 가르치던 과목 ‘경관의 해석’ 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을 엮어 30여 년간 틈틈이 고치고 다듬어 저술한 것이다. 내년 2월, 교수 생활의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의 성취를 집성하기 위하여 펴낸 하나의 ‘경관’인 셈이다. 그의 30여 년의 연구가 빛을 발한 것일까? 이 책은 올해 (사)한국조경학회(회장 양홍모)가 수여하는 우수저술상도 거머쥐는 기쁨을 맛봤다.
“경관을 알고 깨닫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경관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저 조경의 대상이 되는 차원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 나와 다른 이들의 삶과 불가분인 세상 그 자체입니다.”
그 뿐이랴, 고된 작업이었지만 정리를 도운 두 딸의 도움으로 나온 책이기에 의미는 더욱 깊다.

나의 자랑스러운 작품, ‘황사단’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제자들은 나를 선생보다는 스승으로, 스승보다는 아버지라 불러주는 아이들입니다. 황사단에 있는 이 아이들이야 말로 저의 자랑스러운 작품들입니다.”
눈치 챘겠지만 ‘황사단’은 황기원 교수의 연구실 제자들을 말한다. 즉, 황기원 교수와 함께 답사하고, 연구하고, 때로는 야단도 맞고 동고동락하며, 황기원 교수와 함께 연구실의 추억을 가득 채운 이들이다. 사실 황기원 교수는 ‘아이들’이라고 부르지만 이미 조경분야에서 덕망높고 존경받는, 소위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장인은 공을 들여 명품을 만들고, 스승은 공을 들여 인재를 키워낸 것처럼 황기원 교수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바로 ‘제자’이다. 황기원 교수에게는 자호가 있다. ‘아이들의 벼루’란 뜻을 가진 동연(童硯)이 그것이다. 이 자호에는 황기원 교수가 가고자하는 스승의 길이 담겨있다.
“처음 글을 배우는 아이들은 벼루에 먹을 가는 인내를 통해 슬기를 배웁니다. 제가 벼루가 되고 아이들이 먹이라면,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먹을 갈 테고 벼루는 계속 닳겠지요. 하지만 몸이 닳을수록 벼루 속 공간이 더욱 커지는 것도 벼루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즐겨 쓰는 벼루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제자들이 ‘아버지’라 부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황기원 교수와 황사단은 이미 가족이다. 불현듯 사제동행(師弟同行,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감)이란 말이 떠오른다. 후학양성에 누구보다 매진했던 황기원 교수에게 이번 수상이 그 무엇보다 의미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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