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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정원 문화와 『작정기』 정원학의 오래된 미래
  • 환경과조경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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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기: 군서유종편 
ⓒ김승윤 역, 『사쿠테이키(作庭記)-일본 정원 의 미학』, p.7

 

 

『작정기作庭記』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사쿠테이키sakuteiki’로 서양의 정원 관련 서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영어와 불어 같은 서양의 주류 언어로 이미 많이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그 이유는 동서양을 통틀어 정원 만들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책이고 일본의 정원 문화가 서구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작정기』는 저작 연도와 저자 이름, 그리고 책 제목도 없는 두루마리 형태의 비전서로 전해진 책이다. 에도 시대에 고전 총서群書類從를 편찬할 때 포함되어 목판으로 출판되면서 『작정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저작 연도는 헤이안 시대(794~1192) 후기인 11세기, 저자는 궁궐의 건축과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대부를 역임했던 다치바나노 도시쓰나橘俊綱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정기』는 헤이안 시대 건축 양식인 신덴즈쿠리(침전조寢殿造: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귀족 주택 양식) 건물에 조성한 정원 양식을 다루고 있으나, 이후 일본 정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전통 정원 작정가들에게는 바이블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는 『작정기』 외에도 『산수병야형도山水竝野形圖』, 『축산정조전築山庭造傳』 등 작정서가 많은데,1 중국의 경우 『작정기』보다 500년 이상 뒤인 명대에 『원야園冶』가 저술된 외에 별다른 전문 작정서가 없는 것에 비하면 매우 특별한 현상이다. 『원야』조차도 중국에서는 사본이 사라지고 일본에서 『탈천공奪天工』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다가 300여년 뒤 중국에 역수입되어 복간되었다.2

특수한 한일 관계 탓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정원문화, 그리고 고전인 『작정기』에 대해서도 연구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백제에서 도래한 작정가 노자공路子工이 일본에 수미산과 오교吳橋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는 기록을 보거나3 헤이죠쿄(평성경平城京, 나라) 동원東院 정원의 연못이 경주의 안압지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본의 정원 문화가 결코 한국의 그것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작정기』에 나타난 작정법에서 일본적 특수성을 찾기보다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보편성을 찾고자 하였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형성되어 한국과 일본으로 퍼진 동아시아 정원 문화의 DNA를 『작정기』라는 고대 문헌을 통해서 찾아보고자하는 것이다. 즉, 『작정기』라는 옛 문헌은 동아시아의 고대 정원 문화를 엿보는 창인 것이다. 중국학자짱스칭张十庆도 『작정기』가 “일본 내지 동아시아 조원사에서 초기 조원의 가장 중요하고도 진귀한 문헌”이라고 하고, “일본 초기 조원 기술 전문 서적인 『작정기』는 …

중국 원림사에 중요한 보충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4 그는 중국에서 잃어버린 옛 정원 문화를 『작정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고대 중국에서 예禮를 잃어버리면 주변의 변방국에서 구했다고 하는 이야기와 관련시킨다.

동아시아 정원사에서 이와 같이 중요한 위치를 갖는 『작정기』에 대해 이 글에서는 먼저 『작정기』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본 후, 『작정기』의 내용을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작정 원리와 연관시켜 그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정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산수론(산수미학)과 풍수론이 그러한 해석의 중심이 될것이다.


『작정기』의 이해

『작정기』 원본으로 여겨지는 다니무라谷村본은 두 개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고 장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문자는 한문이 아니라 한자가 섞여 있는 옛 일본어 가나로 쓰여 있다. 원문에 나와 있는 소제목과 내용을 기준으로 학자에 따라 8장에서 14장까지 장을 구분하고 있지만 내용 자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나누어도 제목과 관련 없는 내용이 조금씩 포함될 수밖에 없다. 11장으로 나누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폭포와 관련된 부분(폭포를 만드는 법, 떨어지는 모양)을 둘로 나누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하나로 합쳐서 10개의 장으로 나누는 방식이 간명하고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작정기』는 전체가 793행으로 되어 있고 글자 수는 14,000자 정도다. 장별로 할애된 분량을 보면 7장 금기와 5장 계류에 대한 기술이 가장 많은 편인데, 이 부분은 특히 풍수와 관련이 많다. 동양 정원의 요소는 대개 산, 물, 돌, 나무, 건축물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작정기』는 주로 돌과 물을 다루고 있으며 나무나 식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다.

1장 작정의 요지 『작정기』 1장에는 정원을 만들 때 심득해야 할 요지가 세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는 장소의 특성에 따르면서 자연 풍경을 모범으로 삼으라는 것, 둘째는 과거 명인들의 뛰어난 작품을 본받으며 의뢰자(집주인)의 뜻과 아울러 작정자 자신의 취향을 따르라는 것, 셋째는 실제 자연의 명소를 참고하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현장에 맞게 잘 해석하여 정원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이 작정의 요지는 『작정기』의 정신을 대표하며 오늘날의 조경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김승윤은 1957년 전남 장흥군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했고, 1984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입사하여 30년째 근무 중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청년원 지도 교수, 문화과장, 과학커뮤니케이션팀장, 기획홍보실장, 정책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브릿지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2002년 명동 유네스코회관 옥상생태공원 ‘작은누리’ 조성을 주관하면서 정원과 조경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늦깎이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 과정에 진학, 10년 만에 정원학의 고전인 작정기(사쿠테이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지속가능발전의 전략과 실행』, 역서로 『예술과 과학』, 『사쿠테이키: 일본 정원의 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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