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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 저성장시대, 도시재생에서 길을 찾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도시는 진화한다. 도시의 진화는 인류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과 궤적을같이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우리나라의도시는 지난 50년간의 개발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후유증도 크다. 농촌과 중소도시는 쇠락하고 비수도권과 수도권, 원도심과 신도심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불균형을 이루었다. 특히 원도심은 산업, 업무, 일자리가 공동화되고 슬럼화돼 범죄를 비롯한 각종 도시문제의 온상지가 되고 있다. 이런 도시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대적으로 전 세계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 요구된다. 도시재생은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잘 정의돼 있다. 즉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추진되는 사업들을도시재생사업이라 한다. 그간 도시재생사업은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추진돼 왔는데, 그중 특히 조경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대표적인 사업들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를 검토하고자 한다. 국내·외 도시재생사업들 도시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도시재생사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례가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역사적으로 1950년대 도시 재건축Urban Reconstruction과 1960년대 도시 활성화Urban Revitalization, 그리고1970년대와 1980년대의 재개발Urban Redevelopment을 거처 1990년대 이후에 도시재생Urban Renaissance측면에서 추진돼 왔다. 따라서 그동안 학술적으로도많은 도시재생사업 사례들이 연구돼 왔다. 정리해 보면 대체로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재생사업은 근린지역재생사업과 연계됐고, 독일은 새로운 도시개발보다 기존 도시를 우선하는 사업으로, 미국은커뮤니티 운동과 연계된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으로, 일본은 마을만들기 차원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돼 추진돼 왔다. 또한 우리나라는 최근 공공 측면의정책공모사업과 마을만들기와 연계돼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도시재생사업 중에서 필자는 대표적인 국내외 이전적지를 활용한 공원재생사업이나 문화예술재생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의 이전적지 공원재생사업 198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의 재생사업은 대처 정부,메이저 정부, 그리고 블레어 정부를 거치면서 새로운추진기구와 정부 보조금을 활용했다. 처음엔 물리적인 부동산 재생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사회적인 재생으로 발전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부문, 민간부문,지역공동체 등 모든 주체가 협력관계를 형성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을 통한 대표적인 영국의 이전적지 공원재생사업으로는 런던의 마일엔드 공원과버밍엄 동부공원을 들 수 있다. 먼저 런던의 마일엔드 공원은 런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가장 조용하게 추진됐지만 최고의 성과물로 평가받는다. 공공기관, 시민연합, 민간사업체들이 좋은협력관계를 형성해 당시 2차 대전 폭격으로 황폐화된 산업지대를 남북방향의 긴 선형 공원으로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마일엔드 공원의 특징은 혁신적 모양의 녹색브리지, 테라스식 정원, 카트라이더 레이싱 트랙, 익스트림 스포츠 공원, 놀이동산, 개방된 녹지공간 등을 들 수 있다(이수빈, 2015). 또한 버밍엄 도시의 동부공원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13년에 완성한 동부공원은 버밍엄시에 130년 만에 처음으로 조성한 가장 큰 공원으로 단절됐던 도심지를 이어주면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동부공원 역시 버밍엄시와 WasteConstruction 회사, 그리고 설계가 파텔 타일러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할 수 있었다. 동부공원 재생사업의 성공은 이후 런던의 다른 유사한 재생사업들이 추진되는 과정에 좋은 선례가 되어 투자와협력관계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서울연구원, 2015). 독일의 이전적지 공원 및 문화예술 재생사업 1970년대 이후 구도심의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코자정책적으로 도입한 독일의 재생사업은, 경제적 이익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전통과 역사보전, 환경적인 측면에서 추진돼 왔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시민참여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이전적지를 활용한 독일의 대표적인 공원과 문화예술 재생사업은 란트샤프트 공원과 우파파브릭을 들 수 있다. 란트샤프트 공원Landschaft Park은 독일 뒤스부르크도시의 ‘IBA Emscher Park Project’의 일환으로 티센 제철소 건물을 재활용한 독일 최대 규모의 환경공원이자 생태교육의 장이다. 원래 이 부지는 유럽 최대의 공업단지로 명성을 떨쳤던 루르 지역으로, 1970년대의 탈공업화의 영향으로 주요 산업인 석탄광업과제철공업이 몰락하는 바람에 공장과 석탄채굴장이폐쇄된 채 방치됐었다. 독일 정부와 뒤스부르크 시는이곳에 방치된 공장들을 철거하려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철거보다 환경공원으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조경가 피터 라츠를 주축으로도시계획가, 건축가, 환경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옛 제철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채 공원화를 진행했다. 부지 내 기존 자재를 나르던철로는 산책공원으로, 용광로 안은 물을 채워 스킨스쿠버장으로, 광석저장고 외벽은 암벽등반 공간으로활용하는 등 기존의 산업시설을 잘 활용해 란트샤프트 공원을 세계적인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약 25억 유로가 투자된 란트샤프트 공원은 10년간의재생사업 기간을 거쳐 1997년 개장한 이래 연간 5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베를린의 우파파브릭 역시 주민들의 적극적 재생의지와 협력으로 성공한 사례다. 이 부지는 원래 폐허로 방지된 옛 필름공장을 예술인들이 점령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다가 공장주들의 제안으로 1979년에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당시에 모인 예술인들이주로 재생이라는 테마로 실험적 예술에 몰두했기 때문에 우파파브릭은 버려진 재료들로 창작활동을 하는6주간의 공장 문화페스티벌을 자연스럽게 시작하여성공시켰다. 페스티벌이 성공한 이후 우파파브릭은 음악, 카페, 레스토랑, 제과점 등의 길드를 형성해 재정적으로 자립하면서 오늘날의 우파파브릭으로 자리잡게 됐다. 베를린 중심부의 우파파브릭은 현재도 도시형 생태마을이자 문화공간, 교육공간의 복합적인 문화생태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이덕진, 2014). 이재준은 2015년 말까지 5년 동안 수원시 제2부시장으로 재임하며 민간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행정을 시 행정에 도입하고, 침체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는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한국형 마을르네상스의 선도적 모델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기여했다. 협성대학교도시공학과 교수, 국토해양부 토지규제심의위원회 위원, 환경부 중앙환경우원회 위원, 행정자치부 녹색환경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재준 [email protected] /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수원시 전 부시장) / 2016년09월 / 97
  • 저성장시대, 특집 도시재생에서 길을 찾다
    전국적으로 도시 쇠퇴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를 3470개 읍·면·동으로 구분했을 때, 이 가운데65%인 2239개가 인구감소와 경제성장률 저하, 노후건축물의 비율이 증가하는 등 쇠퇴 과정을 겪고 있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장기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도시 쇠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에 과거의 물리적인 개발을 벗어나 저성장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도시재생이 각광받고 있다. 도시재생은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의 물리적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회복, 거주환경 개선, 사회적 경제조직의 창출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사업은 급격한 상황변화에 맞춰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한계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를 진단하고, 국내·외 사례를 통해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개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점에 조경이 도시재생 과정에서 어떻게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도시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문학적 시각에서바라본 도시재생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다. —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 _ 구자훈 — 국내·외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 _ 이재준 — 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 _ 김연금 — 대화론적 도시의 맥락 짓기 _ 최춘웅
    • 편집부 / 2016년09월 / 97
  • 세계유산, 그들만의 리그? 아니 되오 이해관계 없는 객관적 시각의 코디네이터 필요
    심준용A&A문화연구소 소장 원주의 폐사지(이하 원주 사지)가 연속유산으로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과연 어떤 가치가 근거로 제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올해 연속유산인 ‘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 신청이 철회되고, ‘한국의 전통산사’가 조건부로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원주 사지는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세 곳을 말하는데 남한강을 중심으로 한 고려 초기의 정치 체계 등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사찰과 속세의 관계를 규명하는 흔적이다.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심준용 A&A문화연구소 소장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연구 초기부터 적소에 필요한 전문가가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소장은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적확한 연구와 전문가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자국의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선조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세계유산 등재는 자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유산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 유산과 연관된 단체 및 이해당사자들의 관심은 더욱 크다. 국가별로 신청 가능한 유산의 개수는 연간 2점으로 제한돼 국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보편타당한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 소장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각 유산과 관련된 전문가가 세계유산의 연구 및 등재 전 과정을 추진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후반에서야 세계유산 전문가와 인접분야 전문가가 접근하다 보니 등재가 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과 관련해서는 10년 동안 세계유산위원회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조유진 문화재청 자문위원을 초빙해 함께 연구에 참여하고, 연구 초기부터 사지 주변의 경관적 가치와 입지 분석 등을 위해 조경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인접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에게 바란다 “정원 바람 분다지만 현장 전문가는 없어”
    이정철 푸른수목원 원장 “정원 바람은 불고 있지만 현장에서 식물을 다루는 전문가는 적다. 해외에서 공부한 가든디자이너는 많지만 가드너는 찾기 힘들다. 이런 불균형이 왜 생기는 것일까?” 이정철 푸른수목원 원장은 2016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의 코디네이터다. 지금 그의 역할은 단순히 작가정원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시와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를 연결하고, 주최 측과 가든디자이너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의 존재는 시공현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작가정원 코디네이터를 서울시로부터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손부터 내저었다. 푸른수목원 원장이라는 본업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처음 개최하는 중요한 정원박람회였고, 개최일은 가까워 왔다. 특히 정원 현장이 급했다. 누군가가 나서야 했던 상황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그로서도 더는 모른척 지나칠 수 없었다. 사실 현장에서 작가정원을 지휘하는 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민간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공직에 있는 인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철 원장은 대학에서 관상원예를 공부했다. 학과 내에 조경과 화훼 전공 교수진이 모두 있었다. 친구들은 조경회사, 종묘회사 등 여러 분야로 진출했다. 나무보다는 초본류를 좋아했던 이 원장은 첫 직장으로 ‘한택식물원’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초본류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그곳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했다. 매일 현장에서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까이 두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어오면서 지금의 정원 열풍에 낯설다고 했다. 조경과 원예를 전공한 가든디자이너가 새로운 정원문화를 만드는 두 개의 축이라고 했다. 다만 정원 열풍이 너무 설계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어 걱정이다.
  • 조경가, 융합에서 길을 찾다 환경시스템 관심, 융합적 프로젝트로 전문성 강화
    정미란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 교수 “건축가들이 벽돌을 쌓아서 건물을 짓죠. 하지만 토목하는 사람이 벽돌을 잘 쌓는다고 해서 건축이 토목과 라이센스를 공유하지는 않잖아요.”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미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산림기술자들의 조경 진출이나, 조경과 산림의 학문 통합 논란을 보며, 전문분야로서 조경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나무를 잘 심는다고 같이 조경을 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조경이 라이센스license(면허)지만 한국은 자격증certificate이어서, 한국 조경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물론 미국 조경가들에게는 그만큼 큰 책임이 수반된다. 그래서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코멘트는 들어본 적이 없단다. 조경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조경의 질은 떨어질 거예요. 조경전문가로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조경을 담당했을 때 받게 될 폐해가 크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조경은 전문분야고 명백하게 조경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2000년에 훌쩍 미국으로 건너갔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돼 있는 조경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주변의 권유로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에서 조경을 더 공부하게 됐다. 현재는 좋은 기회로 지금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연환경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 [신경준의 이런 생각, 저런 고민] 식재기능인과 군식
    지난 호에서 목도를 조경기능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장비로 작업을 하니 목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새로운 세대는 목도를 배우려 하지 않으며 배울 필요도 없다. 조경기능인이 목도 다음으로 갖춰야 할 기술로는 관목을 군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삼양동에서 일을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기능인의 군식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군식을 하고 나면 거의 전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관목의 높이를 잘 맞추고 모양새를 내 식재를 했다. 나무를 심으면서 도장지는 손으로 분질러 버리니 향후 특별한 전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심은 후에 흙도 깔끔히 정리하니 관목 사이의 흙속에 자갈이 보이는 법이 없어 관수 후 자갈을 골라내지 않아도 됐다. 심는 속도도 아주 빨라 하루에 1500여 주는 거뜬히 심었다. 하루는 어느 공장을 조경하는데 부지가 아주 넓어 관목을 심을 곳은 많은데 비해 수목의 수량이 부족해 난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기능공은 걱정 말라며 아메바 형태로 심을 자리만 그려주면 철쭉을 멋들어지게 심겠다고 공언했다. 형태를 그려주니 심을 곳을 갈퀴질해 중앙에 해당하는 부분을 약간 볼록하게 잘 정리한 다음, 키가 제일 큰 철쭉을 중앙에 심고 등고선 형태로 30×30cm 규격의 철쭉을 50cm 간격으로 심어 나갔다. 너무 간격이 넓어서 보기 싫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바닥의 흙이 훤히 보이지만 돌이 보이지 않게 잘 정리하면서 심어나가니 깔끔했다. 아메바 형태의 넓은 면적에 150여 주의 철쭉을 조금 거리를 두고 보니 중앙에는 나무가 바로 섰으나 외부로 갈수록 약간 외부로 기울어져 방사선 형태로 심은 군락이 마치 그림 같았다. 관계자들 중 너무 엉성하다든지 양만 늘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몇 년 뒤에 그 공장을 갔더니 철쭉이 잘 자라 서로 가지가 붙어서 바닥에 흙도 보이지 않고 탐스럽게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널찍하게 심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물론 식재 후 가꾸는 사람의 공력이 많이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평수가 큰 고급빌라의 조경공사를 맡았을 때, 그 기능공이 군식을 잘 한다고 자랑했더니 담당감독이 그렇게 군식을 잘 한다면 아무리 물량이 많이 들어가도 좋으니 빌라 입구의 10m2 남짓한 공간에 철쭉을 마음껏 모양을 내 심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기능공은 물량을 최대한 늘려 심듯 뿌리를 포개 빽빽이 빈틈없이 심었다. 잔가지가 겹치고 정돈되게 올라온 것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군식한 철쭉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아도 나무가 흐트러지지 않게 심었다. 사용된 철쭉은 거의 1000주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 봄 공사였는데 한 달 후에 철쭉꽃이 피니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꽃만 보이게 심은 것이다. 감독도 소요되는 철쭉의 양을 보고 놀라 두 번 다시는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 기능공이 일을 할 때는 옆에서 웃음을 머금고 지켜만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빌라 앞을 지나 갈 때마다 그 철쭉 군식을 본다. 잔가지가 촘촘히 올라온 것이 보기만 해도 ‘잘 된 군식 처리란 이런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은 비탈면에 눈향나무로 피복식재를 하는데 두 사람이 식재에 참여했다. 한 무더기에 40여 주의 눈향나무를 군식 처리했는데, 20여 무더기를 식재한 것으로 기억한다. 식재가 끝나고 나니 ‘갑’이 식재한 눈향나무의 끝이 살아서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고, ‘을’이 심은 무더기는 두루뭉술하게 처리돼 있었다. 눈향나무의 끝이 살아서 생기가 넘치게 심은 형상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한 그루도 하자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금세 무성하게 비탈면을 덮을 것 같은 활력을 느끼게 했다. 그 후 두루뭉술하게 식재한 ‘을’도 상당히 실력 있는 기능인이었지만 생기가 넘치게 식재한 ‘갑’에게 항상 오금을 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식재를 할 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어떻게 보고 다루느냐에 따라 똑같은 자재를 주었는데도 이토록 모양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나중에 현장을 가니 식재한 눈향나무의 하자는 비슷하게 났으나 끝이 살아있는 나무의 성장은 훨씬 나아 보였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실력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철쭉이나 회양목을 군식하라고 하면 그냥 빽빽이 심는다. 그러고 전정기계로 깔끔히 다듬으면서 모양을 잡는다. 군식능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실력 있는 군식 처리 기능인도 많지 않다. 자신이 식재한 관목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 생각하는 기능인이 없는 것 같다. 높게 심은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않으면 전정으로 잡으면 되고, 빠른 기간에 많은 물량만 처리하면 되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이렇듯 조경은 학교에서 첫 수업시간에 배우듯 도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예술이다. 기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솜씨에 따라 아름답게 표현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될 때가 많다. 물론 자재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훌륭해 그냥 던져 놓아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고급자재라면 시공하는 기능인의 능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런 솜씨가 좋은 기능인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조경 일을 하면 삽으로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물이나 떠 나르고, 잡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경기능인으로 칼(전정가위)을 차고 다닐 정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상당한 숙련이 돼야 한다. 예전에는 목도도 못하고 군식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전정가위를 차고 다니면 기술자들이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경밥을 조금만 먹었다 하면 전정가위를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예전에도 전정가위를 차고 다닌다는 것이 뻐길 정도의 자랑스런 직업(?)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조경기능인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기능인력은 고령화 돼 가는데 신규로 조경 기능을 배울 사람은 없는 현실을 볼 때마다 시공업계의 앞날이 어두워서 걱정이다. 신경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에서 ‘한국의 아파트 옥외공간 변천과 조경의 시대별 특성’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원조경의 대표이사로 조경과 생태복원에 관한 연구 용역, 소재 개발,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천안 연암대학과 단국대학교에서 조경경영, 조경시공 및 재료, 실내조경, 조 경수목학 등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공사업협의 회 운영위원, 서울시 건설기술심의위원, 경기도 공공주택검수위원, SH 공사 건설디자인위원, 서울지방항공청 신공항건설심의위원 등으로 활 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이미지로 만나는 조경] 물이 빛을 만났을 때 일산호수공원 음악분수,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물이 빛을 만나면 그야말로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변합니다. 모양도 색깔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한참을 멍하게 보다가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조건으로는 거의 최악에 가깝습니다. 충분한 빛이 부족해서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둬야 하는데, 피사체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이니까요. 초점이 잘 맞는 정확한 사진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 빛을 만나 화려해진 분수를 배경으로 흐릿해진 경계의 사람들이 잡히네요. 역시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생기기 마련인가 봅니다. 몇몇 사진은 꽤 그럴 듯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그렇게 찍은 수 십장의 사진 중의 하나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좋은 점! 일단 많이 찍고 건질 거 찾아보기. ^^ 더운 여름 며칠 째 짜증만 내다가 시원한 분수 사진으로 잠시나마 열대야를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일기예보로는 9월까지 덥다고 하던데, 다들 건강하게 여름 마무리 하시길.(연재글을 쓰다보면 가끔은 미래와 대화하는 기분도 듭니다)
    • 주신하[email protected]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 2016년09월 / 97
  • [식물디자인의 발견] 자크 마조렐 전통과 모던의 만남, 자생식물 디자인의 진수
    마조렐 가든의 역사마조렐 가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잘 알아야 할 듯하다. 마라케시에 마조렐 가든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예술가, 자크 마조렐이다. 그는 이 정원의 레이아웃을 잡았고, 이 안에 선인장과 바나나, 야자수, 대나무를 근간으로 하는 자생력 강한 식물 디자인을 완성한 사람이기도 하다. 마조렐은 자신의 정원을 1947년에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이 정원을 즐기러 오는 프랑스인들이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조렐은 1962년 뜨거운 마라케시의 사막기후로 인해 생긴 풍토병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는 비극적으로 196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끝내 마라케시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주인을 잃은 마조렐 가든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원래 모습을 잃고 심하게 훼손돼 갔고 사람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이 정원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80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에 의해서였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은 인근 국가인 알제리 태생으로 마라케시인들과 마찬가지인 베르베르인의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마조렐가든을 구입한 뒤 정원을 마조렐 시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고용된 사람이 마라케시의 위대한 가든 디자이너이자 민족식물학자인 아브데르작 벤챠바네 Abderrazak Benchaabane였다. 가든 디자이너, 식물학자, 교수, 향수제조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아브데르작은 마조렐 가든 복원 작업에 임하면서 10년간 철저한 고증의 절차를 밟았다. 그는 마조렐이 심은 식물의 수종에 정확한 학명을 붙여주는 과정을 통해 정원 안에 12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그는 식물을 325종으로 늘렸고, 여기에 마조렐이 직접 디자인한 물길 시스템을 보완해 새로운 물관리체제를 완성했다. 훗날 아브데르작은 이브 생 로랑의 권유로 자신의 또 다른 전공을 살려 Jardin Majorelle’이라는 향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복원을 마친 이브 셍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이 정원의 이름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마조렐이라는 예술가의 정원을 사랑했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이 한 일은 마조렐이 작업 공간으로 썼던 건물을 ‘베르베르인의 문화와 예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으로 개방한 일이다. 지금도 이 정원은 여전히 ‘마조렐 가든’으로 불린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피에르 베르제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뼈를 마조렐 가든에 뿌렸고, 그를 기리는 작은 상징물을 세웠다. 마라케시는 이브 생 로랑이 마라케시와 베르베르인의 문화와 자긍심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해 정원 앞을 지나는 길에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조렐 가든의 교훈마조렐 가든은 마라케시라는 지역을 충분히 고려한 자생이 가능한 식물을 이용한 식물 디자인이 이뤄진 점, 자크 마조렐이라는 예술가의 뚜렷한 예술적 감각이 정원 안에서 강렬하게 부각이 되고 있는 점, 그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가 오래된 틀 속에 머물지 않고 현대적으로 해석됐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든 디자인, 식물 디자인이 실현된 장소로 여겨진다. 전통의 해석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 하나는 원형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학습하게 하는 복원의 측면이 있다면 다른 하나는 현재진행형으로서 새롭게 재해석된 시도가 있다. 그런데 자칫 전통이라는 것이 처음 의미에만 발목을 잡히게 되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적용돼야 할 전통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마조렐 가든은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지금의 의미로 다시 해석한 작품으로, 우리의 현대 전통 정원을 재해석 하는 방법으로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 오경아[email protected] /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 대표 / 2016년09월 / 97
  •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 저성장시대, 도시재생에서 길을 찾다
    도시재생 정책의 과정 및 사업추진 현황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정책의 추진 과정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법)’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도시재생법 제정 이전에도 도시활력증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돼 오던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소도읍 육성사업,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 등 다양한 소규모 지원사업이 있었다.한편 2007년부터 추진되어 오던 ‘건설교통 R&D 혁신로드맵’에 의한 10대 중점 전략 프로젝트 중 도시재생사업단 연구의 결과물로서 본격적인 도시재생정책의 필요성 제기와 창원, 전주 테스트베드 사업을 통한 시범적 모델의 운영 등을 통해서 도시재생법이 제정됐다. 이 특별법의 특징은 사업법이 아닌 지원법적 성격을 띠며, 현장 중심의 협력적 운영체제를 통해서 재생정책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이 지원법적성격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도시재생활성화지역 내 각종 사업은 기존 사업법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이 법에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적 공모사업과 협업적 지원체계를 명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법을 근거로 2014년 선도사업 지역으로 도시경제 기반형 2개소(부산 동구, 충북 청주시), 근린재생형 11개소(일반규모: 서울 종로구, 광주 동구, 전북 군산시 등 6개소, 소규모: 대구 남구, 강원 태백시, 충남 천안시 등 5개소) 등 총 13개소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은 4년 간 국고지원 250억 원,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사업은 재생사업의 규모에 따라서 4년간 60~1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하고, 지자체 재원으로 같은 비율의 금액을 마련하여 해당 지역의 재생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마중물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2015년에는 일반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경제기반형 5개소, 근린재생형(중심시가지형 9개소, 일반형 19개소) 등 총 33개 사업지를 선정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새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을 국고지원 50억 이내(국고지원 비율 70%)로 2015년 85개소, 2016년 66개소를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도시재생 정책의 단계별 추진 전략국토부가 작성한 ‘도시재생 기본방침’에 의하면, 우리나라 도시재생 정책은 3단계로 나누어 도입기(2014~2017년), 성장기(2018~2021년), 성숙기(2022년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도입기에는 선도사업을 대상으로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해 성공모델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향후 성장기, 성숙기에 지자체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도입기인 초기 단계에는 아직 지자체의 도시재생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므로 국가가 중심이 되어 도시 재생사업 지원을 위한 재원을 확충하고, 부처별 협업사업의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또 도시재생지원기구 및 R&D 연구단의 적극적인 실증연구를 통해서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 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 저성장시대, 도시재생에서 길을 찾다
    역할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은 어느 차원에서의 도시재생을 말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 관리 패러다임 변화로서의 도시재생인지,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 관리 정책과 사업으로서의 도시재생인지에 따라 논의의 초점은 다르다. 전자는 다소 추상적으로 논해져야 할 것이다. 반면 후자에 대한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도시재생사업이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와 함께 조경가의 사회적 위상, 분야 간의 힘겨루기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먼저 후자의 경우, 쉽지 않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저성장 기조라는 경기 흐름 속에서 건설시장은 작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분야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많은 다른 분야에서 조경가가 다루는 외부공간과 경관을 넘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경가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내밀 수 있는 카드도 강력하지 않다. 도시재생사업이라고 다를 바 없다.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각 지자체는 새로운 지역개발모델로서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게 됐고, 비전과 전략 수립, 실행사업 수립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런데 계획 수립을 진행할 업체 선정의 입찰기준이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에 맞춰져 있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는 도시계획과 건축설계다. 사업을 총괄하는 MP들도 주로 도시계획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모델 사업에서 광역 차원일 경우 MP와는 별도로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센터장을 두는데, 몇 곳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 센터장을 맡고 있다. 도시적 차원의 사업이다 보니 도시계획분야의 전문가는 당연히 필요하고 도시를 이루는 주요 구성요소인 건축물에 대한 전문가도 필요하다. 그리고 재생사업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이 교류하는 공론장의 활성화, 시민참여가 중요하므로 현장에서 주민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근력을 키워 온 이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조경가는? 경관을 다룬다고 하지만 경관을 관리하는 제도적 수단을 명확하게 갖고 있지 않다보니, 큰 그림을 짜는 단계에서 조경가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조경분야가 일궈 낸 시선과 언어, 사람은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가가 발 디디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계획 수립 이후 실행사업에서는 조경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모델 사업의 하나인 ‘동작구 상도4동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을 보더라도‘어린이집 중심 골목공원 조성’, ‘역사테마 둘레길 조성’, ‘양녕대군 묘역개방 및 주민 이용 지원’, ‘옥상텃밭, 한평상자텃밭 등 도시텃밭 조성’같은 사업은 조경가의 손길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사의 내용이 정비 수준이라 공사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설계비도 현재 제도에 따라 공사비에 근거해 산출하다 보니 작다. 시공하는 이들에게나 설계하는 이들에게나 그리 실리적 이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까 도시재생사업의 큰 흐름을 잡는 데 있어서나, 실행에 있어서나 조경가는 살짝 비켜 서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연히 조경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어렵게 말하면 개념적 차원이고, 편하게 말하면 말하는 건데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문밖의 보이는 것 모두가 조경의 대상이 아니던가. 조경학개론에 나열돼 있는 조경가의 특성에 따르면 조경가는 재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다. 그런데 말은 말로 끝나기 쉽다. 이렇게 전자건, 후자건 조경가의 역할에 있어서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리 낙담하지는 말자.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아직 가야할 좌표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가능성은 있고 답이 흐릿하다면 문제를 바꾸면 된다. ‘조경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조경이 어떻게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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