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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태경관건축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 환경과조경 2014년 6월

Landscape architecture가 1970년대 한국에 소개되면서 환경, 생태, 경관, 조경 등의 다양한 의미로 이해되었고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국토나 도시 환경보다는 정원이나 토목과 건축의 미화 작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양에서도 소위 조경은 사유지의 설계와 조성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20세기 초에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로 이해되고, 1960년대에는 생태 경관 계획ecological landscape planning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도시와 산업지의 재생과 관련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과 인프라스트럭처 중심으로 변신해 왔다. 건강, 환경 개선 및 재생, 지속성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건설 사업의 보조를 넘어 환경 보존과 재생의 선두 역할을 함으로써 조경은 건축보다 더 사회적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 조경은 개발뿐 아니라 보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시장 경제의 변화에 덜 민감한 점이 있다. 조경 및 건설 경기가 침체 상황인 이즈음, 조경 또는 경관계획의 원래 이름 landscape architecture를 다시 돌아보고, 그것을 학문 영역보다는 환경 개발과 보존의 한 방법론으로 생각하면서 조경 분야의 장래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조경계는 건축계의 동질성과는 달리 이질성으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이것은 조경이 농과·환경대학에 속하기도 하지만 건축·디자인대학에 속한 경우도 많다는 점, 그리고 그 자체가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실행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또 조경에는 건축과 다른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경관은 건물에 비해 다양한 스케일―정원, 도시, 지역―을 포괄하고 경계 없는 개방형 시스템이며 역동적이다. 둘째, 조경은 설계, 계획, 시공 그리고 관리라는 네 영역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셋째, 경관은, 네덜란드의 어원에 따르면, 형성과 보존의 개념 또는 그림의 개념일 뿐 아니라 공동체 및 관리의 개념이다. 따라서 큰 규모의 조경인 경우, 지역 사회를 강조하고 특출한 예술가적 개성이나 개인주의적 사고를 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필요성과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 차이는 조경에 건축적 방법을 직설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큰 문제임을 말해 준다. 즉, 조경 고유의 계획과 설계 방법을 개발하고 구현해야 함을 뜻한다. 더욱이 오늘날 지속성의 문제―기후 변화, 자원과 에너지 안보, 문화 정체성과 실체성, 계층 간의 갈등―는 생태경관적 접근 방식이 건축적, 도시적, 산업적 접근 방식보다 더 중요함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의 조경계는 건축, 도시·지역계획, 토목, 임업 분야로부터 영역 침투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조경은 원래 문화적·역사적 뿌리가 약하며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정원예술의 전통이 적다고 나는 보고 있다. 한국의 유수한 산수·자연 환경, 20세기 중반까지 지연된 도시화, 잔손이 많이 가는 것을 싫어하는 심성, 도시 중산층의 부재 등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풍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흐름을 즐기는 멋이고 맛이었다.

지난 40년간 한국 조경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했다. 조경계가 잘해서 발전한 면도 있겠지만 외재적 원인도 컸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적 지원, 건설투기 붐,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를 통한 환경 파괴에 힘입은 바가 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조경은 정원에나 적합한 방법을 도시 경관에 적용하기도 했다. 도시계획이나 사회 기반시설 또는 국토관리에는 적극적이고 지도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 했다. 건설이 남긴 폐해를 감추거나 미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양적으로 성장해 왔다. 파괴가 많을 수록 조경 일이 많았다.

이제는 한국이 선진화되며 복지·행복 국가를 향해 질적 성숙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회복하면서, 또 역동적 참여 민주화를 실현하면서 지속가능한 문화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조경이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기후 변화에 대응한 도시 및 지역 구조의 조정, 핵 에너지 위험을 감소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관 전략, 건설이 아닌 파괴로 치닫는 공공 기반시설(새만금 간척 사업 등)의 생태적 인프라로의 전환, 다기능적 생산 녹지 및 습지의 복원확장, 닫힌 전시 광경보다 일상적 생활환경의 개선에 주목하는 실용적 조경, 낭비의 측면이 큰 단일 용도의 공공 공간(학교, 정부 시설) 개조를 통한 녹지 증대와 환경 개조, 세천의 복원, 고가도로의 제거, 비투수층 도로와 주차장 및 산업 구조물의 제거, 대규모 녹화(지붕, 벽, 거리) 등이 그것이다. 공원이 따로 필요 없는 ‘숨쉬는’ 도시 및 국토의 재편성이 조경가와 경관계획가가 참여해야 할 일들이다. 설계와 계획 능력이 있고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조경가일수록 할 일은 더 많다. 건설 사업의 ‘환경미화원’으로서의 조경보다 국민의 행복, 복지, 건강을 위해 공공 환경을 작동시키는 ‘전동차’로서의 조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적응과 변모의 계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조경학과 실무 조경계는 다음과 같은 변신의 자세를 구축해야 한다.

첫째, 도시와 지역 규모의 경관·생태 및 공공 기반시설을 설계, 계획, 관리할 수 있는 관심과 능력을 확장해야 한다. 둘째, 열악한 도시 내부에 게릴라처럼 침투하여 아스팔트 도시를 건강한 유기체로 전환시키는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셋째, 계획 및 관리 분야는 물론 기술·과학자와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도시·국토계획의 전반적인 관리에서 ‘생태경관적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넷째, 설계를 미관이나 형태보다는 삶의 질, 체험의 질, 건강·복지에 연계시키는 접근, 즉 국토를 몸으로, 조경을 의학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또 위기에 대응하려면, 쉬운 일만 찾아서는 안 된다. 건설과 보존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을 위한 보존, 보존을 위한 개발을 실행해야 한다. 경관이 본질적으로 스케일이 다양하고 경계가 없듯이, 조경 분야도 관심과 능력의 스케일을 다양하게, 경계 없이 하여 지속가능성 확보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도약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고주석은 건축가이자 조경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생태경관적 접근 방식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추구한다. 1989년 설립한 오이코스 디자인(Oikosdesign)을 이끌며 독일, 미국, 네덜란드, 한국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디자인 어워드와 설계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네덜란드 바허닝엔(Wageningen) 대학교 조경학과 학과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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