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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용산공원, 참여할 때다
  • 환경과조경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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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땅이자 금단의 땅인 용산 미군 기지의 공원화 프로젝트는 기지 이전에 관한 한미 정상의 양해각서가 체결된 이후 25년이라는 긴 과정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정서로 보면 이례적으로 길고 느린 호흡으로 구체화되어 온 프로젝트다. 양국 정상이 기지 이전에 합의(2003)한 후 기지의 공원화 계획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2005)을 통해 계획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이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의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2006)로 이어졌다. 이후 ‘용산공원 조성특별법’(2007)이 제정되었고,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2009)가 개최되었다. ‘용산공원 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2011)은 그간의 논의와 계획을 종합한 그랜드 플랜으로, 국제공모와 기본설계의 토대로 작동한 법정 계획이다. 2012년 4월, 정부는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의 당선작으로 West8 팀의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을 선정한 바 있다. 용산공원이 담론의 영역에서 디자인의 차원으로 진화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작품을 바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2017년에는 공원 조성의 첫 삽을 뜰 예정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본설계비로 책정된 예산이 작년과 금년 모두 국회에서 전액 삭감된 것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공원의 성격과 조성 시기에 관한 것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비합리적이고 사소한 ‘어떤’ 정치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본설계가 초기 단계에서 중단되었음은 물론 적지 않은 수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국토교통부산하의 용산공원추진단도 개점 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법에 의해 국가 공원을 만들기로 한 정부가 설계안을 선정했지만 그 설계를 진행할 예산을 못 받아 모든 일정이 지체되고 프로젝트 자체가 중지된 것이다.

엉뚱하게도 용산공원추진단은 종합기본계획 변경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종합기본계획은 이미 법적 고시가 끝났고 그 계획을 준거로 기본설계가 진행되는 마당에 다시 과거의 계획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추진단은 변경의 당위성을 종합기본계획의 주요 골격인 6개 단위공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다는 점, 그리고 공원 조성 여건과 상황의 변화―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난항, 미대사관 시설의 이전 시기, 침수 대비 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기본계획의 단위공원 개념은 공원 전체를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화하는 크고 작은 공원들의 연합united parks”이라는 탄력적 전략이며, 설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설계 과정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이 순리다.

여건과 상황이 달라졌다 해도 기본계획을 변경하여 대응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계획을 바꾸기보다는 다음 단계의 과정에서 고려하면 충분할 일이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 그렇다면 종합기본계획의 변경은 예산 전액 삭감의 ‘어떤’ 이유와 연관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경 프로젝트가 이미 시작된 이 시점에서 ‘어떤’ 이유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용산공원과 같은 빅 프로젝트는 계획 외적 환경, 즉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기존 계획을 주도했지만 다시 변경 계획이라는 난처한 숙제를 떠맡은 한국조경학회는 6개 단위공원을 생태 중심의 단일공원으로 바꿀 것이라는 추진단의 어색한 논리와 방향을 따르기보다는, 기본설계는 물론 그 이후의 과정에 닥쳐올 다양한 난제들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 계획과 유연한 전략을 구축하는 쪽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2년 연속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건 국회지만 그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건 정부다. 정부와 국회모두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거의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만일 미래에 용산공원의 주인이 될 국민들이 예산 미배정이나 기본설계 중단과 같은 문제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국회와 정부의 입장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을 것이다. 시민참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5년의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이 방점을 두었던 ‘과정 중심적 계획과 유연한 설계’, 그리고 ‘참여적·소통적 계획’이 다시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다. 지난 5월 21일에 열린 ‘용산 국가공원 전문가 세미나’에서 ‘참여’가 키워드로 부각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일이다.

지난 5월 1일, 한 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일본군과 미군이 점유해 온 캠프 하야리아가 부산시민공원이라는 새 옷을 입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번 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부산시민공원은 용산공원의 앞날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준다. 10년 이상의 지난했던 부산시민공원의 조성 과정, 그 중심을 지탱하며 방향을 이끈 중심에는 시민, 언론, 전문가가 연합한 새로운 형식의 시민사회단체 ‘하야리아공원포럼’의 참여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4월호부터 연재되어 온 김현민 소장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이번 호로 마무리된다. 이수학소장의 “조경가의 서재”도 막을 내린다. 풍성한 그림과 글로 독자들과 소통해준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음 7월호부터 3개월간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가, “조경가의 서재”는 에코이드ecoid의 김용규 소장이 이어갈 예정이다. 제주도로, 부산으로 종횡무진하며 잡지의 시각적 질을 높여주고 있는 전속 포토그래퍼 유청오 작가(스튜디오 키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5월 중순부터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조한결 기자가 『환경과조경』 편집부의 새 식구가 되었다. 한국 조경에 만연한 피로와 불안을 교정하고 혁신해나갈 조경 언론인으로, 한결같이, 성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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