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마다 있을 법한 작은 근린공원 뒤편에 라이브스케이프가 있다. 입구의 작은 앞마당, 소품인지 실제로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벽에 기대놓은 커다란 갈퀴를 눈으로 훑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카페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벽면을 두른 짙은 고동색 책장과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 한구석에 이번 공모전 당선작 모형이 놓여 있었는데, 자연의 정원의 복잡한 지형을 몇 번이고 다듬었는지 울타리 안에 채워진 찰흙에 손자국이 가득했다. 설계안을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이곳에서 유승종 소장을 만나 당선작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공모 주제가 정원 유산이다.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에 따라 IFLA의 정신을 기리고, 동시대 한국 조경의 가치와 의미를 담는 정원이 요구되었다.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에는 어떤 한국성이 담겼나.
설계는 수학 문제를 풀 듯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 길로 들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는 식의 선형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런 상황을 전제로 두고서라도 더욱 솔직히 말하면, 한국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한국인이니 설계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부분이 드러날 것이라 여겨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설계는 논리의 세계라기보다 직관의 영역에서 많은 수의 통찰력이 결합되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의 실을 잇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따금 설계안의 완성과 설계 논리가 동시에 만들어지거나 동시에 바뀌기도 한다.
한국성을 염두에 둔 설계가 아니었다면, 핵심 전략은 무엇이었나.
평소 전략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 직관이 이끄는 대로 가는 편이다. 이번 공모도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경쾌하게 풀어나갔다. 평소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을 떠나 자연을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 속에서 인지하게 하는 데 관심이 많다. 다양한 나무와 초화를 어우러지게 배치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것도 자연을 인식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다.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자연 경관을 모사하는 일반적인 정원 조성 방식과 달리,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꽃이나 이슬처럼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감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이 이번 공모 대상지의 상황과 만나게 됐고, 나는 거기에 반응한 것일 테다.
상상하기 편하도록 설명하자면, 대상지 안에 두 개의 정원을 만든다. 하나는 자연의 정원,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정원이다. 사람의 정원 한가운데 울타리를 두르고 자연의 정원을 만든다. 통상적 정원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특별한 사람을 위해 조성된 모사된 자연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동그랗게 두른 울타리는 그 안팎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물론, 이 역시 설계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임을 고백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정원 한가운데 아주 깊은 자연의 생태계를 만들고, 그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속세가 있어야 성역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시끄러움이 있어야 고요함이 그 의미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힘들게 등산할 필요 없이 그저 내 앞에 충격적인 대비로 자연이 그 성격을 드러낸다면 어떨까.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머나먼 정글에서 자연의 자연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세계 한복판에 생명의 복잡성이 증대되고 깊은 자연의 세계가 들어와 있다면, 그 자체로 미추의 경관을 떠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 환경과조경 406호(2022년 2월호) 수록본 일부
유승종은 경계를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라이브스케이프의 소장으로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