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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르네상스 정원의 시원,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 황주영 (juyounghwang@gmail.com)
  • 환경과조경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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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설명할 때마다 정원은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을 표현하는 곳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이상향은 시기와 지역, 종교와 문화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도 여럿이다. 가령 르네상스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흔히 데카메론Decameron을 예로 든다(4월호 참조). 그런데 정원 이론서에는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Hypnerotomachia Poliphili라는 복잡하고 낯선 이름의 문헌이 더 자주 등장한다. 제목과 삽화 한두 점은 꼭 나오고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하다고 하니 대충 넘어가기도 찝찝하다. 검색해보면 아름다운 이미지가 쏟아지나 연구는 많지 않다. 원전이 당시 속어로 분류됐던 이탈리아어와 라틴어, 여러 고대 언어가 뒤죽박죽 섞인 이른바 마카로니macaroni’ 문학이라 해독이 어려운 탓일까. 출판된 지 500년이 지난 1999년에야 영어 완역본이 출간됐다.1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으면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 아닐까. 그러나 박사 과정 중 순전히 호기심과 호기로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학기 과제로 택했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2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님프 폴리아를 연모하는 주인공 폴리필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간신히 잠이 든다. 꿈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폴리아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하나 입맞춤을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제목, ‘힙네로토마키아는 힙노스hypnos(), 에로스eros(사랑), 마케mache(투쟁)라는 세 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합쳐진 말, 즉 주인공이자 화자인 폴리필로가 꿈속에서 겪는 사랑의 여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줄거리도 단순하고 플롯도 엉성한 연애 소설이 어떻게 르네상스 정원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중략)


1. 1499년 당시 유럽 최고의 인문학 출판사 중 하나인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에서 처음 출판됐고, 1592년에 영국에서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꿈에서의 사랑의 투쟁)이라는 축약된 해적판 번역본이 출간됐다. 프랑스에서는 1546Le Songe de Poliphile(폴리필로의 꿈)이라는 번역본이 새로 제작한 판화와 함께 발간됐다. 이는 Le Songe de Poliphile(Paris: Imprimerie nationale, 1994)로 복간됐고, Hypnerotomachia Poliphili: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Thames & Hudson, 1999)가 최초의 영어 완역본이다.

2. 황주영, “16.17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정원과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미술사학보36, 2011, pp.179~214.

 

환경과조경 389(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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