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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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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잡지 가격 10,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젊은 잡지가 온다
창간 50년을 눈앞에 둔『 샘터』가 작년 말 폐간된다는 소식은 종이 잡지 시대의 폐막을 알리는 부고였다. 독자들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수명을 연장하게 됐지만 한때 50만 부를 찍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교양지’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지성을 이끌고 전문 지식의 최전선을 걸어온 전문지들도 거의 대부분 명멸과 부침을 거듭하다 이미 기억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966년 같은 해에 창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과 월간 『공간(Space)』 정도가 아직 발행되고 있는 오래된 전문지로 꼽힌다. 종이 잡지가 웹진의 힘을 당해내기 힘든 현실인 건 분명하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미지 위주의 가벼운 ‘스낵 콘텐츠’가 대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영역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손에 잡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앞세운 고급 종이 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있기도 하다. 정기 간행물 등록 통계를 보면, 2000년의 등록 잡지는 6천 개 남짓한데 2019년에는 2만 개에 가깝다. 요즘 뜨고 있는 젊은 잡지들의 지형은 크게 세 가지 갈래다.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콘텐츠를 구성하는 큐레이션 잡지, 한 권에 특정 주제나 아이템 하나만 깊게 다루는 테마 잡지, 고유한 편집 원칙과 디자인 취향을 지키며 잡지 스타일을 심화해 나가는 독립 잡지. 서울에서 태어나 밴쿠버에서 자란 로사 박이 디자이너 리치 스테이플턴을 만나 2012년 영국에서 창간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미학을 살린 디자인 중심 여행 잡지『시리얼(Cereal)』은 전 세계 힙스터들을 매료시켰다. 2015년부터는 한국어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호가 매진이며 중고 과월호는 온라인에서 두세 배 가격으로 거래된다. ‘킨포크 스타일’, ‘킨포크 라이프’, ‘킨포크스럽다’는 말을 유행시키며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킨포크Kinfolk』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창간된 라이프스타일 독립 잡지다. 처음엔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해에 네 번, 500부 정도 발행하는 소규모 잡지였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비롯한 7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바쁘고 지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자연 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며 웰빙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국내 테마형 독립 잡지의 붐을 이끈 주역으로 『매거진 B』를 꼽는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지향하는 『매거진 B(Magazine B)』는 한 호에 한 가지 브랜드만 심층 탐구하는 전략으로 기성의 주류 잡지와 차별을 꾀했다.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이케아, 구글, 넷플릭스, 뉴발란스, 블루보틀 등 MZ세대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다루면서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 잡지 이미지를 굳혔다. 매호 2만 부 넘게 팔리고 있으며, 레고, 라이카, 무인양품 등을 다룬 호는 4쇄 이상 찍었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이나 디자인 쪽의 감각적인 독립 잡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인문 잡지들도 앞다퉈 창간되면서 핵심 독자층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인문 잡지 『한편』은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눈다’는 모토를 지향한다. 문학지 『악스트(Axt)』, 문예지 『문학3』, 과학 잡지 『에피(Epi)』, 사진 잡지 『보스토크(Vostok)』, 철학 잡지 『뉴필로소퍼(New Philosopher)』 등 최근 창간한 종이 매체들은 잡지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잡지가 젊어졌음을 보여준다. 2년 뒤면 마흔 살이 되는 1982년생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궁리하며 요즘 아날로그 잡지들이 뿜어내는 ‘잡지스러움’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보다가,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새 조경 잡지를 펼쳤다. ‘새로운 기억, 연출된 과거’라는 부제를 단 『유엘씨(ULC; Urban Landscape Catalogue)』 창간호. 아직 기성 조경(학)계 바깥에 있는 예비 연구자와 학자, 비평가들이 편집과 집필을 나눠 맡은 『유엘씨』는, “도시라는 쇼케이스에 담긴 건축과 조경을 상품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비할 도시민에게 그 기능과 특징, 디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잘 만든 카탈로그”를 지향한다. 창간호 발행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127명의 후원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조경 이론과 비평, 도시 에세이와 경관 영상, 레트로 도시 문화를 다룬 집담을 엮어 만든 창간호에 이어, 올 연말에는 ‘판데믹 도시 기록: 서울의 일상과 오픈스페이스 탐독’이라는 제목을 단 다음 호를 펴낸다고 한다. 『유엘씨』의 촘촘한 지면과 행간을 탐독하다가 잠시 시간 여행을 했다.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선언하며 창간했던『로커스(Locus)』 창간호(1998)의 서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조경의 실천과 소통함으로써 … 이론의 복권을 지향한”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성의 다리를 건넜다. 젊은 잡지『유엘씨』가『 환경과조경』이 놓치고 있는 지점과 조경 담론의 틈새를 잘 발견해 지속가능한 독립 잡지로 성장해가길 응원한다.
탐마삿 대학교 옥상 농장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및 물 부족은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방콕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은 한때 풍부한 식량 자원을 생산하는 농업 사회였으나,무분별한 도시화로 인해 생산 환경은 훼손되고 지역의 식량 자급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2050년이 되면 계 인구의80%가 도시에 살게 된다.잘 사용되지 않는 도시 공간을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지로 활용해 식량 안보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방콕 북부에서 약 30km 떨어진 탐마삿 대학교 랑싯 캠퍼스(Thammasat University Rangsit Campus)에 대규모의 유기농 옥상 농장을 조성했다. 기후 문제에 대한 해법과 태국의 역사, 문화, 경관, 토지를 아우르고자 했다.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 체계, 재생 에너지, 효율적 물 관리 시스템, 공공 공간이 결합된 옥상 농장은 캠퍼스에 순환 시스템을 형성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다. ...(중략) Landscape Architect LANDPROCESS Architectural Design Arsomsilp Institute of the Arts Interior Design Dimensional Interpretation Structural Engineering Degree System MEP Engineering TPM Consultants Graphic Designer Be Our Friend Construction Management CM49 Client Thammasat University Location Thammasat University Rangsit Campus, Pathum ThaniProvince, Bangkok, Thailand Area Total Area: 60,000m2 Green Roof: 22,000m2 Completion 2019 Photographs Dsignsomething, Jinnawat Borihankijanan,LANDPROCESS, Panoramic Studio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랜드프로세스(LANDPROCESS)는 꼿차꼰 보아콤(Kotchakorn Voraakhom)이 2011년 설립한 방콕의 조경설계사무소다. 땅과 사람의 조화를 꾀해 미래의 불확실한 기후에 대응하며, 옥상 녹화, 도시 숲, 습지, 공원과 같이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경관을 보존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대상지와 그곳의 환경,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의 힘을 믿으며 현지 문화와 역사, 땅의 맥락을 존중하는 설계를 한다.
쭐랄롱꼰 대학교 백주년 공원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예기치 못한 폭우 등 급변하는 기후 환경으로 인해 세계 전역의 저지대 도시들이 수해에 대비하고 있다. 방콕은 차오프라야(Chao Phraya)강의 범람원에 조성된 도시로 물과 상호 작용하면서 발전해 왔다. 하지만 폭발적인 개발 추세는 땅 본연의 지질학적 특성을 무시하고 우수를 지하로 침투시키는 많은 물길과 농지를 없앴다. 도시 확장에 따른 과도한 지하수 사용과 고층 건물로 인한 하중 증가는 지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며 방콕은 매년 2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다. 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도시 전체를 비롯한 많은 주변 지역이 침수될 것이다. 게다가 방콕의 1인당 공공 녹지 면적은 3제곱미터로 매우 낮은 편이다. 방콕 중심부에 위치한 대상지는 쭐랄롱꼰 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소유의 상업용 부지였다. 2012년 대학은 창립 백주년을 맞아 지역 사회를 위한 공원을 조성하는 설계공모를 열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도시에 극심한 가뭄과 강우가 일어나는 가운데 100년 후의 방콕이 무엇을 직면하게 될지를 고민했다. 새로운 공원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여가를 위한 목적으로만 조성되어선 안 된다. 다가오는 기후 변화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에 더 많은 녹지와 회복탄력성 높은 조경 공간이 필요하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LANDPROCESS Architectural Design N7A architects Structural Engineering Civil And Structural Engineers MEP Engineering EEC Engineering Network Main Contractor Syntec Construction Construction Manager Consulting & Management 49 Softscape Contractor Cordia Graphic Designer G49 Client Chulalongkorn University Location Bangkok, Thailand Area Park: 44,800m2 Road: 1.57km Completion 2017 Photographs LANDPROCESS, VARP Studio, Panoramic Studio, Property Management of Chulalongkorn University, Suratchana Pakavaleetorn 랜드프로세스(LANDPROCESS)는 꼿차꼰 보아콤(Kotchakorn Voraakhom)이 2011년 설립한 방콕의 조경설계사무소다. 땅과 사람의 조화를 꾀해 미래의 불확실한 기후에 대응하며, 옥상 녹화, 도시 숲, 습지, 공원과 같이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경관을 보존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대상지와 그곳의 환경,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의 힘을 믿으며 현지 문화와 역사, 땅의 맥락을 존중하는 설계를 한다.
토론토 대학 DFALD 캠퍼스
도시에 미치는 영향과 새로운 연결 캐나다 토론토(Toronto)는 격자무늬의 도로가 특징적인 계획도시다. 토론토 도심에 자리한 원 스파디나 크레센트(One Spadina Crescent)는 토론토 대학의 건축, 조경 및 디자인을 가르치는 존 H. 대니얼스 학부(John H. Daniels Faculty of Architecture, Landscape and Design)(DFALD)가 있는 건물이다. 토론토 대학 세인트 조지 캠퍼스(St. George Campus)의 중요 관문이며, 흔치 않게 원형 부지에 놓여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대상지 인근의 녹스 대학(Knox College)과의 관계를 고려했는데, 녹스 대학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과 출입이 불가능한 잔디밭으로 인해 주변과 단절되어 교통섬 같은 장소가 되어버린 상태다. 따라서 대상지를 넘어 그 주변 지역을 물리적, 시각적으로 연결함으로써 특정 구역이 섬처럼 고립되는 현상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토론토 도심에 스파디나 남북축을 따라 새로운 활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서쪽의 학부 건물과 인근 지역, 동쪽의 대학 캠퍼스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진입 광장, 보행자 연결로, 산책로를 계획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PUBLIC WORK Concept: Marc Ryan, Adam Nicklin, Lauren Abrahams, Gerardo Paez, Chester Rennie, Stephanie Braconnier, Seven Xiru Chen Detail Design & Delivery: Marc Ryan, Adam Nicklin, Ben WattMeyer, Guangyu Zhao, Lauren Abrahams, Virginia Fernandez Lead Consultant NADAAA Architect of Record Adamson Associates Heritage ERA Civil Engineering A.M Candaras Associates Structural Engineering Entuitive Electrical Engineering Mulvey & Banani Client University of Toronto Location Toronto, Ontario, Canada Area 2ac Completion 2019 Photographs Michael Muraz, Nic Lehoux, PUBLIC WORK 퍼블릭 워크(PUBLIC WORK)는 현대 도시의 지적 진화에 초점을 맞춘 도시 및 조경 설계 스튜디오다.공공 공간 활성화,도시와 생태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도시에 새로운 경험의 층을 마련해 공공을 위한 혁신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벤트웨이
도시 과밀 현상이 계속되며, 활용할 수 있는 빈 땅을 찾기 힘들어졌다. 공공 공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끌어내야 한다. 가디너 고속도로(Gardiner Expressway)는 20세기 교통 정책으로 탄생한 분열의 상징물이다. 이를 재해석해 토론토의 문화와 정신을 드러내는 공공 공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디자인과 프로그램을 융합해 창의적 형태이면서도 공공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을 고가 하부에 계획했다. 독특한 공간 환경, 미기후, 문화, 역사, 지역 사회를 고려해 대상지의 새로운 용도를 탐색하는 것은 물론,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면서 진화해나가는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도시 전역의 지역 커뮤니티와 잠재 이용객을 대상으로 설계 진행 과정과 프로그램 계획을 공유했으며, 새로 설립된 벤트웨이 컨서번시(The Bentway Conservancy)가 프로그램 운영을 맡아 이어가고 있다. 벤트웨이)The Bentway_는 일곱 개의 동네를 하나로 묶고, 포트 요크(Fort York)국립 역사 유적지 등 주요 지역 명소로의 접근성을 확장한다. 또한 점차 증가하는 토론토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한다. 고속도로를 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인 벤트(bent)에서 콘셉트를 도출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Lead Deign PUBLIC WORK(Marc Ryan, Adam Nicklin, LaurenAbrahams, Virginia Fernandez Rincon, Chester Rennie, BenWatt-Meyer, Melissa Tovar, Clint Langevin, Laura Ettedgui,Golnaz Jamshidi) Urban Design Greenberg Consultants Structural Blackwell Lighting Tillett Lighting Design Associates Electrical DPM Energy Civil and Mechanical WSP Signage and Wayfinding Bespoke Cultural CollectiveArchitect, Strachan Gate Building Gensler Skating Building Kearns Mancini Architects Fountain Design DEW Client Waterfront Toronto Location Toronto, Ontario, Canada Area Public Space: 10ac Trail: 1.75km Completion 2018 Photographs Droneography Aerial Imaging, Nic Lehoux, PUBLC WORK, Sean Galbraith, The Bentway Conservancy 퍼블릭 워크(PUBLIC WORK)는 현대 도시의 지적 진화에 초점을 맞춘 도시 및 조경 설계 스튜디오다. 공공 공간 활성화, 도시와 생태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도시에 새로운 경험의 층을 마련해 공공을 위한 혁신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카라타 헬스 캠퍼스
카라타 헬스 캠퍼스(Karratha Health Campus)는 서호주에서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받아 조성된 의료 기반 시설이다. 이 새로운 의료 시설이 호주의 오지로 일컬어지는 북서부 지역의 의료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병원 환경을 개선하고, 환자와 그 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카라타의 녹지축을 도심으로 확장하는 등 캠퍼스 전역의 경관과 공공 보건 시설을 설계했다. 풍부한 식물과 관개 시설 덕분에 필버라(Pilbara)의 혹독한 기후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도시의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병원 직원, 카라타 시 정부, 호주 원주민인 네갈루마(Ngarluma)와 협업해 지역 공동체 모두가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조성했다. 카라타에 지속가능한 경관을 설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씨를 비롯한 여러 여건이 극단적인데, 높은 기온과 습도, 간헐적인 국지성 강우, 심지어 사이클론까지 고려해야 했다.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 식물을 자라게 하는 법 반건조 기후대에 속하는 필버라의 공공 공간에는 풍성한 식물과 그늘이 꼭 필요하지만, 관개에 필요한 물을 손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카라타의 지하수에는 염분이 섞여 있고, 강수량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지의 사전 개발 단계는 거대한 모래밭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와 협업해 혁신적인 관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병원의 에어컨 설비에서 발생한 응축액, 역삼투압 시스템에서 비롯된 역류수를 지하 수조에 저장해 재활용한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달 매일 30킬로리터에 달하는 물을 저장할 수 있는데, 뒷마당의 수영장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관개 시스템을 통해 병원의 경관을 유지하고, 건물 안팎으로는 온화한 미기후가 형성되어 녹지 공간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Hassell Owner Western Australian Government | Department of Health& WA Country Health Service Architecture Hassell Structural, Civil Pritchard Francis Mechanical, Electrical, Hydraulics, Security & ESDWood & Grieve Engineers Compliance Philip Chun Irrigation LD Total Public Art Consultant FORM Landscape Contractor Multiplex/Frogmat Artists Simon Gilby, Leanne Bray, Ian Dowling, Cliff Samson, KyleHughes-Odgers Client Multiplex Location Karratha, Australia Area 1.3ha Completion 2018 Photographs Douglas Mark Black, Robert Frith 하셀(Hassell)은 아시아,호주,미국,영국에 사무실을 둔 국제적 설계사무소다.전략적 통찰과 창조적 디자인을 결합해 대상지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가치를 드러내는 공간을 만든다.전 세계의 연구,산업,디자인 분야 전문가와 협업하며 지역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데 힘쓰고 있다.
세 번째 열차의 정원
프랑스 최북단에 위치한‘오드프랑스(Haut-de-France)’는 제1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지역이다.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이 벌인 솜(Somme)전투의 격전지로,이때 발생한 사상자가 백만 명에 달했다. 1918년11월11일,연합군과 독일군은 레통드(Rethondes)마을 콩피에뉴(Compiegne)숲속의 열차에서 만나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그로부터100년이 지난2018년,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종전 100주년을 기념해 오드프랑스의 다양한 역사적 장소에 여러 개의 추모 정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조경가 마르 블루메(Marc Blume), 건축가 프란체스카 리기에리(Francesca Liggieri)와 함께 콩피에뉴 숲에 만들 평화의 정원을 설계했다. 주차장과 휴전 기념터(Clairiere de l'Armistice)를 연결하는 길 양옆을 상징적인 보행 공간으로 조성해, 방문객들이 역사적 장소에 닿기 전 인상적인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Team Marc Blume, Gilles Brusset, Francesca Liggieri Client Association Arts & jardins | Hauts-de-France, Les jardinsde la paix Location Compiegne, France Area 500m2 Cost 50,000€ Completion 2019 Photographs Pierre-Yves Brunaud 질 브뤼셋(Gilles Brusset)은 공공 공간의 예술화를 지향한다.물리적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며,대상지는 미완의 예술 작품으로 여긴다.파리벨빌 건축학교와 베르사유 국립건축학교를 졸업했으며 시설물,조경,건축,도시계획 등 폭넓은 분야에서 차별화된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주요 작품으로는 아이티 프랑스 대사관 앞의 에트알레 드 테르(Etoile De Terre, 2018),프랑스 클리시의 빈터에 설치된 트랑슈 드빌(Tranches De Ville, 2013)등이 있다.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힐스테이트 리버시티’는 축구장 11개 면적에 달하는 넓은 녹지를 품은 단지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수목으로 식물원 같은 주거 단지를 만들고자 세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째, 다양한 대형목과 특성수를 식재한 갤러리 숲을 조성한다. 둘째, 대형 석가산, 계류, 유러피안 폰드, 바닥 분수 등 여러 가지 수경 시설을 주요 경관 요소로 배치한다. 셋째, 티하우스와 가벽, 장미 트렐리스, 옥토넛놀이터, 3D 프린팅 벤치 등 특화 시설을 도입한다. 먼저 갤러리 숲은 소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귀룽나무, 서어너무, 느릅나무 등으로 구성된다. 계절 풍경을 고려한 화목류와 야생화를 조화롭게 배치해 정원마다 다른 풍경이 연출되도록 했다. 단지 곳곳에서 남다른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전국의 수목 농장을 다니며 발품을 판 덕분이다. 둘째로 다양한 모습의 수경 시설을 배치했다. 리버파크(중앙공원)에는 한강을 모티브로 한 생태 계류와 석가산 폭포가 어우러져 장대한 자연형 수경관을 연출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고 길을 따라 흐르고 잔잔히 고이기도 하며 커뮤니티 공간에 활기를 부여한다. 정원에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유러피안 폰드, 도시적이고 세련된 형태의 폰드, 바닥 분수 등이 놓여 아름다 운 경관과 물놀이 공간을 함께 제공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기본 설계 신화컨설팅(최원만) 조경 특화 설계 디자인로직(오형석,유선근,김하나) 조경 시공 현대건설(정찬옥,박준호,박연상,문수호,하지원,김예본) 식재 1단지:남도조경(도재광) 2단지:유일종합조경(최일호) 시설물 1단지:그린에이드(홍순문) 2단지:원앤티에스(이청이)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이동진) 위치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향산리 대지면적 1단지: 76,425m2(1,568세대) 2단지: 94,869m2(1,942세대) 준공2020. 7. 사진 로 스튜디오(우경선) 디자인로직(LOSYK)은 외부 환경 및 조경 계획,설계,컨설팅을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2005년 봄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는 젊은 조경가7인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에서 시작됐다.외부 환경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과 설계 전문가 집단의 새로운 운영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 Ⅲ
나쁜 피 살충제가 개발되기 전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메뚜기 떼는 언제나 저항할 수 없는 재앙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그야말로 나쁜 피. 모든 의미를 잿더미로 만드는 무력과 무의미의 상징. 뉘앙스만 다를 뿐 사람들이 말하는 진심은 늘 순간적이고 상대적이어서 익숙해지면 모든 게 한없이 옅어졌다. 마치 이별을 말하는 데 소질이 없는 연인이 지난날의 의미를 돌아볼 때 밀려오는 짜증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 무거운 연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련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래스호퍼의 의미를 말해야 하는 변하지 않을 꿈에 갇혀버렸다. 네가 대체 뭐라고 ‘그래스호퍼의 쓸모’에 대해 말하고 있나. 내가 대체 뭐라고 ‘파라메트릭의 비밀’을 밝히려 하나. 서로 거짓말들을 소리 내서 반복할 뿐 역병이 지나간 자리에 메마른 기억만 남기고 있다. 나쁜 꿈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말은 정말 이기적인 표현일 것이다. 누가 누구를 교란하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언제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의미 없는 것들에 환상을 부여하며 동등하게 경쟁해왔다. 교란당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나쁜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자들을 죽이기 위해 숨 막히는 이유를 지어내는 것이다. 나는 벌써 두 달이나 거짓말을 해왔다. 오늘, 아니 어쩌면 어제 죽었을지도 모르는 많은 생명체에게 오직 내가 돋보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스호퍼에 대한 연극을 한 것이다. 이제 슬픈 막을 내린다. 아무래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나쁜 꿈에서 말없이 깨어난다. 단지 미련이 남을 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기에 이미 끝난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게나 얘기할 것이다. 목록도, 목적도, 고통 뒤에 감춰둔 거짓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모두를 교란할 것이다. 삶을 간단하게 하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지면의 마지막까지 그래스호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또 얘기할 것이다. BIG 서펜타인 파빌리온(유선형 디자인+매크로 디자인+커브 어트랙터) 하이드 파크의 서펜타인 갤러리는 매년 영향력 있는 건축가를 초청해 파빌리온 디자인을 의뢰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00년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2002년 토요 이토, 2006년 렘 콜하스, 2008년 프랭크 게리 등 스타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디자인과 동시대 건축의 트렌드를 즐길 수 있는 행사다. 그림 1은 BIG의 비야케 잉겔스가 2016년에 디자인한 파빌리온을 그래스호퍼로 모델링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투명과 불투명’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래스호퍼 키드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온전한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공간잇기] 담장 안 사람들의 이야기
용산은 제 고향이에요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금발 머리 푸른 눈의 조는 거리낌없이 용산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그렇게 말한 게 짐짓 놀라운 듯 살짝 상기된 표정이다. 의아한 마음에 묻는다. “조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는 초등학교 때 와서 고등학교 때까지 8년만 살았는데 왜 용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나요?” 엄마 리사와 아빠 브라이언도 딸의 답변을 궁금해한다. “정체성이 형성되던 중요한 시기인 십대를 한국에서 보냈어요. 한국의 생활과 문화가 제 DNA 깊숙이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용산 미8군부대 안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평생 함께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이를 간직한 공간들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인이 됐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오클라호마도 좋지만, 제게 더 의미 있는 곳은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여기, 용산이에요.” 조의 어머니인 리사 홀(Lisa Hall)은 용산 미8군 기지 안에 있는 서울미국인초등학교(Seoul American Elementary School)(SAES) 교사였다. 지난해 한국 부임 8년째를 맞은 리사는 특별 수업 교사로서 전 학년(유치원생부터 5학년까지)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기지 내 학교에서 공부했다. 미국 소재의 대학생이 되어 더 이상 한국에 살지 않지만, 길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만 해도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했다. 담장 너머 금단의 땅 한국인에게 애환의 공간이자 금지된 땅인 용산 기지에는 역사적 아픔이 깊게 서려있다. 1882년 청과 불평등 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용산에 청군이 상주한 것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 점령을 목적으로 일본 군대가 주둔했다. 1945년광복 후에는 미국이 일본의 군사 시설을 접수해 사령부로 사용했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정착한 뒤에는 미국 제8군이 2019년 말까지 주둔했다. 이곳은 한양으로의 진입부이자 한강과 맞닿은 군사 물자 수송의 허브로서, 외국 군대가 주둔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땅이었다. 국운이 쇠퇴하던 조선 시대 말기 및 대한제국 때부터 일제 식민지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세 침략과 간섭의 전초 기지였던 용산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 역사적인 땅은 한 세기를 돌고 돌아 용산공원으로 재탄생하여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될 예정이다. 리사와의 인연이 닿은 것은 서울미국인초등학교가 문을 닫기 전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서였다. 주한미군의 용산 기지 반환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기지에 담긴 역사·문화유산을 기록하자는 취지로 모인 ‘용산레거시(Yongsan Legacy)’라는 전문가 그룹을 통해 만남이 성사됐다. 리사는 첫 만남부터 학교에 대한 아쉽고 복잡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용산 기지가 한국 땅인 것을 잊은 적이 없어요. 오랫동안 잘 빌려 썼고, 당연히 한국에 다시 돌려줘야죠. 그런데 사용하는 동안 이 땅에 정이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우리의 많은 이야기가 이곳에 녹아 있죠.”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난 60년간 우리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들이 아주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지닌 곳이기도 해요.” 몇 개월 후 학교가 문을 닫고 공원화가 시작되면 학교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리사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용산 기지는 군인들만 있던 곳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요.” 십 년 뒤 혹은 이십 년 뒤 다시 한국을 찾은 제자들이 유년의 추억이 담긴 이 땅의 역사와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는 눈빛이 간절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용산 기지 한 세기 넘게 들어갈 수 없던 높은 담장 안 금단의 땅에서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은 인간의 친구”라고 했다. 사람은 공간 없이는 삶을 이어갈 수 없고, 공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군부대로만 보였던 용산 기지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보낸 삶의 터전이라는 관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베일에 싸인 시간 동안 어떤 사람들이 누구와 함께 어떤 일상을 누리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왔는지,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곳, 평범한 일상 공간으로서 용산 기지, 그곳이 궁금해졌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북 스케이프] 르네상스 정원의 시원,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정원을 설명할 때마다 정원은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을 표현하는 곳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이상향은 시기와 지역, 종교와 문화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도 여럿이다. 가령 르네상스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흔히 『데카메론(Decameron)』을 예로 든다(4월호 참조). 그런데 정원 이론서에는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Hypnerotomachia Poliphili)』라는 복잡하고 낯선 이름의 문헌이 더 자주 등장한다. 제목과 삽화 한두 점은 꼭 나오고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하다고 하니 대충 넘어가기도 찝찝하다. 검색해보면 아름다운 이미지가 쏟아지나 연구는 많지 않다. 원전이 당시 속어로 분류됐던 이탈리아어와 라틴어, 여러 고대 언어가 뒤죽박죽 섞인 이른바 ‘마카로니(macaroni)’ 문학이라 해독이 어려운 탓일까. 출판된 지 500년이 지난 1999년에야 영어 완역본이 출간됐다.1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으면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 아닐까. 그러나 박사 과정 중 순전히 호기심과 호기로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학기 과제로 택했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2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님프 폴리아를 연모하는 주인공 폴리필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간신히 잠이 든다. 꿈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폴리아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하나 입맞춤을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제목, ‘힙네로토마키아’는 힙노스hypnos(잠), 에로스eros(사랑), 마케mache(투쟁)라는 세 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합쳐진 말, 즉 주인공이자 화자인 폴리필로가 꿈속에서 겪는 사랑의 여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줄거리도 단순하고 플롯도 엉성한 연애 소설이 어떻게 르네상스 정원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중략) 각주 정리 1. 1499년 당시 유럽 최고의 인문학 출판사 중 하나인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에서 처음 출판됐고, 1592년에 영국에서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꿈에서의 사랑의 투쟁)』이라는 축약된 해적판 번역본이 출간됐다. 프랑스에서는 1546년 『Le Songe de Poliphile(폴리필로의 꿈)』이라는 번역본이 새로 제작한 판화와 함께 발간됐다. 이는 『Le Songe de Poliphile』(Paris: Imprimerie nationale, 1994)로 복간됐고, 『Hypnerotomachia Poliphili: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Thames & Hudson, 1999)가 최초의 영어 완역본이다. 2. 황주영, “16.17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정원과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미술사학보』 36, 2011, pp.179~214.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치유의 공원 미리 엿보기
국가공원으로 거듭날 용산공원의 새로운 윤곽이 공개됐다. 지난 7월 21일 정부는 용산공원 부지의 개방 행사를 진행하고, ‘용산공원 조성계획안 요약본’(이하 요약본)을 배포했다.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West 8+이로재+동일기술공사)이 선정되었고, 이후 용산공원 계획안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와 논의가 생산되어 왔다. 당선작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기본설계가 거듭 중단됐고, 공모에서 강조했던 과정 중심적 계획, 시민 참여 등은 찾아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던 중, 2016년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 및 정비구역 변경 공청회’가 뜻하지 않은 전환점을 가져왔다. 공청회에서 발표한 공원 부지에 주요 정부 시설 8개소를 신축하는 계획안이 국민적 공분을 산 것이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후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기존 건물 활용 방안 재검토, 공원 조성 추진 방향 재설정, 시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약속했다. 요약본은 당선팀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수행한 ‘용산공원 기본설계 및 공원조성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간추린 것으로, 2018년 말 이후의 상황은 담고 있지 않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기초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국민과 함께 용산공원계획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용산공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요약본 일부를 소개한다. 용산공원 계획 개념 공원이 들어설 곳은 오랜 기간 외국군이 주둔해오면서 식민과 냉전,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누적된 공간이다. 군사 기지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부지의 원래 지형과 생태가 훼손되었고, 서울의 한가운데 위치하지만 주변 도시와 완전히 단절된 채 백 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 땅에 새겨진 아픔을 기억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치유하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평화의 메시지를전하고자 한다. 용산공원 계획의 핵심 개념은 ‘치유’이며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지형을 치유한다. 군사 기지로 사용되면서 훼손된 지형을 회복한다. 이를 통해 생태 공간의 기반을 조성하고, 북악에서 남산, 한강, 관악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핵심 녹지축을 회복한다. 둘째, 역사를 치유한다. 보존 가치와 활용 가치가 높은 건물과 유적을 남겨 적합한 용도로 활용하되 공원 계획과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한다. 공원 조성을 위해 부득이하게 철거되는 건축물 또한 그 흔적을 남겨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활용한다. 셋째, 자연을 치유한다.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녹지를 대폭 확대해 남산에서 한강에 이르는 생태와 역사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든다. 넷째, 연결을 치유한다. 높은 담장을 걷어내고 끊어진 길을 연결해 공원이 도시와 함께 살아 숨쉬게 한다. ...(중략)
열린 공원을 향해, 용산공원 담장을 허물다
실재하지만 느낄 수 없던 땅. 용산미군기지(이하 용산기지)는 줄곧 다가설 수 없는 금단의 공간이었다. 2003년 한미 정상이 기지 이전에 합의해 공원화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통해 용산공원의 밑그림을 마련했지만 어쩐지 실감하기 어려웠다. 전작권 전환 계획이 변경되며 기지 이전 일정이 연기되고, 굳건한 담장은 여전히 용산기지를 두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상상하는 일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7월 21일 용산공원의 빗장이 풀렸다. 부지의 일부분이지만 장교숙소 5단지가 개방된 것이다. 주택, 관리소, 탁아소 등 18개 동 중 5개 동을 용산기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오픈 하우스와 전시 공간,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했다. 8월 1일부터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전면 개방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엇을 꿈꾸고 함께 논의할 수 있을까.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에서 공원정책과를 이끄는 신보미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교숙소 5단지는 1986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부지에 LH(구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미군 장교 임대 주택이다. 2019년 말까지 운영되었고 실제로 작년 11월 말까지 미군이 거주했다. 이후 정부가 소유권을 확보해 내측 담장 설치, 출입부 조성, 건물 보수 및 리모델링 후 대중에게 공개했다. “용산기지를 개방한 첫 번째 행사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공원이 조성될 부지를 국민이 몸소 경험해 미래의 용산공원을 상상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접근이 제한된 용산기지의 특수성은 신 과장에게 늘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방을 통해 시민들이 부지에서 휴식하며 즐기고, 전시물을 보며 공원에 대한 설렘을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했다. ...(중략)
함께 만드는 용산공원, 소통과 참여의 의미를 논하다
용산공원의 미래를 국민과 함께 그리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그간 정부 주도의 빅 프로젝트는 대부분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도시나 공원을 조성할 때 실제로 그곳을 쓰는 시민, 국민이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반면 용산공원은 이례적으로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며 장기적, 단계적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7월 21일 ‘용산공원 조성 계획안 요약본’을 공개하며 “국민과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최종 계획안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하고, 8월 1일 용산공원 부지 일부를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다. 이어 8월 19일 용산공원의 계획과 조성에 참여한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하는 ‘소통과 참여로 함께 만드는 용산공 원’ 웨비나가 개최됐다. 용산공원 계획안에 국민의 의견을 담기 전, 소통과 참여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려는 의도다. 수년간 용산공원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온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와 ‘용산공원 국제 설계공모’(2012)의 당선팀인 웨스트 8West 8에서 공모에 참여했던 최혜영 교수(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조경학전공)가 좌장을 맡았다. 패널로는 용산공원을 연구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홍렬 주무관(서울시 용산공원전략팀), 박영석 소장(빅바이스몰), 안상욱 이사장(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오상헌 교수(고려대학교 건축과), 최승연 사무관(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함은아 소장(EH9 이로재)이 참여했다. 개방된 부지 중 카페로 개조된 공간에서 소통과 참여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소통의 시작, 정보 공유 플랫폼의 필요성 “용산공원을 다룬 전문적 자료는 많다.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 용산공원을 설명하려 하면 막막할 때가 있었다.” 박영석 소장은 청년프로그래머와 함께하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을 이끌며 느낀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자료는 많지만 활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가 산재해 있고,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축적한 자료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해 배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산공원 조성을 위한 네 가지 그룹을 제안하기도 했다. ...(중략)
공간에 펼쳐 보인 소리를 따라
인간이 외부 세계와 접촉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감각은 보통 시각이다. 그다음은 청각인데,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70~80%라면 청각에 대한 의존도는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때론 듣는 경험이 보는 것보다 강하고 풍부하게 다가온다. 소리는 공기를 통해 몸에 전달되는 파동으로 시야에 국한되지 않으며, 귀는 어둠 속에서 더 예민하다. 어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이 상영될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추억의 여행지로도 되돌아갈 수 있다. 디뮤지엄의 ‘사운드 뮤지엄: 너의 감정과 기억’은 소리와 빛을 주제로 한 전시다. 일반적인 전시에서 감상자가 곤두세우는 감각은 시각이지만 이곳에서는 시각이 청각을 뒷받침한다. 눈은 감아도 좋지만 귀는 충분히 열어야 한다. 듣고 있어도 듣는 줄 몰랐던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낯선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시청각 요소와 공간을 결합한 20여 개의 작품은 듣고 보는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폭시킨다. 듣는 행위에 집중하기 푸른빛의 조명이 가득 찬 공간에 손바닥만 한 스피커 수백 개가 설치되어 있다. 덩굴 식물처럼 벽에 걸린 스피커에서 작은 쇠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거나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알 듯 말 듯한 이 세밀한 사운드는 자연에서 녹음한 소리를 컴퓨터로 가공한 것이다. 분위기를 전환한다는 뜻의 ‘클라이멋 체인지(Climate Change)’는 북적한 전시장 바깥에서 고요한 실내로 첫발을 내디딘 관람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로빈 미나드(Robin Minard)는 원치 않는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더이상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들이 작품 속 공간에서만큼은 작은 소리에 집중해보기를 바랐다. 다비드 헬비히(David Helbich)의 ‘하우스 오브 이어(House of Ear)’는 오직 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들려준다. 관람객은 모니터 속 작가의 지시를 따라 귀를 마사지하고, 귀 가까이 손바닥을 댄 상태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해본다. 이어지는 작가의 지휘 동작이 만드는 리듬과 박자를 따라, 상상 속 테크노 연주를 듣는다.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이 행위는 관람객을 무대 위 퍼포머로 변모시켜 전시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중략)
컴팩트 세타
서울 강동구의 강일공영차고지가 공원, 공공 주택, 생활(SOC)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화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그간 도심 외곽부의 대규모 택지를 개발해 공공 주택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개발 가능한 토지 자원은 한계에 이르렀고 교외 지역의 녹지 훼손, 통근 거리 증가, 편의 시설 부족 등의 문제가 뒤따랐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2019년부터 외곽 지역의 녹지 대신 도심 내 활용이 저조한 공간에 주거·상업 시설을 밀집시키는 컴팩트시티(Compact City)사업을 추진 중이다. 북부간선도로, 장지·강일·방화차고지, 서남물재생센터, 연희동 일대 유휴 부지를 복합적으로 개발해 부족한 주택과 자족 및 편의 시설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도심 곳곳에 위치한 버스공영차고지는 공공 소유의 대규모 부지이지만 시내 버스 정비 및 주차 등의 단순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어 왔다. 1990년대에 건설된 노후 시설인 데다가 소음, 매연, 화재 및 폭발 위험이 있어 개선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SH는 지난 1월 장지공영차고지를 대상으로 한 ‘장지, 서울 컴팩트시티 국제설계공모’(예정 공사비 2,000억원)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3월에는 강일공영차고지를 대상으로 ‘강일, 서울 컴팩트시티 국제설계공모’(예정 공사비 1,900억원)를 진행했다. 강일공영차고지에 대한 공모의 목표는 네 가지였다. 첫째,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과 생활형(SOC), 지역 주민을 위한 녹지 공간이 어우러진 새로운 공공 주택 모델을 제시한다. 둘째, 대중교통지향형개발(TOD)을 통한 친환경 도시를 구현한다. 셋째, 차고지 시설을 최대한 지하화하고 지상에 공원, 공공 주택, 편의 시설을 조성해 주민 친화적 공간으로 전환한다. 넷째, 차고지 시설을 현대화하여 관련 종사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한다. ...(중략)
[편집자의 서재]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예상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남 일로만 여기던 기후 변화는 50일이 넘는 장마 끝에 피부에 와닿았고, 유례없는 감염력의 바이러스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이걸로 끝일까. 더 강력한 바이러스, 더 큰 재해가 언제고 들이닥칠 것만 같다. 기후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도 결국 환경 파괴가 근본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70억 인구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온실가스와 멸종 동물의 수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을 유지하는 지구 시스템을 회복 불능한 속도로 무너뜨리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다가 먼 미래 의외의 방향으로 지구가 인간에게서 해방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켄 리우의 공상과학SF 소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1에 수록된 싱귤래리티(Singularity) 3부작을 보고 나서다.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는 말은 인터넷에서 드립으로 흔히 쓰이지만 본래는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협하는 강력한 인공 지능AI이나 신체 일부가 기계로 대체된 기계 인간의 출현이 대표적 예다. 소설은 두뇌를 스캔해 컴퓨터에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발달로 더는 육체가 필요 없게 된 인간을 이야기한다. 디지털화된 트랜스 휴먼은 유한한 몸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고 아프거나 죽지도 않으며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이 같은 변화 앞에서 인간 본질과 인간성은 어떻게 될까. 멀쩡한 몸을 버리고 의식을 기계에 집어넣는 설정은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노인이나 육체의 연약함을 실감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싱귤래리티 1부(‘카르타고의 장미’)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본 에이미와 동생 리즈처럼. “어렸을 때 아빠가 얼마나 튼튼해 보였는지 기억나? 달려가서 아빠 품에 뛰어들 때면 무슨 벽에 부딪힌 것 같았어. 내가 사과를 따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앉혀 줬지. … 하지만 언니, 그런 건 다 가짜야. 몸이란 것 자체가 가짜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거라고. 그저 혈전이 한 개 생겼다는 이유로.”2 이 일을 계기로 리즈는 자신을 데이터화하는 시범 프로젝트에 자원한다. 2부(‘뒤에 남은 사람들’)의 배경은 특이점이 도래한 이후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 존재가 된다는 욕망에 이끌려 업로드를 택하고, 육체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잔류자로 남는다. 하지만 모든 생산 활동이 멈춘 세계는 폐허가 되어 잔류자들은 폐품을 주우며 어렵사리 살 수밖에 없다. 신념과 생존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인공 지능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트랜스 휴먼들은 계속해서 선동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한한 시공간을 누리는 황홀한 세계에서 함께 살자고. 이어진 3부(‘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시간이 더 지나 잔류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의식 업로드는 보편화되고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을 누린다. 생각을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고 자기만의 다중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고차원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르네의 방은 4차원 형태이고, 아빠의 모습은 20차원이다. 반면 르네의 엄마는 여전히 육체를 지닌 3차원의 고대인이다. 다른 행성으로의 탐사를 앞둔 엄마는 르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질 세계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납작하고 지루할 줄로만 알았던 3차원 세상에는 데이터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상상도 못했던 생생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책의 머리말에서 켄 리우는 소설을 통해 “희망과 공포로 가득한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고자 했으며, SF는 우리 자신과 사회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를 선명히 드러내고 강조하는 고성능 필터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했지만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언택트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스마트폰이 출현과 동시에 빠르게 생활을 잠식한 것처럼 낯선 기술은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삶에 틈입해 더 나은 일상을 만든다. 이대로 지구가 거주 불능한 환경이 된다면 (대체 행성을 찾지 않는 이상) 인류는 트랜스 휴먼으로의 진화를 돌파구로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수백 년간 줄기차게, 망가진 것을 회복하기보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모색하는 데 급급했으니까. 바이러스투성이 세상이라지만 종일 쓰던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새삼 좋고 감사하다. 공존과 회복을 위한 진보는 그저 순진한 바람일까? 각주 정리 1. 켄 리우, 장성주 역,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 2020. 2. 같은 책, pp.182~183.
[CODA] 곰팡이 사투기
지루한 장마였다. 쏟아지나 싶으면 그치고 우산 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하기 일쑤,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미적지근한 날들이 계속되니 집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해를 못 봐 바싹 마르지 못한 빨래를 다시 세탁기에 집어넣다가 악몽 같던 재작년의 겨울을 떠올렸다.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다. 생전 관심 없던 롱패딩을 찾을 만큼 혹독했는데 그렇다 보니 바깥과 집 안의 온도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결로 현상으로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장마철 빗줄기처럼 진종일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 물기를 수시로 훔쳐내느라 바닥 귀퉁이에서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끔찍한 검은 점박이가 티브이장 뒤를 잠식하고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간단한 처방으로 수습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해진 후였다. 그게 끝이었으면 좋으련만 곰팡이 친구들은 안방 옷장 뒤편, 작은방 책상 아래 등 구석구석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들이 차지한 공간을 모두 헤아려보니 곰팡이가 주인인 집에 사람이 얹혀살고 있는 꼴이었다. 지금이야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집을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르는 실수인데 우리 가족은 그 곰팡이를 자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곰팡이 퇴치를 위해 한 달간 주말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첫째 주는 거실, 둘째 주는 안방, 셋째 주는 작은방, 마지막 주는 화장실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곰팡이들을 쫓아내겠다는 당찬 구상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벽지를 뜯어내는 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서 찾은 꿀팁을 따라 뜨거운 물로 벽지를 적시고 헤라로 긁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우둘투둘한 콘크리트 벽 표면에 스며든 곰팡이를 닦아낼 때는 락스 냄새를 밀어내기 위해 온 집안의 창을 다 열어야 했다.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온몸을 싸늘하게 굳혔다. 다음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실내외 온도 차가 해결되지 않으니 드라이기를 동원하고 선풍기 바람을 쐬어도 도통 벽이 마르지 않았다. 다음날 깨끗이 닦아놓은 벽 한구석에 다시 검은 무늬가 생긴 걸 발견했을 때의 심정이란. 이 주째의 일요일을 맞이하고서야 이 머저리 짓을 그만두기 로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소문을 통해 모 신 곰팡이 처리 전문가가 사건 현장을 살피는 눈빛이 어찌나 믿음직스럽던지 꽤 큰 거금을 (조금 손이 떨렸지만) 기꺼이 지불했다. 슬프게도 곰팡이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디밀었다. 건물이 낡아서 단열 페인트로는 어림없고 단열재로 두꺼운 벽을 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전문가의 조언이 귓가에 쟁쟁했다. 대공사를 하기엔 시간적, 공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또 주말 내내 자발적으로 집에 갇혀 곰팡이를 닦아내고 그 위에 단열 벽지를 발라야 했다. 모서리에 글루건까지 발라 꼼꼼히 마감했다. 곰팡이와의 사투를 끝낸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벽지는 티 한 점 없이 깨끗하다. 가려진 벽지 뒤에 곰팡이가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새하얀 벽을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하다. 곰팡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까. 사실 이 글은 곰팡이 사투기가 아니라 항복기인 셈이다. 문제를 바로 마주하고 해결하려는 태도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그 시간이 끝도 없이 길어지면 안 되겠지만. 바다 한 번 보지 못한 여름이 끝나간다. 집 밖을 나설 수 없게 되니 자연스럽게 내가 머무는 환경을 둘러보는 시간이 늘었다. 이런 욕구를 예측한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새롭게 시작된 집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부쩍 눈에 띈다. 물건이 잔뜩 쌓인 집을 ‘신박한 정리’(tvN)법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바꾸거나, 늘 꿈만 꾸던 ‘나의 판타집’(판타지와 집의 합성어, SBS)을 찾아 실제로 살아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의욕이 생긴다. 통장 잔고를밝히기도 민망한 빈털터리면서 “저 집 사억이면 살 만하네” 하는 분에 넘치는 소리도 하며 월급날을 향해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곰팡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집에서의 탈출을 위해! 독자분들도 눅눅한 기분을 재충전의 열기로 말려 뽀송뽀송한 기분으로 새 계절을 맞이하시길 바란다.
[COMPANY] 한국도시녹화
한국도시녹화는 옥상 녹화가 지상부 조경의 대안으로 주목받을 때부터 특화 제품과 기술 개발·연구에 매진해 왔다. 2003년 한국도시비오톱연구센터로 출발해 18년째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기존 옥상 녹화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며 다양한 건물 옥상을 녹색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옥상 녹화는 건축물에 대한 이해는 물론 바람이나 집중 호우 같은 외부 환경에 대한 대응력, 공간의 활용 가능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 작업이다. 한국도시녹화는 이에 필요한 옥상 녹화 및 벽면 녹화와 관련된 특허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건축물 구조 안전 진단부터 보수 및 보강, 방수, 방근, 전기, 설비, 각종 시설물 설치뿐만 아니라 녹화 기반 조성 및 식재 공사의 기획, 설계, 시공 전반을 일체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부산시청, 강남구청, 연세대학교 송도 캠퍼스, 롯데백화점, 한겨레신문 사옥 등의 옥상 정원을 조성했으며, 지난 7월 문을 연 ‘돈의문박물관마을 수직 정원’의 조성 및 유지·관리를 맡았다. 앞으로도 서울시가 새롭게 추진하는 다양한 옥상 녹화 및 벽면 녹화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해 서울형 수직 정원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특히 김철민 대표(한국도시녹화)는 ‘버스정류장 승차대 녹화사업’이 인공 지반 녹화 시장 발전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시와 롯데칠성음료가 협력 추진하는 이 사업은 합정역부터 홍대입구역, 신촌역을 지나 아현역까지 이어지는 양화·신촌로 중앙 버스정류장 37개소의 지붕과 벽면, 주변 펜스를 녹화하는 프로젝트다. 2018년 한국도시녹화는 시범 사업격으로 왕십리 광장의 버스정류장 4개소를 녹화한 바 있다. 지붕에 초경량형 유닛 시스템을 적용해 상록 기린초를 심고, 메시형 벽면을 아이비, 으름덩굴, 담쟁이덩굴 등이 타고 오르게 했다. 더불어 플랜트 박스를 활용해 주변의 작은 공간까지 세심하게 녹화했다. 이 경험을 살려 양화·신촌로 중앙 버스정류장의 지붕과 벽면은 물론 펜스, 벤치 하단을 다양한 식물로 녹화했다. 환경 이슈를 고려해 개소별로 강제 순환 장치를 갖춘 식물 공기 청정기(바이오월)를 설치해 대기 정화 및 미세 먼지 저감 효과를 높였다. 김 대표에 따르면 버스정류장 승차대를 녹화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쾌적한 일상 공간을 만들고 미세 먼지, 폭염, 침수에 대한 도시 방재 기능까지 향상할 수 있다. 또한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근거하면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버스정류장은 신체 표면 온도를 2도 가량 낮추는 효과를 낸다. 2018년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시내 버스 정류장은 6,252개소다. 통근·통학 시 이용하는 교통 수단을 살펴보면 버스 이용 비율이 27.1%, 버스와 지하철을 함께 이용하는 비율은 23.1%에 달한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은 미세 먼지 발생량이 가장 높은 도로 한복판에 자리한다. 즉, 버스정류장은 서울 시민에게 중요한 생활 밀착형 시설인데도 그간 관리 및 활용에 소홀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수직·옥상 녹화는 공간적 제약이 적다. 버스정류장 한 곳만 보면 그 규모가 미미하지만 서울시 전체로 보면 결코 작지 않다.” 김 대표는 곳곳에 놓인 수많은 버스정류장을 활용해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스정류장과 주변 도로, 건축물의 벽면과 옥상까지 미세 먼지, 폭염, 침수 문제 극복을 위한 기술이 적용되면 일련의 순환 체계가 구축되는데 버스정류장은 그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발화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도시 녹화에 대한 예산 부족 문제를 지적하며 “시의회에서 관심을 두고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도시녹화는 오는 9월부터 대형 실내 수직 정원과 경량형 옥상 녹화, 다양한 식물 실험 공간이 마련된 사옥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있다. 인공 지반 녹화 공간을 직접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는 리빙 랩을 운영해 R&D 영역에 더 초점을 맞춰나갈 예정이다. WEB. www.biotope.co.kr TEL. 02-414-1117
[PRODUCT] 간결한 외관에 여러 기능을 더한 ‘스마트 퍼걸러’
조경 시설물 전문 기업 예건YEKUN이 어떤 공간에도 잘 어울리는 디자인의 스마트 퍼걸러를 출시했다. 단순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직육면체 구조와 무채색 디자인이 특징인 제품으로, 간결한 외관과 달리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지붕의 루버는 개폐가 가능해 강한 햇빛이나 눈비를 막을 수 있고, 은은한 빛을 밝히는 LED 조명이 내장되어 있다. 미세 먼지를 저감하고 온도를 낮추는 미스트 분사 장치, 때에 따라 올리고 내려 채광 및 통풍 정도를 조절하는 측면부 스크린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이 같은 기능은 모두 스위치나 리모컨으로 원격 조절이 가능하며, 향후 IoT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기능을 지원할 예정이다. 온습도와 미세 먼지 농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전달해 퍼걸러의 기능을 더욱 편리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 퍼걸러는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되어 부식에 강하고 유지·관리가 용이하다. 올해 초 예건이 출시한 소런 가든 체어 및 미니 테이블 세트, 소런 등벤치를 함께 사용하면 한층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