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천 주변 _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창덕궁은 광해조에 복구되기 시작, 후원(後苑)의 경우 인조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정자가 새로 건립되고 물을 끌어들여 조경을 하여 현재와 같은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우선 인조14년에는 후원의 가장 북방에 옥류천(玉流川)을 개착(開鑿)하고 옥류천 주변에 환서정(歡逝亭), 운영정(雲影亭), 청의정 등을 세웠다. 환서정은 후에 이름을 소요정(逍遙亭)으로 고치고 운영정도 태극정(太極亭)으로 바꾸었다. 옥류천 주변의 제일 윗쪽에 청의정, 그 아래에 태극정, 그 아래에 소요정과 농산정(籠山亭), 그리고 제일 밑에 취한정(翠寒亭)을 지었다. 소요정 바로 위에는 어정(御井)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그 아래 바위를 다듬어 샘물이 돌아 흘러 아래로 떨어지도록 하였다. 바위에는 인조 어필(御筆)로 옥류천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그 아래로 작은 폭포를 조성했다. 숙종이 지은「逍遙觀泉詩」(소요관천시)에는 이 작은 폭포의 경관이 잘 묘사되어 있다.
궁궐지(宮闕志)에는“청의정은 태극정 서쪽에 있는데 이는 물을 모아 연못을 만들고 못 가운데에 섬을 만든 것으로 인조 14년 병자년(丙子年)에 세웠다”라고 기록하였다. 청의정이 있는 연못은 장방형으로 동궐도(東闕圖)에 나타나 있는데 지금도 장방형의 벼농사를 짓는 곳이다. 청의정은 초가지붕으로 연못을 이룬 곳에 벼를 심어 왕이 농부의 벼농사를 실제로 체험해보고 그 볏집으로 해마다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 키워드 _ 옥류천, 창덕궁, 실경화, 전통조경
※ 페이지 _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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