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한 모퉁이 빈 자리
  • 환경과조경 1999년 5월
4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꽃샘 추위가 매섭더니 모처럼 정말 봄기운을 느끼게 하던 날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충정로의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왔을 때, 봄볕이 정말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아 참, 햇살이 좋다.”김광석의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날이었죠. 어디 가서 커피 마실까? 물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형, 우리 여기 앉아서 햇살이나 쬐다 가죠.”식당이 있던 건물 앞에는 돌로 만든 벤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남자가 나란히 앉아 봄볕을 받으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친구가 잠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점심 먹고 어디 잠시라도 앉아 쉬었다 갈 데가 있으면 참 좋겠어요.” 서울은 절망적입니다. 여의도 공원을 놓고 대통령이 했다는 말씀 때문에 절망적입니다.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바꾼 것은 잘못이었다고 했다죠. 이제 우리에겐 광장이 없다고 한탄하면서요. 그 얘기를 들으며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대통령에겐 여의도 5.16 광장(!)이 감회 서린 장소였겠지요. 민주화 운동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말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꽉꽉 채우기’로만 머리 속이 채워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사람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공원을 만들어도 반드시 시멘트로 포장이 됩니다. 몇 억씩 들여 혐오스러운 환경 조각은 만들어도 건물 앞에 제대로 된 쉼터는 만들지 못합니다. 걸을 수 없는 도시, 쉴 곳이 없는 도시, 그 곳이 서울입니다. 빈 자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어느날, “여의도 공원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이었다”라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서울에는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도 갈 데까지 가면 그때부터 희망을 향해 떠오를 수 있다고 어떤 작가가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말을 믿으며 이렇게 쓸쓸한 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 키워드 _ 경관, 정원, 뜰, 정원문화 ※ 페이지 _ 74-75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