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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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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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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따로 또 같이
이번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어쩌면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빠르고 쉽게, 아주 우연히 기획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된 특집일 것 같다. 원래는 이 지면에 최근의 디자인 테크놀로지 변화상을 심도 있게 다룰 계획이었다. 조사, 취재, 독서, 토론을 반복하다 벽에 부딪힌 편집부는 디지털 조경계의 ‘최강 덕후’ 나성진 소장을 초대해 조언을 구하던 중 급기야 항로를 돌렸다. 테크놀로지 특집을 위해선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오히려 대안적 연대를 꿈꾸며 새롭게 문패를 내건 그의 오피스 ‘얼라이브어스’의 지향점과 운영 방식에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얼라이브어스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연대를 실험하는 대안 그룹이 젊은 조경인들 사이에서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된 취재와 섭외에도 불구하고 꽃길사이, 빅바이스몰, 얼라이브어스, 자연감각, 정원사친구들, 조경이상, 팀 동산바치, 하루.순, 이렇게 여덟 그룹이 이번 기획에 흔쾌히 동승해 주었다. 이 그룹들의 성격, 지향, 구성 형식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회사, 기성의 학/협회와 결을 달리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불편해하면서 ‘따로 또 같이’ 연대하는 형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교집합이 적지 않다. 대안 매체를 꿈꾸고 있는 팟캐스트 ‘꽃길사이’는 13회에 걸친 인터뷰를 방송하며 점차 청취자 수를 늘려가고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조경, 건축, 도시설계, 커뮤니티 디자인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연대한 ‘빅바이스몰’은 ‘노들꿈섬 운영 공모’와 ‘공원산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각자 자신이 설정한 비전에 따라 움직이며, 그룹에 개인을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각자의 동선은 평행할 수도 있고, 교차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협력의 방식을 정하고 함께한다”는 빅바이스몰의 연대 방식은 느슨하지만 동시에 관계 지향적이다. 조경과 건축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두고 학제간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얼라이브어스’는 프로젝트 그룹보다는 단일 설계사무소에 가깝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독립 소장인 독특한 파트너십을 실험한다. 세 오피스가 프로젝트에 따라 연합하는 그룹 ‘자연감각’의 활동 영역은 전통적인 조경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설계뿐 아니라 기획, 시공, 운영과 관리, 제품과 서비스 기획으로 범위를 넓혀 단기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기획, 설계, 시공을 나누지 않고 정원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정원사친구들’은 정원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결성되었지만 전시는 물론 민간과 공공 프로젝트로도 무대를 넓혀 왔다. 이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정원사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일반적인 회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2015년과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YAP 프로젝트의 조경을 맡으며 힘을 모은 ‘팀 동산바치’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합쳐 단일 오피스가 풀기 힘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조경, 도시설계, 건축 분야 소장 연구자들의 연합체인 ‘하루.순’은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도시 문화 콘텐츠를 기획·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른 그룹들과 달리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던 ‘돈의문박물관마을’의 한 건물에 온실 ‘하루’와 문화실험실 ‘순’을 운영하며 시민 참여형 소통 플랫폼을 제공한다. ‘조경이상’은 비즈니스의 색채가 전혀 없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앞의 그룹들과 다르다. 뜻을 함께 하는 30, 40대 조경가들이 모여 조경의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조경의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모임 내부의 탐색기를 끝내고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 특강 시리즈’로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 지면을 끝내 고사한 그룹으로는 ‘조경모색’이 있다. 이대영(스튜디오 엘), 이상기(조경설계사무소 온), 이진형(조경설계 서안), 장재삼(지드앤파트너스) 소장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2016년 자신들의 현재를 스스로 읽고 타인과 공유하고자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경청 시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홀수 달에 열리고 있는 ‘경청 시간’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을 강연자로 초대한다. 이 ‘따로 또 같이’ 그룹들에 앞서 『봄, 조경 사회 디자인』(2006)을 출간하며 활동을 시작한 ‘조경비평 봄’은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2008), 『공원을 읽다』(2010), 『용산공원』(2013)을 연이어 발표하며 단행본 출판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소식이 뜸하다. 조경비평 봄이 지향했던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평의 생산뿐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플랫폼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느슨한 연대의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이달 특집의 그룹들이 ‘따로 또 같이’ 조경계를 북적이게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플랫폼은 어떤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토대나 기반 모듈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기차역의 승강장이다.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편하게 모이고 즐겁게 흩어질 수 있어야 정체되지 않는다. 그래야 건강한 플랫폼이다. 5월호와 6월호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는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 여러분의 큰 기대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환경과조경』을 떠나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건축인(POAR)』, 『공간(SPACE)』, 『와이드』를 거쳐 2013년 9월 『환경과조경』에 참여한 김정은 박사는 2013년 10월호(306호)부터 2018년 5월호(361호)까지 총 56권의 잡지를 만들며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이끌고 문화적 지평을 넓혀 왔다. 그의 기획력과 편집 능력으로 가득한 쉰다섯 권의 과월호를 다시 펼쳐본다. 아쉬움과 막막함을 가슴 깊이 묻으며 그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더 다채로운 형식으로 조경의 경계를 폭넓게 넘나들며 『환경과조경』은 물론 독자 여러분과 연대할 것이라 기대한다. 따로 또 같이.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
다른 방식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뭉치면 산다’를 지향하지 않는다. 전체를 위해 개체가 연합하는 형식이 아니다. 공통의 지향 혹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함께 연대하지만 각자의 활동은 존중된다. 기존의 영역이나 기성의 틀에 얽매이기보다 유연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실천적으로 협력한다. 이번 호『 환경과조경』은 조경의 경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그룹을 소개한다. 최근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적인 회사, 협회나 단체, 그리고 미디어와는 다른 역할과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느슨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는 이들의 비전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진행 김정은,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각 그룹 1. 꽃길사이 2. 빅바이스몰 3. 얼라이브어스 4. 자연감각 5. 정원사친구들 6. 조경이상 7. 팀 동산바치 8. 하루순 대안적 그룹에게 던진 공통 질문 1.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 혹은 이유 2. 지금의 구성원들과 함께 하게 된 이유 3. 그간 해온 일들 4. 앞으로의 계획
[따로 또 같이] 꽃길사이
1 2017년 2월 퇴사 후,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찾고 있던 이동복 디렉터의 눈에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들어 왔다. 평소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던 그는 문득 조경 관련 팟캐스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조경을 다루는 팟캐스트가 없었다. 조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경 전공자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쉽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팟캐스트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기획안 작성에 돌입했다. 녹음 장소 대여, 대본 작성, 녹음, 편집 등은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관계가 넓지 않을 뿐더러 첫 회 초대 손님으로 누구를 섭외해야 하는지도 걱정이 됐다. 혼자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재미까지 없을 것 같아 지속해서 함께 할 고정 패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 조경이라는 주제로 한두 시간가량 방송을 이어나가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구성원을 찾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윤호준(이하 윤팀)을 소개 받았다. 윤팀과 첫 만남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조경인들이 경관, 정원, 생태 복원, 환경 계획, 도시재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은 나무를 심는 분야 정도로만 알고 있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윤팀이 꽃길사이의 일원이 되었다. 인터넷 방송 인기의 절반은 재미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듯이 진지한 이야기보다 재미가 있는 방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잘하고 재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회사에 다닐 때 제이드가든 수목원의 가드닝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교육 담당자가 노회은 과장(이하 가드노)이었다. 교육 진행도 잘 할 뿐만 아니라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분이라 생각했다. 방송 출연 경험도 있기에 고정 패널 자리의 적임자라 생각했고, 가드노는 평소 팟캐스트에 흥미가 있었고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가드노는 애드리브 능력이 좋고 방송 중에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팬이 많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초대 손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윤팀이 박혜진 학생(이하 혜진양)을 섭외해주었고, 오랑쥬리의 주례민 대표를 초대한 2회 방송 녹음에 혜진양이 처음 참여했다. 본래 매회 학생 초대 손님을 새로 섭외하려 했지만, 혜진양이 방송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고정 패널로 합류시켰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빅바이스몰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은 ‘사단법인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의 크고 작은 작업에서 맺은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이 인연의 연장선상에서 여러 가지 작은 공동 작업과 생각의 공유를 지나 현재 공통의 미래상을 갖게 되었다. 작은 만남의 연결로 오늘의 관계에 이른 그룹 구성 자체가 빅바이스몰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 도시설계, 조경, 커뮤니티 디자인 등 각자 다른 배경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도시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자 2015년 ‘노들꿈섬 운영구상(1차) 공모’를 통해 모이게 되었다. 작업을 시작할 즈음 김연금과 문정석은 대한민국 서울의 프로젝트 최일선에서 땀을 훔치고 있었고, 박혜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도시설계사무소에 근무 중이었으며, 박영석은 독일 뮌헨에서 학업을 잇고 있었다. 노들꿈섬 운영구상 공모 준비를 위해 8,000km, 7시간의 시차를 넘어, 매일 같이 인터넷 화상 회의를 하고 인스턴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처럼 공간적 한계를 넘어 1차 공모에 당선되었고, 이어진 ‘노들꿈섬 운영계획·시설구상(2차) 공모’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유무형의 자산을 어떻게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도시’로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얼라이브어스
1 물리적으로는 선택적 지인들의 모임이고, 각 개인에게는 상호 수요를 바탕으로 한 호혜적 연합이며, 그룹 전체는 구성원 각자가 지향하는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공통 브랜드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물리적 나이보다는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의 유사함을 더 중요시하며, 완결성 높은 독립적 개인보다는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그래서 재능의 교류와 보완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어울리는 집단이다. 2 상호 보완 가능한 다양한 탤런트의 조합-강한솔(어바니즘과 조경) + 김태경(현대적 가드닝) + 나성진(컴퓨테이셔널 디자인) + 오승환(건축 설계와 시공)-이 새로운 스타 건축가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대부분의 디자인 소스는 공개됐고 정보의 접근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으며, 교육 기회와 문화의 불균등에 기인한 지역성(locality)도 그 의미가 약해졌다. 우리 세대도 경험했다. OMA와 JCFO 같은 회사가 새로운 이념과 디자인 스타일을 경쟁적으로 내보이던 그 재미있던 시대를. 하지만 (아마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느끼고 있다. 세계대전과 전후 진보의 시대를 이미 두 번이나 겪었고, 냉전과 이념의 시대도 희미해졌으며, 포스트모던에 대한 문화적 기대감도 소원해졌다. 심각한 건축 담론보다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더 즐겨 소비되는 시대다. 소재는 고갈됐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이 복잡한 도시에 대응 가능한 ‘완결성’을 한 명의 개인이 달성하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게 돼 버렸다. 그보다는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의 능력을 높이는 것이, 1990년대식 보물찾기보다는 전문가의 협업을 통한 디자인의 진보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 시대를 직시하는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따라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우선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그룹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방식과 관계로 함께 상생(相生)하고 상승(上昇)할 수 있는지. 어려운 인과론적 고민이 잇달았다....(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자연감각
1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던 조경가 세 명이 모이게 된 건 우연이었다. 김대희와 백종현은 하버드 GSD에서 함께 공부했지만, 졸업 이후 활동하는 나라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최재혁 역시 백종현과 선후배 사이지만 주 무대가 달랐기에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2016년 겨울 동문 모임에서 김대희와 백종현이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날 둘은 조경, 건축 등 공간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그룹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눴고, 2017년 봄 이번에는 백종현이 한강예술공원에 한강예술쉼터를 조성하고 있던 최재혁과 마주했다. 때마침 최재혁과 김대희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룹에 대한 가벼운 대화는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후 셋은 더 길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2017년 여름 각자의 일을 존중하며 때로는 함께 자연을 만들어가는 그룹 ‘자연감각’이 탄생했다. 2 세 조경가가 함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걸어온 길이 다르기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새로움을 모색할 수 있었다. 서로 ‘존중’하는 서로 ‘다름’을 하나의 선택과 실천으로 모으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그때 발생하는 많은 자극과 경험이 차곡차곡 축적되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동력이 되어, 조경을 전공했지만 관심사가 각기 다른 사람이 자연감각에 모이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경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협업했고, 기존 조경의 범위를 확장해 공간 기획 및 운영, 인테리어 및 플랜테리어, 제품 및 서비스 기획 등의 영역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각자의 일은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응원하며, 따로 또 같이 일한다는 점이다. 익숙함과 신선함이 교차하고, 때로는 하나의 회사이며, 때로는 유연하고 모호한 그룹이라 지루하지 않다. 재미가 있다. 자연감각은 여전히 서로 다름에 귀 기울이며, 동시에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정원사친구들
1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작품을 준비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각자 몸담고 있는 조직이 작기 때문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충족하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함께’한다는 가치 혹은 장점을 찾고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늘 가까이 지내면서 정원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함께 행동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2 정원사친구들은 구성원이 계속 변하고 있다.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객원 활동을 하는 이도 있고 각 회사 소속원이 이직이나 퇴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만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주도적으로 이끄는 부분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람디자인(최윤석 대표)과 오랜 경력의 설계와 시공 노하우를 가진 조경디자인이레(조용철 대표) 그리고 영국 유학 후 대학원에서 정원에 관한 더 깊은 연구를 이어가는 조혜령이 주축이다. 결성 초기에 셋 모두 정원 분야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고 기존 시스템과 다른 실천 방법에 관한 공감대가 잘 형성되었다. 최근에는 각자의 활동이 바빠서 자주 자리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친구로서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함께하는 이유 역시 사업적 파트너보다 품앗이를 가장한 인간적인 부분, 친밀감이나 우정의 성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조경이상
1 처음 모임이 만들어진 계기는 2016년 여름 조경디자인캠프 뒤풀이 자리였다. 스튜디오 튜터들이 모여 설계를 하면서 느꼈던 문제를 토로하다 우리끼리의 불만 제기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일을 기획해 보자고 했던 게 발단이었다. 그해 겨울 우연한 기회에 다시 모였고, 관심이 있을 만한 주변의 젊은 조경가들에게도 연락하여 첫 모임이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지향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공감대는 있었다. 지금이 위기의 상황이라는 불안감과 지금보다 더 나은 조경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공감대의 근저에 있었다. 조경의 위기의식과 불안감은 굳이 젊은 조경가들만의 것은 아니며 새로운 것도 아니다. 조경은 늘 위기였고 가장 호황일 때조차도 불안해했다. 불안감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으로 변이되었다. 그리고 불만과 자부심이 결합되었을 때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의 힘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고 바꾸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 의식이 생겨났다. 소명 의식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에 대한 욕구와 맞닿아 있었다. 다만 그 욕구는 배타적인 이익 집단을 만들기 위한 실천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이 그룹은 일종의 인적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그 자체의 목표와 의지를 설정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목표와 의지가 발현되고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플랫폼의 역할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공동의 의지는 존재하나 하나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그룹을 통해서 우리는 의견의 일치를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다양성의 공존을 구축하고자 한다. 내부적으로 서로의 공감대를 찾고 함께 할 일을 만들어나가면서도 서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자 한다. 다양한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지만, 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더욱 명확히 하려고 한다. 우리가 진단한 조경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다름의 부재에 있고, 더 나은 조경에 대한 해답 역시 차별화된 다양성의 구축에 있다고 믿고 있다. ‘조경이상’이라는 이름에도 다양성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국어사전에서 이상의 뜻을 찾아보면 열여섯 가지의 의미가 있다. 어떠한 이상의 의미를 선택하느냐보다는 그 어떤 의미를 선택해도 된다는 점이 조경이상이라는 이름에 담긴 기본적인 가치이자 태도다. 이상적 조경을 만들어나가려 하는 이들, 조경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 조경 같지 않은 이상한 조경이 좋다고 하는 이들, 저마다 다른 이상을 지닌 이들이 같은 꿈을 꾸게 하는 빈 그릇 같은 것, 그것이 조경이상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팀 동산바치
1 (2018년 식목일, 학생점자도서관에서 다 같이 호미를 들고 있다.) 최영준(이하 최) 그러고 보니 이 동네였죠? 3년 전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의 대상지를 보고 걸어서 국숫집에 들어갔던 게. 김지환(이하 김) 그러네요. 오늘처럼 비가 오려는 날씨였는데. 안기수(이하 안) 카톡 전화만 엄청나게 하다가 처음 만났었지. 최 도면 놓고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우리의 조경 토크가 국수 면발만큼이나 길게 길게 이어졌죠. 김 사실 우리가 참 다른 사람들인데 말이나 톡이 끊이지가 않았어요. 안 다르니까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었겠지. 내가 시공이야기하면 너희 둘이 재미있었을 거고, 지환이가 하는 정원 설계는 내가 궁금했던 부분이고, 지환이는 영준이가 미국 일, 중국 일 하는 게 재밌었을 거고. 최 그러게요. 우리가 비교적 좁은 조경 테두리 안에서 서로 큰 교차 없이 지내오다가 ‘지붕감각’(2015 YAP,『 환경과조경』 2015년 8월호, pp.142~143 참조)을 접점으로 삼아 여기까지 왔네요. 김 제가 몸담았던 회사의 시공을 안 팀장님이 계속 맡아주셨고, 영준 형과는 나름대로 국제적인 합사를 했었는데, 결국 ‘지붕감각’ 덕에 여기까지! 안 SoA(2015 YAP 당선팀)의 이치훈 소장님과 스튜디오 엘의 이대영 소장님은 명예 멤버쯤 되는 거네. 최 하하, 그렇습니다. 근데 이제 남은 맥문동은 어디에 더 심을까요? 김 기수 형이 더 던져주시죠. 안 그래, 조오기가 좀 비어 있네. 으차. 2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섬분꽃나무를 심으려 한다.) 김 안 형이 무릎이 좋지 않으니 제가 일단 돌을 옮기고 분을 빼볼게요. 이 정도는 형에게 많이 배워서 이제 후딱 합니다. 최 솜씨가 프로네요. 김 사실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다면 이런 거 전혀 몰랐을 거예요. 안 팀장님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최 맞아요. 우리는 각자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려왔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궤적, 서로의 매력과 마력의 힘! 김 맞아요. 특히 안 팀장님은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멘토 역할을 잘해주셔서, 설계할 때 시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죠. 최 안 팀장님의 전문 지식과 친절한 해설이 우리의 목마름에 얼마나 큰 해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안 내가 촉매제가 되었다면 기쁘지. 그런데 너희 둘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전문 지식, 내공을 쌓아 와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최 소장은 한국 일 할 때 김 소장에게 한국의 실정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김 소장도 설계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것 같아 좋아 보여. 최 정말 저는 김 소장님 없이는 한국에서 아무 일도 못했을 거예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제반 지식뿐만 아니라 냉철한 판단을 듣고 의논하며 좋은 조경 시스템을 많이 구상할 수 있게 되어서 더 좋아요. 김 제가 조경의 문화를 바꾸고자 만든 조경작업장 라디오LADIO의 비전이 거기에 있습니다. 안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좋은 선례가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겠지. 최 믿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30도만 틀어볼까요?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따로 또 같이] 하루.순
1 ‘하루.순’의 구성원들 간에는 이미 친분이 있었고, 공동 연구나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해 왔다. 예술과 도시, 역사와 건축, 공원/정원/식물 문화, 도시재생 등의 키워드로 요약되는 공동의 관심사를 실제의 장소에서 구현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서 도시 정원, 유연한 통합과 연대를 실험해 보고자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온실과 문화실험실 운영을 계획하면서 우리와 장소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명칭도 거듭 고민했다. 온실의 명칭인 ‘하루’는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포함된 24시간을 뜻하는 우리말이며, 또한 같은 소리의 일본어에는 ‘봄(春)’ 또는 ‘뻗어나가다(張る)’라는 뜻이 있다. ‘하루’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이러한 의미가 온실에 어울린다고 보았다. 문화실험실 ‘순’은 새싹筍이라는 뜻과 가까운 미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soon’으로부터 나왔다. 우리 그룹의 이름 ‘하루.순’은 이 두 장소에서의 실험과 우리 연대가 추구하는 바를 담고 있다. 2 역설적이게도 각기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분야가 다르기에 함께 할 수 있다.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해야 할까. 하루.순의 현 구성원은 모두 같은 대학원의 박사 과정 출신이다. 지도교수는 서로 다르지만, 한 연구실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421호 연구실 티타임으로 시작하여 지금의 협업으로 왔다. 인생에서 가장 짙은 시기를 함께 보내며 친분을 쌓았고, 각자의 전문 분야와 성향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협업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마리나 원
마리나 원(Marina one)은 마리나 베이(Marina Bay) 금융 지구에 위치한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고밀도 고층 건물로, 정원 속 도시(City within a Garden)를 꿈꾸는 싱가포르에 부합하는 공간이다. 중앙 뜰과 네 개 타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대대적인 식재 경관은 건물의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네 개 타워의 외벽이 격자형의 도시에 착안해 만들어졌다면, 내부는 수목과 식물이 울창하게 자라는 정원을 수용한다. 내부의 중앙에 위치한 녹색 심장(Green Heart)은 조각조각 나뉜 건물과 식재 요소를 통합한다. 이곳은 마리나 베이 지구의 가장 큰 공공 경관 지역으로 계획되었는데, 다양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지상층에 위치한 네 개 입구를 통해 중앙 뜰에 들어설 수 있으며, 커다란 반사못의 수면에는 하늘이 담기고 3층 높이의 폭포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Gustafson Porter + Bowman Local Collaborating Landscape Architect ICN Design International Architect Ingenhoven Architects Local Collaborating Architect Architects 61 Engineer BECA Carter Hollings & Ferner Façade Consultant ARUP Lighting Consultant ARUP Residential Interior Designer Axis ID Main Contractor joint venture company owned 60:40 by Hyundai Piling Contractor Sambo E&C Client M+S Pte Ltd. Singapore, a company owned by Khazanah and Temasek Location Maxwell Rd, Singapore Gross Floor Area 341,000m2 Ground Level Landscape Area 3,700m2 Year 2011~2018 Completion 2018 Photographs Gustafson Porter + Bowman, HG Esch 구스타프슨 포터 + 보맨(Gustafson Porter + Bowman)은 혁신적이며 현대적인 조경 설계를 실천하는 설계사무소로 장소의 본질을 물리적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경, 건축, 엔지니어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외부 컨설턴트를 설계팀에 포함시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런던 하이드 파크의 다이애나 기념 분수, 베이루트의 제이토네 광장, 암스테르담의 퀼튀르파르크 베스테르하스파브릭(Cultuurpark Westergasfabriek), 웨일스 국립식물원의 글래스하우스(Great Glasshouse) 등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비슬라 블러바드
바르샤바(Warszawa)의 비슬라 블러바드(Vistula Boulevard)는 역사적 공간과 새로운 도심지를 잇는 장소다. 인근의 관광지를 고려해 다양한 용도의 여가 공간을 조성했으며, 이는 강물을 도시 자원으로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연결한다. RS 아르히텍투라 크라요브라주(RS Architektura Krajobrazu)는 단절된 비슬라 강(Vistula River)의 맥락을 복원하고자 했다. 우선 독창적이며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조성하고, 이 공간을 원활히 오갈 수 있게 해 일관된 도시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또한 일 년 내내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즐길 수 있는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를 설계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비슬라 블러바드는 바르샤바 시가 개최한 설계공모의 결과물이다. 길이가 2km에 달하는 대로는 직선형의 보행로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포비실레(Powi le)와 포잠체(Podzamcze) 사이의 공간과 통합적으로 설계되었다. 보행로의 선형은 수변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와 나무, 파빌리온 등의 수직적 요소를 강조하는데, 이로 인해 동선과 대상지의 용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 Site Plan Designer RS Architektura Krajobrazu Architect Artchitecture Client The Capital City of Warsaws Location Warsaw, Poland Area 8.7ha Year 2013~2015(stage 1), 2016~2017(stage 2) Completion 2017 Photographs RS Architektura Krajobrazu, UM Warszawa RS 아르히텍투라 크라요브라주(RS Architektura Krajobrazu)는 주택 단지, 오피스 빌딩, 스포츠 경기장, 공원, 인프라스트럭처 등 대규모경관을 다루는 설계사무소다. 폴란드에 자리한 이 사무소의 전문 분야는 옥상 녹화 기술 등을 활용해 건물 내외부를 녹지와 통합된 공간으로만드는 것이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에서 경험을 쌓은 조경 팀을 꾸리고 있으며, 1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조경 분야에 뛰어들어 다양한 조경 회사, 조경수 회사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자연 경관, 인간이 만들어낸 경관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진행하며, 틀에 박힌 일과 반복되는 일상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 힘쓰고 있다.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개발사업 및 택지개발사업 2단계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설계공모
‘자연 속 국제 커뮤니티도시’를 지향하는 고덕 국제화 계획지구의 2단계 조경 설계의 밑그림이 발표되었다. 지난 3월 15일 지난해 12월 공고한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개발사업 및 택지개발사업(2단계) 조경(공원ㆍ녹지)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심사가 LH 본사에서 진행됐다. 심사 결과 총 여덟 작품 중 CA조경기술사사무소와 서영엔지니어링의 ‘한밝‧너른‧마루’가 최우수작으로,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와 젤코디자인의 ‘더 루프 파크(The Loop Park)’가 우수작으로, 동일기술공사와 조경설계 비욘드의 ‘백로와 사람이 함께 노니는 함박구릉(Heron Hills & Gate)’이 장려작으로 선정되었다. 고덕 신도시 조성은 2004년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며 시작되었으며, 2005년 12월 국제화계획지구 건설계획이 발표되었다. 2017년 1월 1단계 조경 공사를 시작했으며, 2020년 12월 사업 준공 예정이다. 또한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교통·정보 인프라 및 물류 체계 구축을 통해 대중국 교류 증대에 대비한 물류ㆍ유통 기능 분담 거점 중심지로 활용하고, 서울과 세종시를 연결하는 거점도시 역할을 수행하는 국제 업무 신도시를 목표로 한다. 공모의 대상지는 전 사업 지구 내 중심 지역으로 행정 타운(평택시청 등)과 상업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공원(함박산-백로 서식지)이 중심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번 설계공모는 대상지를 고덕 신도시 녹지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계획하고, 서정리천 수변 공원을 블루네트워크로 계획하도록 했다. 또한 안전특화가로 및 국제테마가로 계획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콘셉트와 지구특화계획을 반영하여 국제 업무 신도시의 성공적인 조경 설계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다. 최우수작인 ‘한밝‧너른‧마루’는 “땅이 가지는 고유의 생태적 가치와 향토 경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 조성 및 공존의 개념을 잘 도입”했으며, 특히 “백로 서식처 보전을 위하여 백로의 생태적 특성을 공간에 우수하게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작인 ‘더 루프 파크’는 “지형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여러 레벨(4개)을 구획하며 각각의 레벨이 지니는 특성을 설계에 잘 반영함과 동시에 이들 간의 연계성을 잘 고려”했으며, 사이트 전체에서 안전을 중요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려작인 ‘백로와 사람이 함께 노니는 함박구릉’은 “공원과 녹지를 통해 단순히 도시의 오픈스페이스를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공감대 형성 및 도시 이미지 창출의 기능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됐다. 최우수작 한밝‧너른‧마루 _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 (주)서영엔지니어링 우수작 더 루프 파크(The Loop Park) _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주) + (주)젤코디자인 장려작 백로와 사람이 함께 노니는 함박구릉(Heron Hills & Gate) _ (주)동일기술공사 + (주)조경설계 비욘드
최우수작: 한밝‧너른‧마루
옛 문헌에 기록된 평택의 모습처럼 고덕국제화지구의 원형 경관은 서리서리 흐르는 진위천과 서정리천을 젖줄로 하는 들녘이 펼쳐지고, 그 중심의 표고 56m의 나지막한 함박산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다랭이골마을이 뒤섞인 하나의 풍경이다. 육로와 물길의 발달로 접근성이 높아지자 고덕국제화지구는 삼남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물류, 문화의 요충지로 역할 하며 국제 신도시를 꿈꾸고 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 문화와 문화가 만나 하나 되었던 평탄하고 너른 고덕의 땅과 함박(크고 밝게 빛나다)의 환경적·의미적 가치를 고덕 국제 신도시에 투영해 자연과 도시, 세계의 다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마루 ‘한밝‧너른‧마루’를 조성하고자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우수작: 더 루프 파크
대상지는 수고가 높은 수림대와 레벨이 13~58m에 이르는 완만한 구릉지로, 함박산 자락의 논과 습지를 중심으로 백로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국제화를 표방하는 다문화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문화 거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해 생태적·문화적 거점으로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환상環狀의 고리’를 제안한다. 공존의 고리 고덕 국제 신도시는 함박산을 중심으로 한 낮은 구릉지와 진위천, 서정리천 등 여섯 개의 크고 작은 하천과 접한 평야 지대다. 여름이면 하천이 범람해 토양이 비옥해졌으며, 빗물이 고여 형성된 논과 습지를 따라 함박산 인근은 자연스럽게 농경지로 변했다. 또한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수목 군락이 형성된 함박산은 예부터 백로의 삶의 터전이었다. 이 같은 자연환경과 인간을 위한 문화 공간 영역을 입체적으로 분리해 백로와 인간이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도시의 켜를 제안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벚꽃 편지지
비 오는 날 가장 운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여러분은 어디를 추천하시겠습니까?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저라면 자동차 앞 좌석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은 정말 운치 있지요. 음악이 더해진 비 오는 창밖 풍경은 한 편의 영화가 됩니다. 특히 앞자리는 창에 맺힌 빗방울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가끔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키면 하늘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고 새 그림을 그리는 느낌도 듭니다. 비 올 때 한 번쯤 여유를 갖고(이게 중요한 포인트!) 시도해 보시길. 작년 이맘때쯤, 비 오는 봄날이었습니다. 차를 세워둔 연구실 뒤편 길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낮 동안 내린 봄비로 꽃잎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덕분에 차는 꽃잎으로 단장을 한 상태였죠. 아주 예뻤습니다. 앞자리에 앉으니 하늘을 배경으로 한 꽃잎들이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종이 작업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설계하는 법’에 대한 원고 의뢰를 받은 후의 중압감은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2015년 10월, 단 사흘간의 고민을 통해 설계사무실을 열 때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의 설계 철학은 무엇인지 무한 갈증을 느끼며 잘 다니던 회사를 무작정 퇴사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설계 철학은 무엇일까? 이번 원고의 주제는 다행히 ‘설계하는 법’이기에 그나마 무게를 덜고 나의 설계 방법을 써 내려가 보기로 한다. 2003년 여름, 신입 인턴사원으로 설계사무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는 것이 무엇이 있었으랴. 무작정 주위를 살피며 배워볼 만한 건 무엇이든 배우려 하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구조가 그러하듯 사무실 전체가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었고 나 또한 드로잉을 잘해보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드로잉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디자인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실시 설계를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계획안을 잘 잡아야 조경을 잘한다. 나무를 많이 알아야 조경을 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시절, 조경 설계에 무식하게 접근하던 내 모습을 지금은 잊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잘한다’ 시리즈가 지금의 기초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종이 작업’은 아름답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 한해서지만. 드로잉 도구를 이용한 감각적 표현과 멋과 기교를 낼 줄 아는 이의 무한한 펜 스킬은 많은 이에게 종이 작업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나 또한 손 드로잉을 통해 디자인을 하고 공간을 구성하지만, 설계를 시작하고 10년간은 어떻게든 드로잉을 잘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에서 종이 작업 공부를 한 셈이다. 종이 작업의 절대 강자 드로잉은 설계 작업의 가장 화려한 방법으로 인식되며 국내 조경 설계의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드로잉은 내게 지루함의 연 속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사이트 베이스 맵 위 에 옐로 페이퍼를 깔고 드로잉을 하는 멋진 조경가의 이상이 즐겁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 되어버린 바로 그때,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드로잉만 을 통한 설계 방법은 일면 원시적인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보고 배운 게 그뿐인지라 조경 설계에 입 문한 후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여 있던 것이다. 종이와 펜을 잡고 있던 나는 내 종이 작업의 한계를 보고 말았다. 프로젝트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른바 아파트 조경 설계가 저급한 설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내 손을 거쳐 간 아파트 프로 젝트의 숫자만 건설기술인 경력 증명에 10쪽 넘게 기 재되어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 의 한계를 보았을 때, 또 맡겨진 아파트 프로젝트. 하지 만 그때는 조금 달라졌다. “저 이번 아파트 프로젝트에 는 일주일에 한 번 현장에 나가 볼게요.” 에버랜드 디자 인 그룹의 책임 디자이너 시절, 좋아하는 파트 장에게 나지막이 드린 나의 소망 섞인 통보였다. 허락을 구하 는 듯했지만 실은 통보였다. 현장에 나가고 싶었기에.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이해함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이 해관계와 맞물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다시 생 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설계가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 인가? 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있는가? 소나무의 얼굴 방향이라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말하기는 쉬운 공간감은 느끼며 설 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소장의 애로 사항이 무 엇인지 인식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식재 소재 의 국내 시장 수급 현황을 파악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건설사 대표 소장의 안목과 성향을 파악하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작업 반장의 고착된 식재 방식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책상을 버린 것, 잘한 일이었다. 그 현장에서만 6개월 간 많은 이견과 충돌이 있었다. 종이 작업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즐거움도 있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생겼다. 독창적 디자인은 개인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디자인의 완성인 목적물은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목적물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 발주되는 국내 건설 현장의 프로 젝트 진행 방식에서 발생하는 현장 소장의 다양한 설 계 변경 요구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며, 여 우처럼 영악하게 행동해야 했다. 내가 설계한 현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 가 현장을 조율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해관 계가 엉킨 실타래를 풀 해법을 찾았다. 나의 디자인에 부합하도록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나의 설계가 보였다. 종이 작업, 필요한 만큼의 생각만 정리할 수 있으면 된다. 각자의 방식에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 겠지만, 설계 행위는 결국 물리적 재료와 환경을 활용 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행하는 과정의 일부에 지 나지 않는 것 아닌가. 디자이너라는 호칭에서 오는 자 만심을 버려야 한다. 종이 작업 중심의 표현을 위해 디 자이너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가 비일비재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책상에 앉아 유려한 디자인 선형을 뽑아내며 행복해 하고 실현되지 못할 다양한 개념과 설계 전략을 채우며 만들어내는 종이 작업에서 지금도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받고 있는 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종이 작업에 한정된 디자이너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전체 프로젝트의 목적물 완성을 위한 철저한 목적 의 식과 이를 아우르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해법을 찾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설계가의 역할을 확장했으면 한다. 국내 설계 업계에 많은 어려운 점이 있는 것,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나 또한 종이 작업에서 끝이 나는 현실 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항상 도전하며 기회를 찾고자 한다. 디자인(행위의 기교)하지 않는 디자인(사고의 산물) 추측하건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의 90% 이상은 건축 부문의 협력사로 진행되는 건축 외부 공간 조경 설계 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다. 몇 개의 설계사무소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70~1980년대 부터 주로 진행되어 온 조경 설계에서 평면 드로잉은 의사 결정의 절대 강자였다고 본다. 2015년 10월, 급 히 설계사무실을 개소하며 처음 맞닥뜨린 건축 설계공 모 프로젝트에서 잊고 지내던 국내 조경 설계의 현실 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패턴 좀 그려주세요.” 포장 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요구 사항이다. 자존심이 상한다. 마음이 아프다. 속이 상한다. 화가 난다.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 중 가장 밑바닥 조경 설계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매니 저의 시각에서 설계를 하던 나의 모습에서 하루아침 에 조경 패턴을 그리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잊지 못할 사건이다. 잊지 않으리라 지금도 생각하며, 그 건축사 사무소와는 결별했다. 아니, 결별을 당했다. 그들이 말하는 조경 패턴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건축 설계공모에서 무수히 많이 보이는, 건축 물을 중심으로 한 큰 흐름이 보이는 선형 패턴 작업. 나도 예전에 했으며 지금도 다들 많이 하는 그 디자 인.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안을 잡지 않 았다. 아니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강렬한 펜 스킬을 이용한 ‘행위의 기교’를 보여주었다. 계획안을 보낸 지 10분 정도 지나 실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장님, 보내주신 계획안 잘 봤습니다. 그런데 약간 흐름이 보였으면 합니다. 중심에서 뭔가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패턴 있잖아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200%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3일 동안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 일은 버리는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다소 반항적인 드로잉을 끝으로 경험적 사고와 현실적 해법 설계 표현의 중요한 방법인 드로잉이 기교가 되어 조 경 패턴으로 인식되고, 그런 인식을 가진 협력사(또는 발 주처)의 의사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을 오래 전부터 무 너뜨리고 있었다. 조경 설계의 내공이 성장도 하기 전 에 조경 설계란 고작 패턴 만들기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모두 그렇지만은 않을 테지만, 아주 많은 경우 외 부의 인식이 그렇게 고정된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우리가 먼저였다. 예전 의 나도 그랬고, 다른 많은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멋스럽게 드로잉을 하고 행위의 기교를 부리며 디자인 을 하는 것이 조경 설계의 전부인 것처럼.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프로젝트를 선별해 수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처음 사무실을 열며 다짐했던 많은 생각이 무너지며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며 다듬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주요 프로젝트인 경우에는 다양한 접근을 위해 창의적 사고와 경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임하고 있다. 10년 동안의 시공사 디자인 그룹 재직 경험이 지금 설계의 근간을 만들고 있다. 국내의 어느 설계 조직에서 디자인 제안 후 5~6개월 이내에 준공하는 모습을 1년에 대여섯 번 경험하며, 시공하는 동안의 현장 지원과 조율을 경험할 수 있을 까 싶다. 이번 원고를 쓰며 확인해보니 다양한 프로젝 트에서 디자인 제안부터 실시 설계, 그리고 현장 지원 과 조율까지 경험했다. 설계의 전체 프로세스를 진행 하며 얻은 경험적 사고를 통해 습득한 현실적 해법은 기본적인 창의적 사고와 함께 설계를 해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사고와 해법을 찾기 위해 개념적 의미는 배제한다. 쉽게 말해 말장난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전략적 사고로 도출되는 언어가 아닌,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표현은 지향한다. 과거의 내가 드로잉과 종이 작업에 미쳐 있었다면, 요즘 설계가들은 언어적 유희를 통해 만들어낼 수 없는 대상의 개념을 표현하려고 하 는 것 같다. 어떠한 행위의 기교가 아닌 목적 대상이 있는 사고의 산물로서 디자인을 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 예장 행위의 기교에서 벗어나 목적 대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 했다. 남산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애국가에 등장하는 서울의 남산은 서울의 앞산이며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비슷한 성격의 사업을 장충과 회현에서 진행했으며, 예장(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은 마지막 남은 남산 자락의 재생 사업이었다. 앞서 진행된 회현이나 장충과 달리 복합 기능을 담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했다. 이 점이 남산 자락 재생의 근본 목적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는데, 약 7,000평의 사이트는 곤돌라 스테이션과 버스 주차장의 기능을 수행하며 동시에 남산 재생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이후 2016년에 곤돌라 스테이션은 취소되었다).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설계는 항상 문제와 함께 시작한다. 이를 해결하는 자가 설계가다. 시작부터 가지고 있는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 되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이견 속에서 설계가는 본래의 목적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다. 그림이 필요하면 그려야 하고,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해야 하고, 설계가의 자존심이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하며, 현실과 타협해 야 한다면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충분히 타협해야 한다. 숲이다. 디자이너의 얄팍한 기교와 과장은 사전에 차단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숲으로 만들어라. 무엇을 행하려고 하는 이들의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 그것이 1,000만 시민의 숲을 대하는 설계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2년 4개월, 고된 시간이었다. 아니 비루한 싸움이었다.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넘기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공모부터 설계 준공까지, 그리고 예정된 설계 변경까지, 프로젝트 PM을 직접 수행했다. 건축사사무소의 협력사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저작권을 가지고 오지도 못하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애절한 프로젝트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철거와 터파기는 6개월 전에 완료됐으며, 예전과는 달 리 이제 나의 역할과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설계 준 공과 동시에 현장 설계 변경에 대한 조율 권한이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시공 중에 현장 설계 변 경을 할 수 있는 사항이 어떤 것이 있을 것이며, 변경 사항이 예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설계의 근본 목적을 훼손할 것인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했다. 이제 내일이면 최종 납품이다. 2년 4개월의 기나긴 여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기 도 하며, 새로운 시작이 전개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원고를 쓰며 잠시 컴퓨터의 프로젝트 폴더들 제목에 담긴 지난 시간의 애환을 떠올려 본다. 다양한 나의 모 습이 스쳐 지나간다. 거만한 아티스트,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속없이 비비적대는 설계가, 수다쟁이 동네 남 동생, 고집불통 협상가, 나무 찾아 헤매는 산사람, 세 속에 물든 사업가, 피곤에 찌든 설계쟁이, 이 모두가 나의 모습들이었다. 예장을 설계하며 본래의 목적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게 바로 이번 호 원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설계 방법이 아닌가 싶다. 김호윤은 기술사사무소 아텍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에서 조경가로서 영업, 설계, 공사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조경설계 호원(Landscape Design Office HOWON)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바른 설계 집단을 구성하고자 기본을 중시한 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길종 길종상가 관리인
도시에 대한 지배적 인상은 대개 사람의 눈높이 근처에서 만들어진다. 작은 화분 하나, 닳은 문고리 한 짝, 계단 난간의 유려한 선이나 담뱃재를 떠는 휴지통 모양의 영리함에서, 혹은 미술관 리플릿이 놓인 책장이나 쉼터의 벤치, 동네 술집의 아담한 간판에서 우리는 한 도시의 시민들이 공동으로 성취해 낸 문화적 수준을 느낀다. 거대한 건축물이나 도로는 세계화된 자본과 권력의 의지를 통해 단시일내에도 이식될 수 있지만, 전능한 자본의 물결도 습관의 층과 결이 배어든 수천수만 가지의 일상적 오브제까지 적실 수는 없다. 어느 나라의 고속 전철도 속도는 비슷할지 몰라도 객실 의자의 팔걸이와 테이블의 부드러움, 쿠션의 지지력에는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작가와 장인들이 쌓아온 노력의 세월, 실력의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디테일, 그리고 딱 그만큼의 사회적 눈높이가 쌓여 물건은 기쁨의 대상이 되고,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사랑스런 경관이 된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돈으로 사서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 쉽게 버리고 갈아치우는 시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는 광고성 문구가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부엌은 셰프의 주방이 되어야 하고, 침실은 특급 호텔 같아야 하고, 거실은 쇼룸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수많은 디자인 매체가 부추긴다. 인테리어 데코 상품을 파는 사람은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라 칭한다. 남이 정의해 준 멋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 착각하며 물건에 치여, 스타일에 치여 사느라 다들 피곤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습관적인 고급 지향, 틀에 박힌 데코, 현실과 불일치한 책상머리의 허세가 거리를 꽉꽉 채워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는 개탄이 적지 않다. 잘 만든 하나보다는 형편없는 다량이 비좁게 들어찬 도시. 이제, 기름기 걷어내는 도시의 재편이 절실하다. 소박하고 영리하며 지적인 길과 광장. 현명한 사람이 꾸민 집처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디자인.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가구 디자이너 박길종이 어떤 잡지에서 툭 뱉은 한마디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사용하는 게 있으니까, 새로 만들 필요도 없구요.” 물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물건을 자기 삶의 기준에 맞게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그의 집 또한, 인테리어가 없는, 그냥 ‘집’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정원 탐독] 자연과 함께 디자인하기
인간 대 식물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과실수는 인간과 가장 오래, 깊게 인연을 맺고 사는 지구의 생명체다. 특히 사과나무는 그리스·로마의 신화는 물론이고 여러 종교의 성경에도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인류의 문명과 인연이 깊다. 현재 사과는 재배종이 7천여 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데 여러 ‘품종’으로 불리는 이 다양한 사과는 인간에 의해 변형된 식물로, 자연 상태에서 사는 자생종과는 다르다. 한때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은 최대 사과 재배지였다. 그 흔적이 아직 가로수에도 남아 있지만, 도시 뉴욕의 상징이 사과라는 것도 이를 잘 증명한다. 지금도 사과는 좀 더 크고 단맛이 강화되도록 끊임없이 재배종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자연에서 생존했던 야생의 사과는 잊혀졌다. 지나친 유전적 변형이 일어난 품종 사과나무가 급속히 자생력을 잃어가고 단맛의 증폭이 다른 영양분의 결핍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품종 사과의 어머니격인 야생 사과는 카자흐스탄 인근의 중앙 유럽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말루스 푸밀라(Malus pumila)’로 최근 밝혀졌다. 물론 이 야생 사과의 특징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사과 품종들과는 매우 다르다. 열매도 작을뿐더러 그 맛도 시고 떫어서 지금의 사과 맛이 아니다. 먹기에 적당하지 않지만 이 야생 사과는 재배종 사과의 유전적 결함을 치료하고 사과 고유의 특징을 다시 복원하는 데 꼭 있어야 할, 생물학적으로 귀한 식물이다. 사과나무뿐만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인류와 식물은 그야말로 동고동락해 왔다. 애증과 공생의 고리가 아주 깊고 복잡하다. 인간은 식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에 식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도 인간이 아니었다면 지구 전체에 지금과 같이 번식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인간만큼 식물을 파괴하는 생명체도 없지만 인간만큼 식물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생명체도 없는, 서로에게 참 묘하고 복잡한 공생 관계다. 사과나무에 얽힌 자생종과 재배종의 문제가 최근에는 정원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시네마 스케이프] 쓰리 빌보드
전투복을 입은 주인공과 “죽은 딸을 위해 세상에 맞서는 엄마”라는 카피를 보고, 폭력과 차별에 맞서 장쾌하게 복수하는 영화를 상상했다. ‘쓰리 빌보드’는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영화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절대적인 영웅도 없다. 주인공인 엄마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누구보다 싸움도, 욕도 더 잘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매번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관객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간다. 폭력과 분노가 충돌해서 빚어낸 결과로 남는 것은 고요와 숭고함이다. 누구하나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데 희한하게도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끝날 때쯤 기어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뜨거움의 정체가 궁금하다. 인종 차별, 젠더, 가족주의, 그 어떤 장르로도 묶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영화다. 주인공의 추모 공간과 그 추모 방식이 낳은 영향에 주목해 보자. 영화의 첫 장면, 안개 낀 한적한 도로변 들판에 서 있는 세 개의 낡은 대형 광고판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앞으로 초래할 사건과는 달리 아름답고 시적인 풍경이다. 여기저기 찢겨진 채 방치된 광고판은 1980년대 이후로 그 기능이 멎었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광고 회사를 찾아가 계약금을 걸고 광고를 의뢰한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웰러비 서장”, 몇 개의 단어로 광고판을 차례로 채운다. 경찰서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권력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이 대담한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방송에도 보도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모처럼 좋은 영화가 많은 계절이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본 영화가 덮어쓰고, 오늘 본 영화는 내일 또 어떤 영화로 묻힐지 모르겠다. ‘쓰리 빌보드’는 이달에 오늘까지 본 영화 중 최고다.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패트릭 블랑, 부산현대미술관에 수직정원을 만들다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김성연)이 6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천연기념물 제179호)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며, 생태와 뉴미디어를 아우르는 미술관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립 초기부터 미술관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미술관 측은 건물 외형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학자 겸 아티스트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을 초청해 미술관 외벽에 수직정원(Vertical Garden) 설치를 계획한다. 패트릭 블랑은 지난 4월 14일 미술관을 방문해 수직정원의 시공 상황을 확인하고,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동아대학교 학생들과의 식재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의 기념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하느라 인터뷰 시작이 예정보다 지체되었지만, 시종일관 열정적인 제스처와 함께 답변을 이어갔던 패트릭 블랑과의 대화를 옮긴다. Q 2013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최이규ㆍ박명권,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 12인’, 『환경과조경』 2013년 9월호, pp.100~111).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한국에 몇 번째 방문한 것인가?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이하 B) 예전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서울에서 개인주택(2003년) 작업을 했다. 그때 북한산에서 많은 식물을 볼 수 있었고, 10여 년쯤 전에는 제주도를 탐사했다. 제주는 섬 지역이라 서울과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부산은 작년 10월 처음 방문했는데, 서울이나 제주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Q 부산의 첫인상은 어땠나? B 부산은 규모가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 다양성에 놀랐다. 많은 해산물을 보았고, 특히 시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위의 식당에 올라가서 먹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 해변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도시 전체적으로 현대식 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경사지가 많고 곳곳에 전통적인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양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모도호텔도 전통적인 분위기의 호텔이다. 그렇게 다른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쇼코의 미소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도무지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어.” A다. 엄마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그녀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먼저 닦냐, 밥을 먼저 먹냐는 문제로도 다투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A가 정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녀는 엄마처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순전히 어머니의 기준에서) 단정치 않은 그녀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어코 미용실에 가라는 잔소리로 A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A의 머리는 컬을 살짝 넣은 단발머리다). 둘은 서로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A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서로 다투면서도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꼴 보기 싫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역시 좋아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어쨌거나 엄마가 상처받아서 속상해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속상하긴 하니까. 뭐,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아도 사랑은 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으면 관계를 포기해버리면 좋을텐데, 세상에는 혈연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사이가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해보려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A의 말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달라 서로 절충안을 찾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래서 A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의 입장에 서보는 대신, 그냥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 그렇게 하니 도리어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인정.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두 단어가 계속 머리를 떠돌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쇼코의 미소』의 공통 화두는 ‘이해’다.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이라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공감과 유대로까지 확장한다. ‘미카엘라’에서 광화문광장에 선 익명의 여성들은 4월 16일 자신들의 딸이 배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딸 중 하나인 미카엘라는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흔한 세례명이다. 주인공의 세례명도 미카엘라다. 어쩌면 나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친척의 세례명이었을 수도 있던 미카엘라라는 이름이 “그저 운이 좋아서, 내가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음을"(각주 1)상기시킨다. 이를 깨닫는 순간 나 역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미카엘라 중 하나가 된 듯 했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최은영의 문체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관조적이기까지 한 문체는 『쇼코의 미소』 전반에 깔려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비밀’에서도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다루는데, 작가는 결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거나 앞으로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빈 자리를 보며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만 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담담함이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게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뒀을 때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각주 2)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소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소유는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각주 3). 소유가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두 시간 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하고 싶던 마음은 사랑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소유의 모습에 A가 겹쳐진다. A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맞는 점이 없는 둘도 긴 세월 부대끼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각주 정리 1.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47. 3. 위의 책, p.47.
[CODA] 대안과 연대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우연한 기획의 산물이지만, 이 기획의 등장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기존 조경설계사무소나 단체와는 다른 형식의 그룹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부쩍 작품을 소개하거나 원고를 받을 때 그들이 속해 있는 또 다른 모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그룹의 이름을 들으면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앞에 붙여 두곤 했다. 우연히 어느 편집회의 테이블에서 막연한 미래 아이템으로 적혀 있던 이 기획이 5월호의 특집으로 급부상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막상 손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그룹이 있었고, 그렇게 놓고 보니 하나의 흐름으로 읽혔다. ‘대안과 연대’라는 다소 거창하고 딱딱한 키워드로 이루어진 가제로 섭외를 시작했다. 이들에게서는 조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고전적인(기성의) 산업과 분야의 경계를 강조해서는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공통의 인식이 보인다. 공통의 지향 아래 모였으나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는 유연함이 특징이다. 물론 우리의 섭외를 고사한 그룹도 있다. 최대한 많은 모임을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특집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처 우리 편집부에 포착되지 않은 모임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에 편재되었다는 아쉬움이나 세대를 가르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는 고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이 새로운 흐름을 발굴하고 자극하는 첫 단추라 생각하며 섭외를 마무리했다. 특집의 최종 제목은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로 정했다. 잠시 ‘지향하다’를 고민했지만 곧 ‘실천하다’로 바꿨다. 이들이 보내온 원고에는 유난히 ‘실천’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자연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과 실천 …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나씩 실천하며 … 우리가 실천해나가는 일이 모여 우리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의미 있는 흔적과 영향을 만들어나가길 희망한다.”(자연감각) “이론과 실천, 앎과 삶의 합치를 꾀한다.”(하루.순) “단일 성격의 조경 단위가 하기 힘든 일을 풀어내는 동시에 조경 문화에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실천적 모임.”(팀 동산바치) “조경이상은 실천을 위한 모임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할 아이디어는 무의미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고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구성원의 자격이자 조건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자 대신, 서로 다름을 인정한 채로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우선 실천해보자는 것이 오래 회자된 ‘조경의 위기’에 대한 이들의 결론이다. 이번 5월호는 편집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옥상다반사’ 특집(2017년 2월호) 때 처음 시도했던 명조체의 큰 활자를 다시 한 번 적용했다. 잡지 지면의 메시지는 텍스트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어쩌면 훨씬 더 자주)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의도를 전달한다. 연대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사람이 중심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원고 청탁서를 보내며, 각 팀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단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각 팀의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팽선민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 데뷔를 앞둔 인디밴드의 첫 번째 앨범” 같은 풋풋한 연출의 사진부터, 현장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것 같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이 단체 사진은 주연과 조연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 혹은 개인의 자의식을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모두가 주연인 수평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번 특집의 의도에 부합해 보였다. 표지 역시 팽 디자이너의 회심작이다.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표지에 이미지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텍스트를 대안으로 선택한 거죠. 컬러는,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 산뜻한 노란색과 검정색을 배치했어요.” 표지 역시 대안에 도전한 셈. 반면, 이 무크지 같기도 한 표지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편집부의 반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안을 만드는 관례를 깨고, 우리는 더 이상의 대안을 만들지 않기로 모의했다. 우리의 연대와 대안(!)이 독자들에게도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코다의 코다 이번 361호를 마지막으로 제가 환경과조경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 어느 노랫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만 당장은 아쉬움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10여 년 만에 연락한 지인이 잡지를 보았노라며, “너는 여전히 이상주의자로 살고 있구나”라고 말하기에, “나도 시류에 영합하고 싶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매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점,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종일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일일 터입니다. 한 호의 문을 닫는 이 지면을 되돌아보니, 종이 잡지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지 고민했던 글이 많습니다. 그간 함께 한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박명권 발행인을 비롯해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그리고 동고동락한 기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 못지않게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환경과조경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습니다.
[PRODUCT]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우수한 품질, 혁신적인 디자인의 블록을 개발해온 (주)데코페이브가 우수한 빗물 투수력을 갖춘 ‘투수코아블록’을 출시했다. 투수코아블록은 기존의 투수블록 모서리에 투수코아를 결합해 빗물 투과 기능을 대폭 향상한 제품이다. 투수코아에는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으며, 내부에는 황토볼을 넣어 빗물 유입량을 조절해 블록 하부의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했다. 흙이나 먼지 등에 의해 투수코아 일부가 막히더라도 고압 살수를 통해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유지·관리가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투수코아블록의 표면을 자연석 판석 느낌이 나도록 가공한 데코사암블록, 차도에 적합하게 개량한 차도코아블록을 개발해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투수코아블록은 정부조달우수제품 지정, NET 방재신기술 인증을 받은 제품이며, 서울시의 규정에 따라 투수성 시험을 받아야 하는 투수블록에서 제외되어 여러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시공할 수 있다. TEL. 051-831-9682 WEB. www.decopa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