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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조경 교육의 다음 50년을 위해
    조경 교육의 다음 50년을 설계할 시점이다. 교육인증이 조경 교육의 전문성을 키우고 조경 실무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023년 8월호 에디토리얼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달 특집의 주제는 조경학 교육인증이다. 다면적 토론과 숙의를 초대하는 난제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이번 지면에서는 주로 인증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주요 사례를 검토한다. 특집을 여는 글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를 시작하는 첫 질문”에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는 인증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짚는다. 그의 진단처럼 “‘지금의 조경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50년 역사를 축적해온 조경 교육이 “전적으로 교수 개인의 역량에 내맡겨져 있”는 당혹스러운 현실은 조경(학)의 전문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조경 전문가(의) …… 기술과 지식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이를 검증하는 시스템의 부재로 해마다 …… 쏟아지는 졸업자들의 자질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 자질의 일관성은 한 분야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한 일관성은 전문가를 배출하는 일관성 있는 교육에 근거한다.” 김아연 교수는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곧 “기성세대로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성실히 응답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 “설계 교육의 정도는 무엇인가”에서 최영준 교수(서울대)는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실현 여부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 조경설계 교육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몽타주가 정해진 답 없이 흐릿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설계 교육의 위상을 “교육인증제를 기회로 바로잡고 전국의 모든 학과‧전공들이 정도正道로 삼을 만한 설계 교육의 정도正度”를 논의한다. 그는 “교육인증제를 통해 조경학과 교과 과정에서 학습한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동시대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해결책을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통합적 틀을 제공하는 설계 과목의 쇄신이 이루어진다면, 조경학도 모두가 자기 브랜드를 갖는 조경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는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화 교수(네바다주립대)는 글 제목처럼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현황과 시사점”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재인증 과정을 공유한다. 그가 상세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조경 교육인증 주체는 조경인증위원회LAAB이며, 인증제의 목적은 “조경 학위 프로그램의 교육 품질을 평가하고 지지하며 발전시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교육과 직능의 밀접한 연결이 핵심으로, 학생들이 조경 직능에서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조경 분야의 고품질 교육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는 전공 및 학위명, 학위 과정 기간과 요건, 정보 공개 온라인 플랫폼, 교수진 규모와 임용 상태, 소속 대학의 인증 여부, 관리자, 인증 지속을 위한 의무 사항 등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인증 기준을 소개한다. 또한 인증 신청. 자체 평가, 방문 평가, 평가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 인증 결과 공표로 이어지는 인증 절차를 설명한다. 김정화 교수는 교육인증의 효과와 의미를 1)인증제를 통한 조경 교육의 핵심 가치 공유, 2)통합적 데이터 구축, 3)확장과 네트워크 등 세 가지로 제시하며, 인증제는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동시에 느슨한 구석도 지닐 필요가 있”으며 “인증 체계와 과정에서 인증을 받으려는 주체의 역할과 권한이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끌어낸다.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의 글 “IFLA APR의 조경 교육 방향과 기준”은 지난 2018년 세계조경가협회 아시아태평양지회가 마련한 ‘교육 정책과 기준, 그리고 인증 과정’의 틀과 내용을 소개한다.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와 목적, 행정과 운영, 전문 교과, 교육 성과(10가지 세부 분야), 전문 성과, 시설‧장비‧정보 자원, 대외 활동 등으로 구성된 조경 교육 기준은 한국 조경 교육의 기본적 틀을 재정비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김영민 교수가 말하듯, 한국 조경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조경학과이지만 대학에서 서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며 논의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IFLA APR의 교육 지침이 우리가 당장“현실적으로 적용할 지침이 아니더라도 이 지침의 높은 기준과 정교한 조경 교육에 관한 규정은 우리의 교육을 뒤돌아보고 점검해 볼 ……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의 주장처럼, “교육의 효과는 현실적이어야 하지만 교육의 지향점과 목표는 이상적이어야 한다. …… 한국 조경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출발점은 분명 교육에 있다.” 이번 특집 지면이 조경학 교육인증제 논의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본지는 교육인증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더 심도 있는 조사와 연구, 토론을 공유할 예정이다.
  • [풍경감각] 11월 저녁
    수능을 며칠 앞둔 날을 기억한다. 3년간 공부에 매달렸지만 성적은 목표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잠들며 수능 시간에 맞춰 모의고사를 풀었다. 점수를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점수라도 받기 위해서 이제껏 쌓아온 리듬을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능 시간표에 맞춰 하루 종일 모의고사를 풀었고, 늘 틀리던 것을 틀렸고 늘 맞히던 걸 맞혔다. 채점한 시험지를 추슬러 가방에 넣고 저녁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은 운동장 건너편에 있어서 조금 걸어야 했다. 항상 같은 시간에 똑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늘 같았던 익숙한 길. 11월이 되자 해가 무척 짧아져 이른 저녁인데도 한밤중처럼 새카맸다. 문득 그 어둠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11월을 처음 겪는 것처럼. 올해도 11월이 돌아왔다.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다. 다만 앞선 계절에 벌여 놓은 일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묵묵히 일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해가 짧아졌고, 아직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 시간에 이른 밤이 찾아온다. 이제 이 어둠이 더 이상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너무 빨리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태양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계절이 벌써 그립다.
  • [제도가 만든 도시] 다양성 그리고 통일성
    ‘다양성’은 도시가 도시일 수 있는 중요한 속성으로 많은 도시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들여다 본 주제다. 물론 도시의 인구학적 다양성, 그에 기인한 사회문화적 다양성, 도시 경제를 구성하는 산업적 다양성 등 연구자마다 초점을 두고 들여다보는 다양성의 차원도 ‘다양’하다. 그러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주장(각주 1)으로 종합하자면, 도시의 다양성은 포괄적 의미에서 도시가 사회 그리고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공간 환경 차원의 다양성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까? 제도는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통일성과 짝을 지어 도시 공간의 다양성을 다룬다. 공간적 다양성의 의미 도시 공간의 다양성, 즉 도시 건조 환경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과 그 집합적 양태의 다양성 또한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공간 환경은 다양한 도시민의 다양한 도시 활동을 가져올 수 있다. 1960년대 뉴욕 맨해튼과 교외 단독주택지를 비교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주장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단독주택 필지 하나 없이 공동주택 100%에 아파트 단지 상가가 아니면 대형 상가, 쇼핑몰이 전부인 송도 신도시와 저층 주거지와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혼재하고 전철역 앞엔 대형 상가와 골목 시장이 나란히 공존하는 봉천동에서 가능한 공간 경험과 도시 활동의 폭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한다(그림 1). 또한 도시 활동과 공간 환경은 일대일로 대응되는 관계가 아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다른 공간 환경에서 일어난다면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연남동 맛집을 찾는 것과 광화문이나 여의도의 대형 업무 시설 저층부 상업 공간에 있는 분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따라서 공간 환경적 다양성은 한 도시의 문화를 더 두텁게 만들고, 개인이 누리는 경험은 다채로워진다.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사회적 다양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도시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필요를 담고 욕망을 투사하는 장치다. 케빈 린치(Kevin Lynch)는 잘 작동하는 도시 공간의 조건으로 시민들 각각의 공간에 대한 주체성이 보장되는 것, 즉 도시 공간의 구성과 활용 방식을 알고 있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꼽는다.(각주 2) 따라서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해당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의 요구를 수용하고 선택을 허용하는 정도를 드러낸다. 이때 개인은 자신의 삶을 위해 도시 공간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도시 공동의 자원인 공간의 활용은 극대화될 수 있다.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 다양성 왜 다양성을 통일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까. 일견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성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호 대립하는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공간 환경의 인지에서 통일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 다양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이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다. 예를 들어 첫 연재에도 나왔던 에익심플레(Exiample)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격자형 신시가지는 크기와 높이가 일정하고 정사각형을 모치기 한 형태의 블록이 시가지 구역의 전체 형상에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배열되어 전체 도시 경관을 지배한다. 하지만 동시에 각 블록은 오히려 다양한 변이를 보여준다. 모퉁이의 입면, 가로에서 보이는 중정의 형태, 블록을 구성하는 건물의 분절 등 어느 하나도 같지 않다. 통일된 외곽선 안에서 시가지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개별적인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라 하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것을 지키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바르셀로나의 합의이기도 하다.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a)의 계획안에서 보듯 블록 내 건물의 배치까지 완전히 통일된 모습으로 지어지고 그 모습이 시간이 지나도 강력한 통제로 고정되었다면 지금처럼 역동적이고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흥미로운 도시 경관은 아니었을 것이다(그림 2). 이때 격자형 조직의 강력한 통일성은 각 블록의 차이, 즉 다양성을 인지하는 기준점이 되며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된다. 반대로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길 철공소 사이사이에 힙한 식당들이 위치한 문래동, 도시형 한옥이 밀집한 북촌, 한강변으로 판상형 아파트들이 도열한 압구정동, 원룸 골목이 즐비한 신림동 고시촌 등은 각 지역 내 필지와 도로, 건축물 등 물리적 요소와 그 배열의 유사성이 높고, 이와 결합된 특유의 공간 활동이 밀집하여 반복된다. 도시 안에서 구분되는 영역들은 이러한 내적 통일성이 강할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는 장소들 각각은 그 도시 전체의 다양성을 구성한다. 이렇게 통일성이 있어야 다양성이 드러나는 역설은 하나의 공간 대상에 통일성과 다양성은 중첩되어 작동하되 통일성과 다양성이 인지되는 공간 범위는 다르기 때문이다.3 따라서 통일성과 다양성은 양자가 동일선상의 양끝을 향하는 속성이 아니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글레이저, 이진원 역, 『도시의 승리』, 해냄, 2011. 2. 현실적으로 모두가 광장의 형태와 시설물을 바꾸는 등 직접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것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구성원이 신뢰한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는 우리에게 그러한 시스템도, 신뢰도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Kevin Lynch, Larice, Macdonald ed., “Dimensions of Performance”, The Urban Design Reader , Routledge, 2007. 3. 김세훈은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에서 ‘지역 내 다양성’과 다른 ‘지역 간 다양성’으로 설명한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시간과 사람,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장소를 디자인하다
    우리의 시간들 CA의 흔적들 2003년 12월 1일 혹독하게 추운 날, 13명의 사람들이 강남 어느 건물 4층에 모였다. 일부는 학교를 바로 졸업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다 오고, 일부는 다른 설계사무소에서, 또 일부는 설계와 전혀 관계없는 회사에 다니다 왔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CA Landscape Design Office)(이하 CA)의 처음은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고루한 루틴보다는 새로운 설계 접근을 원하는 진보적 사고의 사람들 13명으로 시작됐다. 그로부터 CA는 한국의 조경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선도적이며, 때로는 실험적인 접근을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조경설계사무소의 하나로 성장해 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독창성은 펜타 철학(Penta Philosophy)이란 기치 아래 철학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설계 전략으로 발전하고 응용되어 왔다. CA는 건축이나 토목 등 인접 분야와 수동적이 아닌 대등하고 수평적인 소통의 설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더 강하고 좋은 설계를 하는 스튜디오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의 저명한 건축설계사무소 및 스튜디오와 협업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CA가 이룬 성과는 매우 많다. 몇 개만 열거해 보면, 청계천 복원의 총괄 조경가 수행, 건축설계사무소 KPF와 같이 작업한 세운상가 국제설계공모(2006) 당선, 무주 태권도공원 턴키설계공모(2007) 당선, 건축가 마크 맥Marc Mac과 같이 작업한 판교 월든힐스 아파트 단지 국제설계공모(2008) 당선, 진천 국가대표 제2선수촌 턴키설계공모(2010), 새로운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2019) 당선 등 다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주택에 집중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거 프로젝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7년 완공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현재까지 한국 아파트 조경 중 가장 잘된 설계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보다 참신하고, 보다 창의적이며, 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7,250일차 진양교) 플러스 알파를 묻다 2003년 12월 1일 CA가 시작되는 날은 겨울이었지만, 개성 넘치는 13명의 열정이 함께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리 춥진 않았다. 보다 진지하고 치열했으며, 때론 고단하면서 즐거웠던 나날들이 어느덧 7,250일을 길고도 짧게 채워왔다. 이제는 플러스 알파를 고민해 본다. 대상지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또한 이제는 희미해진 장소성을 억지로 캐내고 만들어 내는 작업보다, 오늘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행태를 담아내는 공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더 절제되고, 더 낯선 환경을 연출하는 것이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7,250일차 정문정) CA의 어제와 오늘 2003년 창립 멤버로 시작했고, 잠시 해외에 머물다 다시 돌아왔다. 내 기억 속의 CA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멋진 CA의 모습도 있었지만, 부족했던 CA의 모습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 이야기를 몇몇 경험자들이 아닌 모두에게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준비했다. 지금의 CA는 어떤 모습일까. (5,060일차 조용준) CA 어게인 개인적인 일로 두 번 CA를 떠났다가 지금은 세 번째 CA에서 지내고 있다. 그 때문인지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다시 CA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CA에 있을 때 편안하고 하는 일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CA가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를 무게감 있게 지키며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는 곳, 그 안에서 깊이 있는 디자인 탐구와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곳이다. (3,676일차 소진) 치열한 고민의 시간 2021년 여름 래미안 원베일리 수주전에 뛰어들어 당선되었다. 설계 기간 동안 시행사와 발주처를 설득하기 위해 팀원들과 공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준공된 모습을 보니 설계하면서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며 결과물을 볼 수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 인상 깊다. (1,910일차 권범영) 즐거운 일상 즐거운 일이 매일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옆자리 동료와의 수다도, 적지 않은 시간 함께하며 남은 사진 속 순간들도, 다 즐겁다. 그렇지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나 자신이 제대로 쓰임 받고 있다고 느낄 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결과로 우리 팀과 회사가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느낄 때, 행복감이 찾아온다. (1,619일차 이주영) 공간의 감동 몇 년을 노력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프로젝트가 끝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아내에게는 많은 에피소드와 현장 뒷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갓 돌이 지난 아이와 물놀이를 하며 그동안 못했던 아빠 노릇을 했다. 설계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감동이 있었지만, 그중 한 가족이 되어 느낀 경험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자리 잡 았다. (1,587일차 강인화) CA가 CA했다 다양한 특수부대가 서로 미션으로 경합하는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말 중 특정 부대가 미션 수행을 잘 했을 때, “UDT가 UDT”했다는 말을 한다. 4년간 몸담으며 느낀 건 “CA는 언제나 CA”한다. 그만큼 믿을 만하고 잘한다는 이야기다. (1,380일차 엄성현) 새로운 휴식 시간 어느날 회사에 화분이 늘어난 것을 계기로 각 소별로 한 명씩 나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인원이 화분에 물을 주는 담당을 맡게 되어 새로운 식물 커뮤니티가 생겼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키우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 시간이 적당한 취미 생활이자 그 주의 새로운 휴식 시간으로 좋은 기억을 남긴다. (1,343일차 정윤석) 사람의 힘, 살아갈 힘 ‘딱 3년만 배우고 돌아가자!’는 굳은 결심으로 상경한 지 어언 4년차. 대리로 입사해 막내 팀장이 된 지금.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동료를 넘어 가족 같은 팀원들 덕분에 힘들지 않게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허물없이 저마다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든 발 벗고 나서서 나의 일처럼 마음을 써주는 열정 가득한 곳. 내가 오늘도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이다. (1,313일차 박상희) 점심의 산책 긴 점심시간은 CA의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시간이 길어 산책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길을 왕복하고, 남은 계절에는 재개발 예정인 뚝섬과 성수동 일대를 걷는다. (1,125일차 이상민) CA와의 시작 잠시 쉬는 동안 CA란 회사의 가치관이 궁금했고, 새로운 택지 현장이, 새로운 사람과 조경을 위한 배움이 그리웠다. 그래서 CA에서 입사 제안이 왔을 때, 고민 없이 이민 가방을 준비하고 그렇게 3년간 주말 가족이 되었다. 입사 무렵 태어난 아기가 벌써 내년이면 4세가 되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로서, 조경가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081일차 박주희) 그해 여름 약 3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 설계였던 광화문광장이 시공되면서 힘든 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해 여름 KT 현장 식재 공사를 진행하며 느낀 노동의 만족감도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가을, 새만금 실시설계 도면을 작성했다. 완성될 그날이 기대된다. (1,006일차 이지현)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 1시간 30분이라는 긴 점심시간은 업무 중 나누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성수동의 다양한 카페 선택지는 매일매일 새로운 공간에서 딱딱하지 않은 즐겁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1,005일차 장시영) 고뇌와 성취 사이 CA에 다니는 것이 솔직히 쉽지는 않다.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쥐어짜내 최고를 만들고, 이를 평가 받는다. 또한 생각보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마주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 심지어 그 결과가 좋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886일차 신원재) 우리의 작업 방식 좋은 사람들과의 다양한 협업이 즐겁다. 인천계양, 고양창릉 같은 대규모의 택지 설계공모는 새로 공모팀을 꾸려 작업했는데,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같은 호흡으로 달린 기억이 있다. 덕분에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까지 즐길 수 있었다. (660일차 오혜지) 디자이너에게 CA는 3D 모델링부터 렌더링까지 모형과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툴과 기술들, 챗 GPT, 미드저니mid journey와 같은 생성형 AI까지 CA는 뒤쳐지지 않고 발전하며 더욱 창의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CA는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전의 장인 것 같다. (542일차 김병철) 디테일과 열정 입사 후 현재까지 본 결과물들은 항상 완성도가 높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작업자들의 열정과 집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처음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다고?”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면 그 집착이 전체적 완성도를 높여준다는 걸 이제 안다. (461일차 홍병석) 입사 후 변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과감한 시도를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고 참신한 피드백을 해주는 팀원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 속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얻고 메인 콘셉트부터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439일차 김성일) 입사 전과 입사 후 입사 전 소문으로 듣던 CA는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그렇지만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였다. 실제 입사 후 직접 느낀 CA는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는 맞지만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때마다 각자의 생일을 챙기고 계절별로 다 같이 소풍을 가는 충분했다. 언젠가 나도 나의 디자인이 담긴 공간을 바라보고 더 자부심 있는 조경가가 되고 싶다. (219일차 조혜진) 새로운 시작 여태껏 경험했던 프로젝트와 달리, CA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열린 아이디어 회의 그리고 완성 후 잘 만들어진 공간이 담긴 사진들은 지쳤던 내게 다시 설계를 시작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됐다. 잠깐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행한 강릉 디오션 259 복합개발사업의 외부 공간 설계는 CA 입사 계기가 되었다. (66일차 이지원) 이직할 결심 조경설계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상에 기여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다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경 시류를 이끄는 그 한복판에서 일하고 싶었다. 올여름, 나는 CA의 새 식구가 되었다. (65일차 이설화) 26일차 신입이 본 CA CA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첫 사회생활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9월 11일, 두근두근 떨리는 CA 첫 출근 날! 회사는 생각했던 딱딱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고, 경직된 나에게 모두 밝게 인사해 주었다. 많은 질문에도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화목한 팀 분위기에 입사 일주일 만에 적응했다. (26일차 노영현) 편안한 분위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라 생각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도 예상보다 훨씬 편안한 분위기라 놀랐고, 덕분에 아이디어 회의나 질문이 있을 때도 편안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 (34일차 김예준) 최고의 무대 CA는 조경가에게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CA의 프로젝트들을 보며 설계가로 자라고 싶었다. 열심히 했던 학창 시절의 결과물로 CA에 들어왔다. 설계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앞으로 설계 능력을 향상시켜 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35일차 김진원)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www.cadesign.co.kr
  • [모던스케이프] 미화된 전통, 또 하나의 경관
    광화문 월대(月臺)가 2023년 10월 15일 대중에게 공개됐다. 월대 복원 논의는 1990년부터 추진된 경복궁 복원 사업과 궤를 같이했다. 어느 학예사의 눈썰미로 동구릉 구석에 쌓여 있던 부재가 월대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호암미술관 희원(熙園)에 있던 서수상(瑞獸像)을 기증받은 운까지 따라, 복원의 진정성 측면에서 큰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월대 앞 공간은 경관적으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기존에는 사직로가 광화문에 맞닿아 있어 궁궐 주변이 옹색했다면, 지금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는 월대 덕분에 궁궐 정문 주변에 여유 공간이 확보됐다. 광화문 좌우에 있다가 월대 앞으로 옮겨진 해치상은 어도 앞머리를 장식한 서수와 소맷돌, 월대 좌우의 동자주 등 과 함께 조선 정궁의 정 남문으로서 광화문의 위엄과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화문 월대 복원의 필요성이나 고증의 정확성 등 근원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예부터 월대는 궁궐 전각 앞에 두는 것이지, 광화문처럼 문 앞에 두는 시설은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1431년 음력 3월 29일, 예조판서가 중국 사신들이 출입하는 광화문 주변이 누추하고 관리들의 하마처(下馬處)가 마땅치 않음을 이유로 광화문에 월대를 조성할 것을 건의한 바 있었지만, 세종은 바쁜 농사철에 백성들을 동원할 수는 없다며 불허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도록 광화문 앞에는 월대가 없었다. 우리가 옛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월대는 1866년 음력 3월 3일(고종 3년)에 완공된 것으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사업과 맞물려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사업을 추진한 데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회복하기 위한 이유가 있었고 광화문의 월대 조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광화문 월대가 위상을 지킬 수 있었던 시간은 길어야 30년 정도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정궁으로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 사업은 월대의 수명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1923년 부설된 전차 선로만 아니었다면 불필요했을 일련의 논의는 도로망 변경에 따른 교통 문제까지 더하여 당분간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하지만 월대는 경복궁의 온전한 시설로 자리매김하여 종국에는 국가 권위의 계승을 상징하는 요소로 안착할 것이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신형준, “光化門 ‘月臺’ 복원자료 찾았다”, 「조선일보」 1996년 8월 9일. 노주석, “광화문 월대는 여전히 미완성”, 「파이낸셜뉴스」 2023년 10월 25일. 박종인, “광화문 월대는 없었다: 가짜역사와 시민 편의”, 「조선일보」 2023년 5월 30일. 그림 출처 그림 1. 박세희, “‘왕건의 상징’ 48m×29m 공간…궁궐행사·백성소통 ‘다중 역할’”, 「문화일보」 2023년 5월 2일. 그림 2. 임소정, “100년 만에 다시 걷는 역사의 길…광화문 월대·현판 오늘 공개”, 「MBC 뉴스」 202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