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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풍경이 된다
  • 환경과조경 2024년 1월

일 년을 가늠하는 여러 가지 측정법. 열두 권의 잡지를 눕혀 쌓아본다. 손바닥을 펼쳐 높이를 재어보니 한 뼘 남짓. 일 년간 들인 공을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이번에는 잡지 뭉치 맨 아래에 양손바닥을 끼워 넣어 단번에 들어 올린다. 처음에는 견딜 만한데 조금 있으니 팔뚝이 뻐근하다. 그래, 이 정도 무게는 되어야지. 홀로 뿌듯해진다. 또 다른 방법은 숫자 1을 더하는 것이다. 내 나이가 몇인지는 제쳐두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올해가 창간 몇 주년인지 헤아린다. 애사심보다는 연간 기획을 앞두고 큼직한 특집을 꾸려야 하진 않은지 점검하는 작업이다. 연말을 장식한 행사 속 ‘제○회’에도 수를 더한다. 그렇게 덧셈을 하다가 보기 좋게 딱 떨어지는 숫자 하나를 발견했다. 잡지의 앞쪽 판권 페이지에 환경과조경 식구들, 편집위원, 해외리포터와 함께 적히는 삼사십 여명의 이름들, 2024년 학생통신원 제도가 탄생한 지 40년을 맞이한다.

 

학생통신원(이하 통신원)은 『환경과조경』과 세 살 터울이다. 『환경과조경』이 계간지였던 시절, 1985년 10월호에 제1기 통신원 간담회 기사가 실려 있었다. 당시 간담회는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경기도 송추 계곡산장에서 열렸다. 13명의 학생통신원 김숙자(경북대, 당시 표기), 김주경(경희대), 김도희(동국대), 이석호(서울대), 홍갑진(성균관대), 김완련(영남대), 이재찬(전남대), 강미순(전북대), 장양화(청주대), 김순주(효성여대), 전병화(경남전문대), 김사훈(상지전문대), 최창식(진주농전)이 모였다. 간담회 내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집 과정 설명, 기사 작성 요령, 사진 촬영 기법 등 활동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조금 독특한 건 통신원들이 한국 전통 조경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뒤 토론을 했다는 점이다.

 

통신원의 이름은 ‘e-환경과조경’ 뉴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통신원들은 기자들의 눈과 귀가 미처 닿지 못한 곳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결과물이 기사 형태이기에 기자 역할만 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통신원의 활동 범위는 더 넓다. 마음 맞는 통신원끼리 답사 팀을 꾸리기도 하고, 선배 통신원의 도움을 받아 만나고 싶던 조경가에게 궁금한 점을 물을 수도 있다. 통신원들의 기획에 따라 활동 스펙트럼은 한없이 커진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튜브나 SNS 등을 활용해 활동하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물론, 조경학과 학생이 모여 서로 모르는 정보를 나누고 조경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학창 시절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만 간다고 해도 좋다.

 

통신원을 모집할 때 요구하는 서류는 세 가지다. 이력서와 활동 포부를 담은 자기소개서, 환경과조경이 만든 콘텐츠에 대한 리뷰.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서류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지원서를 검토하는 기자들에게는 꽤 쏠쏠한 재미를 준다. 그러다 가끔 ‘통신원 지원 서류’ 폴더에 담아두기는 아까운 글을 종종 마주친다. 그중 어느 글의 일부를 오늘에서야 옮겨 적는다. “보이는 것에서 보고 싶은 것을 찾는다. 현실의 고민과 꿈꾸는 이상, 두 가지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나에게 ‘시네마 스케이프’는 그저 보이는 것만 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해주었다. …… 나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풍경이 된다.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이 담겨 있는 풍경이 와 닿을 때마다 전공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풍경을 그리는 사람은 무엇보다 타인의 얘기를 깊이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풍경이나 사람에게 공감보다는 동요되는 나에게 시네마 스케이프는 사람 얘기와 풍경 얘기를 조용히 듣는 시간이었다. 늘 드는 생각은 풍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 타자에 대한 변덕스러운 나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었다. 가끔 ‘뭐가 주체일까’라는 고민에 갇히기도 했지만 언제나 두 관계는 끊임없이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 물음마다의 답이었다. 영화를 통해 두 관계를 좁혀나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면 불안이 슬슬 걷히고, 전공에 대한 확신이 생겨났다.”(“에고 스케이프-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것”, 33기 통신원 이삭 리뷰)

 

굳이 제1기 통신원의 이름을 일일이 적은 이유 는 그들의 소식이 궁금해서다. 혹시 이 글을 보고있거나 또는 그들의 소식을 안다면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려주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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