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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래리 기키 & 채드 기키
올드 컨트리 마켓
  • 환경과조경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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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원시 자연으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대표적 관광지, 밴쿠버아일랜드Vancouver Island에는 쿰스Coombs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인구 천여 명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평범한 시골 마을은 아닌 것이, 연간 1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올드 컨트리 마켓Old Country Market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비단 물건을 사거나 간식을 먹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다.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 ‘풀이 무성한 지붕sod roof과 그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을 구경하는 일’이다. 처음엔 그저 대책 없이 자라는 풀을 일일이 자르기가 귀찮아 올려놓은 염소들은 어느덧 “Goats on the Roof지붕 위의 염소”라는 브랜드로 정착될 만큼 유명해졌고,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며, 변방의 작은 마을 쿰스를 세계에 알리는 아일랜드 스타일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운전을 하던 사람들도, 지붕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염소들을 보면 일단 차를 세우고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린이들에겐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운 광경일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네 마리의 염소들은, 피치스Peaches, 포피Poppy, 캐러멜Caramel, 엉클 베니Uncle Benny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미 은퇴(?)한 놀Knoll과 토트Tott가 있다. 염소가 보이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만큼, 아이들에게 네 마리의 염소는 꼭 만나봐야 할 슈퍼스타에 가깝다.

1950년대에 노르웨이에서 캐나다로 이민 간 크리스티안 그라틴Kristian Graaten과 그의 아내 솔베이그Solveig는 1973년, 과수원에서 직접 수확한 과일들을 한적한 도로변에 놓고 팔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 허기진 관광객들을 위해 햄버거를 메뉴에 추가하면서, 그들은 작은 마켓 건물을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고향 릴레함메르Lillehammer에서 일상 풍경이었던 녹색 지붕을 떠올렸다. 노르웨이의 시골에서는 경사진 언덕에 기대 헛간을 짓고, 지붕이 대지와 연결되도록 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흙과 풀로 덮인 지붕은 겨울이면 단열재가 되고, 여름엔 증산 작용으로 인해 냉각 효과를 볼 수 있다. 연로한 부부는 아들인 스베인Svein과 앤디Andy 그리고 사위인 래리 기키Larry Geekie의 도움을 받아 소박한 건물을 지었다. 당시에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염소지붕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가판대에서 시작한 올드 컨트리 마켓은, 이제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가게, 125석 규모의 카페테리아,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채소 가게, 서핑보드숍, 훈제연어 델리, 베이커리, 수입 식품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기프트 숍, 모종과 원예 식물을 판매하는 화원, 중국 골동품 가게, 패션 부티크 등 다양한 업종들이 성업 중이다. 여름 휴가철이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도로변 갓길 수백 미터 뒤까지 차를 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유일한 불만은 이곳이 언제나 지나치게 붐빈다는 것이다. 올드컨트리 마켓 덕분에 주변의 소매점들 또한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다. 비즈니스의 성공을 짐작할 수 있는 일면으로, 사장 래리 기키의 가족들은 동절기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세계 곳곳으로 긴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와 좋은 제품들을 다시 올드 컨트리 마켓으로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염소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 날씨가 춥거나 혹은 염소가 집에 들어가 버리거나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염소는 조각품이나 벽화가 아닌 살아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붕 위의 염소들은 사람들의 바람이 무엇이든 간에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한다. 물론 염소를 볼 수 없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사실 마켓 운영의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염소를 보겠다며 다시 찾는 손님들도 많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던 염소가 풀을 뜯으러 등장이라도 하면 그 자체가 이벤트가 되기 때문이다. 염소를 여러 번 보았다 해도 무생명의 물체와 달리 하나의 작은 생명의 면모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다시 보아도 여전히 지루하지 않다. 사실 ‘지붕 위의 염소’에서 실제 염소의 출현은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 콘셉트 자체가 귀엽고, 그들이 지붕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직접 눈으로 염소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 중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광경으로부터 우리는 잊고 있던 시골에 대한 향수와 지역성 그리고 편안하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는다. 지붕 위에서 염소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슈퍼마켓이라면, 그 내부 또한 한 번쯤 들여다봐야 할 만큼 재밌는 곳이 아니겠는가. 이건 어떨까하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지붕 위 염소의 성공은, 창의성이란 지역과 자본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래리 기키의 아들이자 삼대 째 가업을 잇고 있는 채드기키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생으로, 그룹한 뉴욕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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