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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귀환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다시, 정원을 말하다
  • 환경과조경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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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공부하겠다고

십여 년 전 정원사의 한 부분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겠다고 나섰을 때, 지도 교수님과 연구실 선배들은 다소 의아해했다(그게 미술사학과 논문이 될 수 있을까?). 회화와 조각, 사진과 건축, 양식사 연구와 작가론이 주를 이루던 학과의 교과 과정 상, 아무리 풍경화를 토대로 한다 하더라도 정원은 생경했기 때문이리라.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하고 공부를 계속하려 하자 이번에는 학부부터 조경학과에서 공부한 분이 말문을 흐렸다(재미는 있겠는데… 그게 요새 조경학과에서 다룰영역인가?).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격언이 정원의 역사 공부에서도 반복되었다. 이게 소위 ‘한국적 현실’인가 싶어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찾아보아도 정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사를 연구한다고 한 뒤 가장 많이 듣게 된,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은밀한 걱정은 ‘너무 마이너하지 않아’였다. 가뜩이나 공부해서 먹고 사는 장래도 불확실한데, 기왕이면 좀 잘 팔릴 것 같은 게 낫지 않나. 미술사학에서도 조경학에서도 지극히 마이너한 분과로 보이는 정원, 게다가 서양의 정원을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염려는 당연했다.

그런데 요 근래에 들어서 이런 걱정이 기우였나 싶을 정도로 정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정원을 만들고, 이야기한다. 공원을 만들자고 외치던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이제 정원을 조성하자고 하고, 시민가드너 양성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정원박람회가 큰 구경거리가 되고, 2013년 조경대전의 공모 주제도 ‘열린 정원’이었으며, 정원문화협회도 발족되었다. 정원잡지만 한 해에 세 개가 창간되었고, 영향력이 큰 포털사이트에도 정원을 주제로 삼은 글이 연재된다. 여기저기 기업에서도 가드닝이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논의된다. 해외 가든 쇼에서 수상한 작가가 중앙 매체에서 국가 대표 대접을 받는다. 서점에 가서 ‘정원’으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수십여 권의 책이 화려하게 쏟아져 나와 훑어보기도 버겁다. 그야말로 정원이 ‘핫’한시기이다.


정원 예술과 가드닝 사이에서

이렇게 정원이 ‘핫’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만들고 이야기하고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열기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 이는 정원 열풍이라기보다는 가드닝, 즉 원예적인 정원 가꾸기의 세련된 형태의 유행에 더 가깝게 보인다. 휴식과 힐링을 위한 정원 가꾸기, 안전하고 경제적인 먹거리 마련을 위한 텃밭 정원, 미니 가든, 학교 정원…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것들을 모두 정원이라고 부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서의 정원으로 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좀 더 오래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정원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 채원, 즉 키친 가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차적으로는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무엇인가를 심고 키우며 가꾼다는 것에 더 큰 가치가 부여된다. 이는 커뮤니티 정원 운동에서 더욱 부각된다. 실질적인 목적이 있으면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고, 머무는 시간을 연장하고, 나아가 가꾸는 기쁨도 알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도시 내 공지나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자원이 순환되면 금상첨화이다), 여기에서 수확한 먹거리를 나누는 ‘착한’ 정원은 도시경관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조성하니 한 평 공원보다 더 착하고 발전된 형태로 보인다. 여기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정원이라는 대상보다는 가드닝이라는 행위와 그 과정이다. 정원이 있다는 점, 도시 속에서 몸소 정원을 가꾼다는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럽다.

하지만 도시 농업적 가드닝의 유행과 조경의 중심 영역으로의 정원의 귀환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원 문화의 확대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의 이행을 반증하고, 정원이 조경의 기본 영역임을 강조한다”1고 하지만, 현상에서 담론을 찾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행위 혹은 현상으로서의 가드닝과, 이론적 체계를 갖춘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의 정원이 혼용되고 있다. 물론 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칫 무의미한 공론으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토대 위에 뿌리 내리지 못한 정원 실천은 지속되지 못하고, 또 다른 공허한 외침에 그칠 것이다. 게다가 정원열풍이 표방하는 정원의 대중화를 통한 저변 확대라는 것이 정원 문화의 확산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정원 산업의 팽창인지, 그 목적을 짚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무엇이 추구하는 본질이고, 무엇이 부수된 것인가는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더 나아가 최근의 정원 열기, 조경의 토대로서의 정원을 부각하는 것 또한 인접 분야에서의 산업·제도적 측면에서의 침습에 대한 방어적 반응이 아닐지도 반추해보아야 한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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