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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고래
  • 환경과조경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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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 문학동네 | 2004

 

 

21세기 대한민국과 ‘샤머니즘’. 가장 신선(?)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조합이 탄생했다. ‘샤머니즘’은 NPR미국공영방송,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을 비롯한 외신들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보도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IT 대국, 정보화 강국임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민낯이 전근대적 신화로 점철되어 있음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내막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1970년대를 상징하는 신화적 아이콘에 대한 맹신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국문과 학부생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기호학 천재’로 불리며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는 교수님의 ‘신화론’ 수업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상대평가의 제물로 희생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교수님은 학생 쪽을 전혀 바라보지 않고 먼 곳을 응시하며 수업하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것은 아마 학생들의 백지처럼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눈빛을 견디기 어려우셨기 때문이었으리라. 교수님은 문학의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예술, 경제의 모든 현상을 기호와 신화로 설명하시곤 했다. 사회 전반을 꿰뚫는 그 방대하고 복잡한 이론을 헤매다 보면 로고스가 뮈토스가 되고 뮈토스가 로고스가 되다가 정말로 꿈의 신화 세계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것은 오후 2시 강의의 법칙이었다.

 

그렇게 비몽사몽 신화 세계를 헤매는 와중에도 하나 기억에 남는 강의의 메시지는 ‘신화는 영원한 신화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그 신화성을 드러내는 탈신화의 과정에서 포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당신의 저서, 『탈신화 시대의 신화들』의 서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신화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판단되는 순간, 그것은 숨겨진 신화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 신화를 드러내는 방법이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그러면서도 우리의 열린 관점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면,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보다 깊고 정교해질 것이다. 적어도 신화에 관한 한 그래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신화를 해체하는 탈신화의 과정을 통해 신화의 숨겨진 의미가 새롭게 발견된다는 강의의 핵심 메시지는 당시 내게 불교의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를 만나기 전까지는.

 

천명관의 소설은 엔간해서는 도서관 서가에 얌전히 꽂혀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온라인 예약 대기자 명단이 줄을 이어 있어서 도서관 대출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에게 반납이 되자마자 따로 챙겨 놓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인기 도서의 법칙이었다. 책 값을 아껴 커피 값으로 쓰곤 했던 이 철없던 대학생은 할 수 없이 큰 맘 먹고 제 돈을 주고 서점에서 책을 샀다. 그렇게 ‘인생 소설’을 만나고 나서야 단돈 9,800원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이 소설은 소설가 임철우의 표현대로 정말 “특별하다”. 혹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등에서 보이는 라틴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그의 소설에서 엿보인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판소리나 구비문학의 신화적 상상력을 현대 소설의 작법으로 구현한 듯하다. 아주 오래된, 언젠가 한 번은 들었던 것 같은 옛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면, 사진과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문학적 실험을 시도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한 페이지에 단 두세 문장만 할애하기도 하고 그림을 삽입하기도 하는 등 때로는 전위적이기도 하다. 처음 책 뒤표지에 크게 적힌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다!”라는 소설가 은희경의 심사평을 보고 다소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래』는 ‘노파-금복-춘희’로 이어지는 여성 3대(정확히는 노파와 금복은 가족 관계가 아니지만)의 장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신화와 구비전승, 무협지, 드라마, 포르노, 농담 등의 무수한 클리셰를 반복, 변주, 패러디, 오마주하며 ‘탈신화-신화’의 과정을 오간다. 그의 소설에서 아기장수 우투리를 연상케 하는 남성 캐릭터 ‘걱정’은 한순간에 육중한 바보가 되고, 느와르 영화 속 갱단 두목처럼 카리스마 있게 그려지던 ‘칼자국’은 마지막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자신이 가진 여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게 된 여장부 ‘금복’은 성공 가도의 정점에서 남성으로 성이 변하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동화처럼 순진무구한 자신만의 세계에 있던 ‘춘희’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고어 영화처럼 끔찍한 상황에 내던져지기도 한다. 무수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소설이라는 ‘멜팅 포트melting pot’에 용해되어 만들어내는 미묘한 틈새에서 독자들은 기존의 신화가 해체되고 새로운 신화가 형성되며 쌓여가는 거대한 바벨탑을 본다. 신의 진노로 언어가 흩어지고 몰락한 바벨탑처럼 소설 속 다양한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신화는 생성과 해체의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이했을 때, 그래도 일부는 새로운 여성 신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 말년으로 접어든 지금,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스스로 만든 신화의 성에 갇혀 그 어떤 비판과 토론도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은 창의적인 감수성을 싹틔우지 못한다. 탈신화를 용납하지 않는 신화는 죽은 신화다. 탈신화와 신화의 과정을 오가며 장대한 서사를 완성한 작가 천명관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사는 멈춰 섰고 시간은 흩어졌다. 새로운 것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숙주를 찾아 헤매는 에일리언처럼 작가의 영혼은 아득한 우주 공간을 떠돈다. … 이 시대에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아니면 불행한 일일까? … 그들은 묻고 나는 대답한다. 문답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가는 그렇게 현재성의 압박을 견디며, 마치 커트 보네거트의 주인공처럼,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그렇다.”

 

환경과조경 347(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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