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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인조 잔디 vs. 천연 잔디
  • 환경과조경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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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혁

 

들어가며

조경에 몸 담고 계신 분들 혹은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모처럼 좋은 장소에 갔는데 정작 그 장소와 공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처음에는 여행, 데이트, 여가를 즐기러 나왔는데 어느 순간 두 다리를 혹사하며 답사에 여념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으리라. 왜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 포장 패턴이나 재료 따위에 신경을 쓰며 땅바닥 사진만 잔뜩 찍고 돌아왔는지 자책한 적이 있는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벤치나 좁은 벽 틈 사이를 애써 관찰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직업병이라 웃어넘기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지만, 참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이자 집착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까지 불러오지 않더라도, 오늘날 조경 실천(practice)에서 넓은 시각이 중요함을 듣고, 보고, 체험하고 있다. 도시설계 규모의 대단위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공원이나 광장 또는 좁은 골목길을 계획하고 설계할 때도 주변 지역의 공간적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연구하고 반영하는 설계의 과정이 오늘날 조경 실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장소가 지닌 역사가 어떠했는지, 주변 지역은 어떠한 정치적경제적인 배경으로 변화해 왔는지, 주변 지역의 지형과 수리는 어떠한지, 광역 교통 시스템에서 그 공간이 차지하는 분량과 역할이 무엇인지, 이용자의 행태는 어떠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적인 요구는 무엇인지, 지반의 구조와 미기후는 어떠한지 등 단순히 공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생태 등의 요인을 통괄할 수 있는 넓은 시각이 요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축, 토목, 엔지니어링, 시공에서부터 조명, 전기, (공공)미술, 정책에 이르기까지 가깝고 먼 관련 분야와 협업을 하면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시각 또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넓은 시각만이 현대 조경에 필요한 만능의 도구일까? 앞서 언급한 편집증적 강박은 소인배들의 무의미한 집착일 뿐일까?

실제 디자인을 시공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의도, 아이디어, 설계라고 할지라도, 실제 공간을 완성하는 것과 이용자가 직접 만지고 체험하게 되는 것은 결국 물질이고 재료다. 화려하게 멋을 낸 디자인이라도 질 나쁜 재료나 섬세하지 못한 디테일로 말미암아 그 빛이 바래는 경우가 있는 한편, 언뜻 보기엔 평범하고 수더분한 공간에서 재료 자체의 힘과 솜씨 좋은 마감을 통해 깊이 있는 내공을 느끼게 되는 사례도 있다. 작은 부분의 완성도가 모여 양질의 전체 공간을 구성하는가 하면, 아주 디테일한 일부만 보고도 미루어 전체 공간의 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직업병자들이여, 너무 걱정하지 말자. 디테일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은 분명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당당하게 좁은 시각으로 공간을 가까이보고 다시읽어보고자 한다. 정교하게 자리 잡은 나사 하나, 돌 조각 일부가 주는 감동, 좋은 재료 자체가 시사하는 바, 재료의 물질적인 측면 이면의 배경을 드러내는 등 디테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이러한 부분들이 어떻게 전체를 구성해 나가는지 살펴볼 구상이다. 모쪼록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부분이 시사하는 전체에서 즐거움을 발견하시기를 바란다. 각 에피소드의 구성은 장소의 이름과 설명 없이 디테일의 묘사에서부터 시작해, 글의 말미에서 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께 상상과 추리의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기를.

 

첫 번째 이야기, 인조 잔디 vs. 천연 잔디

연재의 첫 번째 꼭지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고민하던 차에 꽤나 재미있는 디테일을 가진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의 잔디 포장을 보자. 콘크리트 경계를 기준으로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질감이 다르다. 눈썰미 좋은 분이라면 천연 잔디인조 잔디의 차이라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멀리서 보기에는 단순히 질감의 차이로만 느껴질 정도로 근사하게 색과 외관을 맞추어 놓았다. 재료의 다름은 자연스럽게 이용의 분화로 이어진다. 매끈한 인조 잔디에서는 시민들이 활동적인 운동과 놀이를 즐기는 한편, 푹신한 천연 잔디에는 앉아서 운동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거나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왜 조경가는 이렇게 같지만 서로 다른 재료를 제안했던 것일까? 그 배경부터 설명하자면, 설계 과정 중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에서 공원 주변의 커뮤니티 학교가 필요로 하는 운동 시설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인조 잔디 오픈스페이스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경가는 천연 잔디의 장점과 편의성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 결과 주변 지형의 높낮이 차이를 이용하여 영민하게 공간과 재료를 분할했다. ...(중략)...

 

환경과조경 345(2017년 1월호수록본 일부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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