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칼럼] 도시재생, 편의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해석을 넘어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201410 표지2.png

 

‘도시재생’이 공간 문제를 다루는 모든 학계와 업계의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전국 13개 도시에 도시재생 선도 지역이 선정되어 도시재생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생하던 학계와 업계도 도시재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도시재생은 여전히 생경한 개념이다. ‘재생’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법제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재활성화’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다. 그 뜻을 새겨보면 예전에는 번성했던 곳을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로, 그 전제 조건은 도시 쇠퇴다. 이러한 점에서 엄밀히 말해 한때 활력이 있었던 곳이 쇠퇴decline한 경우와 한 번도 발전한 적이 없었던 낙후backwardness의 경우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을 ‘낙후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단’쯤으로 여기는 지자체들의 태도는 매우 안이하다. 번영했던 도시가 쇠퇴하면 공장과 상가가 문을 닫고 빈 집이 생기고 도로가 한산해지면서 그동안 도시 개발을 위해 투자되었던 각종 시설이 100%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재활성화’에는 이렇게 미이용unused되거나 저이용under-used되고 있는 기존의 도시 시설을 다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재활용’의 의미가 그 기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국에서 탈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해 가동이 중단된 수변 공간의 제조업 공장, 창고, 도크dock 등의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재활용하거나, 일본에서 ‘읽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도심에 방치되었던 대단위 토지를 재활용하여 도시재생을 꾀하려고 했던 시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재생을 ‘부수지 않고 다시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정 부분 유효하다. 실상 많은 사람들에게 도시재생은 단적으로 재개발redevelopment 또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거 재개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철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수복 재개발, 보전 재개발 등의 개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곧 도시재생은 수복 재개발, 보존 재개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의할 점은 ‘부수냐 마느냐’는 방법 또는 수단일뿐,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정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존의 것을 없애버리는 것보다 다시 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보다 효과적이라면 보존하여 이용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철거해도 된다는 것이다. 재활용하기에는 너무 노후화되고 불량화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거나 재활용할 만큼 희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까지 모두 무조건 재활용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재활용’은 건축물·시설물 등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기성 시가지내에 이미 개발이 되었던 토지의 재활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건축물·시설물을 재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재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예전의 것이 지니는 희소성의 가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수많은 달동네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신작로와 아파트는 매우 신기하고 희소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동안 거의 모든 달동네가 철거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게 됨에 따라 오히려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달동네와 골목길이 신기한 희소한 자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겨우 남겨진 철로, 공장, 창고, 점포, 한옥, 골목길, 계단길 등이 그 지역 고유의 유일하고unique 진정성 있는authentic 장소성을 나타내며 도시재생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재생은 종종 ‘마을만들기’와 혼용되기도 하면서 하향식top-down 방식에 대비되는 주민참여형의 상향식bottom-up 도시 정비·개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주민참여는 방법 또는 수단에 관한 사항이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의 ‘재활성화’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계획 이론에 의하면 주민참여에 기초한 협력적 계획collaborative planning은 그 대상이 도시재생이든 새로운 지역의 개발이든 또는 비물리적 프로그램이든 절차적 합리성과 정당성이 재활성화와 같은 계획의 성공적 산출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보편적으로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실로 도시재생의 가장 큰 특성은 그 목적인 도시재활성화가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을 통합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한 개념이라는 데 있다. 즉, 종전의 재개발이 물리적 측면에서 도시 및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도시재생은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쇠퇴 도시의 재활성화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원조격인 영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카리브 해와 서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이 공간적으로 집중됨으로써 나타난 빈곤, 치안, 인종적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 제조업 쇠퇴에 따른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도시 및 주거 환경 악화와 같은 물리적 문제와 함께 통합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일본의 경우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도쿄 등 대도시 지역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경제적 요인이 도시재생을 외치게 된 주요 배경이었다.

이렇듯 도시재생이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측면의 도시 재활성화를 통합적이고균형 있게 고려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기존의 낡은 건축물·시설물의 철거를 통해 물리적 환경만을 개선하려는 재개발의 개념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경제적 여건 개선의 핵심은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민참여가 재활성화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재생이 갖는 시대적 화두의 의미는 통합적 또는 융·복합적 접근 방식에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에서 벌이고 있는 도시, 주택, 교통, 환경, 경제·산업, 교육, 의료, 사회복지 관련 사업들이 지역 활성화라는 하나의 최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연계 사업’이야말로 도시재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막중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원장에 재임 중이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소속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