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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르조
  • 환경과조경 2004년 2월
봄마르조의 추억,
2000년 이태리 여행은 매혹적이다.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투스카니 지방의 굽이치는 언덕과 불쑥 불쑥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의 풍광은 지극히 아름답다. 필자가 보마르조를 찾은 것은 2000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떠난 답사여행에서였다. 여행에서는 늘 예기치 못한 돌발사건이 일어난다. 로마에서 훤한 대낮에 지갑을 도둑맞았다. 허탈했지만 어찌하나 답사는 계속되었다. 다음날 로마에서 빌라란테가 있는 바냐나로 갔다가, 다시 보마르조를 찾아 갔다. 동네 어귀에서 sacro bosco(신성한 숲)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입장료는 생각보다 비싸 우리가 환전한 돈으로는 4명의 일행 중 2명의 입장료 밖에는 안되었다. 궁여지책으로 필자와 한 남학생은 숲 뒤쪽의 허름한 철조망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월담은 무사히 성공하였고, 정원 안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무언의 미소를 나누었다. 그 곳은 상상했던 것보다 기괴하였다. 거대하고 섬뜩한 분위기의 조각들, 기울어진 집. 마치 놀이공원의 귀신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한 여학생이 어지러워서 더 이상은 못 있겠다고 할 정도였다. 충격적이라 할 만큼 묘한 분위기의 정원을 뒤로 하고 우리는 보마르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비테르보 역까지 3-4시간을 한참이곤 걸었다. 시골길에 널려진 산딸기를 따먹으며, 한적한 풍광을 즐기면서. 서리한 사과 맛은 달콤했다. 달리의 방문, 1949년 괴짜는 괴짜를 알아본다. 2차 세계대전 후 달리와 프라츠는 입소문으로 듣던 보마르조를 찾는다. 덤불 숲 속 폐허 속에서 괴기한 조각상들을 보면서 달리는 그의 작품세계의 진정한 동지를 만난 희열을 느꼈으리라! 팜므 파탈에 매료되었던 마리오 프라츠도 이 정원의 감흥을 ‘시간(tempo)’라는 글에서 초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아우라를 그려내었다. 이들 보다 조금 먼저 이 곳을 방문한 쟝 콕토도 그의 영화인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ete)’의 배경작업 이미지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보마르조는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1954년 정원의 주인이 바뀌면서 부분적 복원 작업을 하였고, 정원 주인인 비치오와 그의 친구 드라우헤와의 서신이 1963년 출간되면서 정원의 신비는 서서히 풀려간다. 1967년 무치카 라네즈는 신비의 인물인 오시니에 대한 소설 『보마르조』를 썼고, 같은 해 지나스테라는 같은 제목의 불협화음의 음악과 에로틱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미술, 문학,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보마르조 정원의 매력과 힘은 무엇일까? 워낙 특별하기에 모작을 찾기 힘든 이 정원은 소수 매니아들에게만 어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숨겨진 이면의 본성을 건드리는 것일까? 차근차근 보마르조의 신비를 풀어보도록 하자.
 보마르조의 탄생, 1552년에서 1583년까지 보마르조는 이태리 정원의 이단아이다. 이 곳에서는 이태리 르네상스 정원의 기하학과 대칭적 질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련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지난 빌라란테나 도도하면서도 웅장한 빌라에스테와도 확연히 구별된다. 숲 속의 언덕 이곳 저곳에 놓여진 조각상과 정원장식물, 테라스, 신전들은 이태리정원이라기 보다 공간 구성 면에서는 영국의 풍경식 정원에 가깝고, 몇몇 조각상은 동양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보마르조는 스스로의 독창성을 뽐내고 있다. “이 매혹적인 숲은 멤피스도 아니고, 세계의 다른 경이로운 곳과도 다르다. 여기는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곳이다.”
 정원을 만든 비치오 오시니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버금가는 경이로운 세계를 만들하고자 하였고, 그의 의도는 성공하여 누구도 완벽하게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정원이 창조되었다. ‘신성한 숲’ 혹은 애칭인 ‘괴물의 정원’으로도 불리는 보마르조는 명문가문 출신 비치오 오시니가 1542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으면서 터를 잡는다. 
 정원은 1552년부터 1583년에 30여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오시니는 전쟁 중인 1553년에서 1557년사이 이 곳을 떠나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이 곳에 머무르며 정원을 만들었다. 보마르조는 의도된 설계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덧붙이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정원을 만든 사람들도 여럿이고, 그 면면에 있어도 화려하다. 빌라에스테를 설계한 리고리오, 빌라란테의 디자이너 비뇰라, 조각가 아만나티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내놓으라는 예술가는 총출동하였다. 그럼에도 보마르조는 빌라란테와 빌라에스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오시니가 정원의 연출을 도맡은 총감독이다. 쟁쟁한 디자이너들은 지극히 제한적인 스탭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보마르조의 현재의 모습은 조성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 1558년 이후 분수가동이 중단되었다. 16세기의 정원은 물이 중요한 요소이자 테마였다. 계류가 정원을 관통하고 있었고, 복잡한 수도관망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조각상들은 물 혹은 바다와 관련된 넵튠, 사이렌, 고래, 거북이, 페가수스 등이 주를 이룬다. 현재의 모습은 폐허 속의 유적과 같아 묘한 페이소스를 자극하지만, 당대에는 신기한 조각들과 여러 모습의 물의 잔치로 화려한 스펙타클이 벌어졌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정원을 변화시킨 것일까? 유일한 건축물인 기울어진 집은 지진이 일어나 더욱 기울어지면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강화시키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었다. 우연의 결과치곤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연출이었다.


조 경 진 Zoh, Kyung 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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