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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 ; 도심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미완의 사업
  • 환경과조경 2005년 10월
개발국가시대의 고속성장의 상징이었던 청계천 복개도로와 그 위를 달리던 청계고가도로가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미국 보스턴시는 1971년 시작하여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도심개량사업(Big Dig)을 진행 중이지만, 우리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2년여의 토목공사와 조경사업의 결과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롭게 복원될 청계천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무료로 제공해 주는 한강물과 초스피드로 설계되고 초현대식으로 건축된 20여개의 다리로 연결된 청계천로를 형형색색의 첨단 조명기구가 밝혀줄 것이다. 도심의 역사성과 문화를 복원하고, 환경개선과 시민안전을 도모하며, 도심의 산업구조개편과 경제활성화를 목적으로 진행된 청계천 복원의 의미와 성과를 살펴보고, 그 교훈을 무엇인지 짚어보기로 하자.

어려운 선택, 청계천 복원사업

사실 청계천복원사업만큼 논란이 잦았던 사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경제, 사회, 문화, 환경적인 이슈를 함축하고, 도시의 역사를 켜켜이 담지하고 있는 곳이 청계천지역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개발지상주의적 도시공간구조를 지향한다는 신개발주의라는 비판과, 극심한 교통체증과 퇴락하고 협소한 공간, 붕괴의 위험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복개구간의 하천수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각을 세웠다.
청계천지역은 중층적 산업네트워크를 통해 도심형산업이 군집해 있는 제조·유통·소비의 기지로서 전망있는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라는 논리와, 이미 성장잠재력이 약해지고, 새로운 혁신은 더 이상 창출되지 않는 노후된 도심형 사양산업지역이므로 산업의 구조개편과 도심의 경제활성화가 요구된다는 이론이 평행선을 그었다. 낡은 청계고가 자체가 개발주의 시대의 반면교사로서 역할하여 하나의 역사자원이라는 주장과, 조선시대 초기이래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옛 물길과 교각을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하지만 청계천지역은 도심 혹은 도심주변의 발달단계에 따라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구조적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기능적, 물리적, 심미적으로 부적합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내부도시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의류시장 밀집지역은 상가의 역사가 50년 이상이 되어 건물이 낡고, 퇴락하고, 고밀도로 밀집되어 있었다. 더구나 막대한 교통수요가 발생하고, 업무의 특성상 발생하는 불법 주차문제는 심각한 교통혼잡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따라서 교통문제와 주변지역의 사업환경의 영세성, 주변공간의 퇴락, 환경의 파괴 등은 시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이에 반하여, 복원사업으로 인한 사업권보상과 기존상권 붕괴로 인한 혼란, 복원사업기간 동안의 교통불편과 혼동 등을 감안할 때, 그 성과는 상당히 먼 미래에 실현되고, 문제점은 즉시적으로 표출되는 사업이었다. 선거를 통해 공무를 담당하는 행정가로서는 상당한 결단력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즉, 청계천 복원은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리주의와 인본주의의 어려운 함수관계
청계천복원사업은 분명 우리에게 더 나아진 환경과 공간, 세계도시 서울의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기능의 선택을 가능하게 해 주는데 일조할 것이다. 비록 청계천을 흐르는 물의 10-20% 정도만이 북한산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자연수이고, 나머지는 양수기로 먼 곳에서 운반해 와야 하는 유지용수이고, 수많은 인공교각들과 과도한 조경으로 인한 주변경관은 환경친화적이기보다는 인조물친화적이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만일 우리가 사람이 누리는 효용을 정량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청계천의 복원으로 많은 서울시민들이 새롭게 누리는 효용의 크기는, 분명 복원사업으로 인해 수십년간 종사해온 일터를 떠나게 되고, 상권을 잃어버린 청계천의 예전 소유주들이 상실하게 되는 효용의 양보다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의 복원 이후 필연적으로 진행될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기존 도심형 산업의 붕괴와 그 부가가치의 상실은, 미래에 조성될 IT기반의 첨단산업과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보다는 작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청계천복원사업은 실보다는 득이 많은 사업이라고 주판알을 튕겨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을 추구하는 밴덤류의 공리주의적 사고가 놓치는 점이 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효용증대를 위한 접근능력이 같지 않고, 대체효용의 구득능력이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리주의가 무서운 총량 우선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원에 대한 접근능력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의 효용은 비록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는 작아보일지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무척 크고, 대체효용을 구할 능력이 부족하여 ‘절대적’인 어려움에 처한다. 나아가 기존의 촘촘했던 도심산업의 네트워크를 복원하려면 앞으로 또 몇 십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인본주의적인 시선으로 청계천의 옛 소유주들을 대한다면, 청계천 복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의 무게는 너무나도 힘겨워진다.

도심이 강남 것이던가? 강북 것이던가?
청계천 복원사업의 주요 논거중의 하나가 강북의 재개발이다. 청계천지역을 IT산업과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변모시켜 강남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강북의 경제기능을 고도화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를 반영하듯이 청계천주변의 집값과 땅값은 다가올 장밋빛 미래를 반영하고 있으며, 고층빌딩 재건축사업들이 버섯 자라듯이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청계천이 있는 도심지역은 분명 지리적으로는 강북이지만, 접근성으로 따지면 강남의 주거지역과의 시간거리가 강북의 주거지역 보다 가깝다. 동대문구, 성북구, 노원구, 도봉구 등의 강북 주요 주거지역에서 도심까지 가는 시간은, 그것이 지하철이든, 버스이건, 자가용이건 간에, 청계고가의 철거로 몇 개 남지 않은 좁은 도로로 교통량이 집중됨으로써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강남지역에서 강북도심으로 가는 시간은 계속되는 한강다리의 확장으로 인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청계천의 복원으로 인해 새로워진 경제기능과 산업기능의 담당자는 누가 될 것이며, 누구의 접근성이 우수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교육, 문화, 여가생활시설 등에서 나타나는 강남북의 격차해소를 위한 청계천 복원사업이, 결과적으로 강남지역의 도심접근성 우위를 결과한다면 원래의 취지와는 한참이나 멀어지기 때문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이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받은 중요한 논거가 된 강남북의 균형발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소득을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강북도심지역과 강북주거지역과의 접근성을 개선할 대안을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성장기제가 될 것인가? 성숙한 거버넌스 모형이 될 것인가?

청계천 복원사업은 앞서 지적한데로 초고속으로 진행되면서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효율성을 가장 직접적인 목표로 설정하여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모습과 재개발 이익 수혜자의 위상이 점차 드러나면서 도시의 변화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개발과 현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관료와 사업가, 이론가들의 의견이 우선적으로 수용되고, 정작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의 집합적 의견과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다양한 아픔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단순한 토건사업과 총량적 경제성장만이 동기가 되는 맹목적인 성장기제를 탈피하여, 서울시민의 참여와 의견수렴을 통한 성숙한 거버넌스체제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청계천지역의 후속 재개발사업의 형태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지출될 지라도 충분한 합의와 타협의 바탕위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도심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미완의 사업

청계천 복원사업 준공식은 청계천지역의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름다운 수변경관과 생태환경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은 옹벽을 쌓고 나무를 심는 조경사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청계천의 시민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안전을 확보하고 건강한 산업이 형성되는 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행정노력을 필요로 한다. 즉, 예전에 잔디밭을 가꾸고 ‘출입금지’ 팻말을 부착함으로써 지켜왔던 ‘친환경성’의 사고에서, 광장을 조성하여 시민의 자유로운 접근을 유도하는 ‘친시민적’ 공간 가꾸기로 변화하여야 한다.
기존 청계천로 주변에 발달했던 인쇄 출판업, 패션시장, 청계천시장으로 알려진 전문상가로 등 생산·유통·소비가 어우러진 산업지구의 기능을 어떻게 대체하고 고도화하는가 하는 전문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도심부 영세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중층적 하청·연계구조에 얽힌 다양한 기능과 동일한 공간내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졌던 특성과 장점을 어떻게 변모시킬까 하는 진지한 연구와 책임행정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로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현재진행형이 될 미완의 사업이다.

남 기 범 Nahm, Kee Bom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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