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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 ; 건축과 도시의 딜레마
  • 환경과조경 2007년 8월

파주출판도시의 정식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다. 1997년 3월 31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 197-95호(면적 470,388평)와 1999년 4월15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 1999-107호(면적, 470,388평)에 의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었으며 ‘산업입지집적활성화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에 의거해 단지의 토지이용이 규율되고 있다. 용도지역으로 본다면, 단지는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상 도시지역 내 공업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니 ‘산업단지’이자 ‘도시지역 내의 공업지역’이란 제도 공간적 지위가 파주출판도시의 태생적 신분이다.
이러한 태생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단지는 한국의 기성도시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이상 도시(ideal-type city)’로서의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러나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에서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도시’로서의 신분상승이 과연 가능할까? 과연 우리는 꿈을 제대로 꾸고 있는가? 이러한 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파주출판단지의 꿈은 1989년 출판인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사업부지 확보의 어려움, 업체 간 협력의 한계 등을 해결할 목적으로 도시외곽에 전용단지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98년 출판조합은 토지공사와 시범지구 5만평에 대한 매입계약을 체결함으로서 단지조성의 기반이 매듭 되었고, 이어 건축구상이 시작되는 단계에 건축코디네이터에 의한 건축지침이 마련되면서 ‘야심찬 도시적 목표’가 도입되었다. 그래서 출판단지는 ‘대지 위에 쓰는 크고 아름다운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도시로 담론화 되기 시작했다. 도시로의 격상에 관한 담론은 아래와 같은 밑그림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출판문화의 메카가 된다는 출판문화단지가 숱한 곡절을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단지가 지혜의 도시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실패한 우리들 도시의 비틀어진 욕망을 결단코 닮지 않기를 빕니다. 지혜의 도시는 어떤 곳일까요? 이곳은 소유하기보다 사용하기를 즐기는 이들이 사는 도시이며, 그것도 혼자 쓰기 보다는 같이 쓰기를 원하는 이들의 공동의 삶을 구하는 곳입니다. 더함 보다는 나눔이, 나뉨보다는 이움이 더욱 가치 있음을 믿는 그런 곳이지요.....”(승효상, 2001: 41)

현재 파주출판단지에 대해 꿈이 어린 많은 이름이 부여 되어 있다. ‘출판도시’,‘출판문화산업도시’, ‘책의 수도’, ‘꿈과 예절이 흐른 교육도시’, ‘지혜의 도시’, ‘건축도시’, ‘생태환경도시’, ‘습지도시’, ‘느림의 도시’, ‘비움의 도시’, ‘사유의 도시’, ‘공동성의 도시’,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는 이상의 도시’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이름은 파주출판단지가 이러한 이름으로 그려지는 도시가 되도록 하는 꿈, 희망 그리고 의지를 표방하는 담론들이다. 이렇게 말로 만들어진 도시란 점에서 파주출판도시는 담론의 도시라 할 수 있다.

개별건축의 관점에서 도시적 조직을 해석함으로써 건축과 도시적 조직은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한다. 그래서 도시적 맥락에서 건축적 유형화 계기를 추출하고, 다시 건축적 유형을 바탕으로 도시적 조직을 짜가는 방식이 파주출판도시 실험의 비법이다. 이 비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아키토피아의 실험자들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그린 밑그림에 따라 도시를 만들어가는 마스터프랜류의 접근 대신 ‘불확정적 공간(indeterminate space)’이란 개념 위에서 최소한의 ‘공동성의 지침’에 따라 공간을 구축해가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아키토피아의 실험을 위한 장치는 설계지침의 마련과 코디네이터와 섹터건축가의 도입이다. Paju Landscape Script라 일컬어지는 설계지침은 땅이 건축에 의해 채워짐으로써 형성되는 공간관계, 즉 도시조직의 구축에 대한 시방서이다. 이 지침에 따라 땅과 건축의 관계에 근거하여 최소한의 건축유형이 제시되는 절제가 가능하고, 건축의 사이를 구성하는 빈 곳에 불확정한 가치와 관계를 채우면서 공동성이 구현된다. 공동성을 현실로 옮겨내는 것은 코디네이터와 섹터건축가이며, 이들이 활용하는 실천도구는 합의, 중재, 조정이라는 프로세스이다. 이 프로세스를 통해 개별건축가들이 섹터의 개념 틀로 묶이고 섹터는 도시를 향해 나가게 된다.
아키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건축가와 건축주들은 저러한 ‘공동성’을 구현하기 위한 약속을 ‘위대한 계약’이라 불렀다. ‘공동성의 건축/도시 만들기’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이 계약이 위대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스터플랜류의 도시 공간 구축방식이 갖는 억압성과 통제성을 거부하고, 공동성의 윤리를 우선함으로써 자본의 탐욕에 거리를 두게 되며, 생태적 환경존중과 소통적 삶의 방식을 담보하는 대안 공간 창출을 통해 현대사회의 통제망으로부터 탈주에 대한 결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계약서는 출판문화를 전제로 건축의 축제적 혁명이나 공간적 사유를 통해 기존 도시의 모순을 이해하고 이를 척결하는 공간적 실천에 관한 것이다. 이 실천을 통해 파주출판도시의 사회적 실험이 이룩하고자하는 것은 ‘도시에서의 인간성 회복’이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약속은 실제 이행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파주출판단지에서는 위대한 계약 하에서 거대한 ‘건축의 사회적 실험’이 실시되어 왔다. 실험을 위한 교본은 건축코디네이터들이 마련한 ‘건축지침’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건축의 눈높이와 도시의 눈높이 간에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간극이 있었다. 건축의 공간적 구축이 복잡체계인 도시로의 자동 전환이 되는 법이 아닌 것이다. 양자 간 전이가 불가능하다고 하진 않지만, ‘긴장의 강(江)’이 사이에 존재한다. 건축설계자들은 건축을 생각하면서 도시의 보편가치 세계로 단번에 비약을 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파주출판도시 만들기’의 건축적 비법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서, 비법의 작성자들이 꿈꾸는 도시의 실제는 그 비법의 처방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건축도시의 실험을 위해 토해내고 내걸은 담론들은 그저 담론으로만 남고,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가는 파주출판단지의 현실은 ‘담론의 도시’와 다름을 현장에서 목도하게 된다. 파주출판단지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discourse)’과 ‘보여지는 것(reality)’ 사이에 긴장과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긴장은 파주출판단지가 도시가 될 수 없는 딜레마를 만들어준다.


글 _ 조명래 · 단국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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