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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 ; 출판인들의 손으로 만든 책의 수도
  • 환경과조경 2007년 8월

지난 5월 개관한 북시티 게스트하우스 ‘호텔 지지향(紙之鄕)’ 로비에서 출판도시의 1단계 완성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다. 1988년 북한산 정상에서 한국출판문화산업단지 건설을 결의한 이후 20여 년 만에 맺은 열매였다. 현재(2007년 7월) 출판도시에는 26만여 평의 대지 위에 250여 개의 출판ㆍ유통ㆍ인쇄업체가 입주해, 협업을 위한 터잡기에 매진하고 있다. 출판 관련 산업들이 한곳에 모였으니 자연히 생산과 유통라인에 저비용 고효율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다양한 출판 관련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도록 숨고르기를 하고 있어 조만간 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출판도시가 그 중심에 두려 하는 것은 애초에 이 도시를 기획했을 때의 초심, 즉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시”를 향한 염원이다. 우리는 출판도시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책을 함께 담아내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기를 바랐다. 우리나라 여느 도시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시끄러운 간판들과 불균형한 도로체계, 부조화한 건축물들이 자아내는 강박감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도시가 단순한 건축물의 집적체가 아닌, 인간을 담아내야 할 공간임을 되새겨 볼 때 이는 참으로 큰 문제였다. 우리는 이 원인을 공동의 가치 상실에서 찾았다. 개인의 이익만을 탐하다가 인간적인 삶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책을 만들던 출판인들은 그 손으로 도시 만들기에 도전하게 된다. 이렇게 출판과 건축, 출판과 도시가 함께 걸아야 할 운명이 시작된 것이다.

1980년대, 열정이 태어난 시대
우리가 처음 출판도시를 일구자 다짐했던 1980년대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내 출판량 역시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성장세를 이뤄내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는 개개 출판사의 성장, 그것도 외형적인 성장이었지 한국 출판계의 공동체적 성장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운 소용돌이 속에서도 선배 출판인들이 지금 북센의 모체쯤인 출판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 공급을 꾀했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당시 본인을 비롯해 지식산업사(김경희), 한길사(김언호), 민음사(박맹호), 범우사(윤형두), 문예출판사(전병석), 평화출판사(허창원) 등 뜻을 함께한 출판인들은 정기적으로 산행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등을 함께 오르며 지금의 출판계가 가진 문제들을 중심으로 담론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출판유통센터를 중심으로 생산과 유통이 하나로 연결되고 여기에 문화적인 힘이 더해진 도시를 건립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한국출판문화산업단지 건설’이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으다
놀라운 추진력으로 이 년여 만에 삼백육십 개가 넘는 출판 관련사를 회원으로 모으게 된 우리는 여러 조사와 연구와 검토를 통해 다음과 같은 부지 기초안을 내놓기에 이른다. 첫째, 서울 도심에서 1시간 이내의 지역일 것, 둘째, 화물수송을 위해 육로와의 원활한 연계수송을 보장할 것, 셋째, 집단이주가 가능한 대규모 신개발 주거지 인접 지역일 것, 넷째, 도시기반시설이 완비될 것, 다섯째, 토지매입가가 저렴할 것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를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때마침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신도시 건설계획에 출판단지를 포함시켜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하면서 우리의 길고도 질긴 ‘대정부 설득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선 국가의 정책적 배려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출판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정받고, 도시 조성을 통한 산업파급효과를 증명해야 했다. 이에 추진기구는 1990년부터 ‘문화의 산업화, 산업의 문화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려 우리의 사업계획을 전략적으로 구체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초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황기원 교수팀이 맡았다. 우리가 황기원 교수팀에게 주문했던 것은 우리 출판 산업의 전반적인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류-분석한 다음 적절한 산업모델을 창출해내는 것이었다. 이제 막 출판을 산업의 단계로 끌어올리던 우리 출판계로서는 아직까지 체계적인 연구나 관련 자료를 갖추고 있지 못했기에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후세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황기원 교수팀은 우리와 함께 그 어려운 기초작업에 매진해 주었다.
더불어 우리는 기존 산업단지가 가지고 있던 건조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일찍이 건축 계획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민현식, 승효상 두 건축가를 주축으로 영국 북런던대 플로리안 베이글 교수와 또 다른 젊은 건축가 김종규, 김영준 등 다섯 건축가의 참여로 ‘출판도시 건축지침’을 작성하게 된다. 이 지침서의 조항들, 예를 들어 건축의 소재부터 형태의 규칙, 구역 구분에 따른 특별규정 등은 건축주가 본인의 이익을 최대한 양보해야 가능한 것이었기에 이를 납득시키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성이 살아있는 도시, 자연과 함께 숨 쉬는 도시, 문화가 살아있는 박물관 도시에 대한 이해로, 2000년, 마침내 모든 조합원과 건축가들이 이를 철저하게 지킬 것을 약속하는 협약서를 체결하게 된다. 우리는 이 협약을 가능하게 한 아름다운 정신이야말로 우리 현대 문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으로 확신한다. 이 협약서는 ‘위대한 계약서’라 명명되었고, 그후 많은 이들에 회자되었다.

정부의 동의를 이끌어 내다
단지를 개발하는 법적 근거는 ‘산업입지 및 그 개발에 관한 법률(약칭 산입법)’과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약칭 공배법)’ 그리고 이들 법의 시행령이었다. 번번이 법률과 이를 집행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경직성’에 좌절하던 우리는 문민정부의 역사와 함께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4년 우리의 끈질긴 노력에 정부가 출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 육성책으로 정부 차원의 사업추진단을 결성한 것이다. 당시 추진사업의 주무부처였던 문화체육부(현 문화관광부)는 곧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에 42만3천평(유수지 제외) 규모의 출판단지 조성의 세부계획을 확정 발표하기에 이른다. 6년 동안 관련 부처들의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들며 설득해 온 덕분이었다. 특히 이 지역은 군사 작전지역이라, 군사 동의가 필수조건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시설이 도입돼야 하는 이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군당국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파고를 넘겨야 했고, 우리는 그 일을 해내었다. 뿐만 아니라 출판도시에 입주하는 업체 중 기본 요건을 갖춘 업체는 입주를 기준으로 5년 동안 소득세와 취득세 전액을, 그후 3년 동안은 50%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998년 파주시 자유로변 황무지에 첫 삽을 댄 역사적인 순간부터 2007년 게스트하우스 ‘호텔 지지향’의 완공과 더불어 출판도시 1단계 사업이 완성됐음을 선포하던 그 날까지 10년 동안 출판도시는 숨고를 틈 없이 달려왔다. 공사가 조금씩 안정권에 접어든 2003년에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출판문화도시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글_이 기 웅 Yi, Ki Ung ·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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