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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40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환경과조경 2009년 8월
지난 6월 26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조선왕릉’40기 전체가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 유네스코는 등재 평가 보고서에서 조선왕릉은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으로 세계유산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며 현재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점,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관리 되고 있는 점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과 같은 사회ㆍ지역 공동체의 참여에 의한 보존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는데, 그중 보고서 작성과 왕릉의 실측에 이르기까지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이창환 교수(상지영서대학 조경과)를 만나 등재 과정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선왕릉은 도성인 한양으로부터의 거리, 주변 능역과의 거리, 주변 산세, 관리의 목적 등에 따라 입지가 결정되었다. 기본적으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4km 밖, 40km 이내의 장소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춘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땅을 풍수적 길지(吉地)로 여겨 능역으로 선정하였으며, 주변 산이나 지형지물 등을 이용하여 주변의 다른 시설물과 능역을 격리시킴으로써 능역이 신성한 공간임을 드러내왔다. 풍수사상과 시대상을 바탕으로 하여 왕릉의 입지가 결정되면, 성(聖)과 속(俗)의 위계적 질서를 반영한 유교 예법에 따라 능역의 공간을 구성하였는데, 기본 묘제는 고려를 계승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능에서 치르는 각종 제례 절차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모습의 조선왕릉으로서 일정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능원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조선왕릉은 죽은 자가 머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성역이라는 개념 아래 성과 속, 신분이라는 유교적 이념상의 위계질서가 반영되도록 능역을 조성하였다. 돌아가신 선왕은 산 언덕을, 현세의 왕은 언덕 아래 평지를 이용하여, 제례 시 선왕은 능상의 언덕에서 내려와 정자각에서 현세의 왕과 만나게 했다. 능원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3단계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재실 등이 있는‘진입공간’은 산 자의 공간이고,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을 중심으로 한 곳은 선왕과 현세의 왕이 만나는 성과 속의 공간인 ‘제향공간’이다. 그리고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공간은 선왕의 공간, 즉 성역의‘능침공간’이다.

능역의 진입은 명당수가 흐르는 개천을 따라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조성해 능원의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능역 입구의 연못은 풍수적 합수지로 마음을 씻는 공간이고, 입구에 있는 재실에는 목욕실을 두어 몸을 깨끗이 하고 제례를 준비하도록 했다. 곡선의 참배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돌다리인 금천교를 만나는데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속세의 영역과 구분하는 역할을 했으며,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전문이 있다. 조선왕조의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세세히 담고 있는 조선왕릉은 단순히 역대왕의 무덤만으로서가 아니라 한 왕조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으로 매우 소중하게 자리매김 해왔다. 또한 한 왕조가 5백년을 넘게 이어오면서 그 오랫동안 일괄된 묘제(墓制)를 시행한 예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점들이 인정받아 15분이라는 단시간에 세계유산위원회의 만장일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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