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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도시스케치전
  • 환경과조경 2009년 8월
“도시계획가가 그리는 문화경관”

시각은 사물을 관찰하는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각은 주체마다 각각 다르다. 경험과 지식의 산물로 파생된 가치관은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도시스케치를 주제로 지난 6월 중순 인사동에서 작품전시회를 가졌던 도시계획가가 있다. 그는 도시계획 분야의 초석을 다져온 장본인이다. 홍익대 초대 도시계획학과장, 정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국토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박병주 교수(홍익대 명예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시계획가와 화가라는 두 개의 직함을 가지고 계신데요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저는 여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6년 동안 매일 아침 부친의 엄격한 지도 아래 붓글씨 훈련을 받았습니다. 창호지 한 장에 붓글씨를 완성해야지 그 날의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결국 그러한 경험이 해서(楷書, 일점일획(一點一畵)을 정확히 독립시켜 쓴 서체)의 기본을 익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긴장감 속에서 수없이 선을 반복해 그리며 강한 선, 부드러운 선, 살아있는 선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이지요. 선에 대한 이러한 공부는 도시계획가로서, 생동감있는 선을 긋는, 그런 선이 모여진 작품을 완성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스케치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고베의 공업전문학교시절부터입니다. 당시 미술개론 담당교수는 토목설계도도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형태미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그것을 계기로 유명한 다리를 순례하며 스케치북 속에 수많은 경관을 담아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1967년에 홍익대 전임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기며, 펜화와 수묵화가 융합된 지금의 화풍을 정립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홍익대는 미술로서 명성을 떨쳤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의 그림수업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듬해 동대학에서 도시계획과를 창설하게 되는데(참고로 홍익대 도시계획과는 국내 최초의 도시계획과다), 교재를 집필하며 그림이 풍부한 참고서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국내에 관련서적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해외의 참고서적을 탐색하던 중 미국에서 출간된『Urban Design』이란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페이지에서 세로로 반을 나누어, 반면은 텍스트로 또 나머지 반은 그림으로 페이지를 구성하며 정보전달을 극대화시킨 도서였지요. 그 책을 접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림이 풍부한 살아있는 교재를 만들어야 겠구나’라고 말이죠. 정보전달에 있어 텍스트가 충당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이미지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해도 높은 교과서를 제작하기 위한 공부로서도 도시스케치는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러한 경험과 기회는 지금의 도시스케치를 탄생시키는 밑바탕이 된 것이지요.

이번이 다섯 번째 도시스케치전입니다. 도시경관에 대한 철학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경관을 그리는 것을 풍경화라고 부르죠. 풍경화는 인간이 자연을 미적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그 동경이 미술의 한 갈래로 형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지요. 문화는 변화하고, 또 장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을 중심으로 한 문화경관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사이엔가 도시가 풍경 속으로 들어옴에 따라 새로운 경관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도시화의 진전은 오히려 사람들 마음속에 녹색 심상을 갈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관 속 문화와 역사가 담긴다는 이야기에 설득력이 생기는 거겠지요. 이러한 문화경관의 흐름은 조경이 추구하는 풍경과도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초로 도시스케치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개최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제가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한국의 국토개발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른바 산업화·도시화의 고도성장기에 처한 개발연대로서, 울산공업도시를 비롯하여, 경주, 마산, 구미 등의 도시계획, 그리고 경부고속도로의 건설과 이어진 여의도, 잠실, 강남개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굵직굵직한 도시계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쾌적한 국토환경 창출을 위해서는 보는 안목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그래서 해외의 선진도시를 견학하며 각종 도시경관을 스케치로 담아, 국내 도시계획의 기초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작품들이 바로 첫 번째 도시스케치전에 내놓은 작품들입니다.

그때가 1985년, 제 회갑 때 일입니다. 정년을 즈음해선 시선을 우리나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때는『도시건설』이란 잡지의 한 꼭지를 맡아, 연재를 하던 시기였어요. 월간으로 발행되던 것이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한 페이지에 스케치 한 장과 그 도시공간에 대한 코멘트를 구성요소로 총 4페이지를 작성했어요. 한 도시에 4페이지란 제약은 방문도시의 4개의 핵심경관을 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보이는 경관 외에도 보이지 않는 역사와 문화를 압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것이 1990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최된 제2회 도시스케치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입니다. 국내 도시경관을 담기 위한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결국 1996년『한국의 도시 박병주 도시순례 스케치』의 출판기념회와 겸하여 열린 제3회 도시스케치전에서는 당시 국내 53개시를 대상으로 작업한 약 300여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1990년부터 1995년 3월까지 약 5년 3개월간의 대장정이었지만, 당시 국내의 모든 도시를 답사하여 작품을 만든 의미 있는 전시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후 2002년에는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국토지의 표지그림 60회분을 원화전으로 가지게 되었고, 이번 2009년에 근작을 모아 이곳 인사동에서 다섯 번째 도시스케치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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