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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애리조나 메모리얼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 환경과조경 2009년 6월
USS Arizona Memorial & Hiroshima Peace Memorial Park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한국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은 외국에 있는 메모리얼로 제약이 되어있어서 한국전쟁 메모리얼은 다루지 못하고, 대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메모리얼을 소재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전쟁이야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 전체를 전장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다. 동원병력 1억 1천만명, 전사자 2천 7백만명, 민간인 희생자 2천 5백만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할 때 제2차 세계대전은 동원병력수가 약 2배, 전사자는 약 5배, 민간인 희생자는 약 50배이다. 서양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전쟁을 일으켰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중일전쟁과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진주만에 대한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과 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전투기 및 폭격기 등으로 구성된 비행단이 발진하여 아침 7시 55분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그들은 완전한 기습공격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뜻의 암호 통신문인“도라, 도라, 도라”를 함대로 전송하였다. 당시 진주만에는 130척의 미 태평양 함대의 함정들이 평온하게 정박하고 있었고, 9척의 전함중 7척이 포드섬 남쪽해안의“전함 선착장”에 일렬로 묶여져 있었다. 약 8시 10분경 USS 애리조나는 1,760파운드의 관통용 폭탄 세례를 받고 갑판이 뚫려 전방 화약고가 인화·폭파되면서 1,177명의 승무원과 함께 침몰하였다. USS 오클라호마호 역시 수발의 어뢰를 맞고 완전히 뒤집혀 4백명 이상이 그 안에 갇혔으며, 캘리포니아호와 웨스트버지니아호는 정박지에서 그대로 침몰하였다. 이밖에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테네시호 등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하와이가 공격을 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제2차 계대전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미국인들은 하나로 단결하게 되었다. 일본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결국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지게 된 태평양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1942년 8월에“맨해튼 계획”으로 명명된 원자폭탄제조계획에 착수하여, 1945년 7월 16일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한 후 일본과의 전쟁종결 수단으로서 동시에 원자폭탄의 효과를 정확히 측정해보고자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등을 목표도시로 선정한 후, 비교적 공습피해가 적고 연합군포로수용소가 없었던 히로시마를 제1목표로 정하였다. 일본의 전황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인류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원자폭탄은 시가지 상공 약 600m 지점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섬광과 함께 작렬하여, 폭심지로부터 2㎞에 이르는 시가지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불타버렸으며, 폭풍과 열선 등에 의해 약 14만명(1945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에는 한국인 2만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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